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화
강도현 반장은 박 검사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보낸 정보.
칭찬과 격려를 기대했다.
그런데 불같이 화를 낸다.
강반장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어리둥절한 채 전화기를 든 강도현 반장.
그의 귀에는 여전히 박현철 검사의 육두문자가 들려오고 있었다.
“너 나랑 장난해, 뭐 하는 거야? 일 안 해? 신문에 난 거 이거 어떻게 처리할 거야?”
강 반장은 박 검사가 지나치게 흥분했다고 생각했다.
그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검사님 왜 그러십니까? 그냥 신문에 나온 작은 기사입니다.”
“이, 이 눈치 없는 새끼가…….”
전화가 갑자기 끊겼다.
“후우, 후우.”
깊게 심호흡을 한 박현철 검사는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보았다.
휴대폰과 배터리, 둘로 분리된 자신의 전화기를 주웠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바닥에 던져 버렸지만 다행히 부서지지 않았다.
분리된 배터리를 연결해 전원을 켰다.
폭발했던 감정을 심호흡으로 다스렸다.
부장 검사 시절에 했던 짓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차장 검사로 승진한 자신은 격에 맡는 권위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현철입니다.”
“……”
어이없는 육두문자를 들은 강도현.
불쾌한 기분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 새끼가, 전화 좀 했다고 같은 급인 줄 아나?’
그의 침묵에 박현철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하지만 곧 써먹을 때가 있는 유용한 도구.
나중에 제대로 손 봐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참자.
“제가 지나치게 흥분했군요. 사과 드리겠습니다.”
사과부터 하는 박현철에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괜찮습니다.”
“상황을 좀 알려 주세요.”
“네, 어제 중부일보에서 중부고등학교 이사장의 미담 기사가 나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최재원 이사장이 공천 받으려고 지금 이리저리 기부도 하고…….”
박현철이 말을 끊었다.
“아, 그거 말고 윤정훈과 관련해서만 말하세요.”
“예?……네. 최 이사장이 개인적으로 장학생을 선발했는데 그게 정훈입니다.”
정훈이라고 말하는 그의 말이 거슬렸다. 이전까지는 윤정훈이라고 했었다.
“흠, 정훈이라……. 그럼 지금 중부일보 전화해서 기사 내리라 하세요”
“네? 그게 무슨, 그냥 장학금 수여하는 미담 기사입니다.”
“강 반장님, 두 번 말하지 않아요. 지시한 대로 하세요. 네?”
“아, 네 알겠습니다.”
그의 서늘한 목소리에 섬찟한 느낌을 받은 강도현이 대답했다.
“그럼 조치하고 보고하세요”
“알겠습니다. 검사님.”
“다시, 차장 검사님이라고 하세요”
“네, 차장 검사님.”
심사가 왜 이렇게 뒤틀렸을까?
강도현은 박현철의 심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매우 불쾌했지만 어쨌든 경찰을 지휘하는 검찰,
거기다 자신의 든든한 스폰서이자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다.
강도현은 어쩔 수 없이 납작 엎드렸다.
중부일보 전화번호를 찾던 강도현은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인 중부일보 사회부 부장, 이판수가 생각났다.
기자이기보다는……. 술, 도박을 좋아하고 이빨도 잘까는 반은 기자, 반은 사기꾼인 놈.
그래도 꽤 괜찮은 정보도 가끔 물어다 주는 착한 친구였다.
전화기를 꺼내 그의 번호를 눌렀다.
“여어, 짭새 웬일이냐?”
“짭새는 니미, 기레기 주제에”
괜히 이판수에게 짜증을 부린 강도현,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했다.
“야, 어제 최 이사장 기사 좀 내려 줘.”
“뭐? 안 돼.”
“야, 그냥 좀 내려 줘.”
“안돼 인마. 그거 한다고 돈 받아먹은 놈이 우리 회사 임원 중 절반이 넘는다. 나머지 절반은 룸 갔고.”
“아, 니미럴……. 그래도 말은 해 봐 응?”
강도현은 판수에게 서울에 있는 차장 검사의 부탁이라고 슬며시 알렸다.
“진짜? 근데 최 이사장 검사한테 찍혔어? 왜 서울에서 그런 지시가 내려와?”
“아니, 그 사진에 나온 정훈이 때문에.”
“뭐 윤정훈? 그놈 그거 물건이던데……. 그 사내답고 눈빛이 뭔가 있는 것 같았어.”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내가 인터뷰했으니까 알지. 야 고등학생 하나 때문에 차장검사가 움직여? 그놈 참 대단하네, 대단해.”
“나도 이해가 안 간다. 하여간 부탁할게”
“큭, 알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냐? 짭새가 기레기한테 부탁하고. 기다려 봐 말은 해 볼게.”
