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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18화 (18/200)

#018화

골목길을 걷고 있을 때 정훈은 누군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속도를 높이면 빠르게.

느리게 걸으면 느리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신의 뒤를 쫓고 있었다.

지난번 버스터미널에서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늘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항상 주변을 살피며 움직였다.

정훈은 걷고 있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자신을 쫓는 배후는 분명하다.

‘천지회.’

지난 생에 자신을 살해했던 조직.

그는 미행을 따돌리는 행동으로 상대를 자극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행동했다.

그것이 상대의 방심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골목길을 벗어나 큰길로 간 정훈은 눈앞에 있던 슈퍼로 들어갔다.

재빨리 음료수를 하나 산 다음 자신이 온 방향을 향해 거꾸로 걸어갔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자신이 나온 골목길을 무심히 스쳐 보았다.

중년의 남자가 골목에서 나오며 자신을 쳐다본다.

정훈도 그도 잠깐 얼굴을 확인한 다음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돌렸다.

정훈은 서점을 향해 걸어갔다.

다행히 자신을 뒤쫓던 발걸음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자는 분명 경찰이었다.

무심한 듯 보였지만 훈련된 사람이다.

한순간 자신을 스캔하듯 파악하는 눈매, 양복과 어울리지 않는 운동화.

일반인과는 다른 잘 훈련된 경찰들의 특징이었다.

은수 말로는 철중 선배의 아버지가 경찰이라고 했다.

철중 선배한테 부탁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곧 생각을 접었다.

철중 선배 아버지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천지회는 경찰 한 명이 나서서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은 분명 아니었다.

천지회는 공권력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정부안에도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미 정훈은 언론을 통제하는 그들의 힘을 확인했다.

중부일보 기사가 인터넷에서 순식간에 사라졌었다.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서점에 도착했다.

중부시에서 가장 큰 서점.

여기에 없는 책은 인터넷으로 사야 했다.

인터넷 서점이 최근에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온라인 쇼핑이 막 시작되고 있는 시기였다.

이제 10년도 지나지 않아 시장의 절반 이상에 온라인으로 넘어간다.

오프라인의 지배자가 온라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을 정복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는 미래.

정훈은 공부를 하는 중에도 유심히 인터넷 산업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중에서 특히 놓칠 수 없는 회사.

초록색으로 자신을 광고하고 있는 신생 포털 사이트 네이버를 주목했다.

아직 상장되지 않았지만 훗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대기업.

그 외에도 투자할 곳이 넘쳐났다.

시드 머니만 있으면 10배 이상 불릴 수 있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가진 것은 단돈 50만 원.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준비해야 할 시기다.

섣부르게 나섰다가…… 살해당할 수 있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정훈은 부족한 돈 때문에 사야 할 책을 꼼꼼히 살폈다.

돈이 많다면 다 사고 싶었지만 한정된 돈 안에서 골라야만 했다.

그래서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고민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문제집을 선택한 정훈.

서점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피해 계산대로 갔다.

“어머 정훈아. 여기서 보네”

서울로 전학 간 박다혜가 서점 안에 있었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등장에 어리둥절한 정훈.

“어 다혜 선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반가웠다.

수능시험이 끝난 그녀는 대학생 같은 성숙한 느낌을 풍겼다.

하지만 촌스러운 빨간 입술과 어색한 볼 터치로 꾸민 그녀의 얼굴.

수준 미달의 화장 실력은 누가 봐도 그녀가 고등학생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 책 좀 사러 왔어.”

박다혜는 순간 실수를 직감했다.

그리고 정훈이 모른 척 넘어가길 바랐다.

하지만 눈치 없는 자식이 귀신같이 지적했다.

“네? 책 사러 여기요? 서울에 더 큰 서점 많을 텐데.”

박다혜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해서 귀까지 붉어졌다.

정훈은 갑자기 얼굴색이 바뀐 그녀가 걱정되었다.

“다혜 선배?”

화들짝 놀라며 반응하는 박다혜.

“어, 아…… 그래 책 사러 온 게 아니라 누구 만나러…….”

본심이 튀어나온 박다혜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

“아, 그것도 아니고…… 무슨 책 샀어?”

횡설수설하던 그녀가 정훈이 들고 있던 책으로 화제를 돌렸다.

“문제집요. 지금 있는 건 다 봐서요.”

정훈이 고른 책의 제목을 본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모두 최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참고서였다.

“은수가 너 미친 듯이 공부한다던데. 너 혹시 서울대 목표로 하는 거야?”

“아, 네”

“무슨 과?”

“법대요”

박다혜는 정훈의 눈에서 단호한 의지를 보았다.

그 순간 박다혜도 드디어 자신이 법대에 진학해야 할 이유를 발견했다.

“선배도 서울대 쓸 거죠? 무슨 과 갈 거예요?”

“아. 나도 법대 가야지……. 그래서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으려고.”

또다시 쓸데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네? 누굴 기다려요?”

“아, 아니야. 오랜만에 만났는데…….”

당황한 표정을 짓던 박다혜는 갑자기 정훈이 든 문제집을 낚아챘다.

그리고 계산대로 가 전부 계산했다.

