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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32화 (32/200)

#032화

“아 네, 공사비요? 당연히 넣어 드려야죠. 저희 그렇게 양아치 아닙니다. 기다려 보세요. 잠깐 문제가 있어서 늦어진 겁니다. 이번주 중으로 입금될 겁니다. 이 사장님,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중부건설 이수홍 사장의 공사비 독촉 전화를 받은 이만식.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200만 원이 넘는 양주를 들고 동생에게 술을 따랐다.

“어이구, 형님!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야, 천식아, 잘 나가는 회사 날로 먹게 생겼는데 어떻게 안 좋아. 거기다 그 회사로 중부시 최대 재건축 시공권이 들어오게 생겼는데. 최소 천억이다.”

이천식의 눈이 커졌다.

“천억? 흐흐흐 형님. 그런 거 같이 먹읍시다. 혼자 드시면 배탈 나요.”

“알아, 알아. 어차피 나 50, 너 30, 그리고 그분들께 주식 20프로 상납해야 되는 거 알잖아.”

“젠장, 하는 일도 없는 노친네들이 20퍼센트나 처먹기는.”

“스읍, 이 자식이. 그놈의 주둥이 함부로 놀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뒤지는 수가 있어.”

“농담이요. 농담. 한잔하세요”

“다음 주에 부도 나는 건 확실하지?”

“네, 다음 주 월요일 10억짜리 어음 돌렸어요. 걔네들 돈 없어서 절대 못 막아요. 혹시나 해서 15억짜리도 준비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형님”

“오케이. 자 동생아, 잘 발라 먹자. 참 조합장 교체는?”

“우리 애들 중 하나가 갈 거예요. 그놈 참 50억 현금으로 꽂는다는데 눈도 꿈쩍 안 하던데요?”

“그래? 배때기에 칼 들어와도 눈도 깜빡 안 하는지 한번 보고 싶네.”

“흐흐흐, 우리 형님. 하여튼.”

“너 인마, 그리고 애들 관리 잘해. 적성은 탑 5에 드는 철거 업체야 더 이상 조폭 아니다.”

“예 형님. 이 동생만 믿어 주십시오.”

“야 인마, 핏줄 안 믿으면 누가 믿어. 부모님이 사이좋게 지내라 안 했냐? 한 잔 마시자.”

“네. 흐흐흐.”

두 사람은 즐겁게 술을 나눠 마셨다.

그러다 문득 이천식이 물었다.

“참, 그놈은 안 담가요?”

“글쎄. 위에서 하지 말라네. 눈이 너무 많아졌다는데. 우리 영감님들 생각보다 겁이 좀.”

“아, 그렇죠. 겁이 좀 많으시죠. 맡겨만 주면, 보는 눈이고 뭐고 확 끝내 버리는데.”

“야, 근데 그것도 쉽진 않겠더라.”

“네? 윤정훈이 경호하는 놈, 운전기사 곽현수. 놈 분위기가 익숙해. 낯이 익어.”

“익숙하다……. 형님이란 같은 출신이요? 글쎄. 조회가 안 된다는데…….”

“정보사구만. 그럼 쉽진 않겠네요.”

“저번에 장난삼아 저격용 라이플로 조준했더니……. 휴, 딱 쳐다보더라. 허허허.”

“진짜?”

“정말이라니까, 한 700~800미터 됐는데.”

“그래요? 에이 우연이겠지.”

“그래, 술이나 먹자. 애들도 이제 불러.”

술에 취해 여기저기 지분거리며 신나게 흥을 즐기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쉿.”

만식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검지를 입술에 대며 모든 사람이 조용해지길 기다렸다.

벌떡 일어서서 전화를 받았다.

“네, 회장님. 만식입니다.”

“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살려 주십시오. 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만식이 동생 천식을 노려보았다.

“야, 이수홍 사장이 현정옥에게 갔었어?”

“네? 그게 무슨?”

