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132화 (132/200)

#132화

“피터 글라이더입니다.”

큰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신화 그룹 윤정훈 회장입니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서로를 탐색했다.

“신화 그룹에는 자동차 회사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네, 아직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자동차 디자이너 입니다. 저를 만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자동차 회사가 없어서 이번에 회사를 살까 합니다.”

피터 글라이더는 피식 웃었다.

“완성 차 제조업은 쉬운 게 아닙니다. 자동차에는 2만 개가 넘는 부품이 들어갑니다. 그만큼 회사 운영이 까다롭죠. 강성 노조도 잘 구슬려야 되고요.”

“제조업이라면 이미 많습니다.”

정훈은 그에게 신화그룹의 계열사를 설명했다.

약간 놀란 얼굴이었다.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규모가 크군요. 이 정도 회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성장률이 너무 빨라서 그럴 겁니다. 가끔 저도 무서울 정도 성장하거든요.”

“하하하, 젊은 회장님은 보통 동양인들과는 다르군요.”

“무슨 뜻인가요?”

“동양인들은 겸손한데 회장님은 그렇지 않아서요. 서양인들에겐 그 모습이 매력적이죠.”

“저도 들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더군요.”

“네.”

정훈은 준비했던 자료를 그에게 건넸다.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드래곤 자동차입니다.”

그는 서류를 빠르게 넘겼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의견이 궁금하네요.”

“제 생각엔 인수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형편없는 회사입니다. 디자인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습니다.”

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 인수하고 싶은데요.”

“무슨 뜻이죠?”

“디자인만 갖춰지면 좋은 회사가 되지 않습니까?”

갑자기 글라이더의 얼굴이 굳어졌다.

“미스터 윤, 자동차 디자인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에요. 기술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디자인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기술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기술과 디자인은 따로 떼서 생각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단호한 그의 목소리와 확신에 찬 말투.

솔직히 당황했다.

덩치가 큰 사람이 작정하고 말할 때 정훈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밀릴 수 없는 일.

“우리가 애플을 가지고 있는 건 알고 있습니까?”

정훈은 그에게 아이팟을 내밀었다.

“아니, 언제 애플을 인수했습니까?”

역시 좋은 회사를 가지고 있으니 자신에 대한 그의 태도가 바뀌었다.

당장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애플을 인수할 정도면 디자인에 대한 감각은 있는 것 같군요.”

“물론. 거기다 우린 완벽한 자율성을 보장합니다. 당신이 말한 기술력? 솔직히 돈을 때려 박으면 1~2년 안에 폭스바겐도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은 다릅니다. 누가 책임지는가에 따라 달라지죠.”

글라이더는 놀란 표정이었다.

“생각보다 기술과 디자인에 대한 조예가 깊군요. 하긴 그러니 회사가 그렇게 성장하겠죠. 무례를 사과드리죠.”

“괜찮습니다. 같이 드래곤 자동차를 일으켜 볼 생각 없습니까? 모든 권한을 주겠습니다.”

정훈이 말을 마치자마자 피터 글라이더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띠었다.

“정말 좋은 제안입니다. 작은 회사에 들어가 성장시킨다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하지만, 저는 폭스바겐에서 좀 더 일하고 싶습니다. 폭스바겐에서 제 이름을 남기는 것과 드래곤 자동차에 저의 이름을 남기는 건 너무 차이가…….”

거절이었다.

사실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인 그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자리임은 분명하다.

“파격적인 연봉도 줄 수 있습니다.”

글라이더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팔을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오늘 좋은 제안 감사합니다. 저를 좋게 본 거겠죠. 제가 선약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자동차 디자이너 피터 글라이더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갔다.

정훈은 아쉬운 표정으로 그가 나간 문을 한동안 멍하니 보았다.

“뭐, 한 번에 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고…….”

삼고초려.

유비도 세 번을 간청한 후에 제갈량을 얻었다.

미래 모빌리티를 지배하기 위해선 그가 필요했다.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해 봐야 한다.

정훈의 눈에 투지가 솟아올랐다.

***

늦은 시간 폭스바겐 디자인 연구소의 불은 대부분 꺼져 있었다.

