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125화 (125/200)

#125화

“오랜만입니다. 윤 회장.”

“잘 지내셨습니까? 한 회장님.”

정훈은 예의를 갖췄다.

“죽지 못해 살고 있지요. 윤 회장 덕분에 회사가 많이 쪼그라들었습니다.”

한판수는 정훈에게 적의를 보였다.

그는 대한은행 매각 때 천지회를 배신한 대가로 몇 개의 계열사를 뺏겼다.

남들 같으면 목이 잘렸을 일이었다.

재벌 회장인 덕분에 그는 계열사를 넘기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래도 저한테서 산 연기군 땅은 제대로 빼돌린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한은행의 인수가를 정훈에게 넘겨준 한판수는 정훈의 땅 20만 평을 샀다.

신행정 수도 특별법이 통과된 다음 땅값이 몇 배나 올랐다.

하지만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그의 땅값이 폭락했다.

정훈에게 샀던 가격 밑으로 내려갔다.

“크흠, 내가 땅 욕심만 부리지 않았어도…… 쯧. 이제와서 후회하면 무엇 하겠나.”

그의 얼굴에 후회가 가득했다.

“시세가 매입하신 금액보다 떨어졌다고 들었습니다.”

“크크크, 왜 관심있나?”

“파실 생각은 있습니까? 지금 얼마나 가지고 계십니까?”

“지금 50만 평 가지고 있지. 그곳에 거대한 나의 제국을 건설하려 했지. 하하하. 그런데 위헌이라니…… 박수길 이 미친 노인네가 내 앞길을 제대로 막았어.”

“그 땅 파시죠.”

“얼마에 살 텐가?”

“50만 평이면 5천억 어떻습니까?”

“뭐?”

‘행정수도가 취소된 쓸모없는 땅을 5천억? 돈이 그렇게 많나? 아니면……’

“미친 건가?”

“불쌍한 사람 도와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불우이웃돕기 뭐 그런 겁니다. 아시겠지만 제가 한 회장님 돈으로 많이 벌지 않았습니까?”

정훈은 한판수를 보며 비아냥거렸다.

정훈은 그에게 땅 판 돈 이천억을 이리저리 굴려 몇 배로 불렸다.

하지만 그는 전혀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한판수의 눈에 서늘한 살기가 그려졌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많이 변해 있었다.

“얼굴이 많이 안 좋습니다. 요즘 무슨 일 있습니까?”

개기름이 줄줄 흐르던 그때와 달리 푸석푸석한 피부와 휑한 눈.

한판수가 돈이 없어 영양실조는 아닐 텐데…….

심함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은, 자네한테 작업당한 뒤로 제대로 되는 게 없어서 그렇지.”

“여의도에 소문이 파다합니다. 그룹 내에 현금도 제대로 돌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네.”

허세 좋게 이야기했지만 심각했다.

신성장 동력으로 차세대 에너지원인 태양광, 풍력, 수소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상황.

현금이 없어서 투자를 연기한 상황이었다.

태양광은 자본이 많이 필요한데 큰일이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한판수의 귀에 정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 회장님 조건이 있습니다. 방위 산업체 한호 테크놀로지도 같이 팔아야 합니다. 어차피, 돈도 안 되는데 이래저래 귀찮기만 하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소린가, 한호 테크놀로지가 얼마나 황금알을 낳는 기업인지 모르나?”

한판수가 얕은수를 썼다.

“그래 봤자 적자 기업입니다. 정부가 좌지우지하는 별 볼 일 없는 회사입니다.”

정훈은 일부러 한호 테크놀로지의 가치를 폄하했다.

한판수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그려졌다.

한호 테크놀로지는 그룹의 뿌리다.

매각은…… 예전 같으면 불가능했을 텐데…… 지금은 솔직히 흔들렸다.

한판수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그의 전화기가 울렸다.

한판수는 정훈을 힐긋 본 다음 전화를 받았다.

받기 싫어하는 얼굴이었다.

“무슨 일인가?”

“군 인사가 있을 거야. 50억이 필요해. 정치권으로 들어갈 돈이야. 내일까지 보내게.”

“뭐? 50억을 내일까지?”

“당장 보내게”

그 말을 한 다음 천성한은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한판수의 입에서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이런 개새끼가……”

조폭같이 무식한 새끼.

자신의 약점을 잡고 이렇게 돈을 뜯어냈다.

자신은 어느새 천선한의 ATM기가 되어 버렸다.

정훈은 한판수를 보았다.

그의 얼굴이 심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괜찮습니까? 50억은 무슨 말입니까?”

“자넨 알 것 없네.”

정훈은 다시 한판수를 재촉했다.

“토지와 한호 테크놀로지를 함께 사겠습니다.”

“얼마에 살 텐가?”

“1조 원 이상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훈은 2조를 부를까 하다가 생각을 고쳤다.

몇 번의 협상을 거친 다음 2조에 살 계획이었다.

“너무 헐값인데.”

