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96화 (96/200)

#096화

중부시 외곽에 있는 고급 한정식당 수금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제법 쌀쌀한 가을 공기가 깊숙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중부시에 온 철중은 감회가 새로웠다.

여기까지 왔는데 엄마를 보고 가야겠다고 생각한 철중은 전화기를 꺼냈다가 다시 품에 넣었다.

그녀를 깜짝 놀라게 해야겠다.

엄마가 좋아하는 빨간 장미꽃도 백 송이 사 갈 생각이다.

철중은 그리웠던 고향의 공기에 자신도 모르게 들떠 있었다.

“박현철 대검 차장검사님”

깔끔한 정장을 입은 남자가 철중을 안쪽 깊숙한 곳으로 안내했다.

“선배님, 철중입니다.”

“어,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박현철이 철중을 환대했다.

그의 어색한 친절함이 낯설고 불편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내가 좀 일찍 와서 음식을 미리 시켰어.”

“죄송합니다. 선배님. 제가 먼저 와서 세팅 했어야 하는데”

“허허허, 매번 그럴 수 있나?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강철중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렸다.

박현철은 그의 과장된 아부를 좋아했다.

“허, 녀석 괜찮아. 앉아. 자 내 잔 한 잔 받아”

박현철은 철중의 잔에 소주를 넘치도록 부었다.

“한잔해”

고개를 돌려 한 번에 비웠다.

평소와 다른 쓴맛이 진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그래”

철중이 그의 잔에 술을 채우자 박현철이 주전자를 쥐고 강철중의 잔에 다시 술을 채웠다.

“한 잔 더 해야지”

철중은 술을 깨끗이 비웠다.

하지만 박현철의 잔은 그대로였다.

그는 주전자를 들고 다시 강철중의 잔에 술을 채웠다.

철중은 평소보다 훨씬 쓴 낯선 감각이 불안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리 그가 천지회라도 대한민국 검사였다.

그리고 자신의 싸움 실력에 대한 확신도 있었다.

정훈에게 혹독하게 배웠었다.

“자, 마지막 잔이야.”

“넵, 선배님.”

철중이 잔을 비우자 박현철은 비릿한 웃음을 날렸다.

“역시 덩치가 있어서 그런가 세 잔을 마셔도 끄덕도 없네.”

“네?”

“아니야. 술이 세다고. 자 이제 음식도 좀 먹어. 이 집에서 제일 비싼 걸로 주문했어. 마지막 가는 길인데 비싼 거 먹어야지!”

‘마지막 가는 길?’

철중의 귀에 거슬렸다.

철중은 고개를 들어 박현철을 보았다.

“무슨 말씀입니까? 선배님”

박현철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차가운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선배는 무슨……. 새끼야! 이제 연기 그만해!”

“네? 연기라니요?”

강철중은 당황했다.

이렇게 쉽게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초조한 표정을 침을 삼켰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는 예상치 못한 이름이 나왔다.

“강도현이 때문에 복수하려고 그랬던 거야?”

“저희 아버지를 아십니까?”

“허, 이제 그만 사실대로 말해도 돼. 다 아는 처지끼리 쯧. 내가 강도현을 제거하라고 했는데……. 미안하게 됐어.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해서 아직도 숨이 붙어 있더군.”

“이……. 미친 새끼가”

철중의 눈이 분노로 시뻘겋게 타올랐다.

자신이 박현철의 개가 되기로 결심한 건 천지회의 심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사냥개가 되려 했던 게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술잔을 들고 그의 면상에 날리려고 손을 뻗었다.

그런데 몸에 힘을 줄 수 없었다.

조금도.

-쿵

어느새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눈앞에는 박현철의 발만 보였다.

몸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건 겨우 눈만 깜빡이는 것이었다.

“하, 이 새끼. 너 때문에 대한은행 물 건너 갔어. 이 새끼가 윤정훈한테 인수 가격을 알려 줘? 죽어 이 새끼야!”

-퍽

한 손에 주전자를 쥔 박현철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철중의 머리를 향해 그대로 찍어 내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머리에서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내렸다.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철중은 움직이기는 커녕 신음도 낼 수 없었다.

단지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후우, 어차피 죽을 목숨. 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경험이나 하고 가. 그래야 귀신이 돼서라도 찾아오지 않지.”

박현철은 시계를 푼 다음 와이셔츠 단추를 풀었다.

바닥에 쓰러진 강철중을 보고는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방 안에서는 둔탁한 소리만 이어졌다.

***

“으으으”

정훈은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이빨을 확인했다.

다행히 다 있었다.

‘이빨 빠지는 꿈이라니…….’

아침부터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도련님, 식사하세요.”

정훈은 주방으로 가 아주머니가 차려 놓은 아침을 먹었다.

