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76화 (76/200)

#076화

송철호는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거친 숨을 쉬며 이리저리 쿵쾅거렸다.

반면 송지호는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최고가 입찰?”

“죄송합니다. 회장님”

“죄송? 이건 돈 문제가 아니야. 지금 우리 입김이 안 먹히고 있잖아? 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거야?”

숨을 고른 송철호가 자리에 멈췄다.

“3번 아이언.”

송지호의 입술이 떨렸다.

멈춰 있던 그는 천천히 몸을 움직여 구석에서 골프채를 꺼냈다.

그리고 회장님의 손에 들려 줬다.

“여기 있습니다.”

“열 대.”

송지호는 말없이 그 자리에 엎드렸다.

골프채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냈다.

- 퍽, 퍽, 퍽, 퍽…… 퍽.

“이번 거 실패하면, 아니 만에 하나 저번처럼 네 멋대로 판단해서 행동하면 네 모든 것을 잃는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송철호는 밖으로 나가 한현동을 불렀다.

“현동아, 그 아이 좀 불러와.”

“네, 회장님.”

회장실에 홀로 남은 송지호의 얼굴이 시뻘겋게 타올랐다.

이빨을 꽉 깨문 그는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씨팔, 감사합니다. 아버지……. 일송그룹의 모든 걸 제가 가지겠습니다.”

***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한현동은 송지호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괜찮아요. 한두 번도 아닌데 뭘 그럽니까? 그런데 돈 받아 처먹은 분들이 왜 약속을 안 지키죠?”

“그게 자산관리공사 사장이 아주 강직하답니다.”

“강직하다? 그럼 우리 쪽으로 기울지 않겠다는 건데, 어떡할까요? 실장님.”

“부러트…….”

송지호는 손을 들어 한현동의 말을 제지했다.

“그런 험한 말은 입에 담지 마세요.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회장, 아 죄송합니다. 실장님.”

한현동의 말에 송지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다 말았다.

“흠흠, 지금 인수자금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일단 증권사와 계열 금융 회사에서 모으고 있습니다. 모자란 부분은 다른 그룹의 지원을 받기로 했습니다.”

송지호는 이번에 들어올 돈을 어떻게 굴릴지 고민했다.

실패했을 경우도 고려해야 한다.

실패해 봤자 몇 대 맡고 끝난다.

하지만 빌려온 돈을 불리지 못하면 뒤처질 뿐이다.

지금도 뻗어 가고 있는 다른 그룹들을 보면 속이 쓰렸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쳤다.

일단 아버지의 신임을 회복해야 한다.

일송을 손에 넣은 뒤에 해야 할 일들이다.

“알겠습니다. 가서 일 보세요.”

기조실장의 방을 나온 한현동은 굳은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것을 자신에게 뒤집어씌우려는 송지호의 의중이 불쾌했다.

하지만…… 자신의 숙명, 어쩔 수 없다.

책임지고 마무리 지어야 한다.

그래야만 대 일송그룹의 비서실장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지킬 수 있었다.

한현동이 전화를 걸자 곧 낮은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어 나야, 처리해. 최인수 배때기가 얼마나 강직한지 보자고.”

“알겠습니다.”

자신의 전화기를 보던 한현동의 얼굴에 음흉한 웃음이 새겨졌다.

***

명동으로 간 정훈은 강상철의 사무실에 들렀다.

여전히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강상철 씨, 웃는 연습 많이 하고 있습니까?”

“네, 저도 직원들도 매일 하고 있습니다.”

“불법 사채, 고리 대금업 같은 이미지를 없애는 데 주력하세요. 우리는 제3금융권입니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강상철이 머뭇거리며 입술을 옴짝달싹거렸다.

“할 말 있습니까?”

“저기, 금감원 쪽 직원이 이야기하는데 최근에 저축 은행이 매물로 나왔습니다. 도련님께서 관심 있으시면 저쪽에서 밀어준답니다.”

“저축 은행요?”

“네”

강상철의 말에 정훈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기억을 더듬어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되돌아보았다.

곧 있으면 카드 회사가 부도나고 대형 은행이 매물로 나온다.