“그 회사 저 아니면 살 사람 없습니다. 연기군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한판수는 눈알 굴리는 소리가 나도록 머리를 썼다.

윤정훈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땅도, 회사도 지금 살 수 있는 사람은 윤정훈의 신화그룹밖에 없었다.

‘1조? 하 젠장.’

1조는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

“2조 5천억 어떤가?”

“그 정도 돈은 없습니다.”

정훈이 입꼬리를 말며 웃자, 한판수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뭐? 돈이 없어? 장난하나, 신화조선해양이 조선업 초호황으로 매년 수조 원을 쓸어 담지 않나? 거기다 신화 중공업, 신화 미포조선……. 마지막 신화전자의 반도체는 수십조를 쓸어 담는데 돈이 없어?”

한판수의 목소리가 커졌다.

“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했네요. 회장님께 쓸 돈은 그게 다란 말입니다.”

“뭐야!”

“냉정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1조 5천억도 작지 않은 돈입니다.”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노려본 다음 입을 열었다.

“크흠 알겠네.”

“가 보겠습니다.”

정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장실을 나갔다.

한판수가 배웅했다.

한판수가 코를 킁킁했다.

“자네가 쓰는 향수인가?”

“아닙니다. 저 새끼가 쓰는 겁니다.”

회장실 앞 소파에 앉아서 시집을 읽고 있는 은수를 가리켰다.

‘하인선과 같은 향수를 쓰는데…… 왜 저렇게 닮았지?’

한판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그래, 내 전화하지. 전향적으로 생각하게 한호 테크놀로지 좋은 회사야.”

한판수의 얼굴에 비굴함이 느껴졌다.

재벌 회장이 돈 앞에 쩔쩔매는 상황.

한호그룹의 위기가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한판수는 심각하게 똥줄 탄 게 분명했다.

그가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하다니…….

돈을 주고 빨리 처리할까?

아니면 시간을 끌며 가격을 후려칠까?

정훈은 무엇이 더 한판수를 괴롭힐 수 있는지 고민했다.

“야, 저 회장은 왜 날 째려보냐?”

“한판수가?”

“응, 한참 쳐다보던데……. 내가 좀 잘생겼지. 흐흐흐.”

“네가 자기 취향인가 보지.”

“야 이 개새끼야.”

은수는 거친 욕설을 내뱉은 다음 오른 다리를 들어 정훈의 엉덩이를 차려 했지만, 오늘은 실패했다.

-퍽

-윽

-쿵

은수의 온몸에서 힘이 빠지며 무릎이 바닥에 쿵하고 닿았다.

그리고 머리가 바닥에 닿았다.

“너도 한 번 당해 봐. 얼마나 아픈지……. 흐흐흐.”

엘리베이터 안, 배를 움켜쥔 채 파르르 떨고 있는 은수를 보았다.

오랜만에 정훈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가득 찼다.

***

곽현수에게 전화가 왔다.

“잡았습니다. 인천 창고로 데려가겠습니다.”

“네, 저도 출발하겠습니다.”

정훈은 은수와 함께 인천으로 갔다.

얼마 전 곽현수에게 사람 하나를 잡아 오라고 시켰다.

대원각에서 본 직원이었다.

한때 수금재의 매니저였던 여자.

정훈이 지금까지 은밀히 찾고 있었지만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 대원각에 있었다.

수금재와 대원각, 그리고 각 대도시에 있는 의심 가는 회원제 요정.

냄새가 났다.

그리고 만약 자신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정보를 쥐고 있는 게 분명했다.

수금재에서 확보한 정보만 해도 회원들의 치부가 가득했다.

그들의 더러운 욕망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름?”

“박향미.”

“주소”

“중화인민 공화국…….”

곽현수는 인상을 찡그렸다.

“다시 이름”

“천미향”

“주소”

“파리 14구……”

지켜보던 정훈도 혀를 찼다.

“제대로 훈련받은 거죠?”

“네.”

이름도 나이도 계속 다르게 대답했다.

한참을 신문했지만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모든 정보가 가공의 것이었다.

차영미도 의문의 여인을 조사했지만 나오는 것이 없었다.

대한민국에 어떤 정보도 없는 여자가 눈앞에 앉아 있었다.

“고문을 할까요?”

“아니요. 그걸로 될 것 같지 않네요.”

어떻게 하면 입을 열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을 거듭했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그녀의 전화벨이 울렸다.

곽현수가 눈치를 주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보세요.”

“지금요? 내일까지 보내 드릴게요. 제가 지금 일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수술 잘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끊은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와줄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죠?”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훈은 그녀의 전화기를 들고 전화를 걸었다.

“거기 어딥니까?”

“백윤자 씨?”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훈이 대답했다.

“친구입니다. 윤자가 걱정이 많던데 무슨 일입니까?”

“코코 수술비를 내지 않아서요. 오늘은 수술을 해야 하는데…….”

“얼마죠?”

