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화
이백 명의 남자가 한 남자를 뒤따르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차 있던 명동길은 홍해처럼 갈라졌다.
길가로 물러선 사람들.
호기심 어린 눈빛, 혹은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다.
정훈은 앞으로 걸었다.
자신의 뒤를 따르는 무수한 사람들.
이 싸움은 절대 질 수 없다.
부수고 또 부숴 깨끗하게 정화해야 한다.
명동에 가득한 불법 사채업자들을 쓸어버려야 했다.
정훈의 뒤를 따르는 박창수는 수시로 지시하며 부하들을 낯선 건물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들이 들어간 뒤 우당탕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10여 분을 걸어 송윤호의 사무실이 빌딩 앞에 섰다.
은수와 현수 아저씨도 와 있었다.
“안 와도 되는데.”
“야, 너 위험한 일 하는데 내가 지켜야지.”
“지랄, 역겨운 소리 하지 말고.”
정훈은 은수를 향해 웃으며 거친 말을 쏟아 냈다.
“아저씨, 안은 어때요?”
“할리퀸이랑 사이코 통해서 빌딩 CCTV를 해킹했어. 우릴 치려던 놈들 대부분은 지하 주차장에 있고 간부들은 5층에 있다고 하네.”
“박창수 씨”
“네, 도련님.”
“지하 주차장을 맡아 주세요”
“날쌘 아이들로 10명 정도 도련님 옆에 붙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은수랑 현수 아저씨면 충분합니다.”
“그래도…….”
한 손이 아쉬운 순간이다.
박창수가 그들을 순식간에 제압하지 못해 5층으로 올라오면 우리가 위험해진다.
“걱정 마세요. 우리 셋을 꺾을 사람은 없습니다. 속전속결입니다. 못 나오게 그 안에서 쓸어버리세요.”
“네, 그럼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박창수가 부하들을 향해 외쳤다.
“가자!”
땅이 울리며 백여 명의 사람들이 지하 주차장을 향해 뛰어 들어갔다.
정훈도, 은수와 현수 아저씨와 함께 5층을 향했다.
***
“도련님, 오늘 치겠습니다.”
한현동이 송민호에게 계획을 보고 했다.
원래 그날 치려고 했지만 미뤘다.
저쪽에도 꽤 많은 인원이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윤정훈도 보이지 않았다.
이왕 하는 김에 같이 쓸어버려야 했다.
윤정훈의 손발 하나 정도 자르면 앞으로 설치지 않을 것이다.
내일 윤정훈의 신화대부가 오픈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형중에게 윤정훈이 오늘 오후부터 저녁까지 사무실에 있다는 정보도 얻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오늘이지? 준비는 다 됐나?”
“네, 늦은 밤 들어가서 다 부숴 놓을 생각입니다.”
행동대장의 자신 있는 목소리 한현동 비서실장은 흡족했다.
“도련님 잘 체크해.”
“알겠습니다.”
“심성이 약하신 분인데 강해지려 하셔. 쉽지 않을 거야. 천성이란 게 있는데 회장님이 악수를 두는 게 아닌가 걱정이야.”
“그래도 잘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내가 더 걱정이야. 안으로 곪으실 것 같아서. 이거 수시로 드려.”
파란색 가루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게 뭡니까?”
소파에 기대에 있던 한현동이 상체를 일으킨 다음 손가락 까딱이며 불렀다.
- 쫙
“불필요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 몰라?”
“죄송합니다.”
“이제 기다리면 좋은 소식 듣겠구먼.”
문이 열리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습격입니다!”
한현동의 눈썹이 꿈틀댔다.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일단 이리로 피하시지요.”
행동대장 이상의 간부급들이 비상 계단을 통해 밖으로 대피했다.
박창수가 중부시에서 데려온 일행들이 천지회와 연결된 자들 모두를 쓸었다.
간부급들은 약삭빠르게 모두 피신했다.
그래도 그들의 장부와 컴퓨터를 확보했다.
천지회와 관련된 정보가 가득했다.
빌딩의 CCTV를 해킹한 할리퀸이 송윤호의 위치를 보냈다.
[송윤호는 6층에 밀실에 있어요.]
6층으로 올라간 정훈은 밀실의 문을 열었다.
알코올 냄새가 코끝으로 밀려왔다.
그리고 소파에 누워 웃고 있는 송윤호를 보았다.
그저 웃고만 있었다.
‘약에 취한 건가?’
정훈은 잘 됐다고 생각했다.
사냥에 어울리는 전리품이었다.