그렇다면 제3금융과 더불어 미리 제2금융권에 진출해 있으면 모양이 좋았다.

“요즘도 금감원 직원들이랑 자주 만납니까?”

“네, 제가 열심히 놀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미리 연락한 겁니다. 제 천성이 사람도 좋아하고 술, 도박 같은 거 좋아해서 잘 챙기고 있습니다.”

고민이다.

돈 찔러 주고 술 사 주고 하는데 남는 게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돈 주고 영수증을 받을 수도 없는 일방적인 거래.

강상철과 그들 사이의 가식적인 친밀함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당근이 있으면 채찍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정훈은 강상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당연히 채찍도 준비되어 있겠죠?”

“물론입니다. 제가 사람을 좋아하긴 하지만 의심도 많아서 약점도 꽉 잡고 있습니다. 필요할 때 말씀하시면 됩니다. 도련님.”

정훈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믿었던 만큼 잘하고 있습니다. 더 윗선까지 만나세요. 술 사 주면서 약점도 잡고…….”

‘믿었던 만큼.’

짧은 두 단어가 강상철의 가슴을 울렸다.

지금까지 누가 자신을 믿어 줬던가?

의심받고 무시당했던 인생.

그런데 이분은 자신을 믿고 일을 전적으로 맡겼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하니까 믿는 겁니다.”

신문을 읽던 정훈이 건조하게 말했다.

그런 다음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두었다.

“이거 세탁해서 금감원 직원들 접대할 때 쓰세요.”

“감사합니다.”

강상철이 수표의 금액을 보자마자 심장이 멈췄다.

‘1억.’

비자금을 1억으로 맡기는 사내.

믿음이란 단어로 그리고 1억으로 자신을 감동하게 했다.

오늘은 그에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믿음에 대한 보답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강상철은 주먹을 불끈 쥐며 힘주어 말했다.

“저축 은행 확실히 인수할 수 있도록 금감원 쪽에 줄을 만들어 놓겠습니다. 도련님.”

“알겠습니다.”

강상철이 나가고 박창수가 들어왔다.

“도련님 나오셨습니까?”

박창수의 얼굴 여기저기에 작은 상처들이 보였다.

“지금까지 상대하던 놈들이랑은 수준이 다르죠?”

중부시라는 좁은 물에만 있던 사람이라 조금 되었다.

“아닙니다. 현수 씨가 가르쳐 준 기술도 있고 해서 쉽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곽현수의 의견에 따르면 박창수는 확실히 다른 무술을 배운 게 분명하다고 추측했다.

특히 목검을 들었을 때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고 한다.

현대화된 검도에서는 뿜어낼 수 없는 강한 살기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강북 쪽은 사람들이 좀 순한 편입니다.”

“조폭들이 순하다니요?”

“패배를 인정하면 뒤 끝이 없습니다. 중부시에 있던 국제파 놈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거든요.”

“그게 그놈들 습성이죠.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이 서로 다른 게.”

“중부시 정리할 때 항복한다고 해서 화합을 위해서 회식 자리를 마련했더니 함정을 팠더라고요. 하여튼 그런 놈들입니다.”

정훈도 잘 알고 있었다. 한 입으로 두말을 밥 먹듯이 한다.

“회사 이름은 뭐로 지었습니까?”

“신화주류로 하려니 도련님께 누가 될 것 같아서 화신주류로 했습니다. 그 밑으로 조폭들 이권 사업은 모두 인수하고 있습니다.”

“네, 경찰들이랑 검찰 쪽에 밉보이지 않도록…….”

“그 부분은 제가 책임지고 신경 쓰고 있습니다. 경찰도 저희가 잘 관리하면 크게 뭐라 하지 않을 겁니다. 어쨌든 우리가 있으면 질서가 유지되니까요”

“참, 마약은 어떻게 됐습니까?”

“유통책을 잡아서 추적 중인데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꼭 발본색원하겠습니다.”

정훈은 고개를 돌려 박창수를 보았다.

그의 눈에서 단호한 의지가 느껴졌다.

“쉽지 않을 겁니다. 핵심 사업장이라서 깊이 숨겨 뒀을 겁니다.

