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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36화 (36/200)

#036화

정훈은 카페 입구에서 봉고차 숫자를 확인했다.

10대 정도 되어 보였다.

안에 10명이 있다고 가정하면 못해도 100명.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눈에 선했다.

100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손에 각목과 쇠 파이프를 든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상대의 무모한 도발, 정훈도 혹시 몰라 준비했던 걸 꺼내야 했다.

상대의 도발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는 법.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계획.

하지만 실행되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헛된 바람은 이루어지는 법이 없었다.

정훈은 전화기를 들었다.

“접니다.”

정훈의 전화를 받은 곽현수.

그의 눈앞에는 정훈의 말대로 십여 대의 차가 보였다.

그의 예측대로 온 것이 신기했다.

‘신기가 있나? 미아리에 점집을 차려야 될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투표장을 급습하는 건 너무 무모하다 생각했는데,

상황은 그의 예측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

“보자……. 몇 대야? 아홉, 열…….”

“열 대 준비했습니다. 네 상무님.”

“그래, 힘 좀 쓴 거 보니, 이제 정신 좀 차린 거 같네. 후우, 그동안 우리 재건축 대의원님들 밥 먹이고 선물 사 주고, 조합원 사모님들한테 고급 식기 세트 돌린 결과가……, 배신인가?”

피식하고 웃는 천진혁의 얼굴을 본 오 비서는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 얼굴을 한 날은 항상 끝이 좋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상무님.”

“이걸 믿어야 돼? 분명히 이기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

천진혁의 비서 오정수도 믿을 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분명 2일 전까지 우호적이던 대의원들이었다.

갑자기 급변한 분위기.

당황한 헤븐 건설측에서 대의원들을 만나러 가 문을 두드려도 만나 주지 않았다.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소문에 조영진이 중부건설을 찍었다고 했다.

여긴 그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했다.

뒤늦게 만남을 제의했지만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한 손에 호두 망치를 들고 호두를 까던 천진혁이 그를 보았다.

“죄송해야죠. 그 몸에 있는 장기를 다 팔아도 못 갚을 돈이 걸린 일을 제대로 조졌으니.”

“…….”

옆에 앉아 있던 오 비서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제가 하겠습니다.”

“뭘요?”

“제가 까 드리겠습니다.”

“이거? 내가 이거 호두 까려고 가져온 줄 알아?”

오 비서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살려주십시오, 상무님. 잘 하… 하겠습니다.”

“잘은……. 뭐, 이제 와서……, 저 친구들이 잘해야죠.”

앞에 선 차들을 본 천진혁 상무는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그늘 하나 없는 그의 얼굴을 본 비서의 온몸이 얼어붙었다.

“한번 지켜봅시다. 마지막 수단마저 안 되면 우리 같이 한강 가야 되는 거 알죠?”

“네, 일단 오늘 투표를 무산시키면 기회를 노릴 수 있습니다.”

“후우, 사태가 이 지경이 될 줄이야.”

천진혁이 호두 망치를 치켜들었다.

비서는 다급히 머리를 감싸며 몸을 웅크렸다.

그런 그를 보고 씨익 웃는 천진혁.

“비싼 차에 피 묻히는 그렇고, 오늘은 참아야지. 새 차에 피 묻히긴 좀 그렇죠? 차가 살렸네.”

“가, 감사합니다.”

“이제 이 차를 보면 생명의 은인이구나 하면서 한 번씩 절하세요. 알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상무님”

고개를 든 천진혁.

방금 멈춘 봉고들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곧 그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

“부탁합니다. 최대한 조용히.”

“네, 도련님. 너무 걱정 마시지요. 다들 똘똘한 아이들입니다.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곽현수의 짧고 굵은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전해졌다.

“수고하세요.”

“네, 끝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여전히 이 상황을 믿기 힘든 곽현수.

“허, 허허허”

헛웃음을 짓고는 밖으로 나가는 두꺼운 철문을 밀었다.

환한 빛 때문에 눈을 찡그렸다.

그와 동시에 건물의 좁은 골목 사이에서 건장한 남자들이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봉고차를 에워쌌다.

안에 갇힌 사람들은 문도 열지 못하는 상황.

차 안에 있는 조폭들은 난감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뭐라도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밖에서 막고 있어서 문도 열리지 않았다.

국가의 전투든 조폭의 전투든 전쟁은 항상 같다.

살상 무기로 길러진 자신이지만 군인으로서 기본은 배웠다.

방어에서는 경계가 중요하며 공격에서는 정찰이 제일 중요하다.

저들은 정찰도 없이 상대의 본진으로 밀고 들어왔다.

어쩌면 포위는 예상된 일이었다.

전쟁의 두 번째 법칙,

제일 먼저 적장의 목을 쳐라.

지휘체계가 붕괴된 집단은 스스로 자멸한다.

두목을 찾아 쳐내는 것이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

곽현수는 적장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세가 남다른 자를 쳐내면 손쉽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

정훈은 봉고차를 포위한 채 서로 대치 중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싸움을 빨리 끝내야 한다. 언론이나 뉴스에 나와서 좋을 게 없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멀리 빛이 나며 번쩍거리는 차가 있었다.

