#010화
“당신이 윤정훈을 어떻게 알아?”
부인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자 강도현 반장은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부인은 자신이 모를 거라고 생각한 남편을 향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부인이 입을 연다.
“참, 며칠에 한 번 집에 들어오는 당신이나 모르지, 내가 어떻게 몰라요? 정훈이는 철중이랑 친한 동생 같은 후배예요. 우리 집에 몇 번 놀러 왔어요. 당신 설마?”
강도현은 실눈을 뜨고 흘겨보는 아내의 시선에 살짝 긴장했다.
“응? 왜 갑자기 사람을 노려보고 그래?”
“설마 걔가 고아라서 그러는 거 아니죠?”
“아, 아니야. 절대 그런 거 아니야.”
당황한 그는 양손을 세차게 흔들며 아니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의 말에 부인은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죠? 당신이 그럴 사람이 아니지.”
강도현 반장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둘의 관계가 궁금했다.
“그런데 둘이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잠깐 생각한 그녀가 말을 이었다.
“위험에 빠진 철중이를 구해 줬어요. 알잖아요, 철중이 엄청 설치고 다니다 많이 맞고 왔잖아요.”
“그 녀석이 그랬지. 무협지에 빠져서 의리니 정의니 하면서…….”
“마침 정훈이도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서 철중이가 도와주고 있죠. 철중이 말로는 엄청 똑똑하다고 하네요. 천재라고 했어요.”
아내의 말을 듣고는 있지만 강도현 반장은 여전히 믿기 어려웠다.
“정훈이는 반듯하게 생겨서 공부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요. 그리고 같이 오는 정훈이 친구 은수도 얼굴이 어쩜 그렇게 착하게 생겼는지, 아이돌처럼.”
강반장은 부인의 눈이 반짝이는 게 묘하게 기분 나빴다.
“크흠, 뭐야? 착한 게 생긴 거야? 착하다는 거야?”
“착하고 예의 바르고 우리 철중이의 좋은 동생들이란 거죠.”
아내의 말을 다 들은 강반장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여보 이거 흘려들을 말이 아니야. 중요해. 알겠지? 철중이한테 윤정훈이랑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해. 알겠지? 꼭이야.”
그 말을 들은 부인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당신 갑자기 왜 그래요? 이유라도 말해 줘요. 그래야 철중이한테 설명하지.”
“아니, 그냥 질이 나쁜 아이니까 멀리하라고 하면 안 돼?”
“성격도 좋고 착해, 그리고 열심히 공부까지 하는 아이예요. 그런 아이를 나쁘다고 하면…… 누가 착한 아이예요? 갑자기 나쁜 아이라고 하면 당신은 믿겠어요?”
아내의 반박에 강 반장도 뭐라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방 안에 적막한 침묵이 흘렸다.
결국 사실을 말해야만 아내도 이해할 거라 생각했다.
시곗바늘 소리만 들리고 있을 때 도현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게, 정보과 비공식 관리 대상이야.”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고작해야 부모도 없는 고등학생이 경찰 정보과 관리 대상이라니”
“왜 나 챙겨 주는 검사님 있잖아? 그분이 특별히 부탁했어. 비공식적으로 마크해 달라고.”
“아, 그분이면, 박 검사님 맞죠?”
강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북한이랑 관련이 있나 봐. 자세하게 말해 주진 않아 나도 잘 몰라. 하여튼 당신이 좀 해결해 줘”
“네? 북한요? 그걸…… 믿으란 말이에요?”
강도현은 더 이상 해 줄 말이 없었다.
자신이 아는 것도 그게 다였다.
그저 굳은 표정을 한 채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불편하고 불안한 침묵이 방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한참 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한편 물 마시러 나왔다가 안방에서 새어 나오던 대화를 흥미 있게 듣던 강철중.
굳은 얼굴을 한 채 조심스럽게 방으로 되돌아갔다.
침대에 앉아 지금까지 들었던 내용을 곱씹어 보았다.
‘뭐, 북한? 정보과 관리 대상이면 간첩인가? 아니 고아가 무슨 간첩이지…….’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대화였다.
자신이 아끼는 후배 윤정훈이 생각보다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책상으로 가 다시 앉은 철중은 책에 집중한 채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
마지막 8교시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요란하게 울려 펴졌다.
