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엄숙한 재판 중에 억울한 표정의 피고가 소리를 질렀다.
“피고 조용히 하세요.”
얼굴을 구긴 조재욱 판사가 법봉을 두들겼다.
‘젠장, 무슨 말인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기 것이라고 믿고 있던 AR카드가 신화그룹으로 넘어갔다.
그것도 1원에.
‘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가지지 못한 건 문제 되지 않았다.
그걸 가져서 조직의 자금줄에 보태야 한다.
사대부의 혈통을 타고난 그. 카드회사를 시작으로 막강한 경제력을 쥐면 천지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쥘 수 있다.
전하의 스타 그룹에 대적할 수 없지만 그 외에 자신의 경쟁자는 없다.
강력한 경쟁자인 박현철이 제정신이 아닌 지금이 최적이었다.
“재판장님……! 재판장님!”
자신을 부르는 변호사의 말이 들리지 않을 만큼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야.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해’
조재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휴정합니다. 2주 뒤에 다시 합니다.”
“아니, 갑자기 그러시면…….”
“왜요? 싫어요?”
“아닙니다.”
법정.
눈에 보이진 않는 법이 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법이 모습을 드러내는 이 자리.
‘나는 이곳의 신이다.’
판사의 한마디에 모든 게 결정된다.
누구도, 심지어 천지회의 주인도 자신의 발아래 있을 뿐이다.
“다들 준비서면 좀 잘 적어 보내세요. 특히 오탈자는 제발……. 그건 기본이 안 된 거야. 그리고 윤 검, 박 변. 똑바로 해. 나 때는 말이지, 그렇게 준비 서면 쓰면 판사실에 불려 갔어. 잘해!”
인상을 구긴 조재욱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잔소리를 쏟아 냈다.
찬바람을 일으키며 법정을 나가 버렸다.
사무실로 돌아간 그.
박현철 대검 차장검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재욱이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덤덤하고도 무관심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박현철이 물었다.
“몰라, 나도. 이희도 말만 믿고 더 크게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푸하하, 크게 먹으려다가 크게 날렸네. 이게 이제 어떡하나…….”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네. 아무렇지도 않나 봐? 하긴 든든한 아버지 덕분에 나처럼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지.”
박현철의 볼이 떨렸다.
그는 평소에도 대법원장 출신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전임 천지회의 회주였고 대한민국 대법관 중의 왕인 대법원장.
박수길.
모든 법조인의 선망의 대상이 분명했지만.
그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리 위대하신 박수길 대법원장님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오나?”
박현철의 눈에서 살기가 서렸다.
평소와는 다른 기세.
“크흠, 기분 나빴다면 내 사과하지.”
“조심해 줬으면 좋겠군. 자네 말대로 아무리 같은 사대부라도 자네와 나는 급이 다르지 않나. 자네와 나의 작은 차이를 존중해 주게.”
조재욱은 입술을 깨물었다.
부유한 대지주 집안이자 대대로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그의 집안. 오늘날까지 막대한 부를 차지하고 있는 박현철의 집안과 별 볼 일 없는 자신의 집안을 서로 비교할 수 없다.
서로 기분만 나쁜 주제. 조재욱은 화제를 돌렸다.
“무슨 일이야.”
“전하께서 들어오라 하셨네.”
“언제?”
“지금.”
조재욱의 입술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속으로 욕을 내뱉은 게 분명해 보였다
“어떻게 될 것 같아?”
“좆 판사. 쫄지 마! 죽기밖에 더 하겠어? 푸하하.”
“미친 새끼.”
조재욱은 옷걸이에 걸린 정상 상의를 들었다.
스타그룹으로 가는 길은 항상 긴장되지만 오늘은 더욱 두려움이 앞섰다.
호된 질책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긴장하지 마, 조재욱. 오늘도 살아남아야지.’
무심한 표정을 박현철과 입술을 꽉 깨문 조재욱이 방을 나섰다.
***
소파, 책상, 가구 등 방안의 모든 것은 검은색이었다.
우아하고 신비로운 권력을 상징하는 블랙.