꿈 때문인지 식욕이 돌지 않았다.

“도련님 오늘 음식이 별로예요? 많이 못 드시네요.”

“아니요. 이빨 빠지는 꿈을 꿔서 그런가? 오늘 입맛이 없네요.”

“네?”

정훈이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설 때였다.

“도련님, 괜한 말일 수도 있는데, 이빨 빠지는 꿈은 흉몽이에요. 오늘 꼭 조심하세요. 주변 사람들도 잘 살펴보시구요.”

고성댁 아주머니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네? 그런 건 미신이잖아요.”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그럼 오늘은 조심할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집을 나서면서 생각했다.

인수전에 실패하려나?

금액도 3천억 이상 많이 적었다.

그리고 될지 모르지만 이곳저곳 다양하게 로비도 했다.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쉽지만 안돼도 어쩔 수 없다.

사람이 다치는 것보다는 나았다.

사무실로 들어가 오전에 올라온 보고서를 검토했다.

신화미포조선에서 수주한 리오틴토의 선박은 공정대로 건조되고 있었다.

신화조선해양도 수주와 건조 모두 잘 진행하고 있었다.

박창수는 조직의 내실화를 다지며 강남을 접수할 준비 중이다.

이곳저곳 확인해 큰 문제는 없었다.

고성댁 아주머니 때문인지 오전 내내 불편했다.

정훈은 오전 업무를 마치고 특급 호텔로 갔다.

코스요리를 먹으면서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입에서 주는 즐거움 덕분에 불안이 가셨다.

사무실로 돌아온 정훈은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오후 3시에 대한은행 인수 후보자가 발표되니 그동안 할 일은 딱히 없었다.

혹시나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해 안부를 물었지만 별다른 게 없었다.

회사도 모두 괜찮았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의자에 몸을 완전히 기댔다.

전화벨이 울렸다.

‘기분이 왜 오싹하지’

전화벨 소리에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곽현수였다.

“강철중 검사가 중부시에 있는 수금재로 갔답니다. 박현철 검사라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데,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합니다. 조금 전에 박창수 씨가 보고했습니다.”

“분위기가 이상하다니요?”

“수금재 직원들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요?”

천지회 놈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생각할 때였다.

박현철!

철중 선배의 아버지 강도현 반장님의 준 녹음기.

사고를 당한 직후 의식을 잃기 전 자신에게 준 녹음기.

박현철은 그 비릿한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박현철이라고 했죠?”

“네, 대검찰청 차장검사입니다.”

“둘이 지금 거기 있다는 겁니까?”

“그렇다고 합니다.”

불길했다.

강도현 반장님이 박현철을 수금재에서 만나고 얼마 뒤 사고를 당했다.

그리고 철중 선배가 거기서 박현철을 만나고 있다.

“박창수 씨한테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라고 하세요. 혹시라도 안에서 저항하면 싹 밀어버리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아저씨는 지금 어디세요? 아무래도 거기 가 봐야겠어요.”

“지금 막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내려오시죠.”

정훈은 다급하게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여유조차 없어 지하 주차장까지 한걸음에 뛰어 내려갔다.

칼치기, 신호위반을 일삼으면서 중부시로 내려갔다.

길을 가득 메운 차들이 롤스로이스로를 슬금슬금 피해서 남들보다 빨리 내려갈 수 있었다.

한 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를 한 시간 안에 주파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마자 수금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코피를 흘리며 얼굴에 멍이 가득한 종업원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박창수가 다가왔다.

“박현철 검사는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함께 있던 젊은 검사는……”

“어디 있습니까?”

“그게……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괜찮나요? 네?”

정훈은 자신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물었다.

“도착했을 땐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머리가 터져 피를 많이 흘려……. 급히 병원으로 옮기긴 했지만…….”

“어딥니까?”

병원으로 한걸음에 달려간 정훈은 응급실로 뛰어 들어갔다.

“강철중 환자 어디 있습니까?”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의 눈앞에 한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 천이 머리까지 덮여 있었다.

‘설마, 철중 선배가?’

아닐 거다.

절대로 아닐 거다.

그는 이렇게 쉽게 차갑게 식어 버릴 남자가 아니었다.

그가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막 그의 본심을 알았다.

그와 함께 천지회를 쳐부술 생각에 남몰래 신이 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제대로 힘도 써 보지 못하고.

정훈은 아직 그를 보낼 수 없었다.

“아, 안 돼!”

조용히 혼잣말했다.

정훈의 붉은 눈을 가득 채운 물기는 결국 흘러내리고 말았다.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는 슬픔이었다.

시간을 되돌려 그를 구할 수 있다면,

그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 그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모든 것을 걸어 그를 구하고 싶었다.

차마 발을 뗄 수 없었다.