일과 여과를 중시하는 유럽 회사에 야근은 거의 없다.

하지만 글라이더는 신차 디자인 때문에 퇴근할 수 없었다.

가족들과의 화기애애한 저녁은 물 건너간 지 오래다.

오늘 들어갈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얀 도화지 위에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 모양을 그려 내던 그의 손이 멈췄다.

“휴……. 오늘은 여기까지만.”

오늘 일을 마친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새로운 디자인의 차가 그의 손에서 탄생하고 있었다.

의자에 기대 천장을 본 그는 문득 낮에 만난 젊은 사업가의 제안을 생각했다.

‘디자인 최고 책임자 CDO Chief Design Officer.’

지금껏 들어 보지 못한 새로운 직책.

그는 CEO보다 더 크고 막강한 권한을 보장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시아 사람들의 겉과 속이 다른 건 예전에 일본인들과 일할 때 여러 번 경험했다.

그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술 맹신주의에 빠진 신흥국.

기술이 모든 것에 우선되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은 부재하고 예술적 감각이 전무한 임원들에 의해 디자인이 결정되었다.

오직 예술에 대한 철학이 확고한 유럽에서만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그것이 유럽 제조업과 산업의 은밀하고 중요한 경쟁력인 걸 그들은 모르고 있다.

‘하긴 그들이 아직 우리 예술을 이해할 수준은 아니지.’

그런 낙후된 기업의 최고 책임자를 할 바에는 폭스바겐 디자인 연구소의 경비를 하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다.

글라이더는 가방을 챙겨 퇴근을 준비했다.

늦은 밤이지만 자전거를 타고 퇴근한다.

머리를 쓰는 직업은 의식적으로 몸을 사용해야 한다는 게 자신의 지론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항상 운동을 즐겨하고 요즘처럼 바쁜 날은 자전거를 애용했다.

화구통을 맨 그는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회사를 벗어났다.

시계는 이미 10시를 넘긴 상황.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는 지름길로 가기로 결정했다.

우범지대이긴 하지만 오늘같이 차가운 겨울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겨울바람이 그의 뺨을 세차게 때리기 시작했다.

어두운 길을 그는 자전거 페달을 더 빠르게 돌렸다.

긴장한 듯 핸들을 꽉 쥔 그.

이제 거의 다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퍽

무거운 물체가 자전거 바퀴를 강하게 때렸다.

-우당탕탕.

자신이 몸이 붕 뜨고 있었다.

눈에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반짝이는 별빛이었다.

“으으으”

입에서 저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불량한 청년 5명이 자신을 보고 히죽대고 있었다.

“아저씨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세요?”

“무슨 짓이야?”

“가난한 청년들에게 용돈이나 좀 주고 가세요.”

불량한 복장에 짧은 스킨헤드를 한 놈들.

눈이 풀려 있었다.

이 근방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네오나치들이다.

놈들이 자신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지갑과 시계, 반지…… 그리고 아끼는 화구통까지 빼앗았다.

“그만해”

“유후, 아저씨 제법 부자인가 봐요.”

“고마워요. 잘 쓸게요.”

휘파람을 부르며 사라지려 했다.

“안돼, 내 화구통은 내놔.”

가죽으로 된 화구통을 흔들었다.

“이거요? 중요한 건가 보네. 그럼 절대 안 되지.”

글라이더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화구통을 되찾아야 했다.

부모님이 사 준 선물이었는데.

몸을 일으켜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온몸에 발길질만이 되돌아 왔다.

“그만하지.”

글라이더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

“습, 습, 후, 후.”

두 번 들이마시고 두 번 내뱉는 호흡.

조깅의 기본 호흡을 반복하면서 정훈은 달렸다.

차가운 독일 밤의 공기가 뜨거운 폐포를 식혀 주고 있었다.

피터 글라이더를 어떻게 하면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의 눈빛에서 자신을 무시하는 게 느껴졌다.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디자인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이라고 여겼다.

막강한 권한?

이미 제시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은 돈인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많은 돈을 제시하면 가능할까?

머리를 흔들었다.