“200만 원입니다.”

“윤자가 사기를 당해서 많이 힘들어합니다. 그냥 안락사 부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정훈은 백윤자를 보았다.

눈동자가 심각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뭐 애완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겠죠.”

그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 안돼. 코코를 살려 주세요.”

“살려 줄 수 있습니다. 당신 행동에 달려 있어요.”

정훈의 말에 그녀의 얼굴에 깊은 주름이 그려졌다.

정훈은 다시 그녀를 압박했다.

“다음 생엔 나쁜 짓 하지 마세요. 당신 때문에 오늘 코코도 함께 죽겠네요.”

“아, 안 돼요. 다 말할게요. 제발 코코만은 살려 주세요. 다 말할게요. 우리 코코 불쌍한 아이예요. 우리 코코는요 몇 번의 파양을 거쳐……”

“그런 건 관심 없습니다.”

정훈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제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

“네.”

정훈은 그녀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한 번 무너진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정훈의 질문에 수업을 하듯 상세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수금재와 대원각의 주인은 같았다.

이곳 말고 전국 대도시 근교에 영업장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회원들의 약점을 쥐는 것이다.

강남에 있는 유명한 텐프로도 관리한다고 했다.

정 마담은 대원각의 최고 책임자였다.

그녀의 뒤에 더 높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자신이 아는 건 거기까지였다.

서울에 있는 대원각.

정·재계 사람들의 약점을 얼마만큼 쥐고 있는지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쏟아졌다.

그들은 재벌 회장님과 그의 자제들에 대한 은밀한 비밀을 쥐고 있었다.

거기엔 한판수의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도 있었다.

“한판수가 성폭행을 했다고?”

“아니요. 그건 만들어진 거예요. 그렇게 보이도록 편집해서 한판수를 협박했어요.”

“왜? 이유가 뭐죠?”

“그건 몰라요. 시키는 것만 해요.”

정훈은 박수길의 이름을 물었다.

“박수길은?”

“그자도 마찬가지예요. 겉으로는 인자한 척하지만 제일 더러운 놈이에요. 제일 깨끗한 것만 찾죠.”

“무슨 뜻이지?”

“항상 처녀만 찾죠.”

“뭐?”

정훈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전직 대법관의 가면 뒤에 숨어 있던 그의 본 모습이었다.

“설마, 구한수도 있나?”

“그건…… 모릅니다.”

그녀는 모른다고 했다. 처음 듣는 답변이었다.

분명 아주 잠깐 갈등했었다.

정훈은 묻지 않기로 했다.

‘정 마담한테 물어보면 되겠군’

대원각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정훈은 대원각을 밀어 버릴 생각이었다.

박창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까지 미뤄 둔 강남을 접수해야 할 시간이었다.

“이제 강남을 접수해야겠습니다.”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내일이라도 당장 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정훈은 대원각을 없애며 강남도 정복하기로 결정했다.

***

은수를 데리고 대원각을 갔다.

오후의 대원각은 적막했다.

안으로 들어가 정 마담을 만나러 왔다고 통보했다.

매니저로 보이는 직원이 정훈과 은수를 깊숙한 밀실로 안내했다.

“곧 오실 겁니다.”

얼마 후 정 마담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은수를 빤히 쳐다봤다.

‘이 향수는 여사님이 쓰는 건데…… 많이 닮았는데.”

“어쩐 일입니까? 윤 회장님.”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한 그녀는 정훈 앞에 앉았다.

“여기와 수금재가 같은 소속입니까?”

정마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으시네요.”

“그런가요? 더러운 짓을 일삼는 여기를 가만히 둘 수 없잖아요.”

“마음대로 지껄이세요. 어차피 살아 나가실 수는 없습니다.”

정 마담이 본색을 드러냈다.

“네?”

정훈은 당황한 척 손을 떨었다.

‘역시 천지회와 관련이 있어. 자신을 노리는 걸 보면 천지회와 우호적인 게 분명하다.’

정마담이 자리에 일어서 밖으로 나가려 했다.

정훈이 은수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은수가 그녀의 앞을 막았다.

“여기 주인은 누구지?”

“생긴 건 예쁘장하게 생겨서 말이 짧군요.”

“예쁘장하게?”

은수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은수의 콤플렉스를 건드렸다.

“은수야, 안 돼!”

정훈이 은수를 제지했다.

“이곳의 주인은 누굽니까? 말하면 살려 드립니다.”

정훈이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훗, 누가 누구를 살립니까? 회장님.”

문이 열리며 십여 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보였다.

손에는 날카로운 칼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정 마담도 자신의 스커트를 올려 허벅지에 있던 날카로운 칼을 꺼냈다.

“고통스럽게 죽여 드리겠습니다.”

“글쎄요. 저는 이런 것들을 싫어하는 성격입니다.”

정훈의 얼굴에 쓴웃음이 그려졌다.

그리고

꽝하는 굉음이 적막한 대원각을 뒤덮었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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