수업을 마친 교사는 앞문을 열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남자들로 가득한 교실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 시끌벅적해졌다.
쉬는 시간도 아까워하던 정훈은 시장보다 더 시끄러운 아이들의 소음에도 불구하고 영어 단어장을 꺼냈다.
최근에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영어 단어를 암기하기 시작했다.
강철중 선배는 수학뿐만이 아니라 학습법도 많이 가르쳐 줬다.
그가 가르쳐 준 방식은 매우 효율적이었다.
타고난 머리에 효율적인 학습법이 더해졌다.
2학년 2학기 기말고사에는 전교 1등을 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늦게 시작한 만큼 시간을 최대한 확보해야만 했다.
영어 단어장을 보던 그의 머릿속에 문득 현정옥 여사의 광고가 생각났다.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
한동안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현정옥 손자 찾기 열풍에 약간 당황했다.
자신이 전혀 모르는 일이 발생했다.
미래가 바뀐 건 아닌가 하는 불안이 정훈을 괴롭혔다.
불안한 걱정은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그리고 몇몇의 굵직한 사건이 지난 삶과 똑같이 일어나며 드디어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 터미널 사건 이후로 경찰의 감시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멀리서 자신을 감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지난 생에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최근에 주위를 더욱 신경 써서 살폈다.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씩 한두 명이 자신을 주목하는 걸 알게 되었다.
정훈은 감시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현정옥 여사에게 접근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쉽게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막무가내로 다가갔다간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아니 반드시 죽는다.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는 순간 그 차는 절대 서울로 가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폭발을 하든 강에 떨어지든 자신과 함께 탄 승객들이 몰살될 게 분명했다.
다른 사람들이 피해 보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이다.
변호사 사무실을 아무렇지 않게 폭파한 조직.
또다시 고현민 변호사와 같은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면 안 된다.
정훈은 생각에 잠겨 있었고, 옆에 앉아 있던 은수는 언제나 그렇듯 슬픈 표정으로 시집의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삐삐삐, 삐삐삐.
“훗.”
은수의 삐삐 소리를 들은 정훈이 짧게 실소했다.
과거로 돌아와서 제일 힘든 것이 느린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피씨방을 가면 좀 나았지만, 용돈이 부족한 상황에 매일 갈 순 없었다.
처음에는 삐삐를 쓰는 은수를 비웃었다.
아직도 삐삐라니……. PCS폰이 공짜로 뿌려지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고아인 우리는 휴대폰 요금이 부담스러웠다.
한때 최신형 스마트폰을 쓰던 자신이었지만 이제 슬슬 은수의 삐삐가 부러웠다.
“어 다혜 누나 번호인데?”
“다혜 누나? 박다혜 말하는 거야?”
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학 간 지 꽤 됐는데 아직도 연락해?”
“응, 연락하지. 누나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후훗.”
은수가 거들먹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사귀는 거야?”
“풋, 좆 까라! 난 열심히 일거수일투족만 보고하고 있다.”
은수가 귀찮다는 듯 무심히 말했다.
“응? 누구? 철중이 형?”
강철중 정도면 박다혜와 어울릴 거라 생각한 정훈이었다.
“맞지?”
“아니, 비밀이다. 이거 말하면 나 죽는다.”
잠깐 고민하던 은수가 정훈보며 말했다.
“정훈아, 나 전화하러 갈 건데 같이 가자.”
“응? 내가 왜?”
“따라와 인마. 그냥. 할 일도 없으면서…….”
“나 영어 단어…….”
은수는 등을 한 대 치며 정훈을 일으켜 세웠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학교 안에 있는 낡은 공중전화로 간 은수는 수화기를 들었다.
이미 외우고 있는 번호를 눌렀다.
수화기를 귀에 대고 있다가 갑자기 정훈을 보았다.
“정훈아, 나 쌀 거 같아. 잠깐만…… 이거 좀.”
“뭐?”
“빨리, 나온다, 아…….”
얼떨결에 수화기를 잡은 정훈을 뒤로한 채 은수가 화장실로 달려갔다.
수화기 너머로 박다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은수야 말해.”
“여보세요.”
잠깐동안 정적이 흘렀다.
“하아,…… 정훈이구나.”
