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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39화 (39/200)

#039화

차영미는 눈을 부릅뜨고 모니터를 보았다.

얇은 뿔테 안경.

앙다문 입술과 아무렇게나 뒤로 묶은 머리카락.

패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모습이었다.

“사장님……. 지금 들어왔어요. 이 자식들 전산실 서버에서 자료를 삭제하는데요?”

차영미가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어디로 들어온 거죠?”

“음…… 보자, 안 이사 컴퓨터를 통해서 들어왔어요.”

“자, 그럼 시작할까요?”

“네. 잡으러 출발합니다.”

차영미는 안 이사의 컴퓨터를 통해 들어온 해커들의 본진을 찾기 시작했다.

IP 추적을 위해 한국에서 출발해 중국, 아프리카, 프랑스, 독일을 경유했다.

그리고 다시 연변으로 와서…….

“이야, 이 녀석들 북한까지 들어갔다 오는데”

“뭐? 대단한 놈들인데, 무슨 이렇게까지 뱅뱅 돌려. 우리 영미씨 장난 그만 치고 빨리 잡아요”

이병석이 말했다.

“칫, 이거 쪼는 맛이 장난 아니란 말이…….잡았다.”

차영미가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야호!”

“어딥니까?”

“헤븐증권인데요.”

“역시 예상대로네요.”

그 말을 들은 차영미는 의문이 들었다.

“사장님, 아니 멀쩡한 증권회사에서 왜 남의 회사를 해킹하는 거죠? 이 바닥이 그런 데가 아닌데”

“이 바닥은 안 그래도 그놈들이 항상 이런 식입니다. 뭐든지 공짜로 먹으려고 하죠.”

“네? 그놈들이 누구예요?”

“아직은 모르시는 게 좋습니다.”

차영미는 궁금했지만 단호한 정훈의 표정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알아서 좋을 것 없다고 생각했다.

“네, 그럼 저는 본진 털러 출발합니다.”

다시 모니터에 집중한 그녀.

너무 쉽게 헤븐증권 서버실로 잠입했다.

“이제 다 들어 왔습니다. 이 할리퀸 차영미 손에 헤븐증권의 모든 게 들어왔습니다. 하하하.”

그녀의 눈을 보니 미친 거 같았다.

정훈이 이병석 팀장을 보자 그는 미안한 표정으로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해킹만 하면 약간…….”

그는 그녀를 보면서 손가락을 자신의 관자놀이 옆에서 뱅뱅 돌렸다.

“자, 그럼 엘리베이터를 멈출까? 스프링클러를 틀어 버릴까? 아니, 서버에 저장된 걸 모두 지워 버릴까? 말씀만 하세요. 제가 다해 드릴게요. 깔깔깔.”

의자에 기대 두 손을 든 그녀는 정말 할리퀸 같은…… XXX처럼 보였다.

정훈은 궁금했다. 해킹이 저렇게 쉬운 건가?

“원래 이렇게 해킹이 쉬운 겁니까?”

“아뇨, 저 사람이 좀 타고난 편입니다. 승부욕도 있고 해서…….”

“아, 알겠습니다.”

고요한 적막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곤 차영미와 이병석의 눈동자와 손가락뿐이었다.

그럼에도 사무실 안의 열기는 상당했다.

팽팽한 긴장이 유지되고 있는 공간이었다.

이병석 팀장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휴우, 다됐습니다. 일단 저놈들이 BHC증권에 심은 악성코드는 전부 파악했습니다. 며칠 뒤에 파일을 변경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헤븐증권 안에도 악성코드를 심었습니다. 아주 강력한 것으로요. 흐흐흐.”

“고생하셨습니다.”

“자, 그럼 제가 마무리합니다.”

차영미가 흔적을 지우며 빠져나가려 할 때였다.

모니터를 보는 그녀는 왠지 모를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뭐지 이 느낌은, 안 좋은데…….’

차영미는 모니터를 다시금 뚫어지게 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일을 차분히 복기했다.

문득 익숙한 패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제야 모니터에서 수상한 문자들이 규칙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오빠, 그 새끼야.”

“뭐? 너 설마 저번에 너 엿먹인 그 자식 말하는 거야. 어디 봐 봐. 정말 그 자식 맞아?”

차영미의 모니터를 확인한 이병석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모니터에는 할리퀸에 필적하는 은둔의 해커 ‘사이코’의 특징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젠장, 저 자식이 헤븐증권에 있었던 거야?”

“응, 하아 어떡해, 이거……. 저놈이 왜 저기서 튀어나와?”

“영미야 정신 차려.”

차영미는 손을 부르르 떨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공황 상태에 빠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병석도 그녀를 보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난감한 상황.

차영미가 흔적을 지우고 빠져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도 걸릴 수 있다.

“왜 저럽니까?”

“그게, 할리퀸에 필적할 만한 은둔 해커가 한 명 있어요. ‘사이코’란 이름의 해커인데…… 영미가 그놈한테 몇 번 발려서 지금…….”

“어떡하죠?”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영미를 믿어야죠. 이겨 낼 겁니다.”

