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91화 (91/200)

#091화

당당하고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였다.

논리적으로 사람을 설득하고 있었다.

강상철은 어느새 새사람이 되어 있었다.

솔로몬 저축 은행 인수를 주장하던 강상철의 말을 끊고 정훈이 물었다.

“솔로몬 저축 은행이 지금 가장 매력적인 회사입니까?”

“네. 가장 매력적이고 제일 성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이유는요?”

“지금 은행의 주인인 황석의 경영 능력이 탁월합니다. 그게 제일 중요한 요소입니다. 누가 인수하느냐에 따라 회사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도련님이 설립한 신화의 많은 계열사들이 모두 승승장구하는 거랑 같은 이치입니다.”

정훈은 그를 보았다.

‘오늘 아부 한번 멋지게 하네. 그런데 솔로몬 저축 은행은 결국 파산하는데……. 앞으로 파산할 회사를 사야 할까?’

정훈은 고민했다.

솔로몬 저축 은행은 2011년 저축 은행 부실 사태 때 다른 은행처럼 파산한다.

아직 8년이나 남았다.

그 사이 파산 위험에 대비하면 문제없다고 결론 내렸다.

어쩌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위기 뒤에는 기회가 오는 법이다.

정훈은 강상철이 극찬한 황석 행장도 한번 만나 보고 싶었다.

“황석 행장을 한번 만나 보고 싶은데……. 강상철 사장이 먼저 만나 볼래요?

“예, 도련님. 그건 또 제가 전문입니다.”

자신의 주특기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오자 강상철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사람을 사귀는 것, 그것도 그의 능력이자 특기였다.

“그럼 먼저 만나 보세요”

“네, 만난 후에 보고드리겠습니다.”

“참, 브리핑 준비는 얼마나 한 겁니까? 한 달?”

“일주일 밤새워서 했습니다. 도련님 덕분에 많이 배우는 중입니다.”

“많이 달라졌네요. 잘했습니다.”

강상철의 눈이 붉어졌다.

‘눈병인가?’

정훈은 일어서서 그의 앞으로 갔다.

“혼자서는 어려웠을 거고 이걸로 도와준 직원들이랑 밥이나 하세요.”

품에서 봉투를 꺼내 그에게 전달했다.

“이제 정말 신화 대부의 사장처럼 보이네요. 직원들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합니다. 명동 뒷골목 사채꾼이 아니에요. 명동을 주무르는 금융 전문가로 거듭나야 합니다.”

“네, 회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강상철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바닥에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지고 있었다.

***

강상철은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 솔로몬 저축 은행 황석 행장과 몇 차례 술자리를 가졌다.

신화 엠파이어 홀딩스에서 관심을 가진다는 말에 호기심을 보였다고 한다.

정훈은 황석 회장을 만나서 담판을 짓기 전에 할머니께 보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계신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

“할머니, 접니다.”

“응, 들어와.”

안으로 들어가자 만호 아저씨도 계셨다.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인수할 저축 은행 정했습니다. 솔로몬 저축 은행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솔로몬? 황석?”

“네, 평판이 나쁘지는 않더라고요. 신화대부 강상철 사장 말로는 샤프하고 냉정하다고 합니다. 조금 얼음 같다는데요.”

“돈 만지는 데 소질이 있는 놈이구만. 돈 만지는 놈은 차가워야 하지”

“네, 어르신. 맞습니다.”

만호 아저씨가 할머니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럼 만나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렴. 그리고 이 할미가 조만간에 큰 선물을 줄 테니 기대하거라!”

“네? 무슨 선물요?”

“서프라이즈 선물이다. 대신 너무 기대하지 마.”

“네. 아무리 그래도 현금왕이신 할머니 선물은 기대가 되네요.”

어슴푸레한 노을이 질 때쯤 정훈은 황석 회장을 만나기 위해 여의도를 향해 출발했다.

예약한 일식집으로 들어가자 강상철이 대기하고 있었다.

“오셨습니다. 회장님”

허리를 깊숙이 숙이자 주변에서 두려운 눈으로 쳐다봤다.

“흠, 밖에서 그러니 꼭 조폭 같군요. 밖에서는 가급적이면…….”

“죄송합니다. 회장님”

강상철이 허리를 더 숙이자 주변 사람들은 더 의심스러운 눈으로 정훈을 보았다.

‘젠장, 빨리 들어가야지.’

“들어가죠. 보는 눈이 많네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날카로운 눈빛의 남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체격은 크지 않았지만, 몸은 단단해 보였다.

짧은 머리와 금테 안경이 그의 샤프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일어서서 정훈을 향해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황석 솔로몬 행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신화 엠파이어 윤정훈입니다.”

정훈은 일부러 자신의 직책을 강조했다.

자신의 앳된 얼굴에 권위를 부여하는 괜찮은 방법이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직책의 권위에 무릎 꿇었다.