“너 똑바로 일 안 해? 형 먼저 뒤지는 거 보고 싶어서 그래?”

만식은 한 대 후려치고 싶었지만 동생 체면을 생각해서 참았다.

“후우, 빨리 처리해. 난 회장님께 들어가야겠다.”

이만식은 자신 앞에 놓인 글라스에 양주를 넘치도록 채웠다.

그 잔을 한 번에 비운 다음 자릴 떴다.

다급해진 천식도 지금까지 참아 왔던 본색을 드러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순하게 행동했던 걸 후회한 그는 전화기를 들어 부하들을 불렀다.

***

“돈 들어온다고 하죠?”

중부건설 이수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믿습니까?”

정훈이 물었다.

“그게……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믿고 싶으시군요. 그럼 뭐 어쩔 수 없죠.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는 게 사람이니.”

건방진 말을 내뱉는 게 이수홍의 심기를 건드렸다.

하지만 현정옥 여사의 손자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다음 주 월요일, 늦어도 수요일 전에 어음이 올 겁니다. 분명 막을 수 없는 금액이겠죠.”

“지금이라면 못 막지만, 그래도 월요일에 입금되면 됩니다. 들어올 공사비가 20억이 넘는데…….”

“들어오면 문제가 없죠. 사장님, 계획대로 되면 문제는 없어요. 항상 계획대로 안 되니 문제죠……. 아 현금은 충분히 가지고 계시죠? 그거 아니면 흑자 도산, 잘 알 거라 생각합니다.”

이수홍 사장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소파에 앉아 있는 고등학생의 냉정한 분석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흑자 도산. 이익이 나는데 돈이 돌지 않아 발생하는 부도.

중부건설도 월요일까지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흑자 부도가 확실했다.

“주식을 팔면 약속은 분명히 지키는 겁니까?”

“네, 물론입니다. 시공사 선정까지 최선을 다할 겁니다. 자금이 충분하니 다른 업체보다 훨씬 유리합니다. 장담하죠.”

“그건 그렇지만. 덩치가 너무 큰 거 같아 부담스럽습니다.”

“사장님, 이건 시작입니다. 아직도 대한민국 곳곳에 아파트를 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훈은 이수홍의 욕망을 자극했다.

중부시의 중견건설업체 연 매출 200~300억 정도 되는 작은 업체.

건설회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아파트 건설.

그의 숨겨진 꿈을 꺼내고 있었다.

“이걸 믿어야 할지, 가능할 것 같지는 않은데.”

이수홍 사장은 고개를 들어 윤정훈의 얼굴을 보았다.

‘고등학생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웬만한 사장들도 무릎 꿇릴 만큼 대단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자신도 저절로 몸이 숙여졌다.

그렇다고 강압적인 것은 아닌,

‘거인’에게서나 볼 수 있는 기운이었다.

아파트!

지금도 밑에서 올라오는 건의.

하지만 자금력 때문에 쉽지 않았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일으켜야 되는데 중소 건설사에겐 하늘의 별 따기다.

이수홍 사장은 장고를 거듭했다.

회사 주식의 50%+1 주를 넘기는 거래.

결국 회사를 넘기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는 경영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거기다 이번 중부시 주공 아파트 1, 2단지 재건축.

시공사 입찰에 참여하면 할 수 있으면 수주를 기대할 만했다.

가장 어려웠던 자금지원만 된다면.

지역에서 성실히 닦아 놓은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만약 수주하면 지금 규모보다 회사는 몇 배가 커진다.

중견을 넘어 1군 건설사로 도약할 수 있다.

엔지니어로 대규모 아파트 시공을 꿈꿨다.

하지만 경영자로서 회사를 크게 키우길 원했다.

건설, 토목 엔지니어이자 경영자인 자신의 꿈.

도급순위 100위 안에 드는 1군 건설사.

