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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84화 (84/200)

#084화

신화그룹 출범식 당일.

출범식은 저녁 9시였다.

밤은 모든 것을 감출 수 있다.

위치도 서울이 아니라 인천 외곽에 있는 해안가 폐공장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기자들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늦은 오후 성북동 현정옥 여사의 집에서 나온 정훈은 대문 앞에 있는 롤스로이스에 올랐다.

현수 아저씨가 운전을 하고 옆에는 은수가 앉아 있었다.

“도려언님 오셨습니까아?”

은수가 장난을 쳤다.

“네에엥.”

정훈도 장난을 받아 줬다.

“스칼렛은?”

“오늘은 어학당 뒤풀이 갔어.”

“안 돌아간대? 분명히 1주일 가이드 해 달라고 한 거 같은데…….”

“몰라, 1년짜리 장기 비자 발급받았던데.”

‘정말, 대단하다 은수야.’

정훈은 속으로만 말했다.

1주일 있겠다는 여인을 1년을 있게 만드는 얼굴.

정말 은수는 신이 내린 얼굴이었다.

“출발할까요?”

곽현수가 묻자 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창 밖으로 밤이 오고 있었다.

오늘은 아주 길고 긴 밤이 될 것 이다.

***

이만식은 일송의 전 조직원을 인천 근처에 있는 폐교로 불렀다.

시큐리티 직원, 적성의 조직원, 그리고 자신에게 매수된 특수부대 설악단의 조직원까지.

그렇게 모은 사람이 3백 명이다.

이번에 쓸어버리지 못하면 일송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그리고 그건 자신의 인생도 쫑난다는 의미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오지 않는 폐교 운동장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모두 밤이 깊어지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들 모두에게 떼어 낼 수 없는 긴장이 베어 있었다.

이만식은 눈을 감고 과거를 추억했다.

자신의 옆구리에 앉은 여인들의 향수가 코끝에 느껴졌다.

시끌벅적한 음악 소리.

입안을 가득 채운 값비싼 양주와

손안에 느껴진 여인들의 살결.

두 눈을 번쩍 든 이만식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다시 찾아야 한다.

돈과 권력을 찾아야 화려했던 과거를 재현할 수 있다.

이만식 운동장 시상대 올라갔다.

그를 본 조직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300명의 젊은 사내들이 그를 쳐다본다.

300명의 눈에는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이 타오르고 있다.

이만식이 크게 외쳤다.

“가자!”

-와아아아

우렁찬 함성과 함께 준비된 차에 올랐다.

오늘 그들도 생과 사의 경계에 서 있다.

모두 무사히 돌아오길 희망했다.

그리고 앞으로 그들에게 주어질 탐욕스런 부귀영화를 꿈꾸고 있었다.

***

정훈은 인천의 외곽에 있는 빈 창고에 도착했다.

텅 빈 공간이지만 플래카드부터 화려한 조명, 그리고 테이블까지 창립 기념행사를 해도 될 만큼 잘 갖춰졌다.

수백 명이 들어갈 만큼 넓은 공간이었다.

그리고 입구 반대쪽은 바다라 풍광이 아주 좋았다.

“아깝네요. 이것들을 다 부수려니.”

“네.”

“그 놈들이 이 바다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자신에겐 아름다운 이 바다가 그들에겐 검은 괴물처럼 보일지도.

하지만 선택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져야 했다.

파괴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자는 결코 살아 나갈 수 없다.

“교화 가능성도 살릴 가치도 없는 놈들입니다. 불구로 만들어 다시는 힘을 쓰지 못하게 하세요.”

정훈의 말을 들은 박창수와 곽현수는 움찔했다.

최소 백 명 이상의 놈들이 몰려올 텐데…….

그의 눈빛은 진짜 살육을 목표로 하는 것 같았다.

***

텅 빈 창고 주변에 검은 어둠이 깔렸다.

9시가 넘은 시간, 창고의 불은 환하게 켜졌고 클래식 음악이 은은하게 울리고 있었다.

창립 기념행사는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낡은 창고 문을 향해 버스가 그대로 돌진했다.

