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수니 게임 사업부와 이미지 사업부를 천억 엔에 말입니까? 불가합니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쓰레기들이나 양산하는 게임 산업입니다. 그리고 어디에 쓰일지 모르는 이미지 센서 사업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인수 대금으로 티비와 가전에 더욱 힘쓰세요.”
총리의 서슬 퍼런 말에 수니 회장은 기가 죽었다.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대 일본 제국의 기업이 한국 회사에 인수된다는 건 치욕이었다.
‘신화게임을 인수해도 모자랄 판에 인수된다니.’
수니 회장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현양사의 수장이 그런 결정을 내린 이상 따를 수밖에.
하지만 천억 엔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가격을 올려야 한다.
그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었다.
“5천억 엔은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인수대금으로 제대로 된 투자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5천억 엔?”
수화기 너머 들려온 수니 회장의 말.
야마다 총리의 인상이 잔뜩 구겨졌다.
“그럼 내가 인수 협상을 진행하겠소. 나중에 이의를 제기하지 마시오. 알겠소?”
“네, 총리 각하.”
전화를 끊은 야마다 총리는 인수 대금을 자신이 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흑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도 한몫을 챙겨야 한다.
거래를 중개했으면 수고비를 챙겨야 하는 법.
바로 전화를 걸었다.
“윤 회장, 천억 엔은 무리요. 5천억 엔에 인수하도록 합시다. 팔지도 않으려는 회사를 팔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정도에서 서로 합의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오천억 엔이라? 다섯 배가 뛰었습니다.”
“배임 문제도 있고 해서 5천억 엔이 적정가라고 합니다. 팔지 않을 회사를 살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계약은 4천억 엔으로 해 주세요. 천억 엔은 비자금으로 원한다고 합니다.”
‘천억 엔이면 1조 원인데…….’
해외에서 많은 돈을 굴리고 있는 자신에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좋습니다. 대신 지금 바로 변호사를 보내겠습니다. 오늘 계약하고 입금하겠습니다.”
정훈은 총리의 제안이 향후 그들을 갈라놓을 수 있는 분쟁의 씨앗임을 직감했다.
“수니 본사로 변호사를 보내겠습니다. 거기서 4천억 엔짜리 계약서를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천억 엔의 계약은 총리관저로 사람을 보내면 되겠습니까?”
“하하하, 이렇게 시원시원할 줄이야. 적이 아니었다면 아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아쉽소.”
하긴, 돈이 친구를 만든다.
자신에게 호구처럼 1조 원을 던져 주는 남자라면 누구라도 친구로 삼고 싶다.
“하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룹 비서실에 전화를 걸었다.
수니와의 인수 계약을 체결하라고 지시했다.
먼저 총리 관저로 가서 천억 원의 비자금 계약을 마무리했다.
그다음 수니 본사와 4천억 엔에 이미지 사업부와 게임 사업부를 인수하는 계약을 마쳤다.
대리인 서명을 마친 법무팀 변호사가 악수하며 인사했다.
“오천억 엔이면 서로 나쁘지 않은 계약이군요.”
수니 그룹 회장의 눈이 흔들렸다.
“오천억 엔이라니요?”
“총리관저에 천억, 여기서 4천억엔 아닙니까? 서로 이야기되지 않은 내용인가요? 아, 죄송합니다.”
신화그룹 법무팀장은 사과한 다음 서둘러 방을 나섰다.
전화기를 꺼냈다.
“회장님 지시대로 총리관저에서 있었던 계약을 흘렸습니다. 예상대로 전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수고했어요. 인수 계약 체결한 보도 자료 뿌리세요. 아 물론 인수 금액은 4천억 엔입니다.”
전화를 끊은 정훈은 흐뭇한 기분이었다.
싸움을 붙이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지 예전에는 몰랐다.
한편 한국 돈 4조 원에 수니 게임 사업부와 이미지 센서 사업을 인수하자 난리 났다.
-미친, 일본 제낌?
-작년 콘솔 게임 박살 난 거 잊음? 대세는 닌텐도인데!
-신화가 수니를? 국뽕 오지네. 가슴이 웅장해진다.
-게임은 패가망신의 지름이다. 겜 중독자들아 정신 차려라.
-신화그룹 자금력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네.
-와, 대박, 헐, 말이 안 나오네!
***
깊은 밤 도쿄 앞바다.
멀리서 2만 톤급 초대형 페리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마도에서 출발해 2박 3일의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다.
페리 선 안의 자동차 주차장을 가득 채운 남자들.
사방이 막혀 있었다.
습한 더위와 냄새 때문에 모두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야마구치구미의 야쿠자들이 포로가 되었다.
그들은 감시자들의 허락아래 화장실만 겨우 갈 수 있었다.
물과 식량은 조금도 지급되지 않았다.
모두가 허기와 갈증에 허덕였다.
꽉 막힌 공간이 주는 공포는 상상 이상이다.
자신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고통에 모두 지쳐 있었다.
평소 타인의 고통을 식량 삼아 살아왔던 놈.
