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돈 냄새로 간질간질한 코 때문에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할머니 이 열쇠는 어디에 쓰는 거예요?”
“흠, 그게 이 할미의 시험이다. 네가 이것을 찾을 수 있는지 없는지. 그것도 네 녀석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한번 잘 생각해 봐.”
“네?”
당황스럽다.
저 열쇠에 맞는 자물쇠가 얼마나 많을까?
정훈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약간은 특수한 모양에 크기도 꽤 큰 열쇠.
분명 만호 아저씨는 알 것이다.
“할머니 시험에 제약은 없는 거죠?”
“물론이지.”
할머니는 한번 고생해 보라는 표정, 입꼬리가 잔뜩 올라가 있다.
흐뭇한 얼굴에는 쉽게 풀 수 없을 거라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거대한 부를 가지려면 그만큼 노력해야 한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정훈은 잔머리 대마왕이다.
전화기를 꺼내 만호 아저씨의 번호를 눌렀다.
“미래금융지주 회장님. 정훈입니다.”
“도련님, 어쩐 일입니까?”
할머니의 올라갔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제가 할머니 방에서 열쇠를 하나 주웠는데요……. 이게 주먹만 한 게 크기가 아주 커요. 이게 어디 열쇠인지…….”
혼잣말하는 척했다.
그러면 진중하지만 아는 체 하길 좋아하는 아저씨의 입이 움직인다.
“어, 그거 여사님 지하 금고 열쇠인데요……”
“할머니 지하 금고요? 그런 게 있었어요? 어디에요?”
“도련님 그룹 본사 지하에 있죠. 아직 모르셨어요?”
“아, 그렇구나.”
할머니의 미간엔 깊은 주름.
이마엔 푸른 핏줄이 툭툭.
얼굴 전체가 울긋불긋 불게 타오른다.
그리고 그녀의 호통이 방을 가득 채웠다.
“야! 자넨 왜 시키지도 않은 말을 하는 거얏!”
전화기를 뺏은 할머니가 3분 동안 속사포 랩을 읊었지만 전화는 이미 끊겨 있다.
할머니의 분노가 사그라들었을 때쯤 정훈은 입을 열었다.
“하하하, 할머니 제가 좀 잔머리를 썼습니다.”
“……아니다 잘했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면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야. 후우.”
“명심하겠습니다.”
기분이 아주 많이 안 좋은 할머니를 생각해 정훈은 납작 엎드렸다.
“해외 계좌 금액도 확인하고 보물 창고도 확인해. 혹시나 네가 필요한 게 있으면 그걸로 사도록 해.”
“돈은 이미 넘치도록 있는데요.”
“다 한국 안에 있는 돈이다. 이 나라 정치인들은 변덕이 죽 끓듯 해. 최악의 경우엔 돈이 잠겨 버릴 수도, 아니면 국고로 환수될 수도 있어. 그래서 항상 플랜B를 준비해.”
수십 년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였다.
“네, 할머니. 저도 그것 때문에 이미 몇 개의 플랜B를 가동 중이에요. 해외 계좌에도 많이 분배해 놓았습니다. ”
이미 미래에 무엇이 벌어질지 알고 있다.
자신의 등장이 나비효과가 되어 변한 게 있지만, 외국 역사는 그대로 굴러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기억을 활용해 환율과 해외주식투자로 적지 않는 수익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정훈의 말을 들은 할머니가 눈빛을 반짝였다.
얼마를 벌었는지 궁금해한다.
‘비밀이다.’
대충 냄새만 풍기기로 했다.
“최소한 20조입니다.”
현정옥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전재산을 넘겨주는 상대가 뛰어난 능력으로 재산을 부풀리면 그걸 보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이제 현정옥의 남은 즐거움은 신화고등학교 학생들의 성장과 자신의 손자 윤정훈의 비상을 지켜보는 것, 그것뿐이었다.
***
2004년에 하버드 대학생들이 장난삼아 만든 메신저는 불과 5년도 되지 않아 세계를 뒤흔든다.