-꽝

속도를 줄이지 않고 행사장 끝까지 밀고 들어갔다.

멈춘 버스에서 사람들이 우루루 내렸고 바깥에서도 각목과 쇠파이프를 든 무리들이 창고 안으로 물밀듯이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퍽

불이 꺼졌다.

버스의 헤드라이트도.

칠흑 같은 어둠이 그들을 덮쳤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함성과 함께 버스에서 내린 그들을 맞이한 것은 짙은 어둠이었다.

칠흑 같은 공포가 그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젠장 오늘 밤은 달도 없는 그믐이었다.’

이만식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의 손에 들린 긴 칼을 다시 한번 꽉 쥐었다.

하지만 손끝의 미세한 떨림을 멈출 수 없었다.

살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공격이 시작되었다.

야간 투시경을 쓴 곽현수의 일행 몇 명이 적들을 도륙했다.

그것이 다였다.

곽현수 일행은 무리 밖으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어둠의 공포에 허우적대던 자들은 앞에 선 적들을 향해 무자비한 공격을 서슴치 않았다. 피아를 확인하지 않았다.

비명에 놀란 그들은 어둠 속에서 적들을 도륙했다.

자신 앞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적이었다.

그리고 공포에 짓눌린 자는 더욱 잔인해졌다.

칼은 평소보다 더 길게 베고, 깊게 파고들었다.

신음과 비명이 난무하며 뒤섞인 창고.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소리가 줄어들었다.

싸움, 아니 도륙이 끝나고 있었다.

이만식은 승리를 확신했다.

자신을 공격한 적들의 숨통을 확실히 끊었다.

두 번 세 번 확인하며 심장에 비수를 쑤셔 넣었다.

천장에 있던 조명이 환하게 켜졌다.

모두들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조금씩 시야가 돌아왔을 때 그의 눈앞에는 쓰러진 부하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적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들도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자도,

이미 심장이 멈춘 자들도 모두 자신이 데려온 부하들뿐이었다.

***

드럼통을 준비했다.

시멘트도 준비했다.

처음에는 그들을 모두 도륙 내고 싶었다.

그들은 일반적인 조폭과는 차원이 다르다.

잔인하기 이를 때 없는 자들이었다.

자신이 한 일이라고 작은 불꽃 하나를 던진 것뿐이다.

정훈은 야간 투시경으로 야만적인 살육전을 보았다.

그들은 공포에 짓눌려 서로를 찌르고 베었다.

어둠 속에서 살려 달라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숨통을 끊기 바빴다.

그런 놈들이다.

살려 달라고 하면 더욱 거칠게 짓밟는 족속들.

“어떻게 할까요? 도련님.”

박창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들을 측은히 보던 정훈이 입을 열었다.

“손이든 발이든 잘라 버리고 불구로 만들어 버리세요. 다시는 힘을 쓰지 못하도록. 그리고 행동대장급은 따로 모으세요.”

“알겠습니다.”

박창수가 손짓하자 수십 명의 부하들이 달려들었다.

비명만이 창고를 가득 메웠다.

***

이만식을 제압한 곽현수는 그의 아킬레스건을 끊었다.

다리를 부여잡고 뒹구는 그의 목을 짓눌렀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무슨 말이야?”

“우리 정보를 판 게 누구야?”

“네가 멍청해서 노출된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들은 이미 우리가 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완벽한 함정이었어. 누구야?”

“누구라고 생각해? 살아남은 건 너와 나 둘뿐인데.”

“후우 말하면 멈춘다. 이빨 꽉 깨물어라.”

곽현수는 그의 신체를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기세 좋게 버티던 이만식은 고통에 곧바로 굴복했다.

“살려 줘, 말할게.”

“늦었어, 이미. 안다고 해도 동료들은 살아 돌아오지 않아. 너는 네 동료들을 팔아먹고도 잠이 왔구나?”

“으아아악, 으아악!”

“국방부 장관 천성한이야, 장관이 직접 명령했어.”

“뭐?”

곽현수의 눈빛이 심하게 떨렸다.

“거짓말하지 마.”