“어, 고맙다 기레…… 아니 이 기자. 크크크”
“지랄은……. 통일해 기레기든 기자든. 기다려, 전화할게”
“어, 바로 전화 줘 좀 급해…… 고마워.”
강도현은 초조하게 전화를 기다렸다.
미뤄 둔 서류 작성, 영수증 정리 등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지만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느리게 가는 시계만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다행히 10분도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안 된 대. 야 욕 처먹은 거 때문에 고막이 얼얼하다. 너 이거 소주로 안 돼 이거, 양주 사!”
“진짜 안 된 대? 그 이야기도 했지?”
“그럼 했지. 검찰총장이 와도 안 된 대. 에잇, 귀만 아프네, 양주 사 꼭.”
“알았다. 하여튼 고맙다. 기레기야.”
“이 미친……. 끊어 짭새야.”
“휴우…….”
강도현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니 도대체 정훈이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그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별것 아닌 기사,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것이다.
기사의 주인공도 아닌 조연인데 그걸 못 내려서 안달이라니…….
자신이 직접 전화를 할까 생각했지만 현직 경찰이 기사를 내려 달라 하면 문제가 커진다.
언론 탄압이란 기사가 내일 나올 것이 뻔했다.
생각을 거듭한 끝에 강도현이 전화기를 들었다.
***
“검사님”
“결과는요?”
사무적인 목소리였다.
“기사를 내릴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게 최 이사장이랑 약속이…….”
“뭐? 못 내려?”
박현철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목소리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검찰 쪽 요청이라고 돌려서 이야기했는데도……대한민국 검사 동네북 다됐네, 허허허.”
“송구합니다.”
“실력이 거기까진 걸 어떻게 하겠습니다. 반장님을 과신한 제 잘못입니다. 그럼.”
박현철은 강 반장의 비루한 목소리가 듣기 싫어 대답도 듣지 않고 끊어 버렸다.
‘그거 하나 처리 못 해서 쯧쯧…….’
하여튼 마음에 들게 일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이것들이 서울중앙지검 차장 검사가 뉘 집 강아지 이름인 줄 아나.’
박현철은 전화기를 들었다.
“어 난데, 중부시 최재원 이사장 파일 들고 튀어와”
“네, 선배님”
깍듯하게 예의를 갖춘 목소리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리고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30대 후반의 남자가 다급히 들어왔다.
이마에 땀이 맺힌 그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일은 저렇게 해야지.’
“여기 있습니다.”
“수고했어. 나가 봐”
검은색 결재 파일을 열어 최재원의 서류를 확인한 박현철은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전화기를 들었다.
“중부일보 사장 좀 연결해.”
“네 검사님.”
“연결되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중앙지검 박현철 차장 검사입니다.”
차장이란 말을 강조했다.
“중부일보 김수한 사장입니다.”
“기사 내려 달란 말 들으셨습니까?”
박한철이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네”
“생각에 변함이 없으신 건가요?”
“네…….”
김수한 사장은 언론사 사주로서 언론의 자존심을 지켰다.
“허허, 기사를 내릴 생각이 없습니까?”
박현철은 여유로운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네. 그리고 이건 언론 탄압입니다. 내리고 말고는 밑에서 판단합니다. 아무리 사장이라도 제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서울중부지검 차장 검사가 불법적으로 기사 삭제를 요청했다고 하면 되겠네요.”
“그렇게까지야……”
확전을 할 필요는 없었다.
여기서 멈추면 아무 문제없이 지나갈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자신도 투철한 사명감은 없었다.
다만 쉽게 밀리지 않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그건 맘대로 하시고, 대신 오늘 집에는 안 들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네? 협박입니까?”
“협박은요? 불철주야 언론 정의를 지키기 위해 힘쓰니 저도 사장님 가정의 정의를 위해 노력해야죠.”
“알아듣게 말씀하시죠”
“아, 그 딸보다 어린 년이랑……. 크크크, 늘 하시던 대로 정의롭게 마음껏 즐기시지요. 사모님께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박현철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전화기를 쥔 김수한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회사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비서와의 은밀한 밀회.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점점 공포스러워졌다.
자신의 치부를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크흠, 사장님. 제가 그것만 안다고 생각하진 마십시오.”
……기사만 삭제하면 됩니까?”
“처음엔 그거였는데 이제는 신문도 다 회수하세요”
“그걸 어떻게…….”
“그럼 뭐 어쩔 수 없죠. 나머진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럼 언론 정의를 위해서 힘써 주십…….”
“아닙니다. 검사님”
김수한이 박현철의 말을 황급히 끊었다.
자신도 모르게 공손한 말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지금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제발…….”
“……하는 거 봐서요. 그럼”
“검사님, 검사님!”
끊긴 전화기를 멍하니 보던 김수한이 정신을 차렸다.
빨리 수습해야 했다.
인터폰을 눌렀다.
