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보스, 안 오십니까? 빨리 오세요. 여기 음식 정말 맛있습니다. 길도 깨끗하고. 빨리 오세요.”
지현복이 칭얼거린다.
보기 드문 캐릭터였다.
넉살이 참 좋다.
지금 대마도에 야마구치구미 야쿠자 2000명이 20곳의 호텔에 은신해 있다.
2000명의 정예 부대가 대한 해협을 건너라는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막기 위해 화신유통 조직원들과 특수부대 출신들이 대마도에 대기 중이다.
인원은 고작 500명.
능력은 뛰어나지만 수에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계획대로만 진행되면 인명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다.
정훈도 빨리 합류하고 싶었지만 라잇게임즈의 두 CEO는 결정을 미루고 있다.
“이제 곧 출발할 것 같아요. 거의 다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그래요?”
“이르면 내일 도착 할 수도 있고요. 아직 움직이진 않았죠?”
“네, 아직 잠잠합니다. 호텔에만 틀어 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출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당장 오늘 밤일 수도 있고요.”
“우리 쪽 준비는요?”
“완벽합니다.”
“저쪽에서도 총을 준비했나요?”
“네, 권총 위주로 준비했더군요.”
“지난번 러시아 친구들에게서 받은 소총이랑 저격용 라이플 다 가져왔죠?”
“네, 호텔 주변에 배치했습니다. 놈들이 나오면 사냥하듯 항구로 몰아 우리가 준비한 페리호로 집어넣겠습니다.”
제주-부산을 운행하는 초대형 카페리 골드 스카이.
수리를 위해 신화미포조선에 있던 배를 대마도로 항구에 정박시켰다.
2만 톤급 카페리로 승객 정원은 천명이지만 오천 명도 태울 수 있는 크기. 거기다 차량도 3백 대나 실을 수 있는 선박이었다.
“토끼몰이하듯 원숭이 새끼들을 배에 차곡차곡 태울 생각입니다.”
곽현수의 목소리에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좋네요. 원숭이 새끼들이라, 이번 작전명을 아예 원숭이 사냥으로 하죠.”
“원숭이 사냥! 여우 사냥에 나섰던 원숭이들을 모조리 척살하는 겁니까?”
“물론. 모조리 동해에 수장시킬 생각입니다. 뭐 그것보다 좋은 계획이 생기면 바뀔 수도 있겠지만.”
현양사 놈들은 100년 전 을미사변을 일으킨 단체다.
그놈들이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며 일본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정훈은 역사 문제를 떠나서 자신이 장악하고 있는 유흥가를 빼앗으려는 놈들.
가만히 둘 수 없었다.
남의 것을 습관적으로 도적질하는 놈들이다.
제대로 본때를 보여 줘야 한다.
단 한 군데도 뺏길 수 없다.
내 것을 빼앗지 못하도록 놈들 것을 모두 다 가져올 생각이었다.
“만약, 연락이 안 되는 상황에서 저들이 움직인다면 계획대로 원숭이 사냥을 실시하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훈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상황에 대비해 지침을 내렸다.
대마도의 상황을 점검하다 보니 도쿄로 간 박창수의 상황이 궁금했다.
“박창수 씨는 도쿄로 들어갔나요?”
“네, 지금 은신 중입니다.”
“그럼 그쪽도 곧 움직이겠군요. 소식 들어온 거 있나요?”
“신병규 어르신이 모든 것을 걸었답니다.”
“모든 것을 걸었다?”
“네, 우리가 대마도에서 놈들을 제압하는 순간 도쿄의 야마구치 구미를 습격할 계획입니다.”
“빈집털이라 그리 어렵진 않겠죠?”
“네. 러시아 마피아가 북해도 쪽으로 진출해 야마구치구미가 그쪽으로 많이 빠졌습니다.”
“도쿄는 빈집이군요.”
“네, 거기다 박창수의 후배들도 이를 갈고 있죠. 선조들의 복수를 한다고요.”
“흠, 계획대로만 되면 아주 좋을 것 같네요.”
