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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90화 (90/200)

#090화

고아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높은 담장이었다.

차라리 교도소 담장이 어울렸다.

그 높은 담장을 뛰어넘은 세 사람은 주변의 시선을 살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저녁 시간 즈음이라서 분명히 아이들이 뛰어놀 시간이었다.

앞서 있던 은수가 손짓했다.

다가가 보니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이 있었다.

은수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당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 걸까?

눈빛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거대한 공간 안에는 수십 명의 아이가 모두 의자에 앉아 있었다.

차분하게 쥐 죽은 듯이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누구도 허튼짓을 하지 않았다.

모두 자신 앞에 놓은 책을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시끄럽게 뛰어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폭력을 동반한 철저한 훈육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가능한 상태였다.

‘미친놈들이 아이들을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정훈은 치가 떨렸다.

은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미친.”

은수가 짧게 지껄였다.

그리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곽현수가 은수를 막았다.

“아직 아니야.”

은수는 입술을 깨물며 뒤로 물러섰다.

세 사람은 건물 안 깊숙한 곳으로 더 들어갔다.

원장실로 보이는 곳에도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었다.

건물의 막다른 구석을 살펴볼 때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십여 명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곽현수와 은수가 앞으로 나섰다.

“조심해! 특수부대 출신들이야!”

곽현수는 그들의 날카로운 공격을 피하며 외쳤다.

생각보다 강한 공격에 두 사람은 조금씩 뒤로 밀렸다.

피할 곳을 찾던 정훈의 눈에 열린 문이 보였다.

“피해요. 저쪽으로.”

정훈이 외치자 은수와 곽현수는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정훈이 말한 곳으로 황급히 몸을 피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 나타났다.

주변을 본 곽현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함정에 빠진 건가?”

곽현수와 은수의 표정에는 불안이 가득했다.

하지만 정훈은 고개 숙인 채 무심히 시계를 확인했다.

“함정에 빠진 건 아니에요.”

정훈이 그들을 안심시켰다.

“이제 곧 올 때가 된 것 같군요. 그럼 이제 저도 참여해 볼까요?”

정훈이 몸을 풀었다.

“제대로?”

“네, 저도 실력 발휘해야죠.”

곽현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 명이 더 들어온다고 크게 달라질 것 없다고 생각한 듯 보였다.

착각이었다.

두 사람의 힘과 세 사람의 힘은 질적으로 달랐다.

아니 윤정훈의 힘이 모두를 압도했다.

정훈은 믿기 어려운 스피드와 파워로 적들을 순식간에 제압했다.

정훈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잘 훈련된 전직 군인들이 한 명씩 나가떨어졌다.

자비가 없는 그의 손길에 건장한 남자의 살갗이 터지고 이빨이 나갔다.

기세등등했던 적들은 모두 바닥에 누워 신음만 내고 있었다.

곽현수는 쓰러진 그들에게 갔다.

살려 달라는 비명이 퍼졌다.

하지만 그 또한 자비가 없었다.

남자들의 팔, 다리에 있는 4개의 관절이 모두 반대 방향으로 완전히 꺾였다.

그 모습을 본 정훈의 팔에 잠깐 소름이 돋았다.

“앞으로는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곽현수는 선언하듯이 조용히 말했다.

다시는 힘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양팔과 두 다리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때였다.

더 많은 수의 적들과 함께 드디어 김현철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훈이 왔구나. 은수도 왔네.”

그의 눈은 풀려 있었다.

약에 취해 있는 것 같았다.

정훈은 고개를 돌려 은수를 보았다.

손끝을 떨며 이마에 땀이 가득했다.

강렬한 눈빛에서 은수의 복수심이 느껴졌다.

복수와 공포가 뒤섞여 있는 은수를 진정시켜야 했다.

“은수야! 정은수!”

“어, 그래.”

은수는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진정해. 진정.”

“그래. 진정해야지. 하지만 저 새끼는 꼭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거야.”

김현철, 전 희망보육원 원장.

할머니를 만난 그날 곧바로 자취를 감췄다.

정훈은 그를 추적하지도 찾지도 않았다.

그랬다면 더 깊이 숨었을 것이다.

오늘 정훈과 은수, 그리고 곽현수까지 세 명만 여기까지 들어온 것도 김현철을 유인하기 위해서였다.

밖에 있는 박창수의 조직원들과 함께 쳐들어왔으면 분명 어딘가로 몸을 숨겼을 것이다.

세 명밖에 없는 상황.

