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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137화 (137/200)

#137화

“어이, 은수야, 겁먹지 말고 내 옆에 꼭 붙어 있어. 알겠지?”

지현복이 고개를 까닥거리며 아이에게 충고하듯 은수에게 말했다.

“아저씨 나도 좀 치는데요.”

“꼬맹이, 아저씨랑 한번 붙어 볼까?”

“꼬맹이요? 키는 제가 더 큰 거 같은데…….”

진짜 은수의 키가 지현복보다 3센티는 더 커 보였다.

“흐흐흐, 그런가. 하여튼 그 예쁜 얼굴 잘 관리해야지.”

순간 보스의 경고가 생각나 등골이 서늘해졌다.

‘은수한테 절대 예쁘다는 말 하면 안 돼요.’

“하하하, 예쁜이 아니고 잘생긴, 아니 멋진 얼굴.”

황급히 말을 바꾸는 그를 보며 은수는 생각했다.

‘예쁘다’라는 말에 그렇게 과민반응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녀를 만난 순간 깨달았다.

항상 자신을 학대하기 전 내뱉었던 말.

‘우리 예쁜 환이.’

거기서 시작된 트라우마였다.

이제 괜찮다.

그녀는 늙고 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학대당하는 혼자인 아이가 아니다.

자신을 지켜 주는 할머니와 정훈이가 있다.

이제 그런 말에 폭주할 필요가 없었다.

오랜만에 선두에 나서는 지현복은 긴장되었다.

두려움이 아니라 설레는 긴장감이었다.

“후우, 오늘 재밌겠는데…….”

“그러게요. 아저씨, 제가 얼마나 잘 치는지 제대로 보여 줄게요.”

잘해 봤자 얼마나 잘할까?

어린 나이,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은 몸.

현수가 뛰어난 재능이라고 했지만 우스웠다.

그래도 일부러 사기를 꺾을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조심해. 현수가 잘 챙기라고 부탁했어.”

“예? 무뚝뚝한 분이 웬일이래요? 그런데 현수 아저씨는요?”

“다른 일이 있다고 하던데. 그런데 우리 보스는?”

“일이 있다고 하던데요.”

지현복과 은수 둘 다 눈알을 굴리며 생각했다.

“둘이서 재미있는 작당을 벌이는 건가? 씁 아깝네.”

“그러게요. 아깝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서 때려 부수는 게 얼마나 재밌는데요.”

“어이구 짜식아. 목숨 거는 게 재밌냐?”

은수도 그렇게 허세를 부리며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래도…… 잘생긴 얼굴 상처 나면 안 돼. 크크크”

“넵.”

시계를 확인한 지현복이 앞장서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그 말이 종업원들의 마지막 말이었다.

뒤에 있던 은수가 번개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몸을 튕기며 앞에 선 남자의 턱을 차며 착지했다.

두 번째 남자가 칼로 은수의 얼굴을 길게 그었다.

머리를 숙여 살짝 피한 다음 관자놀이를 향해 주먹을 내지른다.

그대로 기절했다.

정확한 타격과 믿기 어려운 빠르기였다.

‘어, 장난이 아닌데.’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현수의 말은 거짓이었다.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 천재였다.

은수와 지현복이 길을 열면 화신유통의 조직원들이 파도처럼 밀고 들어왔다.

***

“제가 모시겠습니다.”

“잠깐만.”

하인선은 테이블 위에 있는 양주를 입으로 밀어 넣었다.

반병 정도를 그대로 밀어 넣자 위스키의 사과 향이 입안에 짙게 배었다.

“이 사람 데리고 먼저 나가.”

“네?”

남자가 당황했다.

“위험합니다.”

“아니야, 내 경호는 따로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돼. 해야 할 일이 있어.”

그녀는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눈엣가시 같은 윤정훈을 밀어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그 아이가 어떻게 살아 남았는지.

가방에 있던 독약을 꺼내 술에 탔다.

불이 꺼진 조용한 방 안에서 윤정훈을 기다렸다.

귓가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엄마, 잘못했어요!’

‘닥쳐.’

머리를 세차게 흔든 그녀는 다시 술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입안 가득히 독한 양주를 들이밀었다.

쿵쾅거리는 소리와 비명들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문 채 소리가 들어오고 있는 문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얼마 뒤 문이 열리고 불이 켜졌다.

기다리던 윤정훈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로 해야 할 말이 많은 것 같구나. 앉으렴.”

잔에 술을 따른 다음 정훈의 앞에 놓았다.

“정체가 뭡니까?”

“술 파는 여자일 뿐이야.”

“술 파는 여자가 대원각과 선운각의 실질적인 주인입니까? 그리고 더러운 협잡도 일삼나요?”

“협잡이라니? 난 그제 기록해 줄 뿐이야. 기록이 취미인 분들도 많잖아. 왜 너도 남자니 잘 알지 않니? 호호호.”

불쾌했다.