‘저기군, 저렇게 티를 내다니…….’

정훈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낡은 재건축 상가에 어울리지 않는 초고가의 차량.

분명 천진혁 그자가 분명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보수적인 건설회사 상무.

실력이 하늘을 찔러도 승진은 불가능한 직위.

100 프로 낙하산, 헤븐그룹의 자제가 분명했다.

만호 아저씨를 통해 확인한 결과 사실이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수재.

자타가 인정하는 천재라는 별명이 있었다.

그리고 사이코패스 같다는 소문이 있는 자.

천진혁.

정훈은 저 차 안에 그가 있다고 생각했다.

애송이가 아니다.

그저 습관일 뿐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모습을 감추어야 할 순간을 모른다.

왜?

감춰 본 적이 없는 자는 알 수 없었다.

차 곁으로 간 정훈.

이 싸움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짙은 선팅으로 안이 보이지 않았지만 뒷좌석 오른편에 그가 앉아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대로 주먹을 내리쳤다.

네모난 작은 사각으로 조각나며 한 번에 부서져 내린 창문.

그 안에는 깜짝 놀란 채 겁에 질린 천진혁이 정훈을 보고 있었다.

“반갑네요, 천 상무님. 이쯤에서 끝내죠.”

“…….”

천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남자의 기세에 그대로 눌려 버렸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많은 사람이 다칠 겁니다.”

“…….”

“1분 주겠습니다.”

“끄응”

천진혁이 짧게 침음했다.

“……철수해.”

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잠시 후 봉고차의 시동이 커졌다.

차에서 한 명도 내리지 못했다.

힘 한번 쓰지 못한 채 차 안에 갇혀 있다가 그대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오늘이 끝이 아닌 건 알지?”

천진혁이 공포를 감추고 말했다.

“물론.”

정훈은 짧게 대답했다.

뭔가 거슬리는 듯한 그의 태도.

“다음에는 제대로 상대해 주지.”

천진혁이 정훈을 노려보며 도발했다.

정훈은 그대로 돌려보내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도발을 했으면 처벌을 받아야 했다.

- 꽈앙!

그대로 주먹을 앉아 있는 그의 얼굴에 꽂았다.

“사, 상무님!”

한 방에 의식을 잃은 천진혁.

미동도 하지 못한 채 기절했다.

옆에 있는 오 비서도 정훈의 기세에 미동도 하지 못했다.

“다음에는 팔목 하나 정도는 각오하고 오라고 해 주세요.”

사색이 된 남자를 향해 정훈이 조용히 말했다.

“추, 출발해. 어서.”

허겁지겁 출발하는 자동차를 보면서 다짐했다.

‘다음에는 나도 최선을 다해 줄게, 천진혁.’

***

“결과는 헤븐 건설 32%, 중부건설 68%로 중부시 황금동 주공아파트 1, 2단지 재건축 사업자는 중부건설로 결정되었습니다.”

중부건설 이수홍 사장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불과 100억대의 매출을 올리던 회사가 수천억짜리 재건축을 수주한 것이다.

윤정훈, 그 사람의 능력이 가늠되지 않았다.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도련님, 우리가 시공사로 선정됐습니다.”

이수홍 사장이 전화기에 대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네? 여보세요?”

낯선 여자의 목소리였다.

“윤정훈 도련님 전화기 아닙니까?”

“맞아요. 잠시만요. 아, 그런데 좀 전에 한 말은 뭐죠?”

이수홍은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생각해 냈다.

“현 여사님, 저 수홍입니다. 중부건설 이수홍요”

“아 그래, 그래 기억이 나. 그래 결과가 나왔나?”

“네, 어르신 중부건설이 이겼습니다.”

흥분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이수홍이 다시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귀 떨어지겠어. 이 사람아.”

“하하하, 죄송합니다.”

“그럼, 오늘 전부 거하게 한잔해. 내가 회식비 좀 보내 줄 테니.”

“감사합니다. 어르신. 저기 도련님은?”

“아, 내가 전해 주지. 그럼 들어가”

현정옥은 전화를 끊었다.

이 기쁜 소식을 자신이 직접 전해주고 싶었다.

떨리는 손을 진정시켜야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굳이 멈추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재건축 시공권을 따냈다.

20살도 안 된 손자가 이룬 성과,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정훈아! 은수야!”

현정옥은 집이 떠나갈 정도로 크게 외쳤다.

“네. 할머니”

“네.”

은수가 달려 나왔고 뒤이어 정훈이 나왔다.

“무슨 일이에요?”

흥분을 가라앉힌 현정옥이 입을 열었다.

“정훈아 방금 전화 왔었어. 저기…… 거기. 이홍수한테서.”

“이수홍 사장 말입니까?”

“그래. 정훈아……, 중부건설이 낙찰됐데.”

“정말요?”

정훈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다. 이제 시작이다.’

정훈은 온몸에 희열이 넘쳐흘렀지만 차분한 척 행동했다.

“그래, 아이구 장하다 우리 강아지.”