10만 원이 넘는 돈을 쓴 그녀 덕분에 정훈은 당황했다.

하지만 돈이 굳어서 기분이 좋았다.

“고마워요. 선배.”

“너 열심히 해서 꼭 법대 와야 돼…….”

그 말을 한 그녀는 잠시 후에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기다리고 있을게.”

잘 듣지 못한 윤정훈이 되물었다.

“네? 누구를요? 저요?”

수줍은 듯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말에 잠깐 당황한 정훈.

하지만 법대에 들어갈 실력을 인정받은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아진 그가 박다혜를 보며 웃었다.

“네. 꼭 법대로 갈게요.”

정훈의 해맑게 웃는 얼굴은 본 박다혜는 또다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정훈아, 공부 열심히 해.”

“네. 고마워요. 선배는 이제 뭐 할 거예요?”

“나? 볼일 다 봤으니까 이제 집에 가야지.”

“누구 기다리기로 했잖아요?”

정훈은 약속을 잊고 집으로 가려는 그녀가 약간은 한심해 보였다.

“아, 맞다. 누구 만나기로 했었지, 헷. 그럼 너 먼저가”

기분이 좋아진 그녀가 정훈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환환 미소를 짓는 그녀의 눈이 반달처럼 예쁜 아치를 그렸다.

‘흠, 정말 예쁘긴 하네.’

박다혜의 얼굴을 본 정훈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순간 얼굴이 갑자기 화끈거렸다.

“선배 저 갈게요. 다음에 봐요”

자신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녀.

정훈은 무심한 척 뒤 돌아 서점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그 덕분에 정훈은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

“형, 저 너무 늦은 거 아니에요?”

“어, 왔어? 아니야. 괜찮아.”

“은수는요?”

“주방에서 엄마 도와주고 있어”

“저도 뭐 도울 거 없어요?”

“아니 괜찮아. 다됐어.”

철중이 정훈을 소파에 앉혔다.

약간 긴장한 얼굴로 정훈에게 말했다.

“나중에 우리 아빠도 올 건데……. 너 우리 아빠 처음 보지?”

“네.”

“혹시라도…….”

철중이 말을 하려다 말았다.

잠깐 생각을 한 다음 다시 말했다.

“우리 아빠가 조금 무서워 보일 수도 있으니까 너무 놀라지 마.”

“괜찮아요.”

“가자.”

철중은 정훈을 식탁으로 데려갔다.

은수는 주방에서 아주머니 옆에 찰싹 붙어 이것저것 도와주고 있었다.

누가 보면 은수가 이 집 아들인 줄 알 정도였다.

“철중이 대신에 은수를 내 아들로 해야겠어. 어떻게 이렇게 여자 마음을 잘 아는지, 호호.”

“엄마, 은수 선수야. 조심해. 그러니 이 조그만 도시에 팬클럽이 있지.”

“20년만 젊었으면 내가 팬클럽 회장 했을 텐데.”

“어휴.”

철중은 황당한 엄마의 말에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응, 정훈이 왔어? 춥지?”

반가운 얼굴을 한 아주머니가 정훈을 꼭 안았다.

아주머니는 놀러 올 때마다 그들을 꼭 안았다.

다 큰 녀석들이라 징그러울 법했지만 사랑스럽게 보듬어 주었다.

그들이 느껴 본 적 없던 포근한 엄마의 품을 선물했다.

“정훈이 너 요즘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철중이도 걱정하던데.”

“아니에요. 늦게 시작했으니 열심히 해야죠.”

“쉬엄쉬엄해. 천천히 해도 될 만큼 똑똑하다고 하던데.”

“넵! 그럼 오늘부터 쉬엄쉬엄하겠습니다.”

정훈이 장난기 가득한 말로 대답하자 모두 웃음 지었다.

“자, 이제 그이만 오면 되는데…….”

거실로 가서 전화를 걸었다.

통화를 한 그녀가 주방으로 돌아왔다.

“얘들아, 조금만 기다려. 바로 앞이라네. 이제 곧 오실 거야.”

눈앞에 먹을 것을 가득히 두고 있으려니 다들 힘들었다.

허기진 배는 무엇이든 빨리 넣으라고 아우성이었다.

다행히 5분도 지나지 않아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여보 미안해 조금 늦었어.”

“괜찮아. 빨리 와요. 다들 기다리고 있잖아요”

“응? 누가?”

다들이란 그녀의 말에 강도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긴요, 은수랑 정훈이죠”

“뭐?”

강도현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나지막이, 하지만 불쾌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쉿, 당신 오늘도 쓸데없는 소리하면 이혼인 줄 알아. 철중이 후배들이니까 친절하게 행동해.”

조용한 목소리로 경고하는 아내의 기세에 눌린 강도현,

입술을 꽉 깨물 수밖에 없었다.

“정훈아, 은수야 인사하러 가자.”

“네.”

철중이 아이들을 주방 밖으로 데려갔다.

“안녕하세요, 정은수입니다.”

은수가 웃는 얼굴로 도현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정훈도 고개를 숙이며 도현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윤정훈입니다.”

