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오후의 석양에 금빛 모래가 반짝이며 빛났다.
정훈은 신화건설 사장과 금강을 보았다.
반짝이는 물결이 아름다웠다.
이곳을 최대한 아름답게 개발하고 싶었다.
“개발하기에는 너무 아름답습니다. 회장님.”
“그럼 아름답게 개발해야죠.”
“금액이 많이 들 것 같습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영화 벅시 보셨죠?”
“라스베이거스를 만든 벅시 시걸 이야기 말씀이십니까?”
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수홍은 정훈을 보았다.
석양이 그의 뺨을 물들였다.
붉게 물든 그의 얼굴에서 젊은 야망, 아니 대망(大望)이 느껴졌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꿈의 크기가 이수홍을 압도했다.
‘어떻게 여기서 그런 상상을 한 거지? 이곳에 제국의 기틀을 쌓는 건가?’
실로 경외감이 들었다.
그도 제국의 건설에 일조하고 싶었다.
“회장님, 부탁이 있습니다.”
정훈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세계적인 건축가를 초빙하겠습니다. 저도 꿈의 도시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21세기에 자신의 제국을 건설하는 남자.
과연 지금 지구상에 누가 존재할까?
그건 이수홍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도 여기에 자신의 인생을 건 것이다.
한양의 기틀을 세운 정도전까지는 아니겠지만 이 거대한 토목 공사에 신화건설 사장 이수홍이란 이름을 남기고 싶었다.
문득 불안이 그를 엄습했다.
만약 행정복합 도시가 건설되지 않는다면.
이 텅 빈 공간을 차지할 관공서가 옮겨오지 않으면?
걱정스러운 얼굴로 회장님을 보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면 신화 그룹이 옮겨 오면 됩니다.”
울산광역시가 해외에 울산이 아니라 영산시로 소개되었다.
울산에 있는 무수한 영산그룹 계열사 때문이었다.
신화의 모든 회사를 이곳으로 옮기면 문제없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참 동대문 R&D 센터랑 판교 테크노밸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신화건설에서 진행 중인 사업이 궁금했다.
“둘 다 곧 준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테크노밸리도 분양을 마쳐 각 기업이 사옥을 짓기 시작할 겁니다.”
“생각보다 빠르네요. 신화그룹 본관은요?”
“내년이면 모든 그룹이 입주할 수 있습니다.”
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잘 마무리하세요.”
“네.”
정훈은 이수홍과 근처에서 유명한 어탕국수를 먹고 헤어졌다.
서울로 올라가며 신문으로 드래곤 자동차 매각 계획을 확인했다.
드래곤 자동차는 한국에서 유일한 SUV 전문 자동차 회사다.
선재그룹에 인수되었다가 그룹이 해체되면서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매력적인 회사지만 천문학적인 부채와 강성 노조 때문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두 문제가 정훈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반드시 가져야 하는데…… 일단 머스크와 애플의 후광을 입으면 날개를 달 텐데…….’
지금은 적자지만 막대한 흑자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드래곤 자동차를 인수해 미국의 테슬라와 합병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지다.
혼자 생각할 필요 없다.
곧 잡스가 한국에 들어온다.
머스크에게도 전화해 한국으로 들어와 달라고 했다.
***
애플의 R&D센터는 지금까지 극비로 진행되었다.
동대문에 건설 중인 거대한 원형 건물을 모두 궁금해했지만 주인을 알 수 없었다.
신화그룹 계열사의 건물이란 소문만 돌고 있었다.
준공식이 시작되었다.
궁금증을 가득한 기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정훈은 외신기자들도 초대했다.
그리고 텅빈 무대위에 잡스가 올랐다.
“어 잡스다.”
“애플의 잡스 맞습니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늘 동대문에 애플의 R&D 센터 문을 열었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아이팟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합니다.”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과 신제품 발표에 넋이 나간 기자들.
정신을 차리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렸다.
잠시후 그는 전 세계 기자들을 상대로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다음으로 정훈이 무대에 올랐다.
잘생긴 얼굴과 큰 키. 그리고 완벽한 정장 핏이 무대에 선 그를 빛나게 했다.
“기술이 미래를 지배합니다……. 세계 최고의 기술이 여기서 개발될 겁니다. 이제 이곳이 애플과 신화의 미래가 될 겁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제품 발표와 센터 소개가 끝나고 간단한 연회가 시작되었다.
정훈이 잡스에게 물었다.
“마음에 듭니까? 생각한 대로 건설되었습니까?”
“물론입니다. 제 머릿속에 있는 게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스터 윤.”
잡스는 들떠 있었다.