“보스가 짠 작전입니다. 톱니바퀴처럼 착착 들어맞을 겁니다.”
“알겠어요. 여기 마무리하고 빨리 합류할게요. 다들 조심 하세요.”
정훈은 전화를 끊고 고개를 돌렸다.
라잇게임즈의 두 창업자는 게임에 열중해 모니터 코를 박은 채 열중하고 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국이었다면 뒤통수를 수십 대 갈겼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왜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참 게임에 열중하던 브랜든이 기지개를 켰다.
“출출한데 순두부찌개나 먹으러 갈까?”
“좋지!”
게임을 마친 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국에서 가장 맛있는 순두붓집으로 갔다.
“어메이징.”
“원더풀.”
고소한 두부의 입안을 채웠다.
비린 맛이 전혀 없는 부드러움.
한국에서도 보기 어려울 만큼 맛집이었다.
LA에 어울리지 않는 순두부 맛에 감탄하고 있을 때 브랜든과 마크가 서로 주고받았다.
“미스터 윤. 우리 이제 결정했어요.”
그래, 이젠 결정해야지. 며칠째야 이게.
“어떻게 하기로 한 거죠?”
“지분 100퍼센트를 3천억에 매각할게요.”
하, 이 자식들!
천억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삼천억으로 증가했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나 봐요?”
“하하, 뭐 좀 생각보다 많이 늘었네요. 원래 500억 정도로 예상했는데 6배로 불었네요.”
정훈은 한 푼이라도 아낄 생각에 앓는 소리를 한번 했다.
“그래서, 제안을 하려고요. 신화게임 주식이랑 맞교환하죠.”
“네?”
이렇게 되면 한 푼도 안 든는데. 지분이야 줄 수도 있다.
“몇 퍼센트요?”
“20퍼센트.”
“흠. 차라리 3천억으로 할게요.”
“아, 그러면 15퍼센트.”
정훈은 고개를 저었다.
“좋아요. 10퍼센트! 더 이상은 양보 못 해요.”
정훈은 쾌재를 불렀다.
한번 거절했는데 운 좋게 10퍼센트를 깎았다.
이유가 궁금했다.
“갑자기 왜 신화게임 주식을 원한 거죠?”
“사실 지금까지 조사 중이었어요. 당신과 신화그룹, 그리고 신화게임을요.”
“인수를 결정한 거 보면 나쁜 평은 아니군요.”
“최상이었죠. 한국에서 그룹의 평판이 대단하던데요. 가고 싶은 회사 1위가 신화그룹이던데요. 윤리적으로도 뛰어나고. 마지막으로 신화게임의 성장성이 어마어마하더군요.”
항상 이런 칭찬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동안 아까운 세금 다 내고, 정리해고 안 하고 노력해 온 자신.
정도를 걸어온 자신에 대한 이방인의 칭찬에 조금 울컥했다.
“헤이, 미스터 윤. 당신도 동의합니까?”
“물론이죠.”
정훈은 손을 내밀었다.
꽉 잡은 세 사람의 손이 하나가 되었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곧 거대한 태풍이 될 라잇게임즈를 손에 넣는 순간이었다.
***
“회장님, 곧 출발하겠습니다.”
눈치 빠른 승무원이 시원한 샴페인과 신문을 정훈에게 줬다.
정훈은 옅은 미소와 함께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원한 샴페인 한 모금을 입안에 채운 정훈은 신문을 펼쳤다.
가전제품의 황제였던 수니의 추락을 걱정하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수니는 가전제품의 황제이자 일본 전자산업의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곧 몰락한다.
더욱이 가전 분야에 사활을 걸고 재기하려다 더 심각하게 몰락한다. 수년 후에 회생하는 게 이미지 센서와 게임 덕분이다.
정훈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그려졌다.
지금 소니는 기를 쓰고 가전 사업에 자금을 쏟아붓는다.
만약 이미지 센서와 게임을 산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했다.
흐뭇한 미래가 그려졌다.
‘소니? 이건 좀 대어인데.’