“……친구 어머니랑 할 말은 아니에요. 은수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우리 환이? 궁금하지. 도대체 어떻게 살아난 거지?”

“……당신 같은 여자도 엄마라고 그리워한 은수가 가엾습니다.”

그녀는 잠깐 기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지만, 순식간에 웃음으로 감췄다.

“엄마? 가서 전해. 그 엄마 오래전에 죽었다고. 아이를 학대하면서도 죄의식을 하나 느끼지 못한 년을 악마가 와서 지옥으로 끌고 갔다고 전하렴……그럼 좋아할 거야.”

“저도 알고 있었어요. 이미 죽었다는 걸.”

은수가 들어왔다.

담담한 표정이지만 정훈은 알고 있었다.

꽉 쥐고 있는 두 주먹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은수는 큰 용기를 내고 이 방으로 들어왔다.

“잠잘 때마다 다정하게 볼을 어루만져 주던 엄마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두들겨 맞아 기절한 저를 불쌍한 부처님이 어루만져 준 거였어요.”

하인선의 눈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걸 어떻게 기억하지?’

어깨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입술을 꽉 깨문 그녀의 굳은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그려졌다.

“다행이구나. 그래도 부처님이 널 어루만져 줘서. 네 어미란 년은 부처님한테도 버림받아 지옥에서 신음하고 있거든.”

은수는 그녀를 측은한 표정으로 보았다.

“무슨 이유로 아이를 학대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지옥에서 벗어나세요. 저는 다 잊었습니다.”

담담한 목소리였다.

“지옥에서 벗어나? 지옥에서? 하하하!”

그녀의 입에서 괴기스러운 웃음이 터졌다.

“네가 지옥이야, 우리 예쁜 환아. 사랑하는 내 아들, 네가 나의 지옥이었어. 너를 볼 때마다 나를 더럽히는 네 아비가 떠올라. 그날의 더러운 기억들이. 그래도 실컷 패고 나면 속이 후련했어. 죽여 버린 네가 살아 돌아왔어. 네가 나를 지옥에 떨어트리면서 지옥에서 벗어나라고? 하하하.”

일그러진 그녀가 술병을 손에 쥐었다.

그 병을 은수가 빼앗아 집어던졌다.

-퍽

벽에 부딪히며 산산조각 나며 부서졌다.

“아직도…… 술에 의지하고 있군요. 그러면 잊을 수 있었나요? 기억이나 하세요? 술에 취해 무슨 짓을 했는지?”

“내, 내가 무슨 짓을 했다는 거지?”

“잔인하게 학대했었죠. 결코 잊을 수 없을 만큼 더 가혹하게!”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기억나지 않는 순간을 물어 오자 당황한 게 분명했다.

은수는 입술을 꼭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술에 취했을 때야만 비로소 엄마가 되었다는 걸.

의식을 잃을 만큼 취해야만 다정히 자신을 꼭 안아 준 엄마였다는 것을 은수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를 더 큰 고통 속에 밀어 넣을 것 알고 있었다.

자신은 사랑받으면서 증오해야만 했던 아이.

그게 바로 이환이었다.

은수는 눈가에 맺힌 물기를 삼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지옥에 계신 그분에게 전해 주세요. 아이는 그날 엄마가 준 약을 먹지 않았어요. 자신이 더 이상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인 걸 알고…… 스스로 그 어둠 속에 있기를 선택한 거예요. 그러니 죄의식 가질 필요 없다고 전해주세요.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겁니다.”

“뭐? 뭐……. 뭐라는 거야?”

하인선은 고개를 들어 은수를 보았다.

그가 알지 못했던 지옥이 다시 펼쳐지고 있었다.

떨리는 손을 은수를 향해 뻗었다.

“어, 어떻게…….”

“아이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습니다. 그녀가 자신 때문에 고통스러운 걸 알고 있었거든요……. 술로 잊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은수는 정훈의 앞에 놓인 술잔을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안 돼!”

하인선이 다급히 은수에게 달려가 입에 있던 술잔을 손으로 쳐냈다.

하지만 이미 몇 모금 삼킨 것 같았다.

은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뱉어 환아, 어서 뱉어 어서……. 안 돼!”

“무슨 짓을 한 거야? 은수야 뱉어 어서!”

벌떡 일어난 정훈이 외쳤다.

은수의 얼굴에 쓸쓸한 웃음이 그려졌다.

“……저는 결국 당신 손에 죽는군요.”

그 말을 한 은수는 입 안에 남은 술을 힘겹게 밀어 넣었다.

정훈을 향해 입을 열려 하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정훈은 순간 머리가 멍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은수야! 정은수!”

흔들었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도 몰라. 독약이야.”

은수를 들쳐메고 밖으로 나갔다.

“보스, 은수는…….”

상황을 파악한 지현복이 길을 열었다.

정훈은 은수를 차에 싣고 병원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굉음을 내며 미친 듯이 속도를 내었지만 가까운 병원은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

“다 정리했습니다.”