조그만 회사의 소유주냐?,

1군 건설사의 핵심 대주주냐?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시간을 더 주십시오. 솔직히 믿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공사 선정은 아직 미정이지 않습니까? 돈은 분명히 다음 주에 들어옵니다. 이만식 사장이 약속을 지킬 겁니다.”

“뭐, 어쩔 수 없죠. 겪어 봐야 아는 게 사람이니. 대신 다음에는 오늘과 같은 관계는 아닐 겁니다. 그 정도는 감수하셔야죠?”

“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희망에 판돈을 건 이수홍.

그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뀔 것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아쉽지만 기다려야 했다.

강압적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분명한 건 천지회가 노리는 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마수에 빠졌다는 사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들의 욕심에 당하면 알 것이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올 것이라 믿었다.

“네. 알겠습니다.”

“저도 진심으로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훈은 정말 그를 걱정하며 말했다.

그가 아니라도 다른 후보들이 있었다.

이 회사가 가장 좋은 상황일 뿐이다.

일말의 희망을 안고 돌아가는 이수홍의 뒷모습을 보며 정훈은 옆에 있던 현수에게 눈짓했다.

곽현수는 조심스럽게 그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

“여기 맞나?”

“네, 여기입니다.”

“회장님은, 이 황무지를 사서 뭐 하려고 그러지? 농사라도 지으시려나?”

“풉, 우리 회장님 성격 모르세요? 더러운 거 딱 질색하시잖아요.”

“흠, 우리가 회장님 큰 뜻을 알 수는 없겠지.”

일송그룹 비서실장 한현동이 앞장섰다.

일송.

재계 순위를 매길 수 없는 그룹.

계열사가 무엇인지 잘 파악되지도 않는다.

대부분이 비상장회사, 주식회사는 없다.

막강한 자금력으로 움직일 뿐이다.

유한회사로 되어 있어 잘 파악이 안 되는 비밀스러운 그룹.

회장 심복이 직접 이곳을 찾았다.

분명 중요하고, 보안을 유지해야 할 임무.

등산객처럼 복장을 위장한 그들은 배낭을 메고 스틱을 든 채로 군청 옆의 부동산 사무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네, 어서 오세요.”

연기군에서 10년 넘게 부동산 소개를 해 온 강민식은 등산객으로 위장한 두 사람을 맞이했다.

오랜 업력을 가진 자신에겐 그들의 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등산을 하러 온 사람치고는 단정한 머리.

깨끗한 운동화.

중요한 사람의 일을 대신 봐주는 사람이라 판단했다.

“뭘 찾으십니까? 근처에 좋은 주택이 하나 나왔는데.”

상대를 안심시켰다. 땅 사러 온 사람에게는 집부터 추천해야 한다.

“하하, 아니 이 근처 산에 등산 왔다가 경치가 너무 좋아서 땅 좀 보려고 합니다.”

“땅 말입니까? 저는 농가 주택 보러 오신 줄 알았죠. 허허허”

잘 속였다고 생각한 민식이 웃었다.

민식을 속였다고 생각한 그들도 미소 지었다.

지도를 편 민식이 여러 곳을 제안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이미 그들이 원한 토지는 정해져 있었다.

일송그룹 비서실장 한현동이 무심하게 손가락을 가리켰다.

“여기는 어떻습니까? 강변이라 가격도 쌀 것 같은데.”

“하아…….”

민식은 짧게 탄식했다.

“여기는 얼마요. 딱 봐도 황무지라 싸겠구만.”

“거기는……. 얼마 전에 싹 다 팔렸습니다. 한 달만 일찍 왔어도 좋은 가격에 살 수 있었을 텐데.”

“뭐요? 팔리다니. 얼마나요?”

“처음에 10만 평 팔리고 또 10만 평, 총 20만 평 다 쓸어 갔죠”

“도대체 누가?”

“그건 저도 잘…….”