예술가가 돈에 연연하진 않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그를 데려올 수 있을지 생각을 거듭했지만 답이 보이지 않았다.

정훈은 속도를 높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가끔 의외의 해결책이 보이기도 한다.

지금과 같은 믿기 어려운 상황처럼.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은 분명 피터 글라이더였다.

***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달리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한국 같으면 상관이 없는데 외국의 한적한 곳은 대게 우범지대였다.

정훈은 우범지대를 빠르게 벗어나기 위해서 속도를 높였다.

그런데 저 멀리 앞서가던 자전거가 픽하고 고꾸라졌다.

그리고 5~6명의 청년이 남자의 몸을 뒤졌다.

불의를 보고 지나칠 수 없었다.

“그만하지.”

“꺼져, 이 원숭이야.”

백인이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키가 2m에 가까운 거구.

‘원숭이? 인종 차별은 못 참지.’

정훈은 거구의 하얀 울대를 그대로 가격했다.

-억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픽하고 쓰러졌다.

“어? 미스터 윤?”

“피터 글라이더? 당신 맞아요?”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

글라이더가 외쳤다.

“그만하세요. 위험한 놈들이에요.”

정훈은 그러고 싶었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았다.

거구가 쓰러지자 두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퍽, 퍽

관자놀이를 때려 기절시켰다.

정훈의 실력에 움찔하던 청년들.

글라이더가 그들에게 외쳤다.

“이제 그만 가. 화구통만 주고 가. 다른 건 상관없어.”

쓰러진 친구들을 본 남자가 총을 꺼냈다.

“이…….”

총을 든 그는 정훈을 겨누며 천천히 다가왔다.

“주먹을 썼으면 책임을 져야지. 감히 원숭이 주제에 어디서…….”

정훈은 두 손을 들고 항복 의사를 표시했다.

자신이 아무리 빨라도 총을…… 이길 수 없다.

그는 정훈에게 다가가 총구를 정훈의 이마에 겨눴다.

차가운 총구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남자를 보았다.

약에 취해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정훈은 자신의 머리를 앞으로 밀며 권총을 강하게 움켜줬다.

“어, 어.”

당황한 청년이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줘도 발사되지 않았다.

총을 강하게 움켜쥔 손의 악력 때문에 권총 실린더가 후퇴하지 않았다.

“총을 쓰려고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정훈은 그의 팔을…… 내리쳤다.

주먹에 뼈가 부서지는 것이 느껴졌다.

정훈은 피터의 소지품을 챙겨서 그에게 전했다.

“괜찮아요?”

“여기 화구통이랑 소지품요. 중요한 겁니까?”

“네, 이 화구통은 아버지의 유품이었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오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분이죠.”

“중요한 걸 빼앗기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글라이더가 고개를 숙여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오늘은 운이 좋았습니다. ”

“저 말입니까? 저놈들 말입니까?”

“당신 말이죠.”

정훈이 슬쩍 웃었다.

“저놈들이 운이 좋았죠. 내 친구에게 걸렸으면 이미…….”

그때 지현복이 다가왔다.

“죽일까요?”

“아니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하세요.”

“알겠습니다. 보스.”

서늘하게 웃은 지현복이 쓰러진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얼마 뒤 볼프스부르크의 한적한 공원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다섯 번 울렸다.

***

다음날 피터 글라이더에게서 전화가 왔다.

점심을 대접하고 싶다는 그의 제안.

정훈도 흔쾌히 응했다.

글라이더가 독일 전통 음식인 슈니첼을 그에게 대접했다.

“독일 전통 음식입니다.”

“한국에도 이런 음식이 있습니다. 돈가스라고 부릅니다.”

“그래요? 한번 먹어 보고 싶군요.”

“한국에 오시면 꼭 대접하고 싶군요. 엄청 큰 돈가스 집이 많습니다. 하하”

글라이더는 미안한 표정으로 웃기만 했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주변을 함께 산책했다.

“드래곤 자동차는 작은 회사지만 큰 꿈이 있습니다. 우리는 내연기관이 아니라 전기차 회사를 만들 겁니다.”