“그래, 철중이 아빠야. 반가워.”

강도현의 얼굴을 본 정훈은 깜짝 놀랐지만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낮에 골목길을 따라오며 자신을 미행했던 사람이 분명했다.

‘철중이 형 아버지가 나를 미행했다니…….’

어색하게 웃음 짓는 그의 표정에 은수도 정훈도 어색하게 화답했다.

“자, 앉아서 먹자.”

도현은 이 자리에서 화를 내기도 그렇고 해서 아내의 말대로 친절하게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낮의 일이 신경 쓰여 정훈의 표정을 살폈지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안도한 그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수저를 들었다.

“여보 얘들한테 한 잔 줘요.”

부인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도현에게 줬다.

“괜찮을까?”

미성년자인 게 신경 쓰인 도현이 아내를 보았다.

“그럼, 괜찮지. 그리고 술은 어른한테 배워야지.”

“그래, 자 그럼 내가 한 잔씩 따라 줄게.”

철중의 잔이 가득 찼다. 다음 은수, 그리고 정훈의 잔이 가득 채워졌다.

“자, 지금까지 고생한 철중이를 위해서. 그리고…… 은수랑 정훈이를 위해서.”

도현이 잔을 높였다.

“넵. 감사합니다.”

잔을 부딪친 다음 모두 한 번에 잔을 비웠다.

첫 잔은 원샷.

정훈은 오랜만에 느껴 보는 맥주 맛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이 좋은 기분을 경계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한 잔 더 줄까?”

철중과 은수는 잔을 채웠지만 정훈은 정중하게 사양했다.

“아니요. 저는 괜찮습니다.”

스스로 절제하는 정훈의 모습을 놀라운 눈으로 봤다.

이 시기의 아이들 대부분은 호기심에 몇 잔을 마신다.

은수도, 철중도 궁금해서 멈추질 않았다.

하지만 한 잔으로 멈춘 정훈의 의지에 모두가 감탄했다.

정훈은 이미 다 먹어 봤던 것이라 궁금하지 않았다.

지난 삶의 동반자였던 술.

패배했던 삶을 값싸게 위로해 줬다.

좋은 친구의 위안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악마의 독이었다.

회사를 다니며 술을 멀리하자 제대로 된 삶을 살게 되었다.

정훈은 오늘 이 한잔으로 술과 이별하기로 다짐했다.

테이블을 가득히 잔뜩 차려진 음식은 네 명의 남자들 입안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자신이 준비한 음식을 먹는 것을 흐뭇하게 보던 그녀.

오늘의 만남을 준비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굳은 표정이지만 친절하게 대하려는 남편의 노력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남편도 곧 아이들에 대한 편견을 벗어 버릴 거라 생각했다.

***

강도현은 그날 이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사이코패스라 생각했는데 정상이었다.

분명 문제가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의심을 떨쳐 버릴 수 없던 그는 정훈의 기록을 요청했다.

정보과에 보내온 자료를 보았지만 아무 내용도 없었다.

박현철의 말대로 요주의 인물이라면 기록에 락이라도 걸려 있어야 했다.

국정원 관리대상은 보안문서로 지정돼 쉽게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정훈은 그런 것도 아니었다.

강도현은 다시 한번 확인해야 했다.

“검사님, 윤정훈이 간첩인 게 확실합니까? 아니면 국정원에서 관리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까?”

“크흠, 생각이 많아지셨군요.”

“네? 그건……아닙니다.”

“강 반장, 이미 발을 담근 이상 빠질 순 없어요. 이번 주 안으로 처리하세요.”

“네? 검사님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십시오. 아직 확인할 게 있습니다.”

“확인은 내가 했으니 약속대로 처리해.”

“네?”

갑작스러운 그의 반말에 깜짝 놀랐다.

“못 들었어? 약속대로 진행해. 아니면 이제 네가 죽는 거야.”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렇게 알고 제대로 행동해.”

박현철은 제대로 된 설명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의 강요와 협박에 불쾌해진 강도현.

이 일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때 문자가 들어왔다.

[이번 주까지. 그리고 이메일 확인하시길.]

박현철의 짧은 문자.

이메일을 확인한 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지금까지 그가 업체들에게 받은 용돈의 액수가 정확하게 적혀 있었다.

지난번에 자신의 스폰서 최 사장도 언급했다.

그는 강도현의 숨통을 쥐고 있었다.

“후우…….”

긴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 되돌릴 수 없다.

할 수 있다면 그날의 식사 자리에서 거절하고 싶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법, 분명한 건 하나였다.

둘중에 하나는 죽어야 한다.

최소 경무관을 보장받는 일, 해야만 하는 일이다.

아니면 자신이 죽는다.

가족을 생각해야 했다.

아픈 아내와 자신의 아들.

시간을 끌수록 주저할 것 같았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경찰서를 나섰다.

중부고등학교 앞에서 차를 대고 기다렸다.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친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혼자서 교문을 나서는 정훈이 눈에 보였다.

항상 같이 다니던 은수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 직감한 강도현은 조용히 차의 시동을 걸었다.

오후부터 먹구름 가득했던 하늘이 굵은 빗방울을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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