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화
잠자리에 들기 전 정훈은 컴퓨터로 자신의 수익률을 확인했다.
74.75%.
89%인 최준기 상무보다 뒤지고 있지만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컴퓨터 옆에 있던 자신의 비밀 노트를 들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내일도 상한가가 분명했다.
선애제약.
극비리에 준비한 신약이 FDA 승인을 받으며 7일 연속 상한가를 친다.
공교롭게도 상한가를 시작한 날이 정훈의 기억으로 오늘이었다.
지금이야 느긋한 마음으로 컴퓨터를 확인하고 있지만 오후까지는 정말 제대로 쫄았었다.
65%의 수익률을 얻은 상황에서 오전에 전부 선애제약으로 갈아탔다.
그리고 기사가 뜨길 기다렸다.
하지만 오후 2시까지 어떤 기사도 올라오지 않았다.
장 마감 20분 전에야 기사가 올라왔고 1분 만에 상한가로 직행했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했던 상황.
‘후우, 20분 전일 줄이야.’
정훈은 컴퓨터를 끈 다음 내일을 기대하며 기분 좋게 잠에 들었다.
***
8시 30분 동시호가가 시작된 다음부터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최준기는 마지막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자신에게도 윤정훈과 같은 기적이 찾아오길 빌고 또 빌었다.
윤정훈 사장이 산 주식은 이미 상한가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주여, 저에게 상한가 한 방을 내려 주소서.’
찾지 않던 주님과 부처님을 몇 번이나 찾았다.
피가 말랐다.
9시가 되면 1억의 방향이 결정된다.
1억, 자신의 1년 연봉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큰돈이다.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드디어
8시 59분 57초, 58초, 59초……
9시가 되면서 장이 열렸다.
최준기는 선애제약 주가를 확인했다.
15% 상승.
따상을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와아!”
“대단해!”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펴졌다.
‘따상 뒤집기, 이거 실화?’
‘우리 사장님, 우리까지 다 제치고 1등 하다니.’
‘정말 대역전극이다.’
‘따상 실화? 우리 1인당 30만 원짜리 오마카세 먹는 거지?’
‘에이, 설마 빈말 아닐까? 자기가 될 거라고 생각 못 하고 말한 거 같던데’
‘난 오마카세 먹는다에 한 표.’
‘나도.’
‘야, 오늘 조심해. 최준기 상무님 1억 날린 거잖아.’
‘솔직히 날린 건 아닌데.’
사내 메신저 창이 난리가 났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1등을 했다.
그것도 뒤집기 힘든 숫자를 따상으로 뒤집으면서.
마치 6:3으로 지던 두산이 9회말 만루, 2아웃 2스트라이크 3볼 상황에서 대역전 홈런을 친 상황이었다.
“크흠”
최진기 상무의 마른기침 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신임 사장이 1등을 해 구성원들의 신뢰를 얻는 건 회사를 위해서 좋은 일이다.
조금 전의 환호성을 보자 남몰래 윤정훈 사장님을 응원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회사를 위해서는 좋은 징조였다.
하지만 자신은……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젠장, 이게 말이 돼?’
내 돈 1억이 날아갔다.
분명 자신의 돈이었는데…….
“휴우…….”
자신도 모르게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어젯밤 1억 상금으로 에르메스 버킨백을 선물하겠다고 와이프에게 큰소리쳤다.
그 덕분에 오랜만에 좋은 시간도 보냈는데…….
‘어떡하지.’
100프로 자신의 것이라 생각한 돈이 날아가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윤정훈 사장은 알고 있었을까?
그의 매매 내역을 보니 어제 아침에 기존 주식을 전량 선애제약으로 갈아탔다.
상한가를 노린 그의 한 수가 분명했다.
그럼 상한가에 진입한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어디서 정보를 얻은 거지?’
자신도 증권가에서 나름 마당발로 통했다.
MSN 메신저 대화방을 통해서 극비정보도 꽤 취급했다.
하지만 이번 내용은 얻지 못했다.
알았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윤정훈은 자신보다 더 큰 정보력을 가진 게 분명하다.
그게 도대체 무얼까?
