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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113화 (113/200)

#113화

전산실의 문을 열자 뜨거운 공기가 훅하고 얼굴을 밀었다.

컴퓨터가 뿜어내는 서버실 열기가 대단했다.

평소 항상 쾌적했는데.

“여기 왜 이래요?”

“에어컨이 고장났어요. 오늘 수리가 안 된다네요.”

시계를 보았다.

이제 겨우 2시.

겨울이지만 서버실 온도는 빠르게 올라갔다.

“덥네요. 시작하죠?”

땀에 절은 차영미가 입을 열었다.

스타전자의 자금은 마카오를 통해 일본으로 흘러 들어갔다.

일본 최대 금융그룹 미아리 증권에 계좌가 있었다.

계좌 주인은 ‘검우회’였다.

“검우회?”

“네, 일본 검사들의 사조직인데 도쿄지검 특수부에 근무한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는 비밀 단체예요.”

“그게 인터넷에 있었어요?”

귀신같이 정보를 찾아내는 차영미의 실력에 놀란 정훈이 물었다.

“아니요. 일본 내각 조사실이랑 CIA 일본 지부를 털었습니다.”

천진혁이 덤덤히 말했다.

“이제 해킹은 제발……. 이게 몇 번째입니까?”

정훈이 그들을 질책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할 수 없었다.

대신 확인해야 했다.

“흠. 흔적은…….”

“당연히 남기지 않았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정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정리해 보면 스타전자에서 일본 검우회로 돈을 보냈다는 거죠?”

“네.”

“물론 지금은 보내지 않을 테고.”

“네.”

“이유가 뭘까요? 천지회, 스타그룹과 도쿄지검 특수부는 서로 연결이 안 되는데. 한 번 더 찾아보세요.”

“네.”

정훈의 말을 해킹 허락으로 들은 천진혁은 음흉한 조커 미소를 날렸다.

‘하, 저것들이…… 하지만 말린다고 될 것도 아니다.’

“흔적은 절대로.”

“남기지 않겠습니다.”

“이번에는 상대가 일본이니…… 적당한 선에서 서버도 좀 부수고 하세요. 절제하면서.”

“네!”

정훈이 공격을 허락하자 입이 귀에 걸렸다.

정훈이 전산실에 들어온 지 30분이 되지 않았지만 온몸이 땀에 젖었다.

“에어컨은 언제 고친다고?”

“내일요.”

“어떡해요?”

“괜찮습니다. 회장님. 저희는 이렇게 덥고 습한 데서도 열심히 일할 수 있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차영미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훈이 전산실 직원 전체를 보았다.

직원들의 얼굴에 하얀 가루가 묻어 있었다.

소금이었다.

그리고 옷도 소금기로 절여져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필수 인원만 남기고 퇴근하세요. 신화그룹의 근무환경은 업계 최고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일 안 돼요.”

“회장님 지시니 어쩔 수 없죠.”

정훈은 문을 열고 회장실로 돌아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휴식을 취했다.

한편 전산실의 고장났다던 에어컨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차영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전산실 직원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퇴근하세요. 오늘 이 차 팀장의 뛰어난 능력을 칭송하세요.”

“와 차영미 팀장님 대박!”

“존경합니다. 팀장님.”

하나둘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차영미는 가방을 챙겨 살금살금 밖으로 나가려던 천진혁을 불러세웠다.

“진혁아, 넌 아니지”

“네? 제가 왜요? 저 오늘 재활용 버려야 되는데.”

“너, 내가 미루지 말랬지. 어휴!”

“그리고 빨래도.”

“됐고. 시작해. 너랑 같이해야 제대로 조지지. 좀 있으면 오빠도 온다고 했으니 완전히 먹통으로 만들어 줘야지. 일본 검찰청, 어때?”

그때 전산실 문이 열렸다.

정훈이 안으로 들어왔다.

“회장님!”

“훗, 내가 이 정도 꼼수도 모를 줄 압니까?”

“죄송합니다.”

“사람들 다 내보내고 무슨 짓을 하려고?”

“아니 그게…….”

차영미가 우물쭈물했다.

“그냥 오늘 일본 놈한테 돈을 갖다 바치는 게 기분도 나쁘고 해서…….”

“그래서 한 번 털려고요?”

“네.”

“목표는요?”

“검찰청요. 대신에 살살 하겠습니다. 회장님.”

