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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110화 (110/200)

#110화

“희도야, 이제 그만 불어. 어?”

강철중은 조사실의 책상을 세차게 내리쳤다.

철중의 말을 들은 이희도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어린 놈의 새끼가, 어디 하늘 같은 선배님한테…….’

“반말 들으니 기분이 나쁜가?”

“이봐 강 검사 하늘 모르고 날뛰다가 하늘에서 벼락 맞아!”

“글쎄요, 두고 보죠. 하늘에서 벼락을 맞을지 하늘을 찢어 버릴지.”

“네 놈 따위가 손댈 수 있는 게 아니야…….”

“쯧쯧쯧”

강철중이 갑자기 혀를 찼다.

“희도야, 나가면 뭐가 제일 먼저 먹고 싶어?”

“그건 갑자기 왜 묻나?”

“내 마음이지. 혹시 알아? 조사하는 게 귀찮아서 널 내보내고 싶어졌을지도 있잖아. 나가면 나한테 고마워해.”

“무슨 소리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조사나 시작하지.”

나가면 분명히 죽는다.

조재죽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제 타깃은 자신이다.

이희도의 생각은 최대한 조사를 길게 받는 것이다.

교도소도 천지회의 손이 닿지만 아직 형을 확정받지 않은 지금이 그나마 자신이 가장 살 확률이 높다.

이 시간을 길게 늘여야 했다.

그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야 한다.

박현철이야 공매도 건에 크게 관여하지 못했고 했더라고 든든한 집안의 뒷배가 있으니 손을 대지 못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과 조재욱 같은 놈들은 쉽게 처리해 왔다.

“이봐, 강 검사. 내가 나가면 여론이 안 좋아질 텐데 괜찮겠어?”

“누가 너한테 관심이 있다고. 혹시 아나 뭐 좋은 정보라도 있으면 조사를 계속할지도 모르지.”

이희도는 머리를 굴려야 했다.

그에게 줄 만한 좋은 정보를 선별 중이었다.

“아니야. 귀찮아. 그냥 나가. 증거불충분입니다. 선배님. 다음에 술한잔 사 주시지요.”

강철중은 이희도를 보며 활짝 웃었다.

“아니야. 내가 조사를 성실히 받을 게 아직 자네에게 말 못 한 정보도 많은데.”

“괜찮습니다. 선배님.”

이희도의 두 눈동자는 지진이 난 듯 떨렸다.

그리고 그날 오후 석방되었다.

“하, 어디로 가지?”

구치소를 나온 이희도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자신이 갈 곳이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터벅터벅 걸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는 산책이 최고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다가온 승합차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

정훈은 의식을 잃은 이희도를 보았다.

한때는 AR그룹 산하 AR카드회사 사장이었던 그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는 무엇을 위해서 천지회에 들어간 걸까?

‘고작 이런 처지가 되려고?’

불쌍한 놈들.

천지회의 수뇌가 아닌 이희도 같은 도구들이 가장 불쌍했다.

더 높은 곳을 향한 찬란한 비상을 꿈꾸지만 대부분 땅속으로 오물을 뒤집어쓴 채 추락한다.

지금의 이희도가 딱 그 짝이었다.

정훈은 심문을 시작했다.

노란색 조명을 그의 얼굴에 쏘아 시선을 가렸다.

“이름”

“누구야 너희들?”

“누구라고 생각하나?”

“천지회겠군.”

목소리에서는 후회가 가득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당연한 거 아닌가? 조직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혔다. 살아 있는 게 신기한 거지.”

“20년을 충성한 대가가 고작 그런 것인가?”

“누구냐? 천지회가 아니구나. 아, 지난번 그놈이구나. 윤정훈.”

“훗 두 번은 안 당하는군.”

정훈이 대답했다.

“나를 뭐로 보고…….”

“뭐로 보긴, 생각도 없는 일회용품으로 보는 거지. 그러니 그런 짓이나 하지, 쯧”

“나를 납치한 이유가 뭐지?”

