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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72화 (72/200)

#072화

몇 번을 전화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사고가 생긴 게 분명했다.

정훈은 할리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유민철 사장님 핸드폰 위치 좀 따 줘요.”

“바로 보낼게요.”

휴대폰으로 위치를 전송받은 정훈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스칼렛을 혼자 두고 갈 수 없었다.

“죄송해요, 일이 생긴 것 같아요. 지금 급히 가 봐야 하는데…….”

“혹시 광산에 가는 거면 저도 같이 움직이죠. 어차피 구경하고 싶었어요.”

“네, 오늘 제대로 안내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미스터 윤.”

롤스로이스에 올라탄 정훈은 은수에게 위치를 알렸다.

“은수야, 여기로 가. 유민철 사장 마지막 위치가 거기야.”

“무슨 일 있어?”

“폐광산 안전 점검 갔는데 지금 연락이 안 돼, 벌써 이리로 와야 하는데.”

“오케이.”

태봉산 옆 산의 임도를 따라 올라가자 폐광산이 나왔다.

거기에 유민철의 낡은 지프도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위험해 보이는데, 일단 119부터 부르자.”

은수가 굳은 표정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연결이 안 돼. 내가 내려가서 전화하고 올게. 여기서 기다려. 절대 혼자 들어가면 안 돼.”

“아니야, 급해. 지금 상황이 어떤지 모르잖아. 지금 들어가야 해.”

“위험해요. 너무 낡아서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데…….”

은수와 스랄렛이 걱정했지만 정훈은 기다릴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빨리 들어가야 해요. 유민철 씨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잖아요.”

들어가야 한다.

어둠 속에 혼자 있을 그.

더 위험해지기 전에 빨리 구해야 했다.

“안 돼요. 절대로 들어가면 안 돼요. 전 광산이 무너지는 걸 자주 봤어요. 지금 무턱대고 들어가면 미스터 윤도 죽을 수 있어요.”

스칼렛이 강하게 반대했다.

그녀의 말도 이해됐다.

광산 사고를 무수하게 경험했을 그녀.

최고의 방법은 구조대와 함께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를 구하러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스칼렛,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구할 수 없어요. 모든 것엔 골든타임이 있어요. 지금이 그 시간이에요.”

정훈은 광산 입구를 막고 서 있던 스칼렛을 피해 시커멓게 입을 벌린 광산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본 스칼렛은 주먹을 꽉 쥐었다.

결심한 얼굴이었다.

“나도 들어가야겠어요.”

***

정훈과 스칼렛은 한줄기 불빛에 의지해 앞으로 걸어갔다.

스칼렛은 긴장한 듯 조심스러웠다.

“큰일 아닐 겁니다.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정훈은 자신을 따라온 스칼렛이 부담스러웠다.

“아니요. 당신은……. 모를 거예요. 입구에서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을요. 아버지가 당신처럼 들어갔어요. 모두가 반대했죠. 그리고 광산이 무너졌어요. 그날은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

“유감입니다.”

“아니요. 다행히 아버지는 살아 돌아오셨어요. 모두를 무사히 구출한 영웅이 되었죠. 그런데도 전 그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정훈은 그제야 그녀의 날 선 반응을 이해했다.

“유민철 씨! 유민철 씨!”

여러 번 불렀지만, 그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둠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

“으으으.”

유민철은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몸을 툭툭 털었다.

완벽한 어둠이었다.

손전등이 어디 있는지 여기가 어딘지 몰랐다.

이런 상황에선 절대 움직이지 않는 게 중요했다.

섣불리 움직였다가 미로 같은 광산에서 길을 잃으면 큰일이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다.

“후, 조심한다고 했는데 젠장, 도련님 약속에 많이 늦겠네. 그나저나 혼자 다닌 걸 알면 뭐라 하실 텐데.”

그의 귀에 정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혼자 다니지 말라고 여러 차례 주의를 줬는데…….

“네.”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귀에 윤정훈 도련님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실없이 웃었다.

그 사람이 여기 있을 리가.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최선이었다.

완벽한 어둠 속, 혼자다.

검은 공포가 자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자신도 몰랐다.

나약한 인간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손에 가득 찬 땀을 닦으며 기도했다.

‘도와주세요.’

***

“쉿.”

희미하게 들렸으나 분명 유민철의 목소리였다.

“들었죠?”

“네?”

듣지 못한 표정이었다.

“유민철 씨! 유민철 씨!”

정훈이 크게 외쳤다.

정말 기적처럼 멀리서 유민철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깁니다! 도련님, 여기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갑니다!”

유민철은 정훈과 스칼렛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허허, 허허허 지금 제가 보는 게 죽기 전 환상, 그런 거 아니죠?”

“아닙니다. 괜찮으세요?”

“다리가 부러진 거 같은데요.”