차영미가 어울리지 않게 조용히 말했다.

“안 돼요. 생각해 보니…… 영미 씨 말이 맞아요. 검찰청 서버 내 자료. 방위성 서버 안에 모든 자료. 그리고 내각 조사실까지 오늘 밤 탈탈 털고 서버도 불태워 버리세요.”

“네? 정말요?”

차영미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천진혁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신난 두 사람을 보며 정훈은 생각했다.

‘오늘 제대로 먹통으로 만들어 주지.’

***

“야마토 총장님”

“들어와”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금색 뿔테를 쓴 그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입금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뭐야?”

“언제부터?”

“지난 달부터 입니다.”

“그럼 황실로 가야 할 자금은 어떻게 했어?”

“보내지 못했습니다.”

남자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딱딱한 검은색 명패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남자의 머리를 찍어 내렸다.

“천황 폐하께 가야 할 성스러운 자금이 지체되다니.”

휘청이던 남자는 천황 폐하라는 말을 듣자 초인적인 의지로 몸에 힘을 가득 실었다.

꼿꼿이 몸을 세우며 천황 폐하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

야마토 총장은 다시 검은 명패로 남자의 팔뚝을 강하게 쳤다.

“이 새끼야 미리 말했어야지.”

“죄송합니다. 총장님.”

“나가.”

일본 검사들의 우두머리 검사총장 야마토는 숨을 고른 다음 전화기를 들었다.

“접니다.”

“네, 총장님.”

유창한 영어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입금이 되지 않았다는데 무슨 일입니까?”

“그게……. 스타그룹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제가 확인하고 조치하겠습니다.”

“빠가야로, 문제가 생기기 전에 해결해야죠. 조센징은 항상 그게 문제입니다. 문제가 터져야 일을 합니다. 쯧쯧 그러니 수십 년 동안이나 2등 시민이 된 겁니다.”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총장님 노여움을 푸시지요.”

“천황 폐하께 가야 할 자금은 신성한 겁니다. 절대 오늘 같은 일이 발생하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박현철은 기분이 언짢았다.

“야, 물가져 와!”

밖을 향해 소리쳤다.

물을 든 비서가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얼음물을 가져왔어야지 눈치 하고는, 쯧쯧. 나가 봐.”

“네”

욕을 먹으면 욕을 해야 기분이 풀린다.

박현철이 경험으로 아는 것이었다.

‘쪽바리 새끼가 힘 좀 있다고 설치기는, 천황은 너한테 신성하지, 나한테는 난쟁이 같은 놈일 뿐인데.’

박현철은 기분이 영 안 좋았다.

스타전자에서 들어가던 비자금을 해결하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렸다.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중요한 일은 직접 확인을 해야 한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스타그룹 회장실로 차를 몰았다.

“회장님 계시지?”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검사님. 죄송합니다.”

허리를 숙이며 양해를 구했다.

박현철의 손이 하늘로 치솟은 그때 안에서 낯뜨거운 여인의 교성이 흘러나왔다.

‘이 미친 새끼가…….’

박현철이 입구를 막은 그를 보았다.

무안한 표정을 한 채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후우, 물이나 한잔 가져와.”

박현철이 회장실 앞에 있는 소파에 털석 주저앉았다.

선대회장님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모두가 얼마나 큰 힘을 모았던가?

반상의 질서가 살아 있는 아름다운 세상.

사,농,공,상 이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유토피아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저 모자란 놈이 모든 걸 망치고 있다.

천지회의 주인이자 스타그룹의 회장을 보필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초상화 속 주인공들이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분노를 삭이고 있을 때였다.

몸의 절반도 가리지 않은 여인이 문을 열고 나왔다.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려도 누군지 알 만큼 유명한 톱스타였다.

“들어오시랍니다.”

회장실로 들어가자 더러운 열기가 박현철의 얼굴을 덥쳤다.

자신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졌다.

“무슨 일입니까? 연락도 없이.”

환하게 웃는 그의 표정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옛날 마약 수사할 때 보던 표정이었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입금이 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아차차 내가 지시를 안 했군요. 오늘 당장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네, 회장님. 돈은 민감합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이 일을 조공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상당히 불쾌해합니다. 신경…….”

“자네 말이 더 나를 불쾌하게 하는데. 알았어, 내가 지시할 테니 이제 그만 나가 봐. 자네 때문에 좋은 시간 날렸잖아. 젠장.”