뒤따라온 은수가 송윤호를 둘러멨다.
마약에 중독된 그를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치료를 해 줘야겠다.
은수와 함께 외부 계단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CCTV를 피해야 했다.
외부 계단을 통해 내려올 때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윤정훈……. 죽어!”
이형중이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자신을 향해 달려왔다.
“죽어 버려, 이 새끼야!”
정훈은 쉽게 그의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달려오던 이형중은 관성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멈추지 못한 채 그대로 난간을 넘어 아래로 추락했다.
- 퍼억.
3층 높이에서 떨어진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다시 한번 정훈을 죽이려고 시도했다.
이번엔 그 화살이 이형중 자신을 향했지만.
탐욕에 허우적대며 고독했던 삶.
쓸쓸한 죽음은 그에게 어울리는 마침표였다.
그의 주검을 한동안 내려본 정훈은 1층으로 내려갔다.
곽현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굽니까?”
“송윤호입니다. 일송그룹 막내아들입니다.”
“마약에 취한 겁니까? 지금도 웃고만 있네요”
“네, 치료를 도와야죠”
“네? 일단 타시죠.”
차에 탄 정훈은 종로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 앞에서 송윤호를 던졌다.
경비를 선 의경이 다가왔다.
“마약을 한 것 같습니다. 자신이 무슨 일송그룹 후계자라고 하던 것 같던데.”
“알겠습니다.”
송윤호는 경찰서로 인계되었다.
늦은 밤 경찰서 기사실에서 새로운 기삿거리를 찾던 기자들은 경찰에 끌려가는 송윤호를 보았다.
“야, 일송그룹 송윤호 아니야? 서울대 법대 다니는 수재?”
그의 주위로 수많은 기자가 몰려들었다.
정훈은 송윤호의 핸드폰으로 송철호에게 문자를 보냈다.
‘윤정훈입니다.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정훈은 송윤호의 전화기를 아무렇게나 던지고 차로 돌아갔다.
순식간에 모든 일이 정리되었다.
정훈을 습격하려던 명동에 있던 천지회 세력은 한 번에 정리되었다.
***
“윤호가 마약에 취한 채 경찰서 있다고?”
“네, 회장님.”
비서실장 한현동이 대답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아무래도 심적인 부담 때문에 약에 손을 댄 것 같습니다.”
“……. 그릇이 안 됐던 건가?”
긴 한숨이 이어졌다.
“송구하지만 그랬던 것 같습니다.”
“누가 약을 준 건지 철저하게 밝혀. 감히 어떤 놈들이…….”
송철호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조사해서 보고하겠습니다.”
“언론사 전화해서 기사 막아, 검찰 총장한테도 전화 넣고.”
“네, 회장님.”
하지만 모르고 있었다.
이미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송윤호의 기사가 올라갔다.
“회장님, 기사를 막기엔…….”
“뭐?”
“이미 인터넷으로 다 퍼진 것 같습니다.”
옛날 같으면 나오지 않았을 기사가 순식간에 퍼졌다.
가문에 치욕을 안긴 막내놈이 더욱더 한심하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지, 검찰에 전화해. 자네가 알아서 처리하게.”
“알겠습니다.”
자신과 닮았을 것이라 생각했던 막내는 생각보다 나약했다.
심지어 그룹의 명예를 더럽혔다.
천지회의 수장으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입술을 깨물었다.
서재를 나온 한현동은 화장실로 가 전화를 걸었다.
“도련님, 잘 처리되었습니다. 이번 일로 확실히 후보에서 제외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의 얼굴에는 흡족한 미소가 가득했다.
다음 날, 주요 일간지에 일송그룹 막내아들 송윤호의 마약 사건이 대문짝만 하게 났다.
이미 인터넷 언론으로 퍼져 있어서 막을 수 없었다.
재벌가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순간 그들은 깨달았다.
돈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생겼다.
“이 자식이 전에 다혜 선배한테 이상한 소리 한 그놈이지?”
은수가 물었다.
“응.”
“저희는 그럼 내려가 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일단 숨어 계세요. 그리고 잠잠해지면 새로운 일이나 시작하죠.”
“무슨 일입니까?”
“천지회가 운영하는 공장을 좀 정리할까 해서요”
“네? 공장이라면……”
“네, 마약 공장이 여러 곳 있을 겁니다. 찾아서 조져야죠. 준비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지금처럼 계속 세력을 키우세요.”
“알겠습니다. 도련님.”
“강상철 씨는 이제 본격적으로 준비하세요. 내일 오픈이죠?”
“네.”