모두의 피가 마르는 시간이 무심히 흐르기 시작했다.

***

헤븐증권 전산실 안쪽에 비밀의 방.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들어갈 수 있는 전산실 안의 한 번 더 보안 절차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는 공간.

그곳에 몇몇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정장을 입은 남자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았다.

전산실 직원은 분명 아닌 것으로 보였다.

이곳의 우두머리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의 눈치를 보며 힐긋거렸다.

“저기 진혁 도련님.”

“쉿, 잠시만.”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할리퀸이 BHC증권에 있었어?’

천진혁은 키보드를 쉬지 않고 두드렸다.

“됐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실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왜? 무슨 일이야?”

“아, 저희가 도울 게 있을까 해서요.”

“풋, 그쪽이 낄 자리가 아닌 거 같은데…….”

천진혁의 건방진 말투에도 모두들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수준을 한참 넘어선 대결이었다.

괜히 끼어들어 방해만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천재들의 혈투였다.

“네.”

사람들은 조용히 자신의 모니터를 다시 봤다.

“유후, 할리퀸 이게 웬일이야. 많이 컸네. 이제 나도 알아보고.”

천진혁은 모니터에 있을 할리퀸을 생각했다.

‘자 이제 움직이세요. 그럼 제가 쫓아가서 잘근잘근 부숴 드리죠. 옛날에 당한 건 복수해야지.’

하지만 컴퓨터 너머 상대에게선 반응이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기다려야 하는 순간이다.

‘사이코’ 천진혁은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할 일을 가리켰다.

“BHC 증권 컴퓨터에 저번에 심은 거랑 똑같은 악성코드 심어요. 멍청한 녀석들이 아직도 보안 체계가 허술하네. 이번에는 이천억짜리로 한 번 맞아야 정신 차리지.”

“그건 이미 완료했습니다.”

“한 번 더 확인하세요. 저번처럼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네. 한 번 더 체크하겠습니다.”

‘사이코’ 천진혁은 드디어 이해했다.

BHC 증권이 그날의 사태를 10분 만에 막을 수 있었던 비밀.

바로 할리퀸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녀가 자신들의 접근을 순식간에 제한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프로그램 실행은 자동으로 하겠습니까? 아니면 수동으로 할까요?”

“수동으로 해야지. 그래야 현정옥 할매가 떡하니 인수한 그 날 기념선물로 한 번 더 터뜨릴 수 있죠.”

“네. 그럼 저희는 그쪽 일을 하겠습니다.”

“오케이. 그럼 나는 이 친구 좀 가지고 놀게요. 흐흐흐.”

오랜만에 만난 장난감을 가지고 놀 생각에 천진혁은 신이 났다.

‘자 움직여라. 사이코가 제대로 놀아 줄게.’

천진혁은 모니터만 보면서 할리퀸이 움직이길 기다렸다.

***

“이렇게 가만있어도 됩니까?”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면 곧 노출됩니다.”

“노출되면 저 ‘사이코’라는 놈이 우리 컴퓨터를 조종할 수도 있다는 거죠?”

“네, 잘 이해하셨습니다.”

“음, 차영미 씨는 공황장애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저번에 해킹 배틀하다가 컴퓨터 날려 먹고 개인정보도 한 번 털리고…… 많이 당했습니다. 처음엔 이겼는데…… 아무래도 사이코 쪽이 장비가 훨씬 좋아서요…… 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흠…… 장비에서 밀린 거군요. 맞나요?”

“네, 실력은 할리퀸이 조금 더 뛰어납니다.”

정훈은 자신이 이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자신이 해킹을 알진 못하지만 결국 사람이 위기에 빠졌다.

차영미를 구해야 했다.

잠깐 고민한 그는 이병석에게 말했다.

“어디 가서 야구방망이 하나 가져오세요”

“네? 방망이요”

“네. 야구방망이. 없으면 몽둥이 같은 것도 괜찮습니다.”

이병석이 의아한 표정을 한 채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리고, 이제 컴퓨터 쓸 일 없죠?”

“네, 제가 할 일은 끝났습니다. 영미가 마무리만 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자 차영미 씨. 일어나세요. 그거 본다고 되는 거 없어요”

하지만 그녀는 부들대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그만큼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첫 대결의 승리 이후 내리 다섯 번의 패배.

그녀의 머릿속엔 그에게 당했던 일들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쇼트로 고장난 컴퓨터부터 개인정보를 털렸던 일까지.

분노에서 시작된 감정은 점차 공포로 변해 있었다.

자신을 사로잡은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여기 있습니다.”

“차. 영. 미. 씨.”

정훈이 큰 소리로 외쳤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정훈을 본 그녀.

- 와장창

정훈이 야구방망이로 이병석의 모니터를 후려쳤다.

“어머, 왜 그래요?”

“자, 이게 미친개 ‘사이코’입니다. 와서 두들겨 패요. 어서”

“네? 그게 무슨”

“생각하지 말고 어서요. 여기 그 자식 있는 거 안 보여요? 저 혼자 다 부술까요?”

정훈이 다시 한번 와장창 소리를 내며 모니터를 부수었다.