그리고 곳곳에 황금색의 용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창가 선 이석 회장은 눈 앞에 펼쳐진 경복궁을 보고 있었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
언젠간 돌아갈 저곳을 보면서 화를 달랬다.
호출했던 두 사람이 들어왔다.
“전하를 뵈옵니다.”
박현철과 조재욱이 머리를 조아리며 안으로 회장실 앞에 무릎 꿇었다.
“어제 기사 보셨지요?”
“송구하옵니다, 전하.”
“어떻게 된 일입니까? 목표는 AR카드 아니었습니까?”
조재욱이 다급하게 변명했다.
“……. 조금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수가 있어서…… 그리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전하!”
이석은 머리를 조아린 조재욱을 내려 보았다.
한숨을 쉰 그는 고개를 돌려 박현철을 보았다.
“박 영감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일단 조 판사의 의견을 한번 들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 AR그룹의 금융계열사는 어렵지만 잘하면 다른 계열사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전하.”
박현철의 말에 이석이 흥미를 보였다.
소파에 앉아 몸을 기댄 이석 회장.
조재욱의 입을 보았다.
“그럼 한번 들어 봅시다. 어떤 좋은 계책을 준비했는지?”
“공매도 투자를 해서 수익을 확보하고 그 대금으로 계열사를 인수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요?”
이석은 조재욱을 보았다.
‘판사 주제에 잔머리는 수준급인데.’
그는 사법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할 만큼 뛰어난 머리를 돈 불리는 데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돈에 대한 남다른 집착도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박 영감은 어떻게 생각해?”
조재욱의 의견을 들은 이석이 박현철의 입장을 궁금해했다.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윤정훈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그놈의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함정이라? 무슨 함정을 팔 수 있겠습니까?”
이석의 얼굴에 비웃음이 가득했다.
“이미…… 아닙니다. 전하.”
박현철은 말을 삼켰다.
굳이 쓸데없는 말로 전하의 자존심을 건들 필요가 없었다.
지난번 박현철의 집에서 그를 사로잡으려던 계획은 처참하게 실패했었다.
그의 친위대 중 30퍼센트가 사라졌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윤정훈을 놓아 주었다고 생각한다.
‘멍청하고 오만한 미친 새끼.’
그에게 패배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패를 모르는 이 땅의 왕.
“그놈이 내가 기회를 줬지만 이렇게 발로 차 버리고 또 도발을 하는군요.”
“전하, 지금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더 몰아 간다면 확실히 부도로 내몰 수도 있습니다. 부도를 낸 다음 AR 그룹 전체를 가지는 게 어떻습니까?”
조재욱의 이석의 탐욕을 자극했다.
이석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왕이든 혈통 좋은 사대부들이든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좋군요. 일어나세요. 조 영감.”
이석은 조재욱을 자신의 곁으로 오게 했다.
시원한 펼쳐진 전망을 함께 감상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조 영감!”
이석이 경복궁을 가리켰다.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세요.”
“송구하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하!”
“그래요. 실패는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AR 그룹을 내 발아래 가져다 놓으세요.”
“네. 전하.”
“그럼 못해도 계열사 몇 개는 가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석의 말에 조재욱의 탐욕스러운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실패하면…….”
이석은 호기심 가득한 미소로 그를 보았다.
“조 판사님 실패하면 새처럼 훨훨, 날아 보는 겁니다.”
이석의 입이 길게 늘어졌다.
“전, 전하!”
“뭘 그리 놀랍니까? 자유롭게 새처럼 한 번 뛰어내려 보세요. 혹시 압니까? 진짜 새처럼 창공을 날 수 있을지. 아, 그게 싫으면 죽을 때까지 살을 발라 줄 수도 있습니다.”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 친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뭐, 그건 알아서 하시고 실패만 하지 마세요.”
“네.”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긴장과 공포가 가득했다.
박현철은 안도했다.
자신이 나서지 않은 계획 더 얻을 수 없지만 잃을 것도 없다.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이 계획은 자신과는 무관한 조재욱의 계획일 뿐이다.
***
주가에는 기업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담겨 있다.
AR 그룹의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은 그만큼 관심도 기대도 없다는 뜻이다.
지루한 하락만이 있었다.