은수와 할머니가 신이 나서 껴안고 있었다.

펄쩍 뛰면서 자신보다 더 기뻐하는 그들이었다.

“오늘은 이 할미가 손수 저녁을 차려 주마. 오랜만에 정훈이 좋아하는 갈비찜을 해야겠어.”

“네?”

정훈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자성어.

‘호사다마.’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

할머니의 요리는……. 마魔라고 할 정도로 끔찍했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은수도 힐긋거리며 정훈에게 눈치를 줬다.

‘회식.’

머릿속에 떠오른 탈출구.

“빨리 장부터 봐야겠어.”

정훈은 할머니의 손목을 재빠르게 잡았다.

“할머니 오늘 저녁에 중부건설 회식 가야 돼요.”

왠지 모를 정훈의 단호한 기세, 현정옥은 물러서야 했다.

“그, 그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럼 다음에 하마.”

“휴우…….”

옆에 있던 은수는 할머니 말에 긴장을 풀며 숨을 길게 내 쉬었다.

그 모습을 본 현정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아쉬워요. 할머니 특제 갈비찜을 못 먹어서.”

정훈도 예의상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녀석, 이리 오거라 한번 안아 보자. 장하다.”

현정옥은 정훈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

***

지난 1월 19일 BHC 증권 인수 입찰 제안서가 2건 접수되었다.

하나는 자이언트 유한책임회사였고 다른 하나는 한국 증권이었다.

분위기상 핵심은 자이언트였고 한국 증권은 유찰을 피하기 위한 들러리.

BHC 증권 직원들은 폭탄이 터져 선혈이 낭자한 이곳에 입찰제안서를 제출한 회사를 궁금해했다.

그리고 어쩌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자이언트 유한책임회사? 뭐 하는 회사야?”

머리에 까치 집을 지은 채 모니터에 열중하던 전산팀장 이병석이 물었다.

“글쎄요. 처음 듣는 회사인데요.”

머리를 뒤로 묶은 채 모니터를 보던 차영미 대리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누구 아는 사람 없어?”

이 팀장이 주변을 향해 물었지만 다들 모르는 회사라는 표정을 지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작지 않은 BHC 증권.

이 파산 직전의 회사를 사는 곳이 어딘지 궁금했다.

1000억의 손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엄청난 자금력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영미……씨, 저번에 그놈들 흔적 찾았어?”

“흐음, 차 대리라니까요.”

“알았어, 차.영.미 대리님. 흔적은?”

“찾았죠.”

“어디로 들어온 거야?”

“그건 비밀이죠.”

“아, 왜 그래? 답답해 죽겠구만. 내가 요새 그놈들 때문에 밤잠을 설쳐.”

“밤잠을 설쳐요? 잘만…….”

황급히 말을 끊고 주제를 바꿨다.

“그러니까, 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예요. 그때 보안 프로그램 예산 다 자르더니, 꼴 좋네. 아 소 잃고…… 외양간도 날아갔네. 깔깔깔.”

차영미의 웃음에 기분이 나빴지만 그녀의 지적이 틀리진 않았다.

예산만 제대로 집행되었어도 막을 수 있었다.

자타공인 최고인 자신과 자신의 유일한 적수, 천재 프로그래머 차대리.

프로그램만 제대로였어도 발라 버릴 수 있었는데…….

그래도 10분 만에 막은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뭐 어쩔 수 있나? 우리가 하는 것도 아닌데.”

“칫, 참 다음 회사는 어디로 갈 거예요? 저도 따라가야죠.”

“……내가 널 왜 데리고 가냐?”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거죠, 칫.”

어이없는 그녀의 비유에 할 말을 잃었다.

“허허…….”

벗어날 수 없는 족쇄를 찬 자신의 처지를 짧게 한탄했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이병석 팀장이 신경질적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를 때였다.

“이 팀장”

“네, 이사님”

“다 처리했어?”

“아직……. 그게…… 보존 기간이 남아서 함부로 지우면 안 됩니다.”

“야이, 그런 거 따지다가 우리가 이 꼴 났는데, 빨리 지워. 그럼 어떻게든 파산은 피할 수 있을 거야.”

“네? 그건 무슨 뜻입니까?”

“그건 자네가 알 바 아니고.”

“죄송합니다. 그래도 함부로 지울 수 없습니다. 저 감옥 갑니다.”

눈썹을 파르르 떨던 안 이사는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이 팀장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야, 지금 장난쳐? 이게 감히 이사 말을 씹어? 어?”

안 이사의 모욕적인 행동에 이 팀장이 그를 노려보았다.

“안 됩니다.”

“비켜 내가 할 테니.”

안 이사가 서버실로 들어가려 했고 이병석 대리가 그를 막아섰다.

일촉즉발의 상황.

“ 뭐하는 짓입니까?”

남자의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기업 실사 중에 누가 자료를 지우라고 했습니까? BHC 증권은 뭐든 제멋대로입니까?”

큰 키에 다소 앳된 얼굴을 한 남자가 안 이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자넨 누구야?”

흠칫 놀란 안 이사가 그를 향해 물었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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