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63화 (63/200)

#063화

사거리 전광판에 장재혁과 이지용의 얼굴이 나타났다.

룸살롱에서 이지용과 장재혁이 함께 노는 동영상이었다.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선명한 얼굴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우연이었다.

입에 담지 못할 만큼 더러운 그들의 손길을 접대부가 촬영해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장재혁의 비밀이 폭로되자 용기를 내 동참했다.

차영미가 그것을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중부시 사거리 전광판에 틀었다.

장재혁 시장의 입장에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권율 사무실을 테러했을 때 박창수가 자백한 음성 파일도 인터넷에 돌고 있었다.

국제파 행동대장인 자신과 이지용 두목에게 여당 후보인 장재혁이 직접 부탁하는 녹취 파일이었다.

장재혁 의원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절대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흑색선전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투표소로 달려갔다.

저녁 6시가 되어도 투표는 끝나지 않았다.

오후부터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긴 줄이 생겼다.

투표 마감이 5분도 남지 않았지만, 여전히 수백 미터에 이르는 줄이 있었다.

위선자가 시장이 될까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그들을 보며 외쳤다.

“6시까지 줄을 서면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모두 안도하는 짧은 한숨을 내 쉬었다.

중부시의 투표는 7시가 되어 끝났고, 최종 투표율은 82%였다.

역대 최고의 투표율이었다.

***

정훈은 임시 공휴일인 선거 날 박다혜를 만나 저녁을 먹으려고 했다.

은수를 데리고 서울대 앞으로 갔다.

멀리서 정훈을 본 박다혜는 폴짝폴짝 뛰며 손을 흔들었다.

“정훈아! 여기”

어두운 길가에서도 그녀는 빛나고 있었다.

정훈도 그녀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달려와 덥석 안겼다.

“야, 사람들 보잖아.”

“보면 어때, 헤헤.”

싱그럽게 웃어 보인 박다혜는 은수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은수도 잘 지냈어?”

옆에서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은수도 박다혜에게 인사를 했다.

“잘 지냈지, 다혜야”

그녀는 비릿한 웃음과 함께 딱딱한 구두코로 은수의 정강이를 깠다.

왼쪽, 오른쪽 둘 다.

연타!

“이게 어디서, 선배한테”

“죄송합니다. 다혜 선배님, 잘 지내셨습니까?”

그녀는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떡볶이 먹으러 갈까?”

“응? 비싼 거 사 주고 싶은데.”

“비싼 거? 너 시간이 제일 비싸던데, 그거 좀 나한테 팔면 안 돼? 오늘은 그냥 남들처럼 떡볶이 먹으며 데이트하고 싶어.”

“그래.”

값비싼 음식을 사 주지 못해 아쉬웠지만 참았다.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좋았다.

요즘은 자신이 생각해도 정신없이 바쁜 하루였다.

지금도 눈앞에 그녀를 보고 있지만 선거 결과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혜에게 집중했다.

학교 앞 떡볶이집.

“정훈아, 아 해 봐.”

“왜?”

입을 벌리자 그녀가 빨간 떡볶이를 입에 넣어 줬다.

“고마……. 으.”

입에서 불이 났다.

“너 이, 씨.”

“헤헤.”

정훈은 박다혜의 상큼하게 웃는 얼굴을 보았다.

예뻤다.

은수는 잔뜩 얼굴을 찡그린 채 입을 막고 헛구역질했다.

속이 많이 안 좋아 보였다.

“야, 박다혜.”

180센티미터 정도 되는 남자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를 본 박다혜는 내 팔짱을 꽉 끼었다.

“윤호 선배님, 안녕하세요. 여기 제 남자친구예요. 윤정훈이라고.”

“그래?”

서글서글한 인상에 귀공자 스타일이었다.

“아버지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다. 윤정훈, 앞으로 자주 볼 거 같네.”

“네?”

“아, 송철호 회장님이 내 아버지야.”

그는 일송그룹 송철호 회장의 아들이었다.

“야, 박다혜랑 나랑……. 아니다. 너무 깊은 관계는 갖지 마. 그럼 다혜가 불행해지니까. 나는 내 것에 때 묻는 거 싫어하거든.”

그가 멋쩍은 듯 웃었다.

“저기 송윤호 선배님.”

정훈이 일어서면서 그를 불렀다.

“미친 겁니까?”

“뭐?”

당황한 얼굴이었다.

“내 여자한테 내 것? 불행? 초면이라서 많이 참습니다.”

정훈은 그를 쏘아보았다.

송윤호의 옆에 있던 남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정훈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은수의 손이 상대의 주먹을 잡고 강하게 쥐었다.

“으으윽.”

정훈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를 보았다.

“아버님보다 무식하네요. 송윤호 씨. 다혜에게 사과하세요.”

“……”

아무 대답하지 않는 송윤호.

절대로 사과하지 않을 표정이었다.

정훈은 박다혜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손을 잡고 한참을 걸었다.