이왕 일본 갔다 오는데 한국 들어갈 때 괜찮은 전리품 하나 들고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비행기의 엔진이 굉음을 내며 울기 시작했다.
육중한 기체가 하늘로 힘차게 벅차올랐다.
푹신한 등받이가 정훈의 몸을 저절로 감쌌다.
***
백발에 고운 피부 그리고 웃는 얼굴이 만든 부드러운 인상은 그를 나이에 비해 한층 자상하고 인자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하지만 수없는 도전을 잔인하게 짓밟고 총리의 자리에 오른 그였다. 야마다 일본 총리는 이헌을 보며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무슨 일로 이리 직접 발걸음을 했습니까?”
이헌은 쉽게 대답하지 못한 채 바싹 마른 입술만 다셨다.
야마다는 이헌 앞에 놓인 다기에 향이 진한 말차를 담았다.
“드세요. 최상급 말차입니다.”
“감사합니다.”
차를 몇 모금 마신 다음 이헌이 입을 열었다.
“총리님, 대마도에 있는 친구들을 한국으로 보내주십시오. 시간을 지체할수록 부산을 장악하기 어렵습니다.”
차를 마시던 야마다 총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부산에 갔던 야마구치 구미의 최정예, 아니 우리 현양사의 최정예 부대 전멸했습니다.”
야마다는 이헌의 앞에 사진 몇 장을 툭하고 던졌다.
러시아 마피아가 야쿠자들을 처단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이헌은 속으로 우스웠다.
이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 만행을 들어서 알고 있다.
가족을 몰살하고 부인과 미성년자들을 강간한 놈들.
이 정도 보복도 생각하지 않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자신이 아쉬운 순간. 간청해서라도 부산으로 데려가야 한다.
“러시아 마피아 놈들의 일은 유감입니다. 윤정훈이 러시아 놈들에게 넘길 줄을 꿈에도 몰랐습니다.”
“지금 현양사에서 반발이 심해요. 피해가 너무 크다고 난리입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시지요.”
“자금이 필요합니다. 러시아 마피아들이 홋카이도로 들어왔어요.
북방 영토를 노리는 겁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 그렇다고 자위대를 움직일 수도 없고. 1조 원을 보내세요. 그러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1조 원입니까? 이미 KP 정유를 헐값에 넘겼습니다. 금액은 모두 지불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크흠, 어쩔 수 없죠.”
양아치, 아니 개쓰레기 같은 놈들.
자신이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또 강탈하려는 수가 눈에 뻔히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 없다.
멈추면 모든 게 수포가 된다.
우선 야마구치 구미의 야쿠자를 통해 잃어버린 밤을 장악한다.
그리고 이석을 끌어내려 내 회사를 찾을 것이다.
가짜를 끌어내리고 진짜를 보위에 올리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한다.
“현물로 지급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세요.”
“그럼 제가 가진 동경 부동산을 헌납하겠습니다.”
“그것보다는 서울에서 있는 스타그룹 본사를 내놓으세요”
노골적인 요구!
‘스타그룹을 노리는 건가?’
일단은 넘기고 찾아오면 된다.
아니면 다른 곳에 스타그룹의 본사를 지으면 돼.
더 크고 더 화려하게.
“그렇게 하겟습니다. 대신 제가 1년 뒤에 다시 매입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세요. 현금을 쥘 수 있다면 우린 더 좋습니다. 1년 뒤에 찾아가세요. 하하하.”
이헌은 야마다 총리의 표정이 신경 쓰였다.
호탕하지만 미묘한 속내가 담긴 웃음이 그의 귀에 계속 거슬렸다.
하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서둘러야 한다.
이헌은 그들이 준비해 놓은 서류에 사인했다.
지금 잠시 빌려주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
평화롭고 한적한 대마도.
대부분의 대마도 주민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
이번 작전을 총지휘하고 있는 야마모토는 호텔 체력장에서 체력 단련에 매진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지루한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상부의 대기 명령.
이런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흐트러질 수 있는 자신을 경계했다.