“납치? 누가? 나가고 싶으면 나가도 돼. 너를 감금한 게 아니야.”

이희도는 당연히 감금되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손발이 모두 자유로웠다.

“원한다면 나가도 좋아. 아,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당신을 찾으려고 혈안 돼 있던데……. 교도소에서 처리하려 했던 놈이 풀려났어. 이제 밖에서 죽이려 하겠지.”

정훈의 말을 들은 이희도는 입술을 깨물었다.

틀리지 않았다.

나가면 잔인한 고문 속에 죽는다.

특히 믿기 힘든 이석 회장의 장난 같은 고문은 소문으로만 전해지고 있었다.

잔인한 사이코패스에 버금간다는 흉흉한 소문이었다.

모두 그의 장난에 죽여 달라 애원한다고 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든 이희도는 살고 싶었다.

“원하는 게 뭔가?”

“증언. 이미 네 놈이 저지른 일을 실토해서 자료는 있어. 하지만 법정에서 증언을 해야지.”

“내가 증언하면 내 가족들이 위험해질 텐데.”

“풋, 뭐 증언하면? 천지회 놈들을 우습게 보는군”

문이 열리며 이희도의 아내가 들어왔다.

“여보, 괜찮아?”

“아니 어떻게 된 거야?”

“저분이 구해 주셨어. 납치돼서 끌려가는 중이었는데……. 희정이도 희수도 희원이도 다 안전해”

이희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천지회란 그런 곳이야. 네 아내와 딸과 아들을 납치해 가더군. 장소는 어딘지 알겠지? 양평에 있는 이석의 개인 별장으로 향하더군. 사실 나도 궁금했어. 정말 이석이 그런 짓을 할지. 그런데……. 내가 궁금하다고 사람 죽는 걸 보고 있을 순 없으니.”

“고, 고맙소.”

“인사보다는 증거와 증언이 더 필요한데……. 잘 생각해 보시오.”

정훈이 일어서 밖으로 나갈 때 이희도가 입을 열었다.

단단히 결심한 목소리였다.

“원하는 게 뭐든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그의 부정과 부패의 시작은 결국 가족이었다.

난치병인 딸 희정이의 병원비가 시작이었다.

촉망받는 수재, 사법시험 1차를 합격했던 그는 시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금씩 물들어 갔던 것이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면서.

정훈은 이희도를 보았다.

아내의 손을 잡고 눈을 감고 있었다.

이희도의 눈에 후회와 반성이 가득했다.

***

“이희도가 풀려났습니다. 강철중이 제멋대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뭘 어떻게 해!”

박현철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그것까지 일일이 이야기 해야 돼? 좀 알아서 해 이 새끼야, 당장 나가!”

“네.”

무안한 표정을 한 남자가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도대체 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거야.’

박현철은 이희도가 풀려나자 당황했다.

원래는 교도소에서 쉽게 보내려 했는데, 무리를 해서라도 구치소에 살해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 일을 빌미로 관리를 소홀히 한 강철중을 통영지청으로 보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일이 틀어져 버렸다.

순간 기분 나쁜 얼굴이 떠올랐다.

장인어른이 하는 일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새끼.

자신에게 한없이 소중했던 걸 빼앗은 놈.

윤정훈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다.

박현철은 일을 미루고 있는 한판수를 압박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한호 그룹으로 본사로 들어간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0층에 내렸다.

바닥에 깔린 붉은 카펫.

‘미친놈, 레드카펫이라니…… 하여튼 손 좀 봐줘야겠어.’

회장실 앞으로 가자 경호원이 자신을 제지했다.

‘하여튼 오늘은 걸리는 게 많군. 젠장.’

그대로 뺨을 후려쳤다.

“이것들이……. 내가 누군지 몰라?”

“지금 회의 중이십니다. 검사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박현철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전화기가 보였다.

손에 쥐고 그대로 경호원을 머리를 찍어 내렸다.

