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화
“승진 미리 축하드립니다.”
“다 검사님 덕분입니다.”
“와 계신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올걸 그랬습니다.”
“아닙니다. 겸사겸사 미리 왔습니다. 오랜만에 중부시 구경도 하구요. 하하하.”
박현철이 미리 주문한 음식이 들어왔다.
“제가 미리 시켰습니다. 이 집은 삼계탕이 일품이죠.”
“네.”
소주병을 쥔 박현철이 강 반장에게 술을 권했다.
“죄송합니다. 지금 근무 중입니다.”
“허허허, 같은 공무원끼리 참, 나는 노는 중입니까?”
다시 권하는 박 검사의 손을 거절할 수 없었다.
강도현은 잔이 넘치도록 가득 찬 술을 고개를 돌려 한 번에 비웠다.
“감사합니다.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박현철은 한 손으로 잔을 내밀었다.
자신과 그의 서열을 정리했다.
“검사님 덕분에 모든 게 잘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앞으로 더 잘 되셔야죠. 최소한 경무감은 하셔야죠.”
술잔을 가득 채운 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박현철이 다시 말을 이었다.
“최소한입니다. 그리고 경무감도 쉽게 올라갈 수 없는 자리인 거 아시죠?”
“물론입니다.”
강현철이 머리를 숙였다.
흐뭇하게 그를 바라본 박현철이 가득 찬 술을 한 번에 삼켰다.
“한 잔 더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몇 번의 술잔이 오고 가고 음식도 거의 사라졌다.
둘 다 얼굴이 꽤 붉어져 있다.
박현철 검사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손에 피 묻히는 일입니다.”
침을 한 번 삼킨 강도현이 입을 열었다.
“……안 하면 제 아내가…… 죽습니다. 그리고 검사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분명 문제가 많은 놈일 거라 생각합니다. 사이코패스든 간첩이든……. 그렇지 않고선 검사님이 이렇게 마크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박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위험한 놈입니다. 공권력을 직접 사용할 수 없지만, 반드시 처리해야 합니다.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놈입니다.”
“알겠습니다.”
“교통사고로 하시죠. 나머지는 우리가 처리해 드립니다. 집행유예 이상 나오지 않을 겁니다. 확실합니다.”
강도현은 우리라고 한 박현철의 말이 귀에 걸렸다.
‘우리?, 뒤에 다른 조직이 있나…… 비공식 정부 조직이겠지?’
곧 생각을 멈추고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부장, 아니 차장 검사님”
박현철은 맥주가 든 컵 두 개를 깨끗이 비웠다.
그리고 잔의 끝까지 찰랑거릴 만큼 소주를 따랐다.
한 잔을 강도현에게 건넸다.
“같이 가는 겁니다. 강 경무관님”
‘경무관’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단어였다.
강도현의 눈에 탐욕스런 불길이 치솟았다.
“감사합니다. 검사님”
그의 욕망을 알아챈 박현철이 비릿하게 웃었다.
“아 그리고 장 사장한테는 그만 받아먹어요. 그리고 그런 잔챙이들은 이제 정리하세요. 큰물에서 놀 준비를 해야죠.”
박현철의 말에 당황한 강도현.
자신에게 용돈을 챙겨 주는 스폰서,
장사장을 알고 있다는 게 영 불안했다.
“하하하, 괜찮습니다. 뭐 많이 받아먹은 것도 아닌데, 그런 건 신경 안 써도 됩니다. 이번 일만 잘 끝나면…….”
박현철 호탕하게 웃었지만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강도현의 귀에 ‘이번 일만 잘 끝나면’이란 말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을 직감한 그.
그렇다고 되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아내를 위해, 판검사가 될 아들을 위해.
그는 앞으로 전진해야 했다.
맥주잔에 가득 찬 소주를 물끄러미 보았다.
결심한 듯 잔을 들었다.
그리고 한 방울의 술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웠다.
강도현과 헤어진 박현철은 기분이 좋았다.
이제 곧 눈엣가시 같던 윤정훈을 제거한다.
아직 결정 나지 않았지만 오늘을 미리 축하하고 싶었다.
전화기를 꺼냈다.
“어 난데.”
“어머 자기.”
어울리지 않는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가니까 준비하고 있어.”
“응, 빨리 와. 꿀물 타 놓고 있을게.”
탐욕스런 눈을 한 박현철이 비틀대는 걸음으로 차에 올랐다.
법을 집행하는 자는 법을 지키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는 주변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서울로 차를 몰았다.
***
강도현이 눈을 떴을 때 밖은 이미 어두웠다.
차 안에는 술 냄새가 진동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한정식집 주차장이었다.
술에 취해 잠깐 잠을 잔다는 게 지금까지 잠들어 버렸다.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아아악,”
그의 뱃살에 붙어 있던 청테이프가 떨어지며 살도 뜯겼다.
몸속에서 초소형 녹음기를 꺼내는 강도현.
의미심장한 눈으로 한동안 쳐다보았다.
그런 다음 운전석 앞에 있는 서랍 안 깊숙한 곳에 집어넣었다.
시계를 확인하니 이미 6시.