“티브이 광고가 대대적으로 들어가면 많은 사람이 올 겁니다. 고금리에도 급한 돈 필요한 사람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합법적으로 빌려주는 업체는 아직 우리뿐이죠. 최대한 선점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 그럼 큰일 하셨는데 다들 식사나 하러 가시죠. 큰일 했는데 우리 대한관에 가서 고기나 먹죠.”
“아 박창수 씨가 데려온 사람들도 모두 오늘 하루는 진탕 마시라고 하세요. 사고만 안 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예산은 얼마로 잡을까요?”
박창수가 정훈의 입을 보았다. 그의 울대가 꿈틀댔다.
“무제한.”
“감사합니다. 도련님.”
박창수는 정훈의 뒷모습을 보며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밖으로 나간 정훈은 하늘을 보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자신을 노리던 명동의 천지회 세력을 한 번에 제거했다.
그들이 공격하기 직전, 모두 모여있을 때 습격해서 비교적 쉽게 해결했다.
기분 좋게 차를 타려고 할 때였다.
멀리서 박 영감이 오는 게 보였다.
약국으로 뛰어가 박카스 한 박스를 샀다.
기분 좋은 날, 그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어르신.”
정훈이 인사했을 때 뒤에서 곽현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장님 안녕하셨습니까?”
정훈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손에 들려있던 박카스 한 박스를 그에게 전했다.
“영감님, 아니 회장님. 이거 드세요.”
“그래, 천지회 녀석들 싹 정리했더구나.”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명동 사천왕 정도면 그 정도 귀가 있지 않겠느냐? 이건 내가 잘 마시겠네.”
정훈의 동공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명동 사천왕이 박 영감님?’
생각을 가다듬었다.
‘저 사람은 지난 생에 나를 위로해 주던 사람이었다. 그럼 그때도 나를 알고 있었던 걸까?’
궁금한 게 가득했지만 박 회장은 박카스를 들고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대한관은 양념 갈비가 가장 인기 있었다.
“여기 양념 갈비 20인분 주세요.”
숯불이 들어오고 돌돌 말린 양념갈비를 잘 펴서 숯에 올렸다.
적당히 익기를 기다리며 정훈이 물었다.
“아까 그분이 박 회장님이에요? 그럼 명동 사천왕의 박 회장님인 거죠?”
“저번에 사천왕 어르신 만나지 않았습니까?”
곽현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날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랬군요. 사천왕 중 한 분이신 박 회장님입니다. 돈도 제일 많고 욕심도 제일 많으십니다. 중요한 건 저분한테 뭐 얻어먹기 정말 어렵습니다.”
“아, 그렇군요.”
지난 생에서 밥도 몇 번 얻어먹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정훈의 눈앞에 잘 익은 고기가 보였다.
먹는 데 집중하자.
지금 고민해도 알 수 없는 일에 신경 쓸 필요 없었다.
강상철은 눈을 감고 입을 움직였다.
은수의 젓가락에는 고기가 세 점 잡혀 있었다.
현수 아저씨는 고기를 코앞에 대고 향기를 맡고 있었다.
1인분에 5만 원 하는 한우 양념갈비.
고기 한 조각이 그들에게 작은 행복을 줄 수 있길 기원했다.
정훈도 젓가락을 들었다.
잘 익은 고기를 입에 넣자 달큼한 간장 양념과 기름기 가득한 고소한 육즙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녀가 생각났다.
‘다혜.’
보고 싶었다.
***
다음 날 저녁부터 티브이 광고가 시작되었다.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서 고금리 대부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어둡고 냄새나는 사무실에서 조폭들에게 굽신하면서 돈을 빌렸던 사람들,
돈을 빌리면서도 믿을 수 없던 두려움에서 해방되었다.
시중 은행만큼 밝고 깨끗한 이미지, 친절한 직원들의 상냥한 응대.
그러고 연체를 할지라도 조폭이 찾아가지 않는다.
모든 것은 법에 따라 진행되었다.
사람들이 몰리는 건 당연했다.
수요는 있었지만, 공급이 없던 시장.
정훈의 생각대로 신화대부 앞은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강상철의 입이 길게 쫙 찢어졌다.
많은 사람이 몰려 강상철은 신화대부 입구로 갔다.
먼저 들어오기 위해서 난장판이었다.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줄을 서시오, 줄을 서시오.”
몇 년 전 히트를 친 드라마 대사를 능청스럽게 외쳤다.
팔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모두 줄을 서시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피식 웃으면서 모두 줄을 섰다.