“이봐, 내가 왔으면 회의를 중지시켰어야지. 1층에서 연락 못 받은 거야?”

바닥에 쓰러진 경호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박현철은 회장실의 문을 열자 안에는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한판수가 자신을 보고 흠칫 놀랐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지. 다들 나가.”

박현철은 한판수라고 적힌 명패로 소파에 앉아 있던 한판수의 머리를 툭툭 내려쳤다.

“이봐, 내가 오면 당연히 회의를 멈추고 나를 기다려야지.”

“뭐 하는 짓이야?”

“저번에 흠씬 두들겨 맞고도 정신을 못 차린 놈이 있어서. 이봐, 윤정훈은 그냥 내가 죽일게. 한호 테크놀로지 내게 넘기게.”

“왜 이러는 거야? 지금 천성한이 움직이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주게”

“천성한이 움직이는 거 확실해?”

“물론이지. 블랙 요원들을 아무렇게나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좋은 소식을 들을 거야.”

긴장한 한판수가 박현철을 달랬다.

“뭐? 기다려?”

박현철은 손에 쥔 명패로 한판수의 머리를 강하게 내려쳤다.

-윽

“더 못 기다려. 그러니 알아서 해. 잡아다가 내 앞에 데려오든 아니면 약소대로 한호 테크놀로지를 넘겨.”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한판수가 다급하게 이야기했다.

“알겠네. 알겠어. 내 바로 이야기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아, 그리고 질질 끌어봐야 좋을 거 없어. 혹시 내가 스스로 무너지길 바란다면 착각이야. 나 박현철이야!”

“알겠네. 이제 그만 하게.”

박현철은 손에 들린 명패를 바닥에 팽개친 후 회장실을 나섰다.

오늘 한판수를 조진 이유는 나약했던 자신에 대한 반성이었다.

한판수가 움직여 윤정훈을 잡아 오면 모든 게 제대로 된다.

회장실을 나가는 박현철의 발걸음에는 희망이 가득 차 있었다.

***

“하아.”

“하악.”

남자와 여자의 거친 숨소리가 뒤섞였다.

두 사람의 거친 몸짓에 무너질 듯 요란하게 삐걱대는 침대가 마침내 조용해졌다.

천성한은 자신의 몸 아래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여인을 보았다.

땀으로 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큰 눈에 무섭도록 짙고 깊은 검은 눈동자, 긴 속눈썹.

그리고 이국적으로 높은 콧날.

주름 하나 없는 피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에는 여전히 미모와 신비로움이 가득했다.

“여전히 건강하시네요, 장관님.”

“아닙니다. 여사님.”

천성한은 여인의 몸을 만족시킨 자신이 뿌듯했다.

항상 그립지만 그녀와의 시간은 언제나 목숨을 걸어야 했다.

오랜만이라 더 애절하고 간절한 오늘이었다.

“이석 회장님이 잘하고 있습니까?”

그녀는 천성한의 질문에 활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잘 크고 있습니다. 회사도 완벽하게 장악했어요. 누구 자식인데요.”

여자가 품에 안겼다.

“하, 오늘은 당신 품에 더 있고 싶어요.”

“여사님도…… 참.”

난감한 표정을 지은 천성한이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

“이름 불러 줘요.”

“왜 그래……? 우리 인선이 무슨 일 있어?”

“아니요. 그냥 나이가 드나 봐요. 나이가 들수록 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점점 힘들어져요. 그 새끼가 몸에 손만 대도 소름이 돋아요.”

“후, 조금 힘내.”

“네.”

천선한의 전화기가 울렸다.

한판수였다.

“무슨 일이야?”

“지금 좀 만나지.”

“지금은 곤란한데.”

“쓸데없는 소리 말고 당장 나와.”

“뭐?”

천성한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이 새끼가 돌았나?’

“거기 어딘가? 자네 집무실 근처야.”

“그래? 알겠네. 장소 문자로 넣어. 당장 갈 테니.”

