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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108화 (108/200)

#108화

“찾아올 거라곤 생각 못 했다.”

휑한 눈을 한 박현철이 대답했다.

다혜를 본 그의 얼굴에는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 있었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가족을 배신한 것에 대한 분노가 교차했다.

정훈을 보는 눈에는 단 하나의 감정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살기.’

정훈은 그의 눈에 서릴 날카로운 살기를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부녀를 대신해 정훈이 입을 열었다.

“인사라…… 이번에 사시 합격한 것 말인가?”

“네…….”

정훈은 고민했다.

‘뭐라고 하지? 아버님? 검사님? 젠장 이렇게 숨막힐 줄이야.’

아버님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박현철 씨? 적대적인 둘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박현철이 입술을 움직이며 먼저 공격했다.

“이번에 박다혜 양이 수석 합격을 했더군. 축하해요, 다혜 양.”

더 이상 내 딸이 아니란 공격이었다.

그 말을 들은 다혜의 눈에 불길이 타올랐다.

박현철의 공격으로 다혜는 자신의 입장을 정했다.

“감사합니다. 대검찰청 차장검사님이 이렇게 칭찬해 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 앞으로 뭘 할 건가? 판사, 검사? 아…… 재벌가의 여식이 될 수 있으니 조신하게 살 수도 있겠군.”

“설마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나라를 좀먹는 벌레 같은 놈들이 있는데 그놈들 처넣으려고요. 그러려면 검사가 돼야죠.”

앙칼진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허허허, 그래요? 그 벌레 같은 놈들의 피가 자신에게 흐르는 건 모르는가 보군요. 벌레들에 기생해 먹고 자고 여기까지 온 주제에 입은 살아 있네요. 다혜 양은 아주 좋은 검사가 될 것 같아요. 검사라면 낯짝이 다혜 양 만큼 두꺼워야지!”

정훈은 몸둘 바를 몰랐다.

둘의 막말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잡으려구요. 사죄하는 심정으로요. 감사합니다. 차장 검사님. 이런 햇병아리를 만나 덕담도 해 주시고.”

“뭘 이 정도 가지고.”

“가자 정훈아. 이 정도 인사했으면 충분해.”

“어, 그래.”

“아, 박다혜 양, 이왕 인사한 거…… 박수길 어르신께도 인사해야지.”

박현철은 순간 아차했다.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인자한 가면을 쓴 그에게 다혜를 보내선 안됐다.

그의 가면 아래 진짜 얼굴을 본다면 분명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흠흠, 바쁘면 안 해도 됩니다.”

박현철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정훈은 박현철의 얼굴에 짧은 후회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왜 후회하는 표정이었을까?’

정훈은 의문스러웠다.

박수길 저임 대법관. 다혜의 할아버지에게 인사드리라고 말한 직후 후회하는 표정이라니.

“물론이죠. 차장 검사님보다는 훨씬 인자하고 자상한 분이시잖아요.”

다혜가 말했다.

“그래요. 가서 인사드리세요.”

불꽃 튀는 결투가 끝을 보일 때 정훈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박현철이 정훈은 보았다.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닙니다.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왔습니다.”

“그래, 더 이상 자네 얼굴은 안 봤으면 좋겠어.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싸움 아닌가. 괜히 봐서 정들 필요가 없지. 서로 안 보는 게 좋아, 흐흐흐.”

그 말을 들은 다혜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아……. 아빠, 도대체…… 왜.”

눈가에 눈물이 가득했다.

“나가!”

박현철의 방에서 나온 두 사람.

복도에선 다혜는 닫힌 문을 한참 동안 쳐다보기만 했다.

“고마워 정훈아!”

“응?”

“속이 후련해. 아빠한테 이렇게 쏟아 내니까…… 시원하고 섭섭하네”

“다행이다. 뭔가를 쏟아 낸 거면 좋은 걸 거야.”

“그래”

정훈의 그녀의 손을 잡았다.

더 이상 땀이 나지 않았다.

***

정훈은 점심시간, AR 그룹 근처 일식집에서 구현지를 만났다.

신선한 붉은 색을 띈 연어 초밥이 나왔다.

한입 베어 물자 노르웨이의 차가운 북해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게 입에 들어가요?”

구현지가 앙칼진 목소리로 지적했다.

“그래도 먹어야죠.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현지 씨도 드세요.”

정훈은 담담하게 말한 다음 두 번째 연어 초밥을 입에 넣었다.

‘하긴 밥이 들어가긴 좀 그렇겠군.’

오늘 2천억의 어음을 막지 못하면 AR 그룹의 지주회사인 (주)AR 이 1차 부도가 난다.

그리고 내일 은행 마감 시간인 4시 30분까지 대금 결제가 없다면 최종 부도.