물론 딱 하루, 지나친 하락이라며 상승으로 마감한 날이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전날의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며 평소보다 더 떨어졌다.
그러는 사이 공매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100억이던 AR 그룹의 공매도 잔고는 어느새 천억을 넘을 기세로 쌓이고 있었다.
누가 봐도 망해 가는 회사.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것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회장님. 오늘 천억 찍을 것 같은데요.”
황석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하자 강상철이 의구심을 표했다.
“그런데 저는 궁금한 게 공매도라는 게 이익은 정해져 있고 손실은 무한대인데 사람들은 이걸 왜 하는 겁니까?”
“쾌감이죠. 누구나 파괴적인 본능이 숨어 있잖아요. 엄청난 리스크를 감당할 만큼 큰 쾌락을 얻죠.”
“하, 그놈들 쾌락은 술과 흐흐흐.”
자연스럽게 유흥을 상상하는 강상철을 보며 황석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표정을 짓는 그를 강상철은 비웃었다.
“하여튼 이 자식은 맨날 빼면서 가면 제일 즐겁게 노는 주제에.”
무안한 표정의 황석은 고개를 숙여 자료를 다시 한번 검토했다.
“저쪽에서 얼마까지 넣을 것 같습니까?”
정훈이 묻자,
“오천억까지는 넣을 것 같은데요.”
황석의 대답에 정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1조, 그 이상도 넣을 겁니다.”
“네? 만약 잘못되면, AR 주가가 오르기라도 하면…….”
정훈은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주가가 오르기만 하면.
“지켜보죠. 어떻게 될지.”
그의 입꼬리가 완전히 올라가 있었다.
정훈은 사무실을 나왔다.
주차장으로 가 자신의 부가티 시롱의 트렁크를 확인했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축하의 장미꽃이 가득 들어있었다.
집에 있는 다혜에게 전화를 걸어 외출 준비를 하라고 했다.
당황한 그녀는 저녁은 집에서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는 수 없이 그녀의 말대로 집에서 먹기로 했다.
정훈은 그녀의 요리실력이 궁금했다.
할머니가 정성스럽게 차렸던 음식 맛이 떠올랐다.
‘할머니보다는 잘하겠지?’
차가운 바람이 등줄기에 전해지며 오싹한 공포가 느껴졌다.
‘그럴 리 없어. 절대로’
***
아이보리 계열 따뜻한 색감의 원피스를 입고 나온 그녀.
정훈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대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덥석 안겼다.
“보고 싶었어.”
“아침에 봤는데…….”
“그래도.”
정훈의 품에 안긴 그녀는 두 팔로 그를 강하게 안았다.
짧은 입맞춤이 이어졌다.
정훈은 품에 안긴 그녀를 내려 보았다.
호수 같은 두 눈을 보며 속삭였다.
“축하해.”
다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뭘?”
“사법시험 합격했잖아.”
“어떻게, 알았어?”
“그걸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힝, 오늘 서프라이즈 해 주려고 했는데.”
정훈은 만족스러웠다.
그녀를 위한 서프라이즈에 성공했다.
트렁크를 열자 빨간 장미꽃이 가득 차 있었다.
“고마워.”
눈물을 글썽이는 그녀.
“왜 저것만 하얀색이야?”
빨간색으로 뒤덮인 트렁크 한가운데 하얀색 장미 한 송이가 반짝이고 있었다.
“글쎄?”
다혜는 손을 뻗어 그것을 꺼냈다.
그리고 하얀 장미 한 송이와 연결된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다혜는 눈을 반짝이며 상자를 꺼냈다.
“고마워.”
“열어 봐. 정말 어렵게 구한 거야.”
다혜가 상자를 열자 투명한 노란색 보석이 반짝이고 있었다.
“뭐야? 처음 보는 건데…….”
“별거 아니야, 다이아몬드”
“뭐? 노란색 다이아몬드가 있어? 그리고 이게 크기가…….”
보석으로 유명한 티파니 사의 커다란 옐로 다이아몬드가 가운데 박혀 있다.
예술로 승화된 ‘리본 로제타’ 목걸이.