“네? 전기차 말입니까? 전기차는 테슬라가 많이 앞서 있습니다.”

“네. 드래곤 자동차가 테슬라와 다양한 협업을 진행할 겁니다. 그리고 자율주행차 연구도 이미 시작했습니다. 그건 자회사인 애플에서 비밀리에 수행하고 있습니다.”

“테슬라와 드래곤 자동차가 협업한다고요?”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네.”

“어제부터 믿기 어려운 말만 하는군요. 애플을 가지고 있고 테슬라와 협업을 한다…….”

“네, 우리 계획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없으면 모두 취소할 겁니다.”

“하하하, 이렇게 멋진 계획이 저한테 달려 있다는 겁니까?”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저도 드래곤 자동차와 함께하겠습니다. 용이 승천하는 데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어서 올라타야죠.”

어?

정훈은 생각보다 쉽게 그를 설득했다.

역시 애플과 테슬라가 큰 도움이 되었다.

“사실 오늘 당신의 제안을 수락하려고 했습니다.”

“어제 일 때문입니까?”

“아니라고는 못 하겠습니다. 위기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누구나 그렇게 행동했을 겁니다.”

“그리고…… 예술에 대한 당신의 열정을 들었습니다. 지인이 한국에서 미술계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신화그룹이 청년 예술가들의 작품을 비싸게 사들인다고 하더군요.”

‘열정이 아니라 투자인데.’

그 사람들 작품이 수백 배 오르는데 어떻게 안 살 수가 있을까?

정훈은 아무 말 하지 않기로 했다.

“부끄럽습니다.”

“가난한 청년 예술가들을 위해 시세보다 비싸게 작품을 사들이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들이 미래에도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그래서 함께해 보고 싶었습니다. 예술을 사랑한다면 디자인의 중요성도 충분히 알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다.

피터 글라이더의 눈이 빛났다.

“지금 제 연봉이 20억입니다. 드래곤에서는 30억을 받고 싶습니다.”

흠칫했다.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정훈이 최대로 생각한 연봉이 10억이었는데…….

이직을 하는 그는 자신의 연봉을 스스로 50퍼센트 인상시켰다.

예술가도 돈이 중요했다.

“흠,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드래곤 자동차 CDO 피터 글라이더.”

정훈도 승낙했다.

그가 벌어다 줄 수십조에 비하면 발톱의 때만도 못한 돈이다.

***

“퍼스트 클래스가 없다는데요, 보스. 미안해요. 죽을죄를 지었어요. 돌아오면 회장실 앞에서 머리 풀고 석고대죄하고 있을게요.”

차영미가 구구절절 먼저 사과했다.

예약해 두라고 두 번이나 다그쳤지만 미루고 미루다가 비행기가 펑크 났다.

어쩔 수 없이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야만 했다.

12시간 동안의 장거리.

“어쩔 수 없죠. 돌아가서 봅시다.”

정훈은 이빨을 강하게 깨물었다.

빠지직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돌아가서 차영미 팀장을 괴롭힐 방법을 상상하자 한쪽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비즈니스 클래스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앞쪽에서 계속 자신을 힐긋거리는 지현복이 신경 쓰였다.

경호한다며 적극적으로 따라붙은 그.

차영미와 혹독한 전산실 아침 청소 때문에 따라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즈니스 클래스는 나쁘지 않은 자리였지만 퍼스트 클래스와 비교할 수 없었다.

정훈은 투덜대다가 잠에 빠졌다.

코끝에서 향기로운 라면 냄새가 솔솔 나고 올라오고 있었다.

잠결에도 생각했다.

‘컵라면? 아 여기는 라면 끓여서 주지. 나도 먹어야겠다.’

“야, 지금 나랑 장난해?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갑작스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정훈의 귓가를 강하게 때렸다.

정훈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어떤 개념 없는 돌아이가 소리를 지르는 거지?’

씩씩대는 남자의 앞에서 미모의 승무원이 쩔쩔매고 있었다.

‘하, 이런 개념 없는 새끼를 봤나?’

지루했던 비행, 정훈의 얼굴에 웃음이 흘렀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