자신이 쓴 왕관의 무게감에 사람들은 압도되었다.

테이블 위에는 기본 안주만 있었다.

정훈은 주전자를 들고 그에게 술을 권했다.

화들짝 놀라는 그.

“제가 먼저 따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최소한 나이보다는 직책을 중시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첫 단계는 합격이었다.

술잔을 비운 그는 정훈에게 술을 따랐다. 정훈도 한 번에 비웠다.

“솔로몬 저축 은행 얼마 전에 인수하셨죠? 인수에 특별한 목적이 있습니까?”

정훈이 질문하자 오히려 황석이 반문했다.

“회장님은 왜 저축 은행을 인수하길 원하십니까?”

“서민들 때문입니다.”

황석이 멈칫하면서 정훈을 보았다.

“대기업 회장님 입에서 나올 말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한때는 저도 고아였습니다. 극빈층이었기에 아래 동네 사람들의 삶과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신화 대부 때문에 살짝 걱정했는데, 서민들을 위해서 저축 은행을 인수한다…….”

황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정훈에게 물었다.

“혹시 신화 대부도 그런 이유입니까? 제가 알아보니 다른 대부업체와 결이 다르더군요. 악독한 추심이 없고 실직해 연체할 경우 직업교육 받으면 추심도 면제해 주고…….”

“사실입니다. 서민들은 급하게 돈 빌리기 정말 어렵습니다. 그리고 채무 상환도 곤란할 때가 많죠. 그 사람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후, 그런데도 영업 이익률이 업계 1위라니, 정말 믿을 수 없습니다.”

“…….”

정훈은 차마 부끄러워서 말하지 더 말하지 못했다.

자기 입으로 말해 봤자 자화자찬이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입이 간지러웠던 강상철이 잽싸게 끼어 들었다.

“우리 회장님이 차갑게 보여도 정이 많고 속도 깊습니다. 아마 같이 일하면 금방 알 겁니다.”

“네,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직원들 복지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걸로 유명하시던데요.”

“그럼요. 직원들 복지는 기본이고 경조사까지 직접 챙깁니다. 차갑게 잘생겼지만, 엄청 섬세하고 마음이 따뜻한 분입니다. 경영 전략도 엄청 뛰어납니다. 업계 1위도 회장님 덕분이죠. 하하하!”

정훈은 얼굴이 타는 것 같았다.

‘이 양반이 왜 갑자기 이러지.’

낯 뜨거웠다.

화제를 옮기고 싶었다.

“매각한다면 가격은 어느 정도 예상하십니까?”

황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빈 술잔을 들어 술을 청했다.

정훈이 술잔을 채워 주자, 황석은 순식간에 잔을 비우곤 입을 열었다.

“가격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도 회장님과 비슷한 이유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작은 회사를 경영하셨습니다. 먹고 살기 딱 좋을 만한 크기였죠.”

옛이야기에 목이 멘 그는 물로 목을 축인 뒤 말을 이었다.

“작은 문제 때문에 급전이 필요했는데, 은행은 문턱이 너무 높았고 사채는 이자가 살인적이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고금리 사채를 썼다가 집안이 풍비박산 났습니다. 그 뒤는 뻔하죠. 다행히 저는 운이 좋아 크게 성공했습니다. 제가 가진 돈으로 더러운 경험을 하는 사람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 저축 은행을 인수했습니다.”

“좋네요. 어디든 중간이 필요한 법이죠. 저축 은행이 딱 그런 위치입니다. 중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은행. 한번 같이해 보겠습니까?”

황석이 다시 술잔을 들었다.

정훈이 잔을 채워 주자 이번에 그가 주전자를 들어 정훈과 강상철의 잔을 채웠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윤 회장님.”

- 짠.

세 사람이 든 술잔이 큰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술이 넘쳐흘렀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뜻이 맞는 사람이 모였다.

서로 술이 오가는 만큼 마음이 오가는 자리였다.

***

오랜만에 많은 술을 마신 정훈 정신을 차리고 거실로 나갔다.

테이블 위에 꿀물이 놓여 있었다.

“마시거라. 속이 좀 괜찮아질 거야.”

“네.”

“취하도록 술을 마신 걸 보니 내 손자도 다른 집 젊은이와 다름없어 할미가 안심이다. 너무 복수에 취해 있는 게 아닌가 걱정했거든.”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중심을 잘 잡을게요. 옆에서 저를 지켜주는 사람도 있구요.”

정훈이 웃었다.

“다혜가 너한테 그런 존재냐?”

“잘 모르겠어요. 그냥 다혜랑 있으면 평화로워요.”

정훈은 다혜의 이야기를 하려다가 화제를 돌려야만 했다.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솔로몬 저축 은행 이야기를 해야 했다.

“어제 황석 행장 만났어요. 샤프하고 차갑던데요. 그런데 마음이 통했어요.”

“마음이 통하다니…….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좋은 의미 같구나.”