몸조심하시고 좋은 인재들은 잘 챙기세요.

그리고 올해 안으로 인천까지 정리하세요”

정훈의 지시에 박창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네? 인천까지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전력을 다해 가진 힘을 다 쏟으면 가능할 겁니다. 중부시에 있던 후배들도 불러도 됩니다.”

박창수는 대답할 수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 힘을 드러낸다면 해 볼 만했다.

그런데 그 힘을 드러내도 될 사람인지 아직 믿을 수 없었다.

“해 보겠습니까?”

정훈이 박창수의 눈을 보았다.

“네, 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전력을 다하면 절대 실패할 수 없습니다.”

박창수는 정훈의 눈에서 자신을 향한 강한 확신을 읽었다.

감춰 둔 힘을 포함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자신을 따르는 동생들과 의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부시에 있는 동생들을 불러와야겠습니다. 그들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필요한 거는 뭐든지 부탁하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박창수는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훈은 굳게 닫힌 그의 입술에 많은 비밀이 들어 있음을 보았다.

***

레전드 컴퍼니로 간 정훈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지난번 선재중공업 폭발사고 때 여러분 덕분에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천진혁 씨 도움이 컸다고 들었습니다.”

“이 친구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면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을 겁니다. 어떻게 기지국을 해킹해서 통해서 단체 문자를 보낼 생각을 한 건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아직 갚아야 할 죗값이 많습니다.”

천진혁의 말에 주변이 적막해졌다.

“그렇게 우울할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도 속죄해 나가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천진혁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보던 차영미가 입을 열었다.

“야, 너는 게임 할 때는 눈에 광기가 나오더니 이럴 땐 비 맞은 고양이 같네.”

“크흠, 사장님 혹시 하실 말씀 있습니까?”

이병석이 차영미의 말을 끊었다.

“아시다시피 선재중공업 저렇게 놔둘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인수하려고 합니다.”

“네? 저 큰 걸요?”

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재중공업은 조선업계 세계 1위입니다. 자신 있으십니까? 제가 헤븐에 있을 때 부친께서도 탐냈습니다. 그런데 일송에서 관심이 많아 손을 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 있어야 합니까? 하다 보면 자신감도 생기는 거죠. 일송에서 관심이 많으니 저렇게 폭발도 일으킨 거겠죠?”

천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혁 씨가 많이 도와줘야 합니다. 그리고 차영미 씨랑 이병석 씨도 힘을 모아야 합니다.”

“저희가 할 일이란 게?”

정훈은 그들을 쭉 둘러보았다.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얼마 전에 매각 계획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자산관리공사 사장은 아직 일송에 회유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테러할 겁니다. 일송이 속한 천지호의 가장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일송이 선재중공업을 가지는 데 방해되는 모든 사람을 협박할 겁니다. 항상 그런 식으로 좋은 회사를 싸게 가졌습니다.”

천진혁이 그들의 방법을 설명했다.

“이번 프로젝튼 천진혁 씨를 팀장으로 해야겠네요.”

“네? 제가요?”

“그놈들 수법을 잘 아니 제일 잘 막겠죠?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차영미가 천진혁을 슬쩍 보고 비웃었다.

“전 찬성요.”

“저도요. 진혁 씨가 적임자겠죠. 말은 안 하지만 꽤 많은 내용을 알고 있는 것 같군요.”

“그럼 이번 인수전은 천진혁 씨가 맡아 주세요.”

“저는 아직 경험도 없고, 그리고 제가 그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게 좀…….”

“중요한 사람이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지, 쯧쯧.”

차영미가 비아냥대며 칭찬했다.

“그리고 거 자신감 좀 가져. 계속 그렇게 어깨 축 늘이고 있으면 사무실 분위기 개판 돼.”

차영미의 지적에 천진혁이 고개를 들었다.

“알았어요. 거 잔소리 좀 그만해요. 집에서부터 시작해서 사무실까지 귀 아파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천진혁이 날카롭게 받아쳤다.

하지만 조금은 다른 느낌.

그 모습을 본 이병석이 슬쩍 웃었다.