“좋네요. 아이팟은 실적이 어떻습니까?”
“언빌리버블. 미스터 윤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성공할 수 없었을 겁니다.”
아이팟의 성공을 알고 있었다.
성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마케팅에 집중적으로 돈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원래 역사보다 2배 더 크게 성공했다.
“직원들이 고생하셨죠.”
“올해 1억 대는 기본으로 판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발매된 4.5세대도 순항 중입니다.”
“20만 대만 한국으로 보내주세요. 신화 그룹 직원들에게 선물하고 싶군요.”
“네. 최신형으로 준비하겠습니다.”
샴페인으로 목을 축인 정훈은 잡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동차 회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잠깐 생각한 그가 되물었다.
“……자율주행 말씀입니까?”
“역시, 제 생각을 바로 알아챘군요. 우리 애플도 준비 중이죠?”
“네. 비밀 프로젝트 가동 중입니다.”
“이번에 자동차 회사를 인수할까 합니다. 차세대 자율주행차에 도전해 도시겠습니까?”
“안 할 이유가 없습니다. 자동차 회사가 있으면 빠르게 테스트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물론 양산도 쉽게 할 수 있고요.”
“그럼 애플에서 지휘해 주세요. 소프트웨어 능력은 그쪽이 세계 최고 아닙니까?”
정훈의 칭찬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때 멀리서 머스크가 정훈을 향해 소리쳤다.
“하이, 미스터 윤. 잘 지냈어요?”
쾌활한 목소리였다.
“네, 사업은 잘되고 있죠?”
“물론입니다. 우리가 뭘 개발하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요?”
“자율주행 전지 자동차 아닌가요?”
옆에 있던 잡스가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어떻게 알았습니까?”
“이미 실리콘 밸리에 소문이 파다합니다.”
“영광입니다. 잡스가 관심 가져 주시다니……. 머스크입니다.”
“잡스입니다. 생각보다는 정상이군요.”
두 천재가 정훈 앞에서 서로 악수를 하고 있었다.
용호상박.
친해질 수 있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서열을 정해야 한다.
언제나 선공은 젊은 사람이 한다.
“우린 이미 애플이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앞서 있습니다.”
잡스는 그를 보고 슬쩍 웃었다.
“연구실에서 만든 건 차가 아니죠. 장난감일 뿐입니다. 우린 곧 완성차 업체를 인수할 겁니다.”
“네?”
흠칫 놀란 그.
앞서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완성차 업체를 가지는 건 수준이 다른 문제다.
완성차 업체가 있으면 양산화 속도를 몇 배나 앞당길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천재들이 많죠. 애플이 돈 싸움을 할 때 우린 기술력으로 대적할 겁니다.”
“훗, 기술도 우리가 압도적일 겁니다.”
잡스가 그를 비웃었다.
머스크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에서 끝내야 한다.
둘의 협업이 중요하다.
“자, 그만하고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협력이라니요?”
“애플의 소유주이자 테슬라의 주요 주주로서 부탁하는 겁니다.”
잡스와 머스크가 깜짝 놀랐다.
“아니 애플을 언제 가진 겁니까?”
“아니 테슬라에 언제 투자했습니까?”
두 사람은 믿기 힘든 표정으로 정훈에게 물었다.
“그거야 가격이 좋을 때죠.”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었다.
좋은 것은 쌀 때 왕창 사는 거다.
“앞으로 테슬라와 애플이 협업해서 좋은 자율주행 전기 자동차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에 강점을 가진 테슬라.
소프트웨어 기술력과 사용자 경험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애플.
그리고 튼튼한 자동차를 만드는 드래곤 자동차.
테슬라와 애플, 그리고 앞으로 정훈이 손에 쥘 드래곤 자동차의 삼각 동맹이 체결되는 순간이었다.
준공식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간 잡스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받으셨습니까? 디자인이나 성능은 어떻습니까?”
“최고입니다.”
얼마 전 애플에서 받은 20만 대의 아이팟 리미티드 에디션이 오늘 직원들에게 배송된다.
정훈은 우선 전산실 직원 전부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보스, 어쩐 일이세요?”
차영미가 물었다.
“선물입니다.”
“허, 이번에 나온 리미티드 에디션 맞습니까?”
천진혁의 얼굴에 웬일로 자연스러운 기쁨이 보였다.
연습을 많이 한 것이 눈에 보였다.
“네, 맞습니다. 상자에 친필 사인도 있습니다. 가보로 보관하세요.”
“감사합니다. 보스.”
“땡큐, 보스.”
“다들 좋아 보이네요.”