자신의 곁에 나란히 걷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괜찮아?”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정훈은 그녀를 내려다봤고 그녀는 큰 두 눈을 깜빡이며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수줍은 듯 붉어져 있었다.

까치발을 한 그녀의 입술이 정훈에게 닿았다.

영원의 순간, 시간이 멈췄다.

남자의 품에 안긴 그녀는 자신의 귀를 남자의 심장에 바짝 붙였다.

그도 자신만큼 강하게 뛰고 있었다.

그녀의 귀에 아직도 그 말이 들렸다.

‘내 여자.’

행복했다.

*

밖으로 나가는 윤정훈 일행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송윤호는 불쾌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역시 보통 놈이 아니네.”

쓰러진 친구를 일으켜 세웠다.

송윤호는 더럽고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것을 만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그.

지금 그것을 더럽히는 놈이 싫어졌다.

얼굴은 예뻤지만 이미 손을 탄 것 같은 기분이라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명령이라서 참았다.

자신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무례하게 행동한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오늘의 수치심을 잊지 않기로 다짐했다.

입술을 꽉 깨문 송윤호는 전화기를 들었다.

“나야, 오늘 저녁에 갈 테니까 준비해.”

“꺅, 오빠 빨리 와.”

송윤호는 이 더러운 기분을 제대로 씻고 싶었다.

그는 오늘의 유희를 생각하며 웃었다.

얼굴에 스쳐 간 비릿한 웃음에는 잔인함이 묻어 있었다.

***

농어가 제철인 6월이지만 내키지 않았다.

습·온도가 높은 여름엔 회가 추천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조영진 의원은 회 대신에 장어를 골랐다.

숯불에 구워 먹는 것이 눈도 귀도 입도 즐겁다.

제철 장어를 손질해 온 횟집 주인이 그를 보며 말했다.

“실한 놈으로 준비했습니다. 제가 구워 드리겠습니다.”

“이것도 재미야 이 사람아.”

“오늘은 혼자입니까?”

“아니, 곧 올 걸세.”

“그 잘생긴 분요?”

“허허, 그게 잘생긴 얼굴인가?”

식당 주인은 조영진을 보고 한 번 웃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얼굴을 좋아합니다.”

“그래?”

조영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차갑고 도도해 보이는 그 얼굴을 좋아한다니…….

자신은 정훈이 옆에 있는 그 녀석이 훨씬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낡은 문이 끼익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윤정훈이 안으로 들어왔다.

“제가 늦은 겁니까?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닐세.”

숯불 위에 올라 있는 장어는 제 몸을 꿈틀거리며 노릇노릇하게 익고 있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야, 내가 고기 굽는 걸 좋아해. 주도권을 가진 것 같잖아”

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도 처음 인상이랑 아주 다릅니다.”

“처음엔 어땠기에…….”

정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허, 자네 참.”

“좋아지셨습니다. 웃음도 많아지신 것 같고, 좀 더 젊어지신 것 같습니다.”

조영진이 잘 익은 장어를 정훈의 접시에 올려놓았다.

“먹어 보게, 내가 정성껏 구웠어.”

“감사합니다. 어르신”

입안에 퍼지는 기름진 맛이 일품이었다.

순간 박다혜가 생각났지만,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불순한 생각을 지웠다.

“자네를 만나고 나서 내가 부쩍 젊어졌어. 손형수도 아주 젊어지고. 자네는 뭐 젊어지는 보약이라도 파나?”

“제 덕이라고 하시니 감사합니다만, 어르신들이 젊게 사신 덕분 아니겠습니까?”

“허허허. 겸손하기는 사람이 꿈이 있어야 젊어지는 거지. 자넨 젊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내가 자네를 여기저기 팔고 다녔어.”

“고맙습니다. 어르신. 아주 많이 팔아 주십시오.”

“그랬더니 누가 자네에게 관심을 보이더군.”

“누굽니까?”

“창원에 있는 직장인인데……. 저기 오는구먼”

역시 조영진이 늙긴 늙었다. 이런 자리에는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하는데…….

정훈은 살짝 불쾌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를 보았다.

조영진과 달리 푸근한 느낌의 덩치가 있는 남자였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늦었습니다.”

그는 조영진에게 깍듯하게 예를 갖춘 다음 정훈에게도 예의를 갖췄다.

“저는 선재종합기계 재무이사 이순호입니다.”

“선재 종합기계요?”

“네.”

선재 종합기계는 선재중공업에서 분리된 회사다.

선재 그룹이 해체되면서 갈 곳을 잃은 회사들을 자산관리공사와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소유하고 있었다.

돈이 되는 물건이었다.

원래 역사에는 선재 종합기계도 대한중공업을 인수한 회사에서 매입했다.

그렇다면 대한중공업을 가진 내가?

생각에 빠져 있을 때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좀 먹고 하지. 아 그리고 자네는 내 잔 받게. 드디어 술 한 잔 주는구만”

“감사합니다.”