“상무님 식사…….”
최준기는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저으며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그는 점심도 먹지 않고 윤정훈이 가진 정보력의 비밀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
“좋은 오후입니다.”
오후에 BHC 증권으로 출근한 정훈.
일제히 사람들이 그를 보았다.
모두들 경이로운 표정이었다.
그러고는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날고 기는 증권맨들을 제치고 수익률 1등을 차지했다.
더욱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24% 차이를 역전 만루홈런으로 뒤집었다.
한편의 시원한 드라마를 제공한 윤정훈 사장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특히 최준기 상무의 부하직원들은 입이 귀에 걸렸다.
그들은 윤정훈이 지나가면서 했던 말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맞은편 빌딩에 있는 일식, 30만 원짜리 오마카세.’
누군가가 정훈에게 외쳤다.
“사장님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오마카세 감사합니다.”
“사장님, 진짜로 오마카세 먹으러 가는 거죠?”
직원들은 뚫어지는 눈빛으로 정훈의 입술만 쳐다보았다.
사람들의 침 삼키는 소리만 들렸다.
정훈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그는 아주 짧게 답했다.
“콜.”
***
“죄송합니다. 회장님.”
“살려 주십시오. 제발재떨이만은…….”
“저도 믿을 수 없는 결과입니다. 이게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권영수 부사장이 허리를 조아리며 전화를 받고 있었다.
연신 허리를 숙이며 살려 달라 애원했다.
결과를 보지도 않고 미리 사장이 된 것처럼 설레발을 친 그의 가벼움이 초래한 비극이었다.
“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휴우.”
긴 한숨을 내쉬며 의자 털썩 주저앉았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갔다.
특히 재떨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는 오금이 저렸다.
‘이 미친 새끼가 어떻게 거기에 주식을 넣을 생각을 한 거지?’
분명 어제 두 시까지 큰 차이로 지고 있었는데 따상을 맞고 1등을 해 버렸다.
솔직히 70%의 수익률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사장 자리만 걸지 않았어도 칭찬받아 마땅한 결과였다.
하지만 분명히 절대로 1등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욕심이 났었다.
어제 점심까지는 자신이 차기 사장이었다.
따상과 함께 눈앞에서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일장춘몽.
하룻밤 꿈으로 끝나 버렸다.
먼 산을 보며 날아간 사장 자리를 그리워하고 있을 때 홍영호 이사가 방으로 들어왔다.
“권 사장님. 축하합니다.”
환한 얼굴로 권영수를 사장으로 불렀다.
눈치 없는 놈이 정보도 느려터졌다고 생각한 그.
“무슨 말씀입니까? 윤정훈 사장이 1등 했잖아요.”
권영수가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하하, 그걸 제가 모르겠습니까? 잠깐이라도 사장님 소리 듣고 싶어 하시는 거 같아서 불러드렸습니다. 푸흡.”
“뭐야!”
권영수의 눈에 불이 켜졌다.
‘이 자식이 갑자기 왜 시비를 거는 거지?’
“하여튼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그럼 앞으로 건투를 빕니다.”
그 말을 하고 방을 나가 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사 주제에 어디 부사장에게 감히…….
다음에 제대로 교육을 한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밀린 서류를 결재하려 컴퓨터를 보았을 때 사내 메신저로 긴급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뭐야 이건.’
[보직 해임 : 권영수 부사장, 사유 : 보안수칙 위반]
“뭐? 이것들이!”
부르르 떨리는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이대로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벌떡 일어나 사장실로 뛰어갔다.
***
정훈은 사장실의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댔다.
1등.
결과가 정해지자 잔뜩 했던 긴장이 풀어졌다.
불신에서 믿음으로.
자신에 대한 의문 가득한 시선들이 바뀌었다.
기적 같은 드라마를 만든 주인공이 되었다.
정훈이 이 대회를 주최한 가장 큰 이유.
BHC 증권에 필요한 드라마 같은 기적, 그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불가능이 실현될 때 사람들은 또 다른 희망을 꿈꾸는 법.
BHC 증권의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소파에서 잠시 생각을 정리한 그는 최준기 상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사장님.”