“뭐,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보스가 천성한 무릎을 결딴낸 것이 조금은 위로가 됐어요.”
차영미가 아쉬운 듯 말했다.
“기회가 오면 꼭 복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네, 보스. 기다릴 거예요.”
차영미의 눈에 천성한을 찢어 죽일 듯한 분노가 서렸다.
“자, 오늘 선물도 줬는데 오랜만에 회식 한번 할까요?”
“아니요. 제가 저녁에 선약이 있습니다.”
“저도 오늘은 몸이 좀……’
“알겠습니다.”
‘하, 대 재벌 회장이, 보스가 회식하자는데……’
역시 갑작스러운 회식 제안은 참았어야 했다.
괜히 꼰대처럼 보였다.
정훈은 깨달았다.
나이가 아니라 자리가 사람을 꼰대로 만들었다.
정훈은 아이팟을 챙겨 1층으로 내려갔다.
관리실에 있는 지현복에게 갔다.
“회장님, 여긴 어쩐 일입니까?”
“좋은 물건이 생겨서요. 선물입니다.”
“뭡니까?”
“음악 들을 때 쓰세요. 음악 좋아하잖아요.”
“네?”
‘내 취미를 어떻게 알았지? 혹시…… 취향이 그쪽인가? 곤란한데.’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현복은 갑작스러운 선물에 당황했다.
정훈은 그가 음악을 사랑하는 걸 알고 있었다.
회귀 전 그의 집에 갔을 때 집 안에 있던 값비싼 스피커를 보았었다.
“별거 아닙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여기 있을 겁니까? 차영미 씨 때문입니까?”
“서로 풀어야 할 게 많아서요. 아직 불편해합니다.”
지현복은 전산실 소속인데 인사 명령을 계속 거부하고 있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며 차영미가 들어왔다.
예상치 못했던 정훈의 등장에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보스.”
“어쩐 일입니까?”
“아, 지현복 씨에게 할 말이 있어서요.”
“그럼, 자리 피해 줄 테니 이야기 나누세요.”
“아니에요. 한마디만 하면 돼요. 제가 지현복 씨보다 직급 높은 거죠?”
“네.”
정훈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현복 씨 내일부터 전산실로 출근해욧. 막내니까 아침에 제일 일찍 와서 청소하는 거 잊지 말고.”
“네?”
지현복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뭐야? 막내가, 감히 팀장이 말하는데 못 알아먹은 거야? 다시 말해 줘?”
“아, 아닙니다.”
“내일 아침에 뭐 하라고?”
“청소하라고…… 하셨습니다.”
“청소는?”
“깨끗이!”
차영미가 전설의 블랙요원을 쥐잡듯이 잡았다.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전설도 막내가 되자 어리바리 순해졌다.
어쩌면 지현복은 차영미의 성격을 간파했던 게 아닐까?
그래서 피한 걸까?
정훈의 머릿속에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
드래곤 자동차를 인수하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인수를 위한 전제 조건.
이 사람이 없으면 드래곤 자동차를 인수할 이유가 없다.
정훈은 그를 만나기 위해 독일로 갔다.
하노버 공항에 내려 동쪽으로 70km를 달렸다.
연간 200만 명이 방문하는 독일 제1의 자동차 도시 볼프스부르크에 도착했다.
아우토슈타트.
초현대적인 건물이 곳곳에 배치되어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가 설립한 자동차 테마파크.
사람들은 이곳에서 차를 구매하고 직접 받아 간다.
자동차 공장도 견학할 수 있다.
정훈은 아우토슈타트 명물 유리 자동차 타워인 카 타워(Car Towers)를 찾았다.
48m 높이의 타워에 400대의 자동차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자동차가 공장에서 이곳으로 오는 것을 본다.
고객들은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을 만끽한다.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정훈도 언젠가 이곳과 같은 센터를 한국에 지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시계를 보았다.
약속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지만 정훈은 먼저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카페에 자리 잡은 다음 자신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회귀 전 그가 이룩한 업적들을 떠올렸다.
영산 자동차가 인수한 아현 자동차에서 그의 손을 거친 차들이 출시되었다.
판매량이 폭발하면서 주가가 무려 10배가 뛴다.
한 천재가 쓰러진 회사를 일으켜 세웠다.
그 이후로도 아현자동차는 디자인 돌풍을 일으키며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승승장구한다.
각종 디자인 대회에서도 상을 휩쓸었다.
-띠링.
한적한 카페의 문이 열렸다.
큰 키의 독일인이 푸른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폭스바겐 아우디의 수석디자이너 피터 글래이더.
그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삼고초려든 납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한국으로 데려가야 한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