“참 새로운 들어간 집은 어때요?”

“원더풀!”

세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집이랑 가깝고 넓고, 끝내줍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차영미가 어색하게 웃으며 감사했다.

10억을 당겨 갔으니 얼마나 좋은 집을 구했을까?

빌려준 거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좋은 집에서 사이좋게 지내세요.”

얼마 뒤 곽현수가 왔다.

그리고 은수와 스칼렛도 들어왔다.

둘 사이는 연인도 친구도 아닌 모호한 관계처럼 보였다.

분명한 건 스칼렛은 확실히 은수에게 빠져 있었다.

“정훈아, 언제 왔어?”

은수의 얼굴이 좋아 보였다.

트라우마가 거의 사라진 것 같았다.

“어, 아까 왔어. 그런데 네가 여기 웬일이야?”

“현수 아저씨가 오늘 너 온다고 해서 왔지. 요즘 얼굴 본 지 오래됐잖아.”

‘우리가 매일 봐야 할 사이는 아닌데.’

라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아, 그렇네.”

정훈은 스캇렛을 보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스칼렛. 여행은 1주일이라고 들었는데.”

“그게, 한국이 너무 아름다워서 떠날 수가 없네요.”

그녀가 말한 한국은 누가 들어도 은수였다.

지금도 은수를 보며 입을 벌리고 있다.

“지금 명동 갈 건데 같이 갈까?”

“응, 스칼렛 괜찮아요?”

“물론이죠.”

“아저씨, 저 박 회장님 댁에 좀 가야겠어요.”

“네.”

명동에 있는 박 회장님 집으로 갔다.

자기 소유 빌딩의 가장 높은 층에 살고 계셨다.

보통 회장님들의 집들이 단독 주택인 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곽현수의 말에 의하면 보안 때문이라고 했다.

여러 번의 테러를 겪고 나서 어쩔 수 없이 빌딩의 옥상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사천왕의 으뜸인 박 회장님의 집은 검소했다.

그래서인지 주방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냉수만 내주셨다.

지독하게 돈을 아끼는 그의 성격이 느껴졌다.

“안거라.”

“네, 회장님.”

“친구들도 같이 왔습니다.”

은수와 스칼렛을 소개했다.

박 회장이 은수를 물끄러미 보았다.

“자네 계집처럼 예쁘게 생긴 게, 옛날에 크게 인기를 끌던 신인 배우가 생각나는구먼. 한 20년도 더 전이지 이름이……. 청순가련한 스타일이었는데.”

예쁜이란 단어에 은수의 눈은 자연스럽게 불탔다.

하지만 워낙 나이 많은 노인이라 은수도 화를 삭였다.

“하인선 아닙니까?”

“맞아, 하인선 그런데 현수 자네가 어떻게 알아?”

“사실 저도 그 연예인이랑 은수랑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고 했습니다. 짧은 순간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갑자기 사라졌지.”

“네.”

정훈은 시답잖은 연예인 이야기에 시간을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다.

“어르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잠시 자리를 옮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낡은 소파에서 일어난 박 회장이 정훈을 자신의 서재로 데려갔다.

30년은 사용한 듯한 오래된 원목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박 회장의 맞은편에 앉은 정훈이 입을 열었다.

“본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번에 약속하신 돈을 빌려주십시오.”

“뭐? 내가 언제? 네 놈이 말을 하면 생각해 보고 빌려준다고 했지!”

예상했던 반응이다. 그래서 약속했다고 일부러 우겼다.

“아닙니다. 저번에 분명히 약속 하셨습니다.”

“허허, 이놈이 막무가내로 우기는 게……. 그 여편네 손자는 확실하구먼.”

박 회장의 입술이 길게 늘어졌다.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얼마가 필요해? 액수나 한번 들어보지.”

“5조를 빌려 주십시오.”

“뭐?”

박 회장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길게 늘어져 웃고 있던 입술은 긴장한 듯 이내 딱딱해졌다.

두 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5조를 빌려 달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윤정훈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그.

정훈을 태워 버릴 기세로 정훈에게 안광을 쏘아댔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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