“네, 그가 생각하는 저축 은행의 목표와 할머니와 제가 생각하는 목표가 같았어요.

‘서민을 위한 따뜻한 은행.’

차가운 사람이지만 가슴에 뜨거운 횃불을 가지고 있더군요.”

“그래? 뜨거운 횃불이라…… 너도 그놈도 멍청이구나!”

할머니는 나쁘지 않은 듯 웃으셨다.

“그런가요?”

정훈도 반문하며 웃었다.

“인수대금은 어떻게 하기로 했니?”

“주식으로 대체하기로 했어요. 종합 금융 그룹 지주회사의 지분 1퍼센트를 달라고 하던데요.”

“뭐? 고작 1퍼센트?”

“네. 돈보다는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어 해요. 그자의 꿈을 펼치기에는 여기가 제격이죠. 할머니 밑에서요.”

“내 밑은 무슨……. 나는 그냥 바지 사장이다. 모든 건 네가 결정하도록 하거라!”

“네. 제대로 할게요. 할머니의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요”

“뭔 소린지. 허튼소리 말고 돈 더 벌어서 천지회 제거하는 데 집중하거라.”

“네.”

현관문이 열리며 만호 아저씨가 들어오셨다.

“오셨어요?”

“도련님, 몰골이…… 어제 많이 드셨습니까?”

“네, 조금요.”

“허허, 요즘 젊은이 같아 좋아 보입니다. 앞으로 자주 드세요.”

“어허. 자네는 왜 쓸데없는 걸 부추기고 그래!”

할머니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손자의 건강을 걱정하는 그녀의 마음이 전해졌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책이었네요. 참 저번에 말씀하신 거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보고해”

“여기서 말입니까?”

김만호가 주저하며 눈치를 봤다.

“어차피 내가 다시 말해야 하니, 그냥 한 번에 저놈한테 다 이야기해.”

할머니는 고개를 돌려 정훈을 보았다.

“어제 과음한 벌이다 이놈아!”

“네?”

“그럼……. 흠흠.”

만호 아저씨는 마른기침을 했다.

서류를 꺼낸 다음 입을 열었다.

“대구에 있는 창신 저축 은행, 부산 일신저축, 광주 무등 저축 은행, 그리고 대전, 강릉에 있는 저축 은행 전부 합병 신청했습니다. 그걸 솔로몬과 합병하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갑자기 어디서 이런 저축 은행들이 튀어나왔어요?”

“할미가 돈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니. 천지회 눈을 피해 차명으로 소유하던 것들이야. 이번에 전부 하나로 합병할 계획이야. 그리고 솔로몬이랑 신화 대부도 합병하마”

“그렇게 되면……. 이미 저축 은행 1위 아니에요?”

정훈의 질문에 할머니가 싱긋 웃었다.

“와, 할머니 대단한데요.”

“대단하기는 다 정훈이 네 것이다. 이걸로 이제 대한 은행도 인수하고 증권, 보험 회사도 인수해. 그래서 천지회 놈들을 제압할 수 있는 거대 금융 제국으로 키우도록 해.”

“제가요?”

“물론이지. 나는 이름만 빌려주는 거야. 어차피 네 것이니 네가 직접 운영해야지.”

“알겠습니다.”

정훈은 순식간에 커져 버린 할머니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지금 하는 일도 머리가 아픈데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상황.

어제 마신 술 때문인지 앞으로의 일 때문인지 머리가 더 지끈거리며 아팠다.

“아주머니, 여기 꿀물 한 잔만 더 주세요.”

정훈은 달콤한 꿀물로 두통을 이겨 내고 싶었다.

***

무더운 여름이었다.

작년까지 건실했던 대한은행은 봄부터 갑자기 부실기업으로 낙인찍혀 버렸다.

하루빨리 매각해 민간의 우수한 효율성을 조직에 이식해야 한다고 난리였다.

불과 몇 달 만에 이럴 수는 없는 것.

결국 싸게 가지려는 천지회의 장난질이었다.

정훈은 그들이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내버려 뒀다.

그래야 싸게 살 수 있다.

사려는 물건의 가치를 올리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솔로몬 저축 은행을 인수한 다음 할머니와 회사와 합병을 추진했다.

금감원에서 태클이 들어 왔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가서 술 한잔하면 다 해결됩니다. 회장님.”

자신만만했던 말처럼 강상철 사장이 며칠 동안 접대를 한 다음 합병은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솔로몬 저축 은행은 전국 지점을 가진 저축 은행으로 거듭났다. 웬만한 하위권 은행보다는 규모가 더 컸다.

정훈은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했다.

‘미래 저축 은행’으로 정했다.

‘사람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저축 은행’

회사의 컨셉이었다.

할머니도 흡족해하셨다.

지금까지 은밀히 해 왔던 모든 일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미래 저축 은행은 신문 기사와 광고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