정신을 차린 다음 차의 시동을 걸었다.
아들의 시험이 끝났을 시간이었다.
빨리 집으로 가야 했다.
“철중아.”
“다녀오셨어요?”
저녁을 먹고 있던 철중이 인사했다.
다급히 코를 막았다.
“으…… 술을 얼마나 먹은 거예요.”
“미안.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서. 시험은 잘 봤지?”
“그럼요. 잘 봤죠.”
“몇 개…….”
시험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에게 성적을 물어보기가 민망했다.
하지만 궁금하긴 정말 궁금했다.
“어휴 자기는 오자마자…… 일단 씻어요. 저녁 안 먹었죠?”
“어, 그래. 나 금방 씻고 올게”
샤워를 마친 강 반장이 거실로 나왔을 때 철중은 티비로 수능시험 문제 풀이를 보고 있었다.
“만점요.”
“뭐? 정말?”
“만점…… 정말 만점 받고 싶었는데, 두 개나 틀렸네요. 젠장”
“와, 진짜? 너 내 아들 맞아? 두 개밖에 안 틀린 거야?”
강도현이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아, 왜 이래요. 남자끼리…….”
“뭐 이 녀석아. 아빠가 아들 좀 안겠다는데.”
아들을 꼭 품에 안으며 생각했다.
부부에게 과분한 아들이었다.
착하고 정의감 넘치며 그리고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는 수재.
강도현은 아들이 훨훨 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박 검사와의 약속이 아들을 훨훨 날게 할 것이다.
“어후, 숨 막혀 자 아빠 그만.”
“어, 그래, 그래.”
“여보, 식사하세요”
간단하게 저녁상을 차린 부인이 그를 불렀다.
기분이 좋아서인지 몸도 가뿐해 보였다.
“당신 오늘 기분 엄청 좋아 보이는데.”
“그럼 안 좋겠어요? 아들이 수능을 엄청 잘 보고 왔는데.”
“철중이 말로는 잘 본 거 아니라는데.”
“그건 지 생각이고, 밖에 나가서 그런 말 하면 큰일 나는 거 알죠?”
“어, 물론”
부인은 남편이 눈치 없이 말하고 다닐까 내심 걱정됐다.
“크흠, 내가 눈치가 아무리 없어도. 그 정도는 아니야.”
그 말을 하자 눈을 흘기는 부인.
서늘한 시선을 피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입에 집어넣었다.
오랜만에 아내가 해 준 음식을 먹은 강도현은 쉬지 않고 수저를 움직였다.
“잘 먹어요. 아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자기는 앉아서 쉬어. 몸도 안 좋은데.”
“응, 고마워요.”
“네, 사모님.”
몸이 불편한 아내를 위해 항상 집안일을 도우려 했지만 고작 하는 게 설거지가 다였다.
경찰, 칼퇴근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이제 다르다.
경감을 지나 경무감까지 간다면 지금까지의 생활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강도현은 불안한 희망을 꿈꾸며 설거지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쨍그랑.”
손에서 미끄러진 그릇이 다른 그릇과 부딪치며 깨졌다.
하필 자신의 밥그릇과 국그릇이 깨져 버렸다.
결혼할 때 혼수로 사 20년을 함께 한 건데.
‘너도 고생했다.’
“아빠 괜찮아?”
“여보 괜찮아?”
“응,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 마.”
깨진 그릇을 버리고 설거지를 끝낸 강도현이 거실로 나왔다.
아내 옆에 앉아 문제 풀이를 보며 답을 체크하는 철중을 흐뭇하게 보았다.
“아. 끝났다.”
“두 개?”
철중이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 욕심도.”
강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참 엄마, 며칠 있다가 아이들이랑 파티해도 돼요?”
“응? 당연하지.”
강도현의 표정이 변했다.
“아이들 누구?”
“우리 학교 후배요. 은수랑 정훈이요.”
이름을 들은 강도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철중아 이제 그런 애들이랑은 그만 어울려.”
진지한 목소리로 아들에게 말했다.
“네? 그런 애들이라뇨?”
“근본 없는 고아들이랑 어울리는 짓은 그 정도면 됐다. 판검사 될 놈이 친구도 가려서 사귀어야지.”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여튼 데려오지 마.”
“아니 집에도 잘 안 들어오는 사람이 왜 마음대로 결정해? 괜찮아 철중아 우리 파티하자. 은수랑 정훈이랑 다 같이.”
“뭐라는 거야. 내 말대로 해!”
강도현의 고함이 거실에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두 사람.
“내가 안 된다고 했지?”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아빠는 상관하지 마세요.”
“이 자식이.”
강도현이 철중의 뺨을 후려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
모든 것이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스스로도 당황한 도현.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들에게 손찌검을 한 순간이었다.
“아니 고아면 어때요…… 좋은 친구들인데.”
철중이 큰 소리를 내지르며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당신 미쳤어?”
부인의 손바닥이 도현의 빰을 날렸다.
“당신…… 실망했어. 내가 아는 강도현은……. 이런 사람이 아니야. 당신 변했어.”