지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드디어 차영미의 눈에 불이 붙었다.

“이 사이코, X새키. XX새끼, 뒤졌어.”

그녀는 윤정훈의 손에 있던 방망이를 순식간에 낚아챘다.

그런 다음 믿기 힘들 만큼 높이 점프를 한 후에 내려오는 힘을 보태어 본채를 강하게 내려쳤다,

검성이 적을 반으로 갈라 버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죽어, X XX, XXX, XXX 죽어라”

그녀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지친 그녀가 숨을 헐떡일 때 정훈이 그녀의 손에 있던 방망이를 가져갔다.

“자, 복수해야죠.”

“휴우, 그래 이제 제대로 조져야죠.”

차영미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첫 승리를 한 그날처럼 두려움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쉼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녀. 움직이는 것은 눈동자와 손가락밖에 없었다.

윤정훈과 이병석도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녀를 지켜봤다.

그리고 드디어,

“됐다.”

차영미가 두 주먹을 쥐었다.

오랜만에 이룬 승리.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

“사장님, 잘 빠져나왔어요. 흔적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잘했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역시 실력은 최고네요.”

그녀가 쭈뼛거리며 정훈을 보았다.

그리고 정말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기, 고맙습니다.”

“고마울 것까지야…….”

“아니에요.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어요. 사이코와의 대결에서 계속 패배해서 자신감을 잃었는데……. 방망이로 그 자식을 후려치니 속이 시원한 게 정말 개운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사장님.”

그녀가 일어서 공손하게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알겠습니다.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옆에서 다 부서져 버린 자신의 컴퓨터를 본 이병석은 우울했다.

최고 사양의 컴퓨터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건…… 어떡합니까?”

“이건, 결자해지 해야죠.”

“결자해지라고 하면…….”

이병석은 차영미를 보았고 차영미는 윤정훈을 보았다.

“일단은 회사 경비로 처리하고……. 차영미 씨 연봉에서 까죠?”

“네에에?”

그녀의 눈꼬리가 순식간에 표독스럽게 올라갔다.

“크흠, 농담입니다. 무슨 농담에 이렇게 살벌하게 반응합니까? 지금 가서 어디에도 밀리지 않는 장비로 새로 맞추세요. 장비 때문에 밀리진 않아야죠. 그럼 전 가 볼게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정훈이 밖으로 나가자 차영미는 이병석에게 다가갔다.

“오빠? 괜찮아? 우울해 보이는데.”

“아냐, 괜찮아. 영미가 다시 자신감을 얻었는데.”

“칫, 그거 때문이구나?”

“그냥, 내가 남편인데 도움이 되지 못한 거 같아서.”

자신감을 잃은 듯한 이병석을 표정을 본 차영미가 입을 열었다.

“에이, 오빠는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 도움이 돼. 그리고 저 사람은 우리 리더잖아.”

“리더?”

“응, 우리를 위기에서 구해 준 사람이자, 앞으로 우리를 이끌고 구할 사람. 그러니까 저런 사람이랑 오빠를 비교 하지 마. 어울리지 않아.”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무슨 뜻이야?”

“응? 그건…… 모르는 게 나을 거 같은데.”

묘하게 기분이 나빠지려 했다.

“오빠, 이거 치우고 빨리 용산 가자. 가서 이거보다 더 좋은 걸로 맞추자.”

용산 가자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이병석.

입이 귀에 걸렸다.

“그래, 이 카드로 제대로 긁어 보자.”

“헤헷.”

***

“뭐야?”

천진혁이 혼잣말을 했다.

자신을 힐긋거리는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움직이면 흔적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예전처럼 할리퀸을 탈탈 털며 조리돌림 할 생각에 기분 좋았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포위망을 뚫고 사라진 그녀.

감쪽같은 솜씨로 흔적도 지웠다.

처음 본 그때처럼 귀신같은 솜씨로 자신에게서 벗어났다.

그때의 그 신출귀몰한 그녀의 해킹 능력이 생각났다.

자신에게 처음 패배를 안겨 준 그날이 생각나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에이, 썅.”

키보드를 주먹으로 내리친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 다들 자기 할 일들 하세요. 악성코드 다 심었으면 조용히 빠져나와요. 흔적도 남기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전산실 안 비밀의 방에는 적막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

“할머니.”

정훈이 기척을 내자 서재에서 현정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들어오렴.”

“말씀드릴 게 있어요.”

정훈은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을 할머니에게 말했다.

BHC 증권 사태의 배후에 헤븐증권이 있다고 보고 했다.

“역시, 내 그럴 줄 알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증거는 있니?”

“있기는 한데…… 법정에 가도 승산은 없을 것 같아요.”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 할머니.”

“응?”

“BHC 증권 인수는 계속 진행하실 거죠?”

“물론이지.”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묘한 긴장감을 느낀 현정옥이 정훈을 보았다.

정훈아 이 할미에게 할 말이 있는 거야?”

“할머니 그거 제가 가져야겠는데요?”

“뭐?”

“BHC 증권 제 거라고요.”

정훈의 말을 이해한 현정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주름진 턱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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