박현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봐 기분 나쁜 거야?”

이석이 짜증을 부렸다.

그러고는 약통에서 약을 꺼내 입에 넣었다.

“아닙니다. 회장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무슨 약을 드십니까?”

박현철은 다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그런데 무슨 약이지? 설마. 아닐 거야, 황족이 저런 천박한 약을 할 리가 없어.’

“아버님께서 친히 챙겨 주신 약이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아들에게 주는 아주 드문 선물이지.”

이석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헌과 이석의 불편한 관계를 잘 알고 있던 그는 순간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만 나가 보시오.”

“네. 회장님.”

뒷걸음으로 방을 빠져나온 그는 자신의 자리에 있던 물을 한 번에 비웠다.

답답한 가슴을 뚫어 줄 무언가 필요했다.

스타그룹의 건물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바람 덕분에 한결 나아진 기분.

앞에 있는 빌딩의 전광판이 눈에 들어왔다.

‘신화 그룹 전 계열사, 가고 싶은 직장 50위 진입!’

‘신화 전자. 역대 최대의 실적 달성.’

‘윤정훈 회장 한국 최고 부호 눈앞’

신화라는 단어가 계속 눈앞에 보였다.

‘짜식 제법 하는구만. 그 정도면 다혜를 행복하게 해 주겠지.’

얼굴에 웃음이 살짝 걸리려 할 때 정신을 차렸다.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죽여야 해.’

하루 빨리 죽여야 한다.

그래야 다혜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를 죽여야 천지회도 스타그룹도 이상적인 국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정신 차려 박현철. 아무리 그가 특별하다고 해도 천한 놈의 자식일 뿐이야.’

박현철은 머리를 세차게 흔든 다음 거리를 걸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이고 싶었던 그에 대한 살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간 박현철은 혼자 저녁을 해결했다.

그리고 거실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았다.

9시 뉴스에 일본 정부 기관에 대한 대규모 해킹 공격이 보도되었다. 그리고 검찰청, 내각 조사실 방위성 서버에서 이상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낮에 일본검찰총장 때문에 기분이 나빴던 그.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지만 왠지 모르게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

“부르셨습니까?”

하인선의 향수가 천성한의 코를 자극했다.

천성한은 여사님의 갑작스러운 호출에 황급히 달려왔다.

그녀 앞에 내려진 가림막 때문에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짙은 향수는 서로 그리움을 달래는 둘만의 약속이었다.

그렇게 서로를 멀리서만 느꼈다.

“회장님의 용안이 손상되었습니다. 조사해 보니 윤정훈이란 놈이 그랬더군요.”

‘이 자식이 감히.’

천성한의 주먹이 파르르 떨었다.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하겠습니다.”

이제 한판수의 제안 따위는 상관없었다.

“그리고 그가 눈치챈 것 같습니다. 아니 분명히 눈치챘어요. 계획을 시작하죠.”

“어쩔 수 없군요. 조용히 정리하겠습니다. 이미 그가 가진 힘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쉽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제발 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보내주세요. 제 인생을 짓밟고 고통에 빠뜨린 자입니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하인선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 그만 가 주세요. 여기 더 계시면 제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요.”

“조금만, 더 참으세요.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함께할 수 있습니다.”

무뚝뚝한 그의 목소리가 깊게 떨렸다.

그의 떨림을 느낀 하인선은 대답할 수 없었다.

저주받은 운명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밖으로 나간 천성한은 정원에 있는 이헌을 보았다.

그에게 가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인사했다.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는 그는 천성한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무가 잘 자랍니다.”

“그러네요. 천 장관. 사람도 이리 잘 자라더군요. 내가 심은 게 아닌 것도 하하하.”

천성한의 얼굴이 붉어졌다.

‘협박이다. 죽여 달라고 노래하면 빨리 처리할 수밖에.’

“무슨 뜻이 십니까? ……송구합니다. 저는 약속이 있어 가 보겠습니다.”

“가 봐요. 다음에는 웃는 얼굴로 보면 좋겠습니다.”

“네.”

천성한은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자신을 기다린 부관을 보며 말했다.

“코드 제로 투입해.”

“지금 즉시 투입하겠습니다.”

코드 제로.

블랙 요원 중 가장 뛰어난 자에게 붙은 코드명이다.

천성한을 태운 차는 빠른 속도로 국방부로 향했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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