우리를 얕본 김현철은 감추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정훈은 옆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은수를 보았다.

은수는 그에게 갚아야 할 빚이 넘쳤다.

이글거리는 눈빛에는 전에 없던 살기가 가득했다.

고속버스 짐칸의 가방 속에서 발견된 은수.

어둠은 그에게 참을 수 없는 공포였을 것이다.

희망 보육원 김현철은 은수의 트라우마를 집요하게 헤집었다.

어린 시절의 그 경험 때문에 생긴 폐소 공포증.

김현철은 일부러 은수를 캐비닛과 장롱에 가뒀다.

경기하듯 싫어했던 은수를 그 좁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은수는 원장에게 학대를 받고 온 날이면 어김없이 지독한 악몽에 시달렸다.

악몽과 공포를 감추기 위해서 은수는 언제나 더없이 해맑았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백치처럼.

제법 덩치가 커진 다음에는 그만두었다.

아마 정훈이 그의 손목을 강하게 잡아챈 그 날 이후였다.

“씨발, 그만하시죠.”

정훈은 미리 준비한 칼을 꼭 쥐었다.

그의 광기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정훈의 살기에 놀라서인지 그는 싱겁게도 은수를 풀어 주었다.

정훈은 캐비닛에서 눈물범벅이 된 채 기절한 은수를 업고 원장실을 나왔다.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는 그는 더 이상 은수를 괴롭히지 않았다.

회상에 잠겨 있던 정훈의 귀에 김현철의 목소리가 들렸다.

“후후후, 정훈아, 은수야!”

“그 목소리 들으니 기분이 더러워지네.”

서늘한 목소리로 은수가 대꾸했다.

흥분된 상태였는데 다행히 진정된 것 같았다.

“흐흐흐, 은수야, 원장 선생님이 오랜만에 캐비닛에 넣어 줄게. 아니, 거기보다 가방이 더 좋으려나?”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하지만 확실한 건 오늘 당신은 가방에 들어갈 거야. 한번 느껴 봐. 얼마나 재미있는지.”

은수가 그를 쏘아보았다.

“글쎄, 여기가 너희들의 무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고작 세 명이 뭘 할 수 있겠어?”

김현철은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변하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꽝’하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고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도련님, 어디 계십니까?”

박창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현철을 지키던 사내들이 반격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순식간에 김현철의 뒤까지 밀고 왔다.

앞뒤로 포위된 김현철은 두 눈을 감았다.

그는 의외로 쉽게 체념했다.

정훈은 김현철을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도 공포도 없었다.

“마약인가? 그래도 희망 보육원에서는 이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미 몇 달 남지 않은 목숨이다. 온몸에 암세포가 가득해. 벌이지 후후후.”

“벌이라니?”

김현철이 고개를 돌려 곽현수를 보았다.

“자네가 곽현수지?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군. 용케 살아 돌아왔어. 차라리 다 죽었으면 마음이 훨씬 편했을 텐데. 사실 나도 그 작전에 참여했어야 했지. 그런데 우연히 알게 되었어.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작전이었다는걸. 천성한 장관은 침묵을 강요했고 나는 굴복했지. 나 대신 내가 가장 친했던 동료가 들어갔어. 그날 이후로 모든 게 재미없어졌어.”

“그런다고 아이들을 학대한 게 용서되는 건 아니야.”

그는 점점 더 약에 깊게 취했다.

자신의 상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였다.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말만 지껄였다.

“하루하루 의미 없는 삶에 하인선, 그녀는 여신이었어. 하지만 너무 고귀해서 가까이 갈 수 없었지. 정말 멀리서 잠깐 봤는데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사랑에 빠졌지.”

정훈은 고개를 돌려 은수를 보았다.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녀석도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희망 보육원을 떠나면서 오늘을 생각했어. 네가 올 줄 알고 있었지. 그리고 은수도. 나는 은수를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어. 내가 사랑했던 하인선이 생각나거든. 그래서 더욱 집요하게 괴롭혔지. 그러면 내가 꼭 그녀를 가진 것 같거든. 흐흐흐!”

은수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몸을 날려 그의 얼굴 한가운데 주먹을 강하게 꽂았다.

약에 취한 그는 피하지 못했다.

얼굴을 정통으로 맞은 그가 벽에 처박혔다.

입에서는 검붉은 피와 이빨 몇 개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죽어! 이 새끼야.”

은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손에 쥘 만한 것을 찾았다.

박창수가 은수 곁으로 가 그의 목검을 은수에게 주었다.