페이스북이 미국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사람들의 관심을 끌진 못했다.
대학생들만 사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였다.
정훈은 할머니가 주신 돼지은행의 금액을 확인했다.
무려 10조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 돈을 홍콩에 있는 HSBC로 옮기려 하자 은행장이 사정을 했다.
어쩔 수 없이 1조는 남기고 나머지 돈을 은행으로 옮겼다.
이제 이 돈으로 본격적으로 맛있는 기업을 인수한다.
첫 번째는 페이스북이다.
이미 임철수가 하버드로 가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사정을 살펴보니 심각한 자금난에 빠진 그들이었다.
이용자는 증가하는데, 서버 비용이 부족했다.
딱 투자가 필요한 절묘한 시점이었다.
정훈은 임철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잘 진행 중이야. 이 친구들 사정이 딱하더라고 돈도 안 되는 서비스 때문에 수억을 날렸더라.”
지금은 돈도 안 되지만 내년? 아니면 그다음 해에는?
천문학적인 돈을 번다.
몇 조가 들어도 무조건 인수한다.
“매각할 생각은 있는 것 같던가요?”
“물론. 우리 아니면 이 친구들 전부 신용불량자 되겠는데, 아주 싼 값에 살 수 있긴 해. 그런데 정훈아?”
“네, 아저씨”
“이렇게 돈도 안 되는 서비스, 거기다 미국 대학생들만 하나는 폐쇄적인 서비스를 인수할 필요가 있어? 난 항상 네 투자 방식을 이해할 수 없어.”
“결과는요?”
항상 수백 배의 투자 수익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미래를 알 수 없는데 어떻게 이해하나.
10배의 수익을 주는 기업은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수백 배의 수익을 주는 기업은 예측할 수 없다.
갑툭튀.
갑자기 세상에 튀어나와 순식간에 우뚝 서 버린다.
지금 죽을 쑤고 있는 아마존이,
그리고 적자를 내고 있는 자신의 테슬라와 애플이 미래에 수천 배의 이익을 줄 거라고 누가 상상할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다.
미래라는 그런 것이다.
“결과야 뭐 너무 좋지, 항상.”
임철수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금액이 과하지 않으면 아저씨가 결정하세요. 그럼 회의가 있어서요. 끊을게요.”
“그래.”
‘짜식, 금액을 좀 정해주면 판단하기 편할 텐데.’
임철수는 자신 앞에 앉아서 눈을 반짝이는 이 청년들과 협상할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미국인 특유의 허세가 가득하다.
일단 기를 죽여야 한다.
“알아보니까 빚도 많고 수익이 없어 투자도 끊긴 상태더군요.”
주크버그의 미간에 주름이 그려졌다.
“하지만 이용자는 계속 늘고 있습니다. 벤처 투자를 전문으로 하시니 무슨 의미인지 잘 아시죠?”
이용자가 계속 늘어야 살아 있는 사이트, 서비스다.
그 점이 이 회사의 유일한 장점.
하지만.
“그것뿐이에요. 이용자 증가. 그 외에는 어떤 장점도 없어요. 비용만 많이 들고 수익 모델은 전혀 보이지 않죠.”
임철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다음 서류를 정리해 자신의 가방에 집어넣었다.
“금액을 말씀하세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에 그렇게 큰돈을 줄 순 없습니다.”
자신감 가득한 청년의 눈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감을 되찾은 그는 주변의 시선을 보았다.
지금까지 자신과 함께한 전우들이 깊은 신뢰와 함께 자신을 보고 있다.
무엇을 해도 지지하겠다는 깊은 신뢰.
주크버그는 결심했다.
자신의 인생 최대의 블러핑이 바로 지금이다.
입안에 가득히 고인 침을 삼킨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10 빌리언 달러, 그게 우리가 바라는 최소 금액입니다.”
말은 최소한이지만 최대로 원하는 금액이다.
10 빌리언 달러. 물론 다 받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지른다.
주크버그는 동료들을 보였다.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아직 젊고 기회는 많다.
“뭐? 이런 미.”