“곧 구조대가 올 겁니다. 그런데 여기는 왜 왔습니까?”

“우리 광산인데 아직 확인을 못 해서요. 그래서 들어왔는데 좀 이상했습니다.”

“뭐가요?”

“광산이라기보다는 창고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층고도 높고 폭도 넓은 게 대형 트럭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터널이라고 하기엔 좀 작고.”

“잠시만요.”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자 광산 안에 커다란 철문이 보였다.

“저건 뭐죠?”

“저도 여긴 처음이라 모르겠습니다.”

“잠깐 다녀올게요.”

육중한 철문은 녹이 슬어 잘 열리지 않았다.

온몸에 힘을 주며 밀자 비로소 조금씩 틈을 내줬다.

“휴우, 뭐야 여긴.”

손전등을 비췄다.

낡은 철제 책장과 캐비닛, 그리고 서류 뭉치가 보였다.

그중에 하나를 꺼내 읽었다.

‘수인 - 65595354978722’

낯익은 형식이었다.

유리가 준 장부와 똑같은 형식의 글들로 보아 천지회와 관련된 서류가 분명했다.

그런데 한두 권이 아니었다.

정훈은 우선 유민철에게 돌아갔다.

“안엔 뭔가요?”

감추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은밀히 처리해야 한다.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낡은 서류들이 조금 있었습니다.”

“아, 그랬군요.”

“업히시죠. 제가 업고 가겠습니다.”

“아닙니다. 기다리면 구조대가 올 겁니다.”

“어둠 속에 오래 있는 건 좋지 않습니다. 여기 온도도 낮아서 몸도 으슬으슬한데요”

“풋, 미스터 윤은 젊은데도 추위를 많이 타나 봐요. 아까는 용감하게 들어오더니. 안 어울리네요.”

“아뇨, 유민철 씨가 추위를 많이 타네요.”

그의 어깨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아, 그렇군요.”

정훈은 유민철을 업고 밖을 향해 걸었다.

“제 아버지도 이런 기분이었겠죠?”

“어떤 기분요?”

“음, 영웅이 된 기분요. 사람 목숨을 구했잖아요”

“당신 아버지가 영웅이죠.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했잖아요. 전 아닙니다.”

“사람을 구하는데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에요.”

“그런가요? 그럼 작은 영웅쯤으로 하죠. 이제 당신 아버지가 왜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했나요?”

“조금은요. 잊고 있었어요. 그날 아버지가 부상자들을 데려 나오는 순간이 생각났어요.”

“뭘 잊고 있었던 거죠?”

“제 기분요. 무섭다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그날 아버지는 영웅이었어요. 아버지가 절 높이 들었죠. 그때 정말 슈퍼맨처럼 하늘을 나는 것 같았어요.”

“공포는 많은 걸 잊게 하죠.”

“고마워요, 미스터 윤. 소중한 걸 찾아 줘서요.”

“…….”

멀리서 불빛이 움직이고 있었다.

“구급대원입니다. 괜찮습니까?”

구급대원의 말에 의하면 유민철은 다리가 부러졌다고 했다.

유민철은 병원으로 가 검사를 한 후 회사로 온다고 했다.

스칼렛은 호텔로 돌아갔다.

정훈은 곽현수에게 유정리 폐광에 있는 장부를 회수하라고 했다.

할리퀸과 함께 장부의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했다.

이병석이 프로그램 전문가였다.

계약은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

호텔로 돌아온 스칼렛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며 폐광에서의 긴장을 말끔히 풀었다.

물기를 말린 후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전화할까 말까 고민했다.

다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린 자신을 번쩍 들고 있었다.

내려다본 그의 얼굴은 먼지가 가득했다.

하지만 환한 웃음의 그는 자신의 슈퍼맨이었다.

이제 해야만 했다.

아버지는 돈에 눈이 먼 탐욕스러운 자본가만은 아니었다.

“……회장님.”

“웬일이냐? 먼저 전화하고, 계약에 문제가 있는 거야?”

“아니요. 그것 때문이 아니에요.”

“그런데?”

여전히 싸늘한 목소리 지난 수년간의 갈등이 그들의 차가운 목소리에 묻어 있었다.

“답답하구나.”

“옛날 생각이 났어요……. 아빠”

“…….”

“무너진 광산에서 나온 아빠의 얼굴이 이제야 생각났어요. 지금까지는 들어가지 말라는 사람들만을 무시하고 들어간 아빠의 고집스러운 얼굴만 기억했거든요.”

“먼지투성이였을 텐데.”

“그래서……. 멋졌어요…… 그만 끊을게요.”

스칼렛은 다급히 전화를 끊었다.

지난 몇 년간의 깊은 갈등이 한순간에 해결되진 않겠지.

하지만 잊었던 아빠의 얼굴을 찾은 오늘.