-퍽, 퍽, 퍽

광기에 휩싸인 은수는 김현철의 몸 여기저기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개 패듯이 팼다.

김현철의 몸에서 튀어 오른 피로 주변이 붉어졌다.

은수는 벌레처럼 꿈틀대기만 하는 그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이글거리는 눈빛.

은수의 복수는 아직 끝이 아니었다.

정훈은 큰 가방을 은수에게 던졌다.

복수란 손을 더럽히는 것이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그래야 더러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훈은 머뭇거리는 듯한 은수를 보았다.

“내가 할까?”

“아니. 내가 할게. 이놈도 당해 봐야 해.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은수는 꿈틀대는 그를 구겨서 가방 안에 넣었다.

그리고 박창수에게 말했다.

“저 부탁 하나만 할게요. 내일 저녁에 경찰서 앞에 던져 주세요.”

정훈은 박창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죽지 않도록 신경 써 주세요.”

정훈은 박창수에게 당부한 다음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는 아이들이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시끄럽게 뛰어야 할 아이들이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

정훈은 지난 시절이 생각났다.

눈시울이 붉어지며 울컥했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자신에겐 저 아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빛을 비출 능력도 힘도 있었다.

자신의 뒤에서 정리하고 있던 박창수를 불렀다.

“저 아이들 전부 중부시에 있는 희망 보육원으로 옮겨 주세요.”

“알겠습니다. 아이들이 놀라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여긴 저희가 정리하겠습니다. 그만 들어가시죠.”

“네, 그럼 부탁합니다.”

정훈은 은수와 함께 차를 향해 걸었다.

은수를 보았다.

“괜찮아?”

“응, 속이 후련해. 오래전 그 기억도 같이 가방에 집어넣었어. 내 병이 치료될지 아직 모르지만 정말 후련해. 고마워 정훈아.”

정훈은 자신의 손으로 다가오는 은수의 손에 화들짝 놀랐다.

‘미친 건가?’

“좆 까 새끼야. 어디 재수 없게 손을 만지려고 해. 꺼져 새끼야.”

정훈이 거칠게 거부했다.

“야 이 씨…….”

-퍽

무안했던 은수가 정훈의 엉덩이를 세차게 후려 찼다.

옛날 그 자리였다.

엉덩이 조금 밑.

조그마한 진동에도 섬세하게 반응하는 곳에 치명적인 진동이 전해졌다.

‘죽인다, 저 새끼.’

속으로 외쳤지만, 생각과 다르게 이미 무릎이, 머리가 바닥에 닿아 있었다.

어두운 하늘이 갑자기 캄캄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은수는 격렬했던 감정 소모 때문에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정훈은 곽현수에게 물었다.

“아저씨, 하인선 씨가 도대체 누구예요?”

“그게, 아주 잠깐 나와 엄청난 인기를 끌다가 사라진 배우예요. 은수 때문이죠?”

“네,”

“정말 닮았어요.”

곽현수는 백미러로 은수의 힐긋거리며 상태를 확인했다.

“자고 있어요. 아무 이야기도 못 들을 거예요.”

“제가 혹시나 해서 조사했는데……. 흔적이 잡히지 않아요. 차영미 씨랑 천진혁 씨 통해도 아무것도 안 나와요.”

“그럴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요. 그때도 되게 신비로웠는데 흔적이 안 나오는 게 너무 이상해요.”

“정말, 그분이랑 은수가 관련 있을까요?”

“없을 겁니다. 그런데 확실한 건 하인선 씨에게 비밀이 많다는 거죠.”

“흠……. 아저씨 말대로 은수랑 아무 관련 없겠죠. 그런데 정말 만약이지만 저는 그분과 은수가 좀 관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궁금한 게 있어서요.”

정훈은 다시 한번 은수를 슬쩍 보며 상태를 확인했다.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은수는 고속버스 짐칸 속 가방에서 발견됐어요. 누가 그랬을까요? 은수를 죽이려고 했던 걸까요? 아니면 살리려고 했던 걸까요? 도무지 모르겠어요.”

정훈은 답할 수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하지만 그가 찾을 수 있는 답이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짙은 어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 희미한 불빛만 보였다.

“아마 살리고 싶어서일 겁니다.”