“피해는?”

“서너 명 정도가 중상입니다. 그래도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수고했다. 자료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별로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지. 가자.”

“네.”

문을 나서는 부하가 갑자기 날아온 주먹에 관자놀이를 맞고 쓰러졌다.

자신의 수하를 일격에 보내는 실력.

고수였다.

“누구냐?”

곧이어 날카로운 칼날이 자신의 목을 향했다.

겨우 피했다.

‘빠르다.’

상대의 칼이 파고드는 속도에 긴장한 박창수는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감춰 둔 능력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누가 보낸 거지? 신청에서 보냈나?”

“……”

복면을 쓴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보통 실력이 아닌데…… 그동안 찾기 귀찮았는데 이렇게 찾아와 주고…… 고맙다고 해야 하나?”

박창수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품에서 칼을 꺼내는 그의 폼이 평소와 달랐다.

복면을 쓴 남자도 긴장한 채 손에 쥔 칼에 힘을 주었다.

‘이거 잘못하면 큰일 나겠는데……’

순식간에 자신의 품으로 파고든 박창수의 칼이 심장을 노렸다.

-깡

겨우 쳐냈다.

‘역시 보통이 아니야. 평소보다 두 배 이상 강한 자였어.’

복면을 쓴 그도 물러서지 않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상대했다.

서로의 칼이 거칠게 부딪치며 어두운 방에 불꽃이 튀었다.

좀처럼 나지 않는 승부.

체력도 이제 바닥이 난 상황이었다.

박창수는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모든 힘을 끌어모았다.

“후우, 이제 그만 끝내자!”

“후우.”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으아아아아!”

두 남자는 괴성을 지르며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분명히 심장을 찔렀는데…….’

바닥에 누운 박창수는 허무했다.

복수를 하지 못해서, 대대로 전해진 어명을 완수하지 못해 아쉬웠다.

“죽여라.”

“……이제는 정체를 밝혀야 할 것 같은데…….”

“정체라니…….네놈들 신청의 조직원 아니었나?”

“신청? 그게 당신이 쫓는 놈들의 조직인가?”

“너……너…….”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복면을 벗은 자는 곽현수였다.

“신청이란 조직을 찾고 있었어. 내 조부님은 조선 황제의 비밀 친위대였어. 고종 황제의 명으로 지금까지 그들을 추적하는 중이다.”

“이유는?”

“그들이 황제의 독립 자금을 모조리 빼돌렸어.”

“망해 가는 나라의 황금. 얼마 되지도 않았을 건데.”

“아니.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었어. 자네 황금의 나라 신라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 개도 황금을 물고 다닌 다는 소문이 있었지. 그만큼 경상도엔 오래전부터 어마어마한 금맥이 있었어. 1900년 초에 거대한 금맥이 발견됐어. 괴산에서 발견된 금광을 비밀리에 채굴했지.

막대한 금괴를 모았어. 그걸 통해 만주에서 군대를 양성할 계획이었는데……”

“그런데?”

“신청의 무녀들과, 변절한 친일파 황족들이 들이닥쳤지. 일본 자객들을 데려온 그들에 의해 우리는 대부분 몰살당했네.”

“흠…… 그 황금은 이미 사라졌을 거고 지금까지 그들을 추적하는 이유가 이거였나?’

“개인적인 복수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암약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대원각과 선운각, 그리고 수금재가 아마 신청이 운영하는 조직이었을 거야.”

“현수야!”

지현복이 나타나 곽현수를 다급히 불렀다.

“은수가 쓰러졌어.”

지현복이 은수의 상태를 전했다.

“뭐?”

곽현수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

“은수는요?”

“지금 치료 중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하인선이 제 잔에 탄 독을 은수가 조금 마셨어요. 조금인데…….”

곽현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여자가 독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최악의 상황이 아니길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악의 상황은 뭐죠?”

“일반인들은 독약을 구할 수 없습니다. 분명 군대나 조폭들을 통해 얻었을 겁니다. 천성한의 연인이라면 필시 군대를 통해서 얻은 걸 텐데……. 해독제는 없을 겁니다.”

“그건…….”

곽현수는 대답 대신 미간이 찡그려졌다.

“그래도 희망이 있는 건, 심장이 뛰고 있었다는 겁니다.”

“무슨 뜻이죠?”

“치명적인 독약은 아니란 겁니다.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극약은 닿는 즉시 목숨을 앗아 간다. 하지만 은수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도착했을 때 분명 맥박과 호흡이 있었다.

희망이 있다.

그때 응급실의 문이 열리며 의사가 밖으로 나왔다.

“바이탈은 정상입니다. 그런데 의식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무사한 겁니까?”

“괜찮을 겁니다. 다행히 조치가 빨라서 경과가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박창수였다.

“하인선이 도주합니다.”

“추적하세요.”

정훈이 짧게 대답했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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