법정 관리로 간다.

“오늘 오전에 들어온 공매도가 1조 이천억입니다. 전부 스타증권과 외국계 증권사를 통해서죠.”

“그들이 미끼를 문 건가요?”

“네. 오늘까지 2조 원 채울 분위기 입니다.”

“정말요?”

그룹 걱정이 가득했지만 정훈의 일에도 흥미를 조금 보였다.

“네. 내일까지 못해도 2조 5천억까지 몰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 남의 일이라고 너무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요.”

“그건 아니죠. 제 돈도 1조 이상 들어가는데요.”

금액을 들은 구현지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누구도 자신들을 위해 1조 원을 투자하지 않고 있다.

오직 이 남자뿐이다.

다르게 말하면 그가 자신들의 목줄을 쥐고 있다.

정훈은 구현지를 보았다.

“연어가 신선하네요. 많이 드세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붉은 연어 초밥을 입에 넣고 씹었다.

붉은 생선의 고소한 식감이 입안에 퍼졌다.

“식사하고 그룹으로 돌아가시면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을 겁니다.”

“그렇겠죠. 기자들뿐이겠어요? 화가 난 주주들도 잔뜩 모여 있겠죠.”

“오늘은 갚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세요.”

구현지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었다.

“정훈 씨,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어쩔 수 없어요. 저놈들이 미끼를 더 물어야 해요. 그래야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구현지는 수치스러웠다.

언제나 당당했는데 오늘은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해야 하는 입장.

자신을 사지로 밀어 넣는 남자가 미웠다.

‘하, 나쁜 새끼. 두고 보자, 반드시 복수하겠어.’

구현지는 연어 초밥을 먹었는지 붉은 돌덩이를 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간 그녀.

회사 입구에 아니나 다를까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기자가 소리쳤다.

“구현지다!”

“구 실장님, 오늘 어음 결제되는 겁니까?”

구현지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정훈과의 약속대로 눈물을 흘리며 사죄의 말을 꺼냈다.

“오늘 결제해야 할 금액이 정확하게 2천 20억입니다. 그룹의 유동성 문제로……. 흑흑…….”

두 손을 얼굴을 감싼 그녀를 향해 카메라들은 플래시를 터트렸다.

“내일은 가능한 겁니까?”

“죄송하다는 말밖에 드릴 수 없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병신 같은 말이었다.

눈물을 쏟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로 들어간 그녀는 문이 닫히자마자 얼굴을 확인했다.

검은색 마스카라 완전히 번져 있었다.

판다가 되어 있었다.

전국에 퍼질 자신의 얼굴.

주먹을 쥔 구현지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윤정훈이 이 X 자식.”

얼마 후 인터넷에는 기사가 쏟아졌다.

AR그룹의 1차 부도를 예상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정말 정훈의 예측대로 AR그룹의 전 종목이 하한가를 기록했다.

***

다음 날 주식 관련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 팍스넷의 서버는 폭발 직전이었다.

주식 시장이 개장하기 전부터 AR 그룹의 하한가를 예측하며 저주를 쏟아냈다.

정훈도 게시판을 보면서 심기가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놈들이 생각보다 미끼를 많이 물었다.

9시가 되자 2조원에 이르던 공매도 잔고는 순식간에 3조를 넘었다.

더 이상의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다.

‘됐다. 저 자금이 아마 천지회의 마지막 자금이다.’

정훈은 하한가에 쌓여 있는 주식을 매입해야 했다.

신화증권 권영수 사장에게 전화했다.

“권 사장님, 매입하고 있습니까?”

“네, 하한가가 풀리지 않는 정도에서 계속 매입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티 나지 않게 매수하세요.”

“네.”

미국에 있는 임철수에게도 연락해 매입을 부탁했다.

“응, 네 말대로 조심스럽게 매입하고 있어. 그런데 저 회사 우리가 먹으면 안 돼? 엄청 매력적인데.”

임철수는 전문 투자자의 감각을 발휘했다.

“뭐든지 다 먹으면 배탈 나잖아요. 그래서 AR그룹은 친구로 지내려고요.”

“그래? 너 꽤 낭만적으로 변했네. 언제는 못 먹어서 안달이더니.”

“앞으로 먹을 게 많아서 그렇죠.”

“그래. 하여튼 티 안나게 계속 매입할게.”

“아저씨. 2시 반에 쏟아질 거에요. 그거 무조건 다 매수하세요. 그땐 하한가 풀려도 괜찮아요.”

“그래, 알겠다. 그런데 무슨 꿍꿍이야? 나도 좀 알자.”

“곧 알게 되실 거예요. 재미있게 구경하세요.”