두 손으로 꼭 쥔 칼의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그는 허공에 자신들의 적 화신유통 사장 박창수를 그렸다.
칼을 힘껏 휘둘러 가로로 베어 냈다.
-이얏!
다음은 신화그룹 윤정훈!
-타앗!
굵은 땀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입에서 뜨거운 숨이 토해진다.
마룻바닥에 꿇어 않은 채 명상을 하던 그.
부하로 보이는 남자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야마모토의 귀에 대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장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드디어 출정인가?”
“하잇!”
이천 명의 야쿠자들 속에서는 자위대 특수부대이자 현양사의 정예부대까지 섞여 있다.
그들은 한국의 밤을 장악한 다음 2단계 작전이 시작되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었다.
잃어버린 땅을 회복하라는 천황폐하의 명령에 가슴이 웅장해졌다.
“아버님은?”
“도쿄에 머물고 계십니다.”
야마구치 구미의 10대 두목인 자신의 아버지.
이제 곧 퇴진하면 자신이 조직을 물려받는다.
그리고 역사적인 전진이 시작된다.
두 눈을 부릅뜬 야마모토는 벽에 걸린 지도를 향해 달려갔다.
-이야앗!
한국 지도를 자신의 일본도로 단칼에 베어 냈다.
낡고 오래된 지도는 힘없이 잘리며 휘날렸다.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칼은 임진왜란 시 일본군 총대장 우키다 히데키의 칼.
이 칼로 실패했던 과거를 승리로 완성하리라 다짐했다.
“다들 은밀히 배에 탑승한다. 알겠나?”
“하잇!”
우렁찬 남자들의 대답이 호텔 로비를 울렸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날카로운 사내들이 우르르 호텔을 빠져나갔다.
준비된 승합차에 올라탈 때였다.
-탕,탕,탕
권총도 아닌 소총 소리였다.
“뭐야? 어느 미친놈이 감히”
“어느 방향이냐? 대장님을 보호하라!”
건장한 사내들이 대장을 보호한 채 승합차에 올라탔다.
“출발해, 어서!”
위협적인 소총 사격이 계속되었다.
“감히, 대 야마구치 구미에게 총질을 하는 놈이라니. 어떤 놈이지?”
“러시아 놈들인 것 같습니다. 지금 북쪽에서 전쟁 중입니다. 도쿄에 있는 우리 조직원들도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흠, 빨리 한국을 정리한 다음 러시아 놈들을 쓸어버려야겠군.”
“네.”
“그런데 도쿄에 병력이 너무 없지 않나?”
“감히 도쿄를 넘볼 사람은 맹세코 아무도 없습니다.”
야마모토는 부하의 말에 안심했다.
차가 부둣가로 들어갔을 때 봉고차가 경적을 울리며 요란하게 접근했다.
그리고 또다시 총질이 시작됐다.
-탕,탕,탕
“바로 배로 들어가.”
항구에 정박해 있던 페리로 승합차가 서둘러 들어갔다.
엉겁결에 쫓기듯 들어온 배 안.
페리 선의 자동차 주차장이었다.
뒤를 제외하고 앞과 좌우 모두 막혔다.
앞에는 조직원들의 차가 가득 차 있었다.
불안한 표정으로 모여 있는 그들.
“어떻게 된 거야?”
“그게……. 총을 쏘는 녀석들에게 쫓겨 여기까지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럼 다들 나가야지 뭐 하는 거야?”
“나갈 수 없습니다. 갇혔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총을 맞고 쓰러진 부하들이 곳곳에서 신음을 참고 있었다.
-부우웅
배가 경적을 울리며 출항했다.
“선장실을 점령해!”
“그게, 문도 모두 잠겨 있는 상탭니다.”
“뭐? 완전히 포위된 거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끝에 있던 문이 열렸다.
“누구냐?”
“반갑습니다. 야마모토 대장. 야마구치구미의 직책으로 불러드릴까요? 아니면 현양사의 직책으로 불러들일까요?”
“어떻게 현양사를……?”
야마모토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