임철수의 입에서 욕이 절반 튀어나왔다.
“10 밀리언 달러? 너무 많은데요.”
임철수가 고개를 젓자 그도 고개를 저었다.
“빌리언 달러!”
‘저게 사람을 호구로…… 콱’
저 금액이면 사람을 바보로 보는 것이다.
한국 돈으로 약 1조.
대학생들 장난 같은 서비스를 1조에 사는 건 호구나 하는 짓이다.
감히 이것들이?
나 레전드 컴퍼니 사장 임철수야!
“어린 친구들이 장난이 과하군.”
임철수는 정훈이 가르쳐 준 방법을 생각했다.
기준을 낮추어야 한다.
“밀리언 달러.“’
‘뭐? 저 꼰대가 제정신인가? 작년에 기업가치가 1밀리언 달러, 백만 달러였는데.’
못해도 천만 달러는 받고 싶다.
주크버그는 설명을 시작했다.
대학생들 서비스라고 무시하지 마라.
수익 모델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금액을 마지막으로 수정했다.
주크버그가 금액을 말하기 전에 임철수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마지막 제안입니다. 이번에도 헛소리를 지껄이면 바로 나갈 겁니다.”
청년의 동공이 파르르 떨린다.
그 모습을 본 임철수는
자신의 협박이 제대로 먹혔다고 생각했다.
“네……. 오천만 달러. 그게 마지막입니다.”
하여튼 이 돈 귀한 줄 모르는 새끼들.
임철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낡은 갈색 가죽가방을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혹시나 해서 전화기를 꺼냈다.
“정훈아, 오천만 달러라는데…….”
“바꿔 주세요.”
정훈은 주크버그에게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1억 달러 그 이상은 안 돼요.”
주크버그는 금액 때문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장으로 크게 찔렀다.
오천만 달러도 많은데 1억 달러?
손에 힘을 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손끝이 달달 떨리는 게 들통날 것 같았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온 그의 말은 그를 다시 충격에 빠트렸다.
“학생들 장난 같은 서비스 때문에 주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가진 가능성 때문에 주는 겁니다.”
“학생들 장난이라니요? 우린 미국 대학생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서비스예요.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 학생들을 하나로…….”
정훈은 그의 말을 끊었다.
“쯧, 전 세계인을 하나로 묶을 서비스를 생각하세요.”
낮고 굵은 그의 목소리에 수다스럽던 주크버그가 입을 닫았다.
‘세계인을 하나로?’
그는 생각의 스케일이, 아니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자신과 격이 다른 그의 깊이에 심장이 뛰었다.
세계인을 하나로 연결하는 서비스.
1억 달러가 아니라 1센트라도 회사를 팔고 싶다.
꿈같은 야망을 품은 남자와 함께 세계를 연결하고 싶다.
“좋아요. 받아들이죠. 대신 경영은 제가 합니다.”
주크버그의 마지막 승부수였다.
“지분은 50%+1주는 내가 갖겠습니다. 소유는 내가 경영은 주크버그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정훈의 마지막 제안.
“콜.”
“콜.”
두 사람은 마지막 말을 짧게 뱉은 후 전화를 끊었다.
***
“휴, 싸게 먹었다.”
정훈은 긴 한숨을 내 쉬었다.
앞으로 그 회사의 가치를 상상하면 10억 달러도 사실 아깝지 않았다.
실패해도 좋다는 생각으로 1억 달러를 던졌는데 아기 새처럼 냉큼 받아먹는다.
젊어서 생각이 짧은 건가?
하여튼 즐거웠다.
“보스, 정말 이거 실행할 겁니까?”
정훈은 고개를 들어 당혹스러운 얼굴을 한 천진혁을 보았다.
그리고 당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내가 왜 KP텔레콤을 인수했겠어요? 미래? 새로운 통신 시장. 다 좋아요. 그런데 천지회 그 새끼들 쓸어버리는 게 더 중요해요. 천지회 놈들도 휴대폰을 안 쓸 수는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이건 너무 불법적인 일 같아서요.”