싸늘한 눈동자로 도현을 본 부인도 철중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그.
손찌검을 한 것은 실수였다.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차피 누군가 해야 할 일.
아들은 질 나쁜 고아들과 멀리해야 했다.
언제 아들의 발목을 잡을지 몰랐다.
비록 지금은 자신을 원망해도 나중에 이해받을 거라 확신했다.
눈을 감은 채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있던 강도현.
자신은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곧 눈을 뜨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어느새 비뚤어진 욕망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
“하, 끝났다. 후우.”
정훈이 긴 한숨을 쉬었다.
드디어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났다.
미치겠다. 주 5일에 적응된 몸인데 갑자기 주 6일이라니.
하지만 일 년이 지나도 적응되지 않았다.
회귀 전에 주말은 이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다.
‘주 5일 근무여, 제발 어서 오라.’
하지만 아직 4년이나 남았다.
입에서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빨리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에 가고 싶었다.
거긴 이미 주 5일이다.
가방을 싸던 은수가 정훈에게 말했다.
“정훈아, 오늘 저녁에 약속 알지?”
“응. 너 어디가?”
“나, 오늘 중부여고랑 미팅 있잖아. 훗.”
“웬일이냐? 네가 거길 가고.”
정훈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은수를 보았다.
“참석하면 5만 원 준단다. 괜찮은 아르바이트라서, 헤헷. 커피도 공짜로 준대.”
“근데 너 가면…….”
정훈은 다른 친구들이 걱정되었다. 순식간에 들러리가 될 친구들의 미래가 눈앞에 그려졌다.
“괜찮아, 1시간 뒤에 자연스럽게 퇴장해 달래. 나머지는 자기들이 어떻게든 해 본다고.”
하기야 은수가 참석 여부에 따라 미팅의 수준과 흥행이 달라진다.
“참, 넌 벌써 얼굴 팔아 돈 버냐?”
“야, 내가 너처럼 공부해서 돈 벌 재주는 없잖아.”
“그래, 넌 얼굴로 돈 벌어라. 주먹은 안 돼.”
“왜? 우리 또래 중에 내가 너 다음인데……. 스카웃 제의가 여기저기서 온다 크크크.”
“넌 인마, 착해서 안 돼.”
“내가? 나 졸라 잔인한데, 헤헷.”
은수는 주먹이 너무 착했다.
그걸로 돈을 벌기에 너무 마음이 너무 여렸다.
분명 시집과 로맨스 소설이 은수의 인생을 망친 게 분명했다.
정훈은 자신의 지난 생을 생각했다.
조직 생활이라는 건 영화와는 다른 현실이었다.
돈 앞에는 20년을 모신 형님의 등에 칼을 꼽는 게 기본이었다.
그런 잔인함이 없어서 자신도 힘들었다.
그런데 도대체 은수는 어떻게 된 거였지?
20대 초반까지 자주 연락했지만 점점 뜸해지다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
은수와의 마지막 전화가 생각났다.
자신이 본 영화를 이야기했었다.
우연히 거대한 조직에 들어간 주인공이 조직의 명령으로 친구를 죽여야 한다고.
그래서 친구를 살리기 위해 조직에 반기를 드는 내용의 영화였다.
물론 마지막에 주인공은 죽게 된다.
그 이야기를 아주 재미없게 했었다.
그 이후로 말 없는 전화가 몇 번 더 왔었다.
은수는 정말로 죽었을까?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은수가 말했다.
“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하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정훈이 넌 도서관에 있을 거지?”
“아니. 나 시내에 있는 서점 가야 돼.”
“언제 갈 건데?”
“글쎄…… 공부하다가 피곤하면.”
“그러니까 몇 시.”
“5~6시쯤 갔다가 철중이 형 집으로 갈게.”
“알았다.”
“뭘 그렇게 캐묻냐?”
“아니야. 하여튼 계획대로 움직여. 그래야 돼. 알겠지?”
“알았다.”
“나중에 봐.”
은수는 거울 앞에서 한동안 머리를 만진 다음 교실을 나갔다.
정훈도 가방을 메고 도서관으로 갔다.
‘다혜 선배도 시험 잘 쳤으려나? 한번 물어볼걸.’
정훈은 스믈스믈 올라오는 잡생각에 떨쳐 버리려고 머리를 흔들었다.
창가에 앉아 수학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머리가 복잡할 때 수학 문제가 제일 좋은 약이었다.
***
정훈은 세 시간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공부를 했다.
굳은 몸을 기지개를 켜며 풀었다.
주변을 보니 자기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긴, 토요일 오후, 하루쯤은 쉬고 싶은 날이라 모두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
시계를 보니 벌써 4시가 넘었다.
가방을 챙겨서 교문을 나섰다.
시내에 있는 서점까지는 걸어서 20분.
차로는 5분이지만 버스비도 아끼고 운동도 할 겸 걸어가기로 했다.
지름길을 선택한 그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의 뒤를 한 남자가 은밀하게 뒤쫓기 시작했다.
자신의 등 뒤에 느껴진 낯선 기운.
정훈은 조용한 발걸음이 자신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걸 깨달았다.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