하얀 천에 차갑게 누워 있는 그.

외로울 그를 위해 용기를 냈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갔다.

그의 손을 잡아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 걸음 더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뭐 하냐?”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고개를 돌렸다.

‘귀신인가?’

그는 머리에 커다란 붕대를 감고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흉측한 자신의 얼굴을 보고 히죽대며 웃고 있었다.

“이…… 미친놈아!”

정훈의 입에서 천둥 같은 고함이 튀어나왔고

“야 이 새끼가 어디 하늘 같은 선배님한테.”

강철중도 지지 않고 되받아쳤다.

정훈의 주먹이 부르르 떨었다.

그것을 본 강철중이 뒷걸음질 쳤다.

“야, 왜 그래. 나 환자야! 저번에 정말 아팠어. 그만해!”

“죽었어, 이 새끼야”

붉어진 눈이 분노로 바뀌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훈이 철중을 잡으러 달렸다.

깜짝 놀란 강철중은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

“어떻게 된 거야?”

정훈의 질문에 강철중은 긴 한숨을 쉬었다.

“뭐긴, 언더커버로 잠입하려다 실패한 거지. 젠장!”

“죽을 뻔했어. 할머니는 알고 계셨지?”

“응, 할머니만 말씀하셨어.”

“진짜, 말리지도 않고 할머니한테 정말 실망이야!”

“아니, 말리셨어. 할머니가 천지회 놈들이 아버지를 제거하려 했다고 말씀하셨어. 그리고 내 아버지가 너를 살해하려 했다는 것도.”

“그건……. 아저씨도 속은 거였어.”

“그걸 어떻게 알아?”

“그게……. 마지막에 아저씨를 차 밖으로 꺼낸 게 나야.”

“뭐? 네가? 하, 이거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겠네.”

강철중은 긴 한숨을 쉬었다.

“형, 근데 너무 쉽게 걸린 거 아냐?”

“그렇긴 하네……. 에이 그 사람들 좋았는데 비싼 술도 잘 사 주고. 아쉽다.”

“다친 데는 어때?”

“괜찮아, 그냥 크게 찢어진 것뿐이야.”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도 좀 하고”

“그래. 박현철은 어떻게 할까?”

“절대로 가만히 둘 수 없지. 제대로 보내 줘야지!”

정훈이 입술을 깨물었다.

박현철 대검찰청 차장검사, 이제 그를 처단할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정훈은 철중을 중부시에 있는 자신의 집에 숨겼다.

평일에는 할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생활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실종된 그를 천지회에서 찾고 있을 것이다.

정훈은 철중과 함께 박현철의 목을 칠 계획을 세웠다.

할머니께 말씀드리자 할머니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할머니는 뜬금없이 다혜의 안부를 물었다.

정훈은 잘 있다고 짧게 대답했다.

***

서울로 돌아온 정훈은 사람들과 함께 인수 후보자 발표를 기다렸다.

대한은행.

자산 70조의 은행이 부실화되었다.

작년까지 문제없던 은행이 순식간에 부실화된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이걸 인수하기 위해서 미리 저축은행도 인수하고 대부업체도 설립했다.

‘대한은행’

종합 금융 그룹으로의 본격적인 도약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오후 3시가 지나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 너머로 황석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축하합니다. 회장님. 미래금융그룹이 낙찰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됐다’

정훈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 미래금융그룹이 대한은행을 인수했습니다.”

-꺅

차영미가 소리쳤고

이병석도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천진혁은 여전히 어색한 조커 웃음을 지으며 축하했다.

할머니를 중심으로 미래 금융 그룹이 대한민국 금융을 장악할 것이다.

그리고 신화 엠파이어 홀딩스로 중공업부터 첨단산업까지 대한민국과 글로벌 제조업을 평정한다.

정훈의 손안에는 금융과 산업이라는 두 마리 말이 쥐어졌다.

이제 채찍질을 가해야 할 시간이었다.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스티브 첸이었다.

며칠 전 그에게 했던 제안이 떠올랐다.

‘그는 수락할까?’

욕심내지 않고 그가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천지회의 먹이가 된 이상

그는 분명히 회사를 뺏긴다. 어쩌면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다.

스티브의 말로는 동영상 서비스는 아직 아직 베타 테스트 중.

스스로도 성공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동영상 서비스가 과연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을까?‘

물론.

지난 삶에서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그런데, 단지 그걸로만 쓸 생각은 아니다.

왜냐하면 유튜브는 스티브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도구이다.

이미지는 문자보다 훨씬 더 강력한 충성 지지자를 만들어 낸다.

정훈은 유튜브를 제대로 활용해 올바로 쓰고 싶었다.

스티브 첸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길 바라며 전화를 받았다.

“하이, 스티브 첸.“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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