“으아아악 으아악! 증거가 있어.”

이만식을 더욱 거칠게 짓이겼다.

죽어간 동료들의 빚을 갚아야 했다.

“누가 그랬어? 천성한 장관이 그럴 리 없어.”

“으아아아악 그자가 분명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만식은 의식을 잃었다.

그럼에도 곽현수는 폭주했다.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어.”

“그만하세요. 이제!”

“안 돼, 배후를 밝혀야 돼.”

“그만요.”

이성을 상실한 곽현수가 정훈을 공격하려 했다.

그의 단검이 정훈의 복부를 향했다.

정훈이 그의 칼을 두 손으로 잡았다.

“정신 차려요 아저씨!”

-퍽

박창수가 이성을 잃은 곽현수의 뒷통수를 목검으로 후려쳤다.

곽현수는 그대로 기절했고 정훈의 오른손에 깊은 상처가 새겨졌다.

“괜찮습니까? 도련님?”

“별것 아닙니다. 바닷가에 드럼통이랑 콘크리트 준비 해주세요. 아까 말했던 행동대장급들 다 데려오고요. 정리를 해야겠어요.”

박창수가 흠칫 놀랐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까 봤죠? 어둠 속에서 살려 달라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죽이는 걸……. 자비가 없는 놈에게 자비란 없습니다.”

정훈은 건조하게 대답했다.

정훈의 말을 들은 박창수가 잠시 생각한 다음 물었다.

“도련님, 신화 그룹을 이끄실 겁니까?”

“물론이죠.”

“그럼,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피를 보는 일은 저나, 현수 씨에게 맡기십시오. 더럽고 어두운 일은 우리가 정리하겠습니다.”

“아니요. 더러운 일이지만 피를 묻히는 건 제가 직접 하는 게 좋습니다.”

“도련님, 모두 도련님의 부하지만 그 전에 이미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도련님의 그늘 아래 있습니다.

도련님이 우리의 기둥이자 빛입니다.

그냥 그곳에서 서서 빛나고 계시면 됩니다.

손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정훈은 박창수의 눈을 보았다.

결연한 의지가 보았다.

“그래도…….”

“가자, 정훈아”

은수가 정훈을 잡았다.

“다혜 누나가 너를 지키라고 했어.”

“다혜가…….”

고개를 돌려 은수를 보았다.

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수 씨, 도련님 데리고 나가세요. 여긴 저희가 정리할 테니.”

박창수가 비장한 목소리로 은수에게 부탁했다.

은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훈이 그들을 본 다음 무거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부탁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도련님.”

은수가 정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모두 너를 보고 있어. 넌 네 자리를 지켜. 손에 피 묻히는 일은 우리가 할 테니.”

“그래. 은수야. 부탁할게.”

혼자 남은 정훈은 하늘을 보았다.

자신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히는 사람들.

그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건 최대한 빨리 천지회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개를 들어 시꺼먼 하늘을 보았다.

밤하늘엔 고독한 별빛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

“검사님, 영장 청구하지 말라는데요?”

“어떤 새끼가요?”

“부장검사님이요. 그리고 차장검사님도 영장 치려면 사표 쓰고 나가랍니다.”

“전 이해가 안됩니다. 영장 청구를 가지고 이 난리를 칩니까? 니미, 쓰러져가는 일송도 이렇게 힘이 쎄다니. 제길.”

“그게……. 아시지 않습니까? 일송 놈들이 워낙 장학생이 많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송철호도 죽고 이제 곧 쓰러질 회사 뭐 그리 겁이 많은지…….”

김수호는 자신의 의자에 털석 주저앉았다.

전화벨이 울렸다.

“윤정훈입니다.”

“네, 도련님”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비록 악연으로 시작했지만 그를 스타로 만들어 줄 최고의 스폰서.

이미 충성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의 의아한 시선을 의식한 그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말씀하십시오.”

“오늘 창립 기념회에 불청객이 좀 왔습니다. 잡아가시면 실적에 작게 나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그리고 일송그룹 영장 치려는데 위에서 막습니다.”