“네, 사장님.”
“지금 당장, 오늘 나간 신문 다 회수해. 인터넷에 있는 기사도 다 내리고.”
서늘한 목소리에 당황한 비서실장.
“예?”
“당장 오늘 신문 다 회수하라고!”
평소와 다른 김수한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해 보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비서실장은 다급히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
시끄러운 기계 소리에 옆 사람 말소리도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높이가 5미터가 넘는 거대한 공장 입구에 선 중년의 남자.
흐뭇한 미소로 안을 보고 있다.
육중한 기계가 거친 소리를 내며 돌아갈 때 돈이 돈다.
김만호는 돈 도는 걸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기술개발에 과욕을 부려 자금난에 허덕이던 미래 중공업 김상식.
현정옥 여사를 찾아온 게 벌써 5년 전이었다.
현정옥 여사의 방침대로 담보와 함께 김상호의 평판을 조사했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의 평판과 신용이 좋았다.
신용 좋고, 성실하고 장래가 촉망받는 사람에겐 이자율을 따지지 않았다.
보통 2금융권 이율보다 1프로 더 받는 조건으로 대출을 했다.
사채라 부르기 민망한 낮은 이자.
그녀는 대신 주식을 받았다.
그것이 큰돈이 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투자자라는 이름이 더 어울렸다.
어쩌면 대한민국 최초의 엔젤투자자가 아니었을까?
김상식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대출한 자금에 여사님이 투자를 해서 숨통을 틔웠다.
그때 여사님 아니었으면 갈갈이 찢어졌을 것이다.
“형님!”
“어, 왔나?”
“전화를 하고 오시지.”
“전화는 무슨, 구경했으니 나 그만 갈라네.”
“여기까지 왔으면 소주 한잔해야죠”
“그럴까?”
“술 얻어 먹으러 온 거 아니요?”
“크하하하하.”
시끄러운 공장 소리 때문에 싸움을 하듯 큰 소리로 안부를 전한 두 사람이 호탕하게 웃었다.
“일단 제 방으로 갑시다.”
공장 안에 마련된 작은 사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규모에 비해 작고 검소한 사무실.
김상식의 사장의 검소함을 보여 줬다.
“형님 거 미리 좀 전화해요. 급하게 오느라 사고 날 뻔했네”
“알았어 전화하고 올게. 그나저나 사업은 잘되지?”
“어때 보입니까? 잘 됩니까?”
“내가 보면 아나, 그래도 기계는 쉬지 않고 돌고 있더군.”
“네, 몸이 모자랍니다. 흐흐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알지?”
“그럼요, 참 어르신은 안 오셨어요? 제가 어르신 드리려고 귀한 송이버섯 준비했는데.”
김상식 사장이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크흠, 어르신이 요즘 바쁘시네.”
“네? 하시는 일도 정리하던 분이요. 뭔데요?”
눈을 반짝였다.
“그런 게 있어.”
“아 참, 그 손자 찾기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요?”
김만호가 고개를 저었다.
“쉽게 찾을 수 있겠습니까? 납치 같던데.”
“글쎄, 그래도 어딘가에 살아 계시겠지. 그렇게 믿어야지.”
“하긴 그러니 수십 억을 지금 쏟아붓는 거겠죠.”
고개를 끄덕이는 김만호.
“그래, 오늘 안주는 뭔가?”
“전어 어때요? 고소한 게 요즘 제철이에요.”
김만호가 입맛을 다셨다.
“흐흐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전어라. 어서 가지.”
김상식의 제안에 엉덩이가 들썩였다.
그때 사장실의 전화벨이 울렸다.
“잠시만요, 형님”
김상식이 전화를 받는 사이, 김만호는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신문을 들었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던 그의 눈이 사회면에 난 사진에 고정되었다.
분명 자신이 아는 얼굴이었다.
낯이 익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기사를 읽기 시작한 김만호의 머릿속에 불현듯 떠올랐다.
‘설마’
“이봐, 오늘은 안 되겠네. 급한 약속이 있었어. 미안해 다음에 봐.”
다급하게 짐을 챙겨 일어섰다.
“아니 형님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아냐, 하던 일 해. 나 가네.”
김만호가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방을 나갔다.
만호는 검은색 세단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현수야 가자. 어서 어르신께 가자.”
황급히 자동차에 올라탄 김만호가 재촉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괜찮으세요?”
잠깐 심호흡을 한 김만호가 흥분을 가라앉혔다.
“아, 그래. 서두른다고 되는 게 아니지. 후우 천천히 빨리 가자.”
“풉, 천천히 안전하게지 천천히 빨리는 뭡니까?”
김만호의 실수를 지적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 이상했다.
곽현수는 백미러로 만호를 살폈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신문을 보던 그.
신문을 접고 다급히 외쳤다.
“현수야, 차 세워, 당장”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