오드리 헵번이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홍보할 때 착용했던 목걸이였다.
다혜는 정훈을 한 번 보고 다이아몬드를 한 번 보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다혜는 정훈을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의 사랑이 담겨 있었다.
돈이 아닌 정성에 대한 그녀의 감동이었다.
정훈은 상자에 있던 목걸이를 꺼냈다.
예술로 승화된 보석으로 회자되었던 목걸이를 다혜의 목에 걸었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
정훈의 부가티 시롱이 반포대로를 달렸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끌었다.
다혜는 목걸이를 이리저리 만져 보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보면서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다.
“저기, 정훈아 어디 가는 거야?”
“응?……. 인사는 해야 될 것 같아서.”
“설마?”
‘뭐라고 해야 하지’
정훈은 그녀의 굳은 얼굴에 준비했던 핑계를 잊어 버렸다.
저 정도로 싫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박현철과 박다혜의 부녀 관계는 이미 끊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정훈의 입장에서는 박현철을 버릴 수 없다.
대검찰청 차장검사이자 유력한 총장 후보.
그리고 법무부 장관도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천지회의 강력한 힘이었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걸리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철중이 형도.
나도
그리고 다혜도.
무모하고 불가능한 계획.
할머니마저 반대하지만.
어쩔 수 없다.
천지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박현철의 힘이 필요하다.
그를 굴복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너, 인사한다는 게 박현철 차장 검사님 말하는 거야?”
다혜는 아버지라 하지 않았다.
목소리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긴장한 것이 분명하다.
“응, 너도 이제 사법연수원 들어가면 마주칠 수밖에 없잖아. 불편한 사이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너무 들이댄 건가?’
“미안, 네가 이렇게까지…….”
“내 아버지지만 너를 죽이려 했어. 그런데…….”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정훈을 보았다.
“네가 이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지금보다 더 행복한 한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거 알고 있어. 그게 아니라면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을 다시 볼 이유는 없는 거잖아.”
“아니야. 그런 거창한 꿈이 아니야. 그냥 너, 할머니, 철중이 형, 은수 주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다혜를 보았다.
그녀의 깊은 눈동자는 정훈의 속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나도 네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많이 해. 아직 능력은 부족하지만.”
다혜는 정훈의 손을 꼭 쥐었다.
그녀의 따뜻한 손이 차갑게 얼어 있던 정훈의 마음을 녹였다.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처단하면서 식어 버린 심장이었다.
“휴, 긴장되는데 대검 차장님 만나려니…….”
다혜는 일부러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간다고 미리 말하지 않았어.”
“상관없어. 정훈이 네 말대로 피할 수 없는 거야. 그리고 너의 꿈이 나의 꿈이잖아. 이제 나도 조용히 판사나 할 수 없어.”
“무슨 말이야?”
“원래 판사가 꿈이었어. 판결을 내리잖아.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어. 검사가 될 거야. 너를 위한 칼잡이 검사!”
‘어, 이러면 옛날의 다혜가 되는 건데.’
온몸에 짜릿한 전기가 흘렀다.
회귀 전 신문에서 유심히 보았던 그녀의 기억이 물밀듯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서울지검 미친X 검사 박다혜
조폭 와해, 정치인 구속, 재벌 구속이 취미였던 그녀.
강철중과 쌍두마차를 이룬 미친 검사 박다혜.
‘설마 옛날에 신문에서 본 그 미친 박다혜가 되는 건 아니겠지?’
두려운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정훈의 부가티 시롱은 특유의 배기음을 내 뿜으며 대검찰청 안으로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고 차에서 내리자 모두의 입이 쩍 벌어졌다.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의 미남과 미녀가 차에서 내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한 정훈은 다혜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거대한 권위를 자랑하는 대검찰청 본관이 가까워졌다.
‘긴장했구나.’
그녀의 손에 땀이 가득 맺혔다.
딸과 아빠지만 심각하게 어긋한 부녀지간.
‘어떻게 될까?’
가벼운 잽으로 서로 탐색전을 시작할지 아니면 초반부터 피 튀기게 전면전을 벌일지 궁금했다.
그보다 중요한 것!
박현철에게서 일말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