“부장이랑 차장이요?”

“네.”

“그럼 제가 좋은 정보를 보내 드리죠. 걸리적거리는 건 치워야죠.”

“감사합니다. 도련님.”

얼마 후 김수호의 메일로 부장과 차장과 관련된 정보가 무더기로 들어왔다.

초임 검사 시설부터 지난해까지 받은 금품, 성접대, 부당한 이권 개입 등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박 수사관님. 오늘 영장전담 판사님 누굽니까?”

“추 판사님입니다.”

“잘됐네요. 압수수색영장이랑 구속영장 동시에 칩니다.”

“누구 말입니까?”

“누구긴요. 돈 받아 처먹은 부장이랑 차장이죠.”

“네? 어느 회사 부장, 차장입니까?”

“어느 회사는 우리 회사지.”

“네?”

박 수사관의 동공이 지진난 듯 세차게 흔들렸다.

옆에 있던 최 수사관은 들고 있던 컵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모두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생각도 하지 싫었다.

***

“김수호입니다. 부장님.”

“들어와, 일송 안 칠 거지?”

“네, 제가 부장님 말 들어야죠.”

“그래 잘했어, 어휴 내 새끼. 가서 술 한잔해.”

윤 부장이 품 안에서 법인카드를 꺼내 그에게 줬다.

“감사합니다. 뇌물 공여죄 추가 하겠습니다.”

“뭐라고?”

김수호는 품 안에 있던 서류를 꺼내 그에게 보여 줬다.

“윤시중, 당신을 뇌물 수수, 직권 남용으로 구속합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차장검사 한동혁이 들어왔다.

손을 번쩍 든 그는 다짜고짜 김수호 검사의 뺨을 후려쳤다.

-짝

“이 미친놈이 뭐 하는 거야!”

제대로 뺨을 맞은 김수호 검사가 차장검사를 보고 슬쩍 웃었다.

“후, 얼얼합니다. 선배님.”

“선배님? 근본도 없는 새끼가 어디서 감히!”

한동혁의 손이 다시 올라갔다.

“박 수사관님, 이 새끼 수갑 채워요.”

“네?”

그 말을 들은 박 수사관의 두 눈이 커졌고

한동혁이 얼굴이 시뻘겋게 타올랐다.

“너, 이 병신새끼가!”

다시 손이 올라갔지만, 박 수사관에 의해 제지되었다.

“자, 여기 차장님 것도 있습니다. 구속영장. 아 폭행죄는…….”

김수호의 주먹이 차장검사의 턱주가리를 날렸다.

“이걸로 대신하겠습니다.”

한바탕 소란을 끝내고 부장검사와 차장검사를 구속시킨 김수호.

그의 이름이 다음 날 신문 1면을 장식했다.

***

스타 검사가 된 김수호 검사, 내부를 향해 시원하게 총질을 한 그를 동료 검사들은 비아냥대고 따돌렸다.

하지만 국민들의 인기는 유명 연예인 못지않았다.

재판이 없어도 형량이 눈에 보일만큼 그가 가진 증거는 확실했다.

검찰 총장이 사과하며 사퇴했고 법무부 장관도 곧 사퇴할 분위기였다.

윤정훈의 전화를 받은 김수호는 강남에 있는 오피스텔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폭죽이 터지며 그를 격렬하게 환영했다.

머리에 고깔을 쓴 강상철이 그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우리 검사님 대단하십니다. 대한민국 검사 최초로 부장과 차장의 목을 친 슬레이어.”

“다 도련님이 준 자료 덕분이지.”

김수호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윤정훈을 찾았다.

“저기 계십니다.”

상석에 앉아 있는 그의 앞으로 간 김수호는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도련님 덕분에 진짜 검사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아닙니다. 제 덕은요. 다 김 프로 님이 용기를 낸 덕분이죠. 하여튼 큰일 했어요”

정훈이 일어나 그에게 술을 따랐다.

가득 찬 술을 한잔 마신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잔챙이 말고 두목 잡아야죠.”

“네? 두목 말입니까?”

김수호는 몰아치는 윤정훈의 복수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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