“이거 섭섭한데, 정말. 아 너 미국 한번 들어와. 페이팔에 있던 머스크가 자동차 회사 인수했다는데 투자를 요청하더라. 금액이 커서 이야기를 한 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번 기회에 좀 쉬면서 관광도 하고. 어때?”

“좋아요. 시간 낼게요.”

“그래, 수고해.

전화를 끊은 정훈은 머스크가 테슬라를 인수했단 사실에 흥분되었다.

애플과 마찬가지로 대박 주식인 테슬라가 자신에게 투자를 제안하다니.

정훈은 자신이 꿈이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음을 느꼈다.

머스크의 테슬라, 신화의 자회사가 된 애플.

그리고 전략적 투자자인 AR그룹의 전장사업.

이제 하나만 있으면 정훈이 꿈꾸는 모빌리티 사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이제 화룡정점을 찍을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구현지는 반복적으로 시계를 확인했다.

2시 30분이 되어도 신화그룹과 미래금융그룹의 발표가 없어서 초조했다.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구현지는 회장실로 올라가 할아버지를 만났다.

초조한 그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직 연락이 없냐?”

“네…… 현정옥 여사님 믿을 수 있죠? 윤정훈 회장도…….”

“흠, 지금 그 사람들을 안 믿으면 누굴 믿는단 말이냐. 기다려 보자꾸나. 맑은 기운이 가득한 아이야. 천지회 놈들처럼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놈이 아니야.”

초조한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연락되지 않는 그를 기다리기만 했다.

“할아버지, 전종목 하한가로 장이 끝났어요. 어떡하죠?”

구현지의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백기사가 되어 준다고 했는데…… 속은 건가?’

구현지는 머리가 핑돌았다.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조금은 차가워 보였지만 맑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속았다.’

더 이상 화나지 않았다.

한없이 가라앉고 있을 뿐이었다.

구현지는 회장실을 서성이다가 창가를 보았다.

그룹 앞에서 몰려든 취재진들이 여전히 하이에나처럼 기삿거리를 찾고 있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삼삼오오 이야기를 하던 기자들이 한 곳으로 다급히 뛰어가기 시작했다.

구현지의 눈에도 그들이 누군가를 향해 뛰고 있는지 정확하게 보였다.

‘윤정훈.’

그가 AR그룹 본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정훈은 시계를 보았다.

3시 01분.

주식시장이 마감됐다.

‘기분이 어떨까?’

스타증권 계좌를 통해서 2시 40분 공매도가 쏟아졌다

마지막 천지회의 자금이었다.

조금 전 주식 시장이 마감됐다.

이틀 연속 하한가를 기록한 AR그룹의 시가총액이 수십조 원이 사라졌다.

이제 부도가 나고 거래 정지 되고 상장 폐지되면 AR그룹의 주식은 정말 50원 100원이 된다.

스타증권을 통해 대량의 공매도를 체결한 천지회 놈들은 분명 기쁨의 축배를 들고 있을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비명이 들렸지만 어쩔 수 없다.

‘미안하다. 개미들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좋았을 텐데.’

우량주는 장기 보유 한다는 고수들의 격언이 그나마 그들을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정훈의 눈앞에 AR그룹 본사가 보였다.

그룹 입구에 기자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정훈은 황석에게 각 언론사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보도 자료를 뿌리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구창훈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접니다.”

“후, 자네.”

목소리가 날카로워져 있었다.

다시 한번 숨을 삼킨 그가 입을 열었다.

“왜 이리 늦었나? 늙은이 심장도 약한데…….”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회장님은 지금까지 마음고생했지만 저놈들은 이제 돈고생 좀 할 겁니다.”

“후, 고맙네.”

“아, 그리고 주식 좀 사 두셨습니까?”

“……. 조금.”

머뭇거리던 구창훈이 짧게 대답했다.

구렁이 같은 노친네. 빚 갚을 생각보다는 지분율을 높이는 데 돈을 썼다.

그도 재벌은 재벌이었다.

“잘하셨습니다. 좀 이따 올라가겠습니다.”

문자를 받은 기자들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누군가 소리쳤다.

“현정옥의 손자 신화그룹 윤정훈 회장이다.”

모두 카메라를 챙겨 그에게 달려가 질문을 퍼부었다.

“보도 자료가 사실입니까? 미래금융그룹과 신화그룹이 대출을 실행합니까?”

“네, 사실입니다.”

“지금 부채와 갚아야 할 어음이 만만치 않을 텐데 지원 금액은 얼마입니까?”

“AR그룹에 대한 지원 금액은……”

정훈은 침을 삼켰다.

플래시 터지는 소리만 들렸다.

“무제한입니다.”

동그랗게 커진 기자들의 눈.

모두 그의 입만 보았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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