“네? 살리고 싶어서요? 그래서 조그마한 아이를 가방에 넣어서 짐칸에……. 전 죽이려고 그랬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만큼 절박하고 다급한 사정이 있었겠죠. 아마 은수의 생명이 위험한 순간이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 방법밖에 없었겠죠. 저도 그랬습니다. 옛날 아프리카 작전에서 제 전우가 저를 살리려고 심장 옆에 총을 쏘았어요. 이미 포위된 상황이었거든요. 그 친구는 전투 중 사망하고……. 적들은 저도 죽은 줄 알고 지나갔죠. 저를 살리려고 그랬던 것처럼 은수도 그런 상황이었을 겁니다.”

“저로선 이해할 수 없지만…….”

정훈은 긴 한숨을 쉰 다음 말을 이었다.

“아저씨, 그 하인선이란 분, 계속 추적해 주세요. 아무래도 찝찝해요.”

“네, 알겠습니다.”

서울로 가는 길은 조용했지만 매듭짓지 못한 게 많아 아쉬움이 가득 남아 있었다.

다음 날 박창수는 정훈은 지시대로 움직였다. 하루 동안 가방 속에 들어 있던 김현철을 공주 경찰서 앞에 던졌다.

가방에 친절하게 표시했다.

‘마약 중독자 택배.’

택배를 받은 경찰은 당황했다.

꿈틀대며 살려 달라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가방을 멍하니 보기만 했다.

“살려 줘, 제발 열어 줘. 너무 무서워. 으으으.”

열어 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냄새가 지독했다.

어쩔 수 없이 가방을 연 경찰은 코를 막았다.

온갖 배설물로 더럽혀진 남자가 있었다.

눈을 꼭 감은 그는 묶인 두 손을 비벼대며 살라 달라고 쉼 없이 중얼거렸다.

***

빗자루를 든 강상철은 구석구석을 쓸었다.

그가 빗자루를 움직일 때마다 먼지가 솟아올랐다.

“사장님, 제가 할게요. 왜 일을 더 만드세요?”

비질하던 강상철이 허리를 폈을 때 방 부장이 자신을 빤히 보고 있었다.

입술 한쪽이 올라가 있었다.

“방 과장, 지금 나 비웃는 거지? 맞지?”

“비웃는 건 아니고. 저번에 오셔서 다 보고 갔어요. 혀를 차고 가시던데요?”

“그게 무슨 말이야? 누가 와서 뭘 봤다고?”

“도련님이라고 해야 하나 회장님이라고 해야 하나? 그 차갑고 도도하게 잘생긴 그분요.”

“젠장, 그걸 왜 말을 안 해!”

강상철이 크게 소리쳤다.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방 부장은 더 크게 소리쳤다.

그녀의 기세에 강상철의 몸이 뒤로 살짝 밀렸다.

오싹한 전율.

상대를 단번에 제압하는 대단한 살기였다.

역시 40대 노처녀의 히스테리는 대단했다.

‘조심해야겠군.’

“사장님 브리핑 자료 다 숙지 하셨죠?”

“물론이지. 나만 믿으라고.”

강상철은 어깨를 으쓱했다.

온몸에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자료를 다시 한번 보았다.

몇 페이지를 넘긴 강상철은 순간 자신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방 부장의 도움도 있었지만 감개무량했다.

뒷골목에서 사채업이나 하던 자신이 금융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대부업체 사장이 될 줄이야.

스스로 급격히 성장한 게 느껴졌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오늘도 냄새나는 낡은 사무실에서 짜장면이나 먹고 있을 자신.

지금은 번듯한 정장에 명품 넥타이를 매고 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갱년기인가? 너무 감상적이야. 그런데 도련님 왜 안 오시지?’

촉촉해진 눈가를 닦고 있을 때였다.

사무실로 윤정훈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본 도련님은 몸에 빛이 나고 있는 것 같았다.

20대 초반의 나이.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아 20위 안의 재벌을 이룩한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옆에서 있으면 모두 변한다.

강상철 자신은 지적으로 성장했고, 술친구 김수호 검사는 윤리적으로 성장했다.

그는 그렇게 자신과 함께 모두를 키우고 있었다.

강상철은 화려하게 빛나는 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는 빛이 나야 하는 존재였다.

인사를 하지 않고 넋을 놓고 정훈을 보던 강상철.

방 부장이 인사했다.

“흠흠, 안녕하세요. 회장님.”

“나오셨습니까? 도련님!”

정훈은 웃음으로 인사한 다음 소파에 앉았다.

“오늘 제가 시간이 없어요. 바로 시작하시죠.”

강상철은 정훈 앞에 섰다.

살짝 긴장한 듯 보이는 그가 입을 열었다.

매력적인 저축 은행의 이름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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