정훈은 자신 앞에 있는 술잔을 들었다.

맑은 소주가 가득 찬 잔을 고개를 돌려 한 번에 마셨다.

“감사합니다.”

조영진은 장어를 굽기 바빴고 이순호는 덩치만큼 많이 먹었다.

모두 배를 적당히 채웠을 때 조영진이 정훈을 보았다.

“자네 배고프지 않나? 대한 중공업, 아니 이제 신화중공업이지. 하여튼 그것만으로 만족할 것 같지 않은데?”

조영진은 정훈을 보며 웃었다.

의도가 보였다.

그런데 매출 2조 원의 선재 종합기계는 2005년 돼야 매물로 나온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 대한중공업을 인수한 것이 역사를 바꾼 건 아니었다.

자신이 아는 주요 사건은 그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마음에 품고 있는 선재중공업도 아직 머릿속으로 구상만 하고 있었다.

곧 있을 조선 해양의 초호황 전에 매입하고 싶었지만, 돈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갑작스럽게 생각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회사를 좀 맡아 주십시오.”

정훈은 당황했지만 침착함을 유지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순호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았다.

‘진심인가?’

무슨 의도를 가졌는지 조심스럽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

“이봐, 남들은 못 먹어서 안달인데”

“이유 없는 호의는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 잠시만.”

조영진은 시계를 확인한 다음 티브이를 틀었다.

지방선거의 결과가 나오고 있었다.

타이밍 좋게 중부시 시장 선거의 차례였다.

권율의 이름 옆에 당선 유력을 뜻하는 ‘유’ 자가 붙어 있었다.

“으하하, 내가 이러니 자네를 안 밀어줄 수가 있나? 중부시에서 최초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어. 자네 도움이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지.”

“과찬입니다. 권율 후보가 쌓아 놓은 자산이 많았습니다.”

“어허, 초면에 뒷방 늙은이라더니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아는가? 다 듣고 있었네. 내 잔 받게.”

“감사합니다.”

정훈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그가 주는 술을 마셨다.

얼굴에 웃음꽃을 피운 조영진의 말이 이어졌다.

“고맙네, 고마워. 선재종합기계 맡아 달라는 이유가 궁금해? 당연히 자네가 맡으면 잘 될 것 같으니 그러지. 신화중공업이 승승장구하는 걸 잘 알고 있어.”

조영진의 말을 듣고 있던 선재기계 재무이사가 입을 열었다.

“사실 선재종합기계가 국내 건설기계 점유율 1위입니다. 방산이랑 공작기계 쪽 매출도 좋고요. 선재 그룹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잘나가고 있을 회사입니다.”

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장난을 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지 궁금한데요.”

이순호는 조영진을 보았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누가 장난을 치는 거지?’

정훈이 궁금해할 때였다.

조영진이 전화기를 꺼냈다.

“잠시만.”

입술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아이고, 권율 시장님. 축하하네, 정말! 자네가 될 줄 알았네.”

“그래, 잠시만 기다리게”

조영진이 전화기를 건넸다.

권율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도련님.”

짧은 감사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더 나가길 바랍니다.”

“도련님도 꼭 목표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정훈은 가슴이 뭉클했다.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양당의 후보들 틈에서 살아남았다.

정훈은 그가 만들 중부시가 궁금해졌다.

“이봐, 제안했으면 선택해야지. 먹을 건가 말 건가?”

7조짜리 대한중공업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

곧 광산도 생긴다.

고민이 되었다.

목표는 선재종합기계가 아니다.

거제시에 있는 선재중공업이다.

정훈은 결심한 다음 고개를 들었다.

“선재중공업도 가지고 싶습니다.”

소주잔을 들던 이순호의 손이 멈췄다.

조영진은 알 듯 말 듯 한 웃음을 지었다.

“선재중공업도……. 자신 있나?”

“밀어주시기로 하셨으면 화끈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자네랑 이야기하면 시원시원해서 좋아. 내 뒷배를 묻지 않는구먼.”

“네, 제가 원한다면 주실 수 있다는 뜻으로 들었습니다. 그만큼의 숨겨진 힘도 가지고 계시겠죠?”

조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잔 받으시지요.”

“오늘 제대로 마셔 보자고.”

술잔이 오갔다.

조영진 의원의 뒷배가 궁금했다.

다만 먼저 묻진 않았다.

차차 얘기하게끔 하면 될 뿐이기에.

게다가 달콤한 소주와 고소한 장어구이가 의문을 잊게 했다.

권율의 당선.

그리고 꿈같은 제안.

하늘을 날고 싶은 만큼 기분 좋은 밤이었다.

***

다음 날 가뿐한 몸으로 일어난 정훈.

숙취가 없는 싱싱한 젊은 간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은 했다.

정훈은 대구에 있는 광산회사인 한동개발로 갔다.

사장을 만나 담판을 지어야 했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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