신화대부의 사장실로 들어간 정훈은 강상철이 타 주는 커피를 마셨다.
“요즘 경찰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합니다. 저번에 우리가 천지회 놈들 쓸었던 게 뉴스를 타면서 문제가 좀 커졌습니다.”
“그래요? 그 친구들 못 찾을 건데. 여기 연고도 없는 사람들이고 제가 잠수하라고 해서 못 찾습니다.”
“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불쌍하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우리한테 얻어터진 놈들이 끌려가게 생겼습니다.”
불쌍하다고 말하면서도 강상철은 신난 얼굴이었다.
“네?”
“그게 명동에서 건장한 남자들이 불법 사채 때문에 활개를 치지 않았습니까? 그걸 본 시민들이 불안하니까 누구라도 잡아 처넣어야 하는데……. 지금 잡아넣을 사람들이 그놈들밖에 없습니다.”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네요. 영업장 박살 나고 사람들까지 잡혀 가면……. 송 회장님 기분이 아주”
“좆 같을 겁니다.”
강상철이 추임새를 넣었다.
“그 녀석들 몇 명을 본보기로 데려간답니다.”
“흠, 그래도 어차피 한통속이라 1년, 아니 조용해지면 증거 불충분으로 나올 겁니다.”
정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죠?”
“그러니 나중을 위해 여기도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 녀석들이 발붙일 수 없도록 대비를 해야 할 겁니다. 그래서 박창수 씨를 불러올까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강상철은 상관없다고 했다.
곽현수도 그라면 안심할 수 있다고 했다.
명동을 정리한 지금 이곳을 지킬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강남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정리해야 한다.
박창수와 같은 능력자가 더욱더 필요했다.
***
리오 틴토 회장의 딸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원래 대구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그녀는 광산을 직접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유정리 마을 회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도련님, 유민철입니다.”
“네, 지금 내려가고 있습니다. 한 시간 반 뒤면 도착합니다.”
“저도 시간 맞춰 가겠습니다. 유정리 근처에 있는 폐광 한번 체크하고 가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은수는 운전이 피곤했는지 차에 쉬겠다고 했다.
정훈은 유정리 마을 회관 주변을 걸었다.
시골 논두렁을 산책하고 있을 때 눈앞에 외국인 여인이 뛰어오고 있었다.
몸매가 드러나는 민트색 운동복을 입고 핑크색 런닝화를 신었다.
서울도, 대도시도 아닌 시골길에서 조깅하는 외국인.
특이한 광경이었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그녀는 정훈 앞에서 멈췄다.
금발에 푸른 눈의 외국인은 정훈을 빤히 보았다.
“후, 윤정훈 씨 맞으시죠?”
설마 했지만, 그녀가 리오 틴토 회장의 딸인 건 분명해 보였다.
괴산군 유정리 시골에 저런 외국인이 있을 수 없었다.
“네, 리오 틴토의 스칼렛?”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며 상체를 들썩였다.
운동광이 분명했다.
“안녕하세요, 윤정훈입니다.”
정훈은 지금까지 열심히 배운 영어로 능숙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스칼렛이에요.”
“운동 중이셨나 보군요.”
“네, 여기 풍경이 아름다워서요. 고향 생각도 나고 해서 좀 뛰었어요. 좋은 풍경을 보고 뛰는 걸 너무 좋아하거든요.”
“지금 한국의 산이 아름다운 시깁니다. 울긋불긋하거든요.”
“그렇네요. 후, 후.”
한동안 호흡을 고른 그녀.
둘은 마을 회관을 향해 걸었다.
“듣기보다는 친절하시네요. 우리 기술팀장님 말로는 목에 깁스한 것처럼 거만하다고 하던데.”
“그쪽 기술팀장이 정말 거만했죠. ‘냄새 나는 음식은 안 먹는다’라고 그랬죠. 물만 먹고 사는 줄 알았습니다. 음식이 냄새가 안 날 수 있나요?”
“호호, 정훈씨 꽤 유쾌하네요.”
“감사합니다. 유 사장님 말로는 다니엘 기술팀장이 지금 냄새나는 김치에 환장해 있던데요. 호호”
“저도 들었어요. 유 사장이랑 매일 삼겹살에 김치 구워 먹는다고 하더라구요.”
“둘이 잘 지낸다니 좋은 소식이네요.”
정훈은 그녀와 대화하면서 마을 회관 앞으로 이동했다.
이미 도착했어야 할 유민철 사장이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할 수 없어 소리샘으로 연결한다는 여인의 목소리만 들렸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