바로 자신을 알아챈 다혜 선배에게 놀란 정훈.
“어, 어떻게 아셨어요?”
“……”
자신도 모르게 정훈의 이름을 말한 박다혜.
깜짝 놀란 가슴이 두근거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배, 아 은수가 갑자기 화장실 가서……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곧 올 거예요.”
“응”
침 삼키는 소리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침묵을 깨려고 정훈이 입을 열었다.
“선배, 수능 시험 얼마 안 남았죠? 선배는 잘 칠 거예요. 저도 응원할게요.”
낯간지럽지만 정훈은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고3인 박다혜를 응원했다.
“정말?…… 고마워.”
정훈의 말에 기분이 좋아져 밝은 목소리를 내는 그녀.
그의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지, 정훈이 너도?”
“네, 잘 지내죠. 공부도 열심히 하고요, 하하하.”
“그래, 은수한테 들었어. 쉬는 시간에도 공부한다고 하더라.”
“네? 은수가요?”
“…… 아 아니. 내가 물어봤어. 아니야, 물어본 게 아니고 은수가 이야기해 줬어. 아니 은수가 아니고”
갑자기 횡설수설하는 박다혜.
“괜찮아요? 어디 아픈 거 아니죠?”
공부를 많이 해서 머리가 아픈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정훈아 공부 열심히 해. 시험 끝나고 놀러갈게. 그때…….”
“네. 놀러 오세요. 내려오면 맛있는 거 사 주세요. 보고 싶어요, 선배님.”
보고 싶다고 하면 좀 더 비싼 사 줄 것 같아서 어울리지 않는 멘트를 날렸다.
“정말? 진짜…… 내가 보고 싶어……? 시험 보고 꼭 내려갈게. 먹고 싶은거 누나가 다 사 줄게. 기다려”
말을 마친 그녀는 실수한 것 같아 당황했다.
눈치를 말아먹은 사람도 알아챘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시 얼굴이 화끈거리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들뜬 박다혜의 목소리에 당황한 정훈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네, 선배님. 시험 잘 보세요.”
“아, 흠흠…… 고마워. 내려가면 연락할게.”
이성을 차린 박다혜는 건조한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한 다음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약간 어색하고 너무 많이 들뜬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 정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옆을 보자 은수가 자신을 보고 웃고 있었다.
“언제 왔어?”
“흐흐흐……조금 전에.”
“말하지…… 전화 끊었는데, 둘이 할 말 있었던 거 아니야?”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은수가 말했다.
“할 말은 무슨…… 궁금하니까 전화했겠지!”
“뭐가 궁금해?”
“아니야, 하여튼 다혜 선배 입이 귀에 걸리겠네~.”
알 수 없는 말을 한 은수가 교실을 향해 걸어갔다.
“뭐라는 거야, 미친놈아.”
앞서 가던 은수의 팔뚝을 강하게 후려쳤다.
“아퍼, 이 새꺄.”
은수는 약간 슬퍼 보였다.
정훈을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보고 너무 세게 친 건가 생각했다.
남자들의 우정은 고통의 강도에 비례한다.
“야, 배고프다. 저녁은 라면 곱빼기?”
정훈의 제안에 시무룩한 얼굴을 펴는 은수.
“콜”
라면은 은수의 슬픈 표정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드는 마법 같은 존재였다.
매점에서 허겁지겁 먹은 라면으로 저녁을 때운 그들은 교실로 들어가 책을 폈다.
은수는 시집 대신 로맨스 소설을 폈고 정훈은 밀렸던 사회탐구 영역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적막 속에 시간만 흘렀다.
모두가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
책 넘기는 소리만 들리고 있을 때였다.
“드르렁.”
갑자기 코를 고는 은수.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책상 위에 퍼질러 자고 있었다.
그 소리 덕분에 적막한 공간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터졌다.
“야, 일어나! 시끄러.”
“응?”
“조용히 자, 시끄러워 뒤지겠네.”
은수의 코 고는 소리 덕분에 잠깐 웃음을 지은 아이들이 곧 다시 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때 천천히 뒷문이 열렸다.
“윤정훈, 나와.”
고개를 돌리자 담임선생님 최동수가 굳은 표정으로 문 앞에 서 있었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