“최준기 상무님, 결과에 승복하십니까?”
“네. 공정한 대회였습니다. 승복 안 할 이유가 없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어떻게 그 정보를…… 정말 대단하십니다.”
최준기는 궁금한 게 많았지만 묻지 않고 칭찬으로 대신했다.
“과찬입니다. 운이 좋았어요. 칭찬은 그 정도면 된 것 같고…… 지금 좀 제방으로 오시죠.”
“네, 사장님.”
전화를 끊은 다음 밀린 결재 서류를 다 처리했다.
느긋하게 앉아서 최준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문이 벌컥 열렸다.
‘뭐지? 누가 이렇게 매너도 없이 문을 벌컥 여는거야.’
고개를 들어보니 권영수 부사장이 흥분한 얼굴로 서 있었다.
“왜 그러시죠?”
“보직 해임이 뭡니까?”
“뜻을 물어보는 건 아닐 테고 이유는 스스로 잘 알 거라 생각하는데요.”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저를 내치시는 이유가 뭡니까?”
“뭐냐뇨? 실적 때문이지. 회사 하나를 그대로 말아먹었는데 보직 해임 정도면 저한테 감사해야죠.”
“그게 무슨 말입니까?”
“뭐? 권 부사장. 지금 내가 말을 안 하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걸로 알아?”
정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흠칫 놀란 권영수가 꼬리를 내렸다.
“무슨 말입니까?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 주세요.”
“권 부사장님 컴퓨터로 해커가 들어왔어요. 그리고 수시로 헤븐그룹 사람들이랑 만나서 밥 먹고 통화하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아닙니다.”
“증거를 보여야 발뺌을 안 하겠죠.”
정훈은 지금까지 모아놓은 증거 사진을 던졌다.
“사진을 보면 당신이 BHC 증권 부사장인지 헤븐그룹 천상수 회장 개인지 궁금합니다.”
자신을 개라고 칭한 그의 말이 거슬렸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최준기 상무입니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오던 최준기는 순간 멈칫했다.
권 부사장 앞에 흩어져 있는 사진들과 그가 쩔쩔매는 모습에 당황했다.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좀 이따가 다시 오겠습니다.”
“아닙니다. 앉으세요.”
정훈은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권영수 씨, 헤븐그룹의 개가 그렇게 좋으면 그리 가도 상관없습니다.”
자존심을 짓밟는 말이지만 권영수는 대꾸도 할 수 없었다.
“…….”
“하지만 지금 꼬리를 흔들고 간다고 좋아할까요? 아마 솥뚜껑이나 준비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시죠? 쓸모없어진 사냥개가 어떻게 되는지.”
권영수는 그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쓸모가 없어지기 전에 최선을 다해 BHC 증권을 가지려고 했는데.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았던 어린 사장 놈이 이렇게 증거까지 내밀어 당황했다.
선택해야 한다.
헤븐증권으로 가 봤자 문전박대가 뻔하다.
여기서 버텨야 한다고 생각한 그.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려 주십시오. 사장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권영수는 무릎걸음으로 정훈에게 다가갔다.
그의 다리를 잡고 애원했다.
갑작스런 행동에 방 안에 있던 최준기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뭐야 이 사람?’
정훈도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지만 침착했다.
솔직히 뛰쳐나갈 줄 알았다.
이렇게 버티는 이유를 생각해 봤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의 발아래에서 살려 달라는 사람.
분명히 내쳐야 한다.
하지만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헤븐그룹과 연결된 자.
생각보다 괜찮은 패라고 생각했다.
잘만 사용하면 헤븐그룹 접수에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재떨이.”
사장의 입에서 나온 단어를 들은 권영수가 흠칫 놀랐다.
단어만 들어도 몸이 오그라들었다.
“재떨이로 얻어터지고도 충성을 하는 사람을 제가 어떻게 믿습니까?”
“아닙니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무슨 짓을 했는지까지도. 그리고 권영수 부사장님이 한 추잡한 짓들도 포함해서요.”
권영수는 자신의 개인 비리까지 알고 있다는 윤정훈 사장의 말에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