전화를 끊은 천성한은 품에 안긴 그녀를 보았다.

더없이 사랑스러운 그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여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가셔야 돼요?”

“아니”

걱정이 묻어 있던 하인선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오늘 아니면 우리 인선이를 언제 또 보겠어.”

“고마워요.”

하인선이 천성한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천성한도 그녀의 매끈한 살결을 쓰다듬었다.

다시 힘이 솟았다.

둘만의 내밀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둘이 누운 침대가 거칠게 흔들렸다.

천성한은 괘씸한 생각에 그를 기다리게 하고 싶었다.

어차피 급한 건 그였다.

“미친 거야? 두 시간을 기다리게 해?”

“차가 많이 막히더군.”

천성한은 아무것도 아닌 듯 대답했다.

“윤정훈을 처리해.”

“뭐? 기다리는 거 아니야?”

“박현철이 와서 난동을 피우고 갔어. 나약하게 무너질 놈이 아니었나 봐.”

“그래. 우리가 박현철을 너무 우습게 생각했군. 후훗 그럼 원하는 대로 시작하지.”

“언제 끝낼 수 있지?”

“알지 않나, 이일은 기약이 없어. 완벽하게 처리하려면 기다려야지.”

“알겠네. 수고하게.”

한판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흠, 어떤 년이랑 뒹굴다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년 향수 냄새가 내 코를 찌르는구먼. 아무리 급해도 샤워나 좀 하고 나오지 그랬나, 흐흐흐. 국방부 장관에 어울리지 않는 향기야.”

“뭐?”

천성한의 눈썹이 꿈틀댔다.

“왜 그리 놀라? 남자가 여자를 좀 품었다고 비난하는 게 아니야. 그냥 도대체 어떤 계집이 목석같은 자네를 흔들었는지 궁금해서 그러지. 하하하. 그럼 가네.”

한판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를 나가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천성한의 몸에 묻어 있던 향수.

분명 맡은 적이 있는 향기다.

누굴까?

향기의 주인이 궁금했다.

누구길래 여자를 돌로 보는 천성한을 움직였을까?

한판수는 한 번 조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천성한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새로운 목줄을 쥘 수도 있다.

***

정훈은 스타그룹의 본관 앞에 섰다.

한국 경제의 1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그룹이다.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스타그룹.

모두가 비판하며 모두 그곳에 발 담그기 위해서 노력한다.

자식이 그곳에 입사하면 플래카드를 붙인다.

계열사의 하청이라도 따내면 먹고살 걱정은 사라진다.

스타 그룹은 선망과 멸시의 대상이 되는 곳이다.

그곳의 젊은 수장 이석.

정훈은 곧 그를 만날 생각이다.

100조에 달하는 천지회의 손실을 그가 어떻게 처리할까 궁금했다.

그리고 스타 전지와 스타 전자를 그가 순순히 내어놓을지 궁금했다.

분관 1층으로 들어간 그는 안내 데스크로 갔다.

“이석 회장을 만나러 왔습니다.”

“약속이 되어 있습니까?”

안내 직원이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신화 그룹 윤정훈이 왔다고 전하세요.”

“네, 네 약속 잡고……. 윤정훈 회장님요?”

고개를 들어 정훈을 본 여직원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한편 회의실에서 천지회의 손실처리 문제로 회의를 주재하고 있던 이석은 윤정훈이 찾아왔다는 말에 흥미로웠다.

‘죽으러 온 건가?’

예전에 일송 그룹 송철호의 일화가 생각났다.

자랑스럽게 떠벌렸는데…….

윤정훈의 부모인 윤현중이 회사로 찾아왔을 때 한 번에 제거했다는 일화.

그때는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자신도 사실 느끼고 있었다.

윤정훈을 쉽게 제압할 수 없다.

그의 능력과 힘은 생각보다 더욱더 거대했다.

그리고 오늘 같은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 걸 이석 회장은 온몸으로 느꼈다.

이석 회장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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