마음속 숨겨진 보물을 찾은 행복한 날이다.

시계를 본 그녀는 서둘러 나갈 준비를 했다.

계약서에 사인해야 했다.

***

“지분 39퍼센트 1조 원 맞습니까?”

정훈의 질문에 스칼렛이 웃었다.

“네, 맞아요.”

“서로 사인하시죠.”

신화개발 대표인 유민철과 리오 틴토를 대리한 스칼렛이 각자의 서류에 사인했다

그런 다음 서류를 교환해 사인을 한 번 더 했다.

이로써 리오 틴토는 신화개발의 2대 주주가 되었다.

1대 주주는 51퍼센트를 가진 윤정훈.

2대 주주는 39퍼센트를 가진 리오 틴토.

3대 주주는 10퍼센트를 보유한 유민철 사장.

유민철 사장과 스칼렛은 언론의 대대적인 기자회견을 마치고 대구 호텔에 마련된 연회장으로 이동했다.

신화미포조선, 신화중공업과 신화증권 임직원과 중부시장이 참석했다.

정훈은 유민철에게 물었다.

“기분이 어떻습니까? 로또보다 더 큰 걸 맞은 것 같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제 삶이 크게 바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많이 달라질 겁니다. 중심을 잘 잡으세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도련님.”

“다리도 빨리 나으세요.”

“감사합니다. 도련님.”

“미스터 윤.”

스칼렛이 정훈을 불렀다.

“저기 아까 있던 운전하던 비서는 어디에 있어요? 예쁘게 생긴 그분.”

정훈은 두리번거리며 은수를 찾았다.

“저기 있네요.”

“아, 저 부탁이 있어서요. 내일부터 며칠간 서울 구경을 하고 싶은데 가이드가 필요해서요.”

“네? 저 친구 영어 못하는데요?”

“상관없어요. 제가 한국어를 좀 해요.”

‘하, 정은수 글로벌 하게 노는구먼.’

정훈은 마침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겹게 들러붙는 은수를 떼어 놓을 좋은 기회였다.

“제 친구 빌려 드릴게요. 아 저놈은 컵라면 사 주면 됩니다.”

정훈은 스칼렛에게 은수 사용법을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때 스칼렛의 전화벨이 울렸다.

“회장님.”

전화 통화를 하던 스칼렛이 정훈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 받아 보실래요? 회장님이 통화하고 싶다는데요.”

정훈은 고개를 끄덕이곤 전화를 건네받았다.

“안녕하세요. 미스터 윤입니다.”

“리오 틴토 회장 러셀 해밀톤입니다. 미스터 윤, 제가 시간이 없어서 그럽니다. 영산미포조선 인수하셨죠?”

“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5만톤급 PC선(석유화학제품 운반선) 10척 발주하겠습니다.”

“네?”

정훈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갑작스러운 발주라니, 그것도 10척이나.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스칼렛이 웃고 있었다.

이미 부녀지간에 이야기가 된 걸까?

“잠시만요 회장님.”

정훈은 떨리는 손을 들어 영산미포조선 마태훈 사장을 불렀다.

“PC선 10척 제작할 수 있습니까?”

“네? 가능하긴 합니다만…….”

영문을 알지 못한 마태훈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회장님. 무조건 가능하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 딸을 찾아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네?”

이해할 수 없는 회장의 말에, 정훈이 다시 물었다.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에 한번 찾아가겠습니다. 그럼 이만.”

순식간에 4천억의 매출을 올렸다.

정훈이 마태훈에게 알렸다.

“PC선 열 척, 리오 틴토로부터 수주했습니다.”

“네? 열 척요?”

믿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는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회장이 떠날 듯이 소리를 질렀다.

“10척!”

신화개발 지분 39퍼센트를 1조 원에 팔고 동시에 수천억의 매출을 올린 날이었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때 갑작스럽게 손끝에 온기가 전해졌다.

박다혜가 옆에 있었다.

큰 두 눈이 빛을 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자 살짝 내 품에 안겼다.

처음 그녀에게서 맡았던 그 향기가 코끝에 맴돌았다.

***

사실 그녀가 올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사시 준비로 바쁜 그녀였다.

내 곁에서 도움이 되고 싶다는 그녀.

하루에 15시간, 무서운 집중력으로 공부했다.

박다혜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오랜만에 다정한 회포를 풀었다.

“윤정훈 씨.”

고개를 돌리자 선재종합기계 이순호 재무 이사가 있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오늘 겹경사네요”

“네, 정말 믿을 수 없는 하루네요.”

“저한테 잠깐만 시간 내 주시겠습니까?”

이순호의 눈빛엔 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다.

자리를 옮겨야 했다.

이순호는 호텔 방으로 정훈을 안내했다.

문이 열리고 조영진 의원이 웃고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그런데 상석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은 정훈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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