“불법?”
정훈이 천진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정훈을 따라 미소 짓는 천진혁.
‘다행이다. 그의 머릿속에 윤리란 것이 박혔다. 옛날의 사이코패스 같은 천진혁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조금 더 연습해야겠어.’
굉장히 자연스러워진 미소지만 살짝 아쉬웠다.
“제가 지시하는 일입니다. 불법도 제가 하는 거고 책임도 제가 집니다. 나쁜 놈들 잡는데 불법은 없습니다. 잡지 못하는 게 오히려 불법이고 죄입니다.”
“알겠습니다.”
천진혁은 정훈의 굳은 의지에 자신도 힘을 보태기로 했다.
“보스 뜻이 그렇다면 아주 제대로 제 능력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기본적으로 통화 내용은 다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천진혁이 주저했다.
“계속하세요. 모든 책임은 제가 집니다.”
“원하신다면 휴대폰으로 음성, 영상도 감청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것도 가능합니까?”
“네, 휴대폰에 있는 녹음기와 카메라를 활용하면 됩니다.”
“능력자 있으니 좋네요.”
“필요한 건 말씀만 하십시오. 뭐든지 다 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그 말, 참 마음에 듭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모든 일은 나, 윤정훈이 주도한 일입니다. 천진혁 씨는 모르는 일입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협박받았다고 하세요. 네?”
천지혁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자신을 생각해 주는 그의 마음에 감동이 느껴졌다.
자신은 처음부터 함께했던 사람이 아니다.
심지어 그의 적이었다.
그런데 자신을 이렇게 배려하는 그.
충성을 맹세할 수밖에 없다.
천진혁이 밖으로 나간 후 정훈은 소파에 몸을 기댔다.
‘이런 짓까지 해야 하나?’
하지만 알고 있다.
자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이 땅에서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다.
천지회를 괴멸시킬 수 있는 사람은 신화그룹뿐이다.
정훈은 주먹을 불끈 쥐며 괴물 같은 거인을 짓이겨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회장님, 머스크 씨 오셨습니다.”
“뭐? 갑자기요?”
“테이블에 오늘 일정표에 적어 두었는데…….”
“아, 들여보내요.”
커다란 덩치를 가진 머스크가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양놈들은 예의가 없다. 허락도 없이 앉다니…….’
“머스크, 무슨 일입니까?”
“자율주행 때문에요.”
“천천히 진행하세요.”
“아직 시작도 못 했어요.”
당황스러운 머스크의 대답이었다.
‘너, 새끼 지금까지 뭐 한거야?’
정훈의 이마에 핏줄이 툭툭 솟아오른다.
치솟는 화를 억누르며 물었다.
“이유는요?”
“영상 처리가 너무 늦어요. 그걸 하려면 그래픽 카드가 좋아야 하는데……”
“그런데요?”
“엔디비아나 모빌아이 같은 회사랑 협업을 해야 하는데…….”
‘이 새끼 왜 이렇게 뜸을 들여, 한 번에 쭉쭉 내뱉어. 답답하게 하지 말고.’
“해야 하는데……?”
“테슬라는 신생 브랜드, 신화모터스는 저가 자동차 회사. 그쪽에서 협상할 가치가 없다고 합니다.”
“뭐요?”
정훈의 눈동자에 불이 붙었다.
이건 확실히 우리 신화그룹과 나, 윤정훈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하, 저것들이……. 엔디비아랑 모빌아이 맞아요?”
“네,”
“둘 중에 하나만 골라보세요.”
“하나를 고르라면 그래도 엔디비아가 좀 더 낮지 않을까요?”
“좋네요. 그럼 그거 사죠.”
“무슨 말인지?”
머스크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까짓 거 얼마나 한다고……. 이번 기회에 우리가 사 버리고 자율주행 기술 독점하죠.”
“아…….”
둘 중 하나를 산다고?
머스크는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산다…… 엔디비아를 사?”
“모빌아이가 더 좋을까?”
쉽지 않은 선택지가 자신 앞에 던져졌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