이럴 땐 모른 척 하는 게 최고라는 걸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민식은 왠지 그곳이 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몇 달 사이에 이렇게 은밀히 와서 땅을 사 간다?

이건 확실한 정보였다.

“일단 나가지. 다음에 오겠습니다.”

“네. 다음에 또 오십시오.”

당황한 얼굴을 한 채 사무실 밖으로 나간 한현동이 급히 전화기를 꺼냈다.

“회장님. 현동입니다”

“그게 말씀하신 땅을 누가 먼저 샀다고 합니다.”

“20만평 정도입니다.”

전화기 너머로 깊은 한숨이 들려왔다.

전화를 끊은 일송그룹 회장 송철호.

백발에 흰 눈썹이 치솟아 있었다.

주름진 얼굴에 깊게 새겨진 주름이 그의 불쾌한 기분을 드러냈다.

이마를 찡그린 채 골똘히 생각했다.

정보가 새어 나갔을 리는 없다.

우연이라 생각한 그.

“연기군 이 땅 소유주 누군지 확인해.”

“네 회장님.”

10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온 비서는 검은색 결재 파일을 그에게 전달했다.

“한 사람입니다.”

“뭐? 한 사람? 어느 재벌이야?”

“그게……. 미성년자입니다. 그 현…….”

“설마…….”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결재 파일 안에 들어 있는 등기부등본을 확인했다.

등본의 마지막의 소유주란에는 기분 나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윤정훈.’

쓰디쓴 미소가 일송그룹 회장 송철호의 얼굴에 그려졌다.

그때도, 지금도 처리하지 못한 게 한스럽기 그지없었다.

***

월요일 오후 다섯 시가 지났다.

중부건설이 시공 중인 빌딩 공사 현장.

인부들 대부분은 돌아가 조용했다.

중부건설 사장 이수홍은 옥상에 올라 저물어 가는 저녁노을을 보고 있었다.

한겨울 찬바람이 그의 뺨을 때렸다.

돈 걱정 때문에 추위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더욱이 1시간 전 직원의 전화.

5억짜리 어음이 돌아와 내일까지 결제를 해야 한다는 말에 심장이 주저앉았다.

‘이렇게 흑자 도산을 맞는 건가?’

공사비만 제대로 정산되면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아직도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사장님.”

이수홍 사장은 기다렸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이고, 사장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건축주 이만식의 얼굴을 본 중부건설 사장의 얼굴이 활짝 폈다.

자신도 모르게 구원자의 두 손을 꼭 잡았다.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입니다. 오늘 돈이 들어온다고 했는데 안 들어와서……. 직접 오신 걸 보니 이제 안심이 됩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이 사장님. 제가 월요일 날 해결한다고 하자 안았습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만식이 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전달했다.

그것을 받은 이수홍.

“수표로 준비하셨습니까? 그럼 제가 내일 처리하겠습니다.”

“한 번 읽어 보십시오.”

‘읽어 봐?’

무슨 말을 하는지 의아했다.

“네?”

“읽어 보고 도장 찍으시면 됩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얀 봉투 안에 있는 서류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중부건설 사장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이 가격에 회사를 팔라는 게 말이 됩니까? 날강도 같은 놈들이!”

“말이 심하네.”

이만식이 비열하게 웃었다.

“창수야, 여기 좀 정리 좀 해”

어느새 나타난 건장한 청년 중 하나가 그의 손을 꽁꽁 묶었다.

그리고 낭떠러지 같은 난간 위에 그를 세웠다.

“살, 살려 주세요. 이게 무슨 짓입니까?”

“흠, 그러니까 도장을 찍으면 될 일을 왜 우리를 이렇게 나쁜 사람으로 만듭니까?”

“…….”

“자 내려와서 도장 찍읍시다. 네?”

그때 옥상 입구에서 둔탁한 파열음과 짧은 비명이 연이어 들려오기 시작했다.

빌딩 난간 위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던 남자의 눈에 자신을 향한 두 남자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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