눈앞의 비명엔 둔했지만 자신들의 고통엔 민감하다.
야마구치 구미의 두목 다케다는 항구로 들어오는 페리 선을 보고 두 눈을 부릅떴다.
저 안에 자신의 아들 야마모토가 있다.
이번 출정의 대장.
하지만 다리를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꽉 깨문 이빨이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기기긱
괴기스러운 쇳소리.
페리 선의 거대한 문이 내려지며 육지와 연결되었다.
안에서 시체 같은 몰골의 조직원들이 기어 나왔다.
전투의지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몸의 한 부분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패잔병이 아니라 폐기물이었다.
야마구치구미의 최정예들, 현양사의 조직원들이었다.
그런데 사무라이 전사의 자존심을 모두 바다에 버린 쓰레기들이 되어 돌아왔다.
처참한 몰골을 한 조직원들을 보며 분노할 때였다.
비서가 황급히 달려왔다.
“피하셔야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피해다니? 도쿄에서 누가 감히 나에게 도전한단 말인가?”
“이나카와 카미의 신병규가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뭐? 그놈의 세력으로는 우릴 감당할 수 없을 텐데.”
“한국의 화신유통 조직원이 대거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재일 한국인 야쿠자들 대부분이 이나카와 카미에 붙었습니다.”
“병신같은 놈들이 모였군. 그렇다면 일거에 밀어주지. 반격한다.”
“그게…… 병력이 없습니다. 지금도 카지노와 파친코, 유흥업소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두목님, 정예 조직원들이 대마도로 출정했고 나머지들도 홋카이도에서 러시아 마피아들과 전쟁 중입니다. 도쿄를 지킬 사람이 없습니다. 피해야 합니다.”
안방의 방어를 소홀히 했다.
빈집이 제대로 털렸다.
멀리서 승합차가 굉음을 내며 달려왔다.
적들이 분명했다.
“신병규 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두목님.”
거친 브레이크 소리를 내며 수십 대의 차가 질서정연하게 멈춰 섰다.
중앙에 있는 검은 세단에서 이나카와카미의 두목 신병규가 모습을 드러냈다.
“잘 지냈나?”
“건방진 놈. 감히 대 야마구치구미의 두목에게 말버릇이냐?”
다케다를 호위하던 남자가 말했다.
“말버릇?”
박창수가 짧게 되물었다.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몸을 날려 남자의 턱을 무릎으로 찍었다.
-컥
힘이 빠진 남자는 무릎이 꺾이며 바닥에 쓰러졌다.
다케다를 호위하던 놈들이 박창수를 공격하려 하자 다케다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만둬!”
신병규는 다케다를 이죽대며 보았다.
“꼴 좋군. 천하의 다케다가 구석에 몰릴 줄이야. 이봐, 페리 선을 괜히 보내 도쿄항으로 보낸 거라 생각하나?”
“그, 그럼…….? 설마.”
“설마는 무슨 네놈을 끄집어내려고 한 거지.”
“네 놈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나를 없앤다고 해결될 줄 아냐?”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만 가거라.”
“이 비겁한 조센징. 치졸하게 기습이라니.”
신병규가 앞으로 나섰다.
머리를 다케다의 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다케다의 눈이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신병규의 손바닥이 다케다의 뺨을 갈랐다.
-쫙
-윽
“비겁하다고? 네 놈이 한 짓보단 양반이다, 이 원숭이 새끼야! 지금껏 배신과 협잡을 발판으로 그 자리에 올라간 다케다 아이가?”
“으으으”
다케다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다케다를 보았다.
품 안에 있던 단검을 그에게 던졌다.
툭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무릎 앞에 떨어졌다.
“네놈이 믿는 놈들도 움직이지 않을 거야. 그러니 그만 정리해라! 느그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내가 준비했다.”
할복하라는 뜻이었다.
천천히 단검을 잡은 그는 칼집에서 칼을 꺼냈다.
아니나 다를까.
“으아아아”
할복 대신에 괴성을 지르며 칼끝을 세우며 신병규를 향해 달려 달려들었다.
-푸욱
-흐으윽
박창수의 칼이 다케다의 복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으윽
끝을 한번 돌린 다음 천천히 칼을 뽑았다.
고통스러운 얼굴로 바닥에 쓰러진 다케다.
“비겁한 새끼, 기회를 줄 때 명예롭게 가야지. 하긴 명예를 모르는 원숭이들이니.”
바닥에 쓰러져 꿈틀대는 다케다를 보며 짧게 말했다.
“정리해!”
“예.”
박창수는 품 안에 전화를 꺼내 보고 했다.
“끝냈습니다. 도쿄를 정벌했습니다.”
도쿄의 밤을 한국인이 지배하는 순간이었다.
***
일본 검찰총장 사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무슨 일이야?”
은색 안경으로도 가릴 수 없는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가토 검찰총장이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눈썹이 치솟았다.
황급히 들어와 머리를 숙인 남자가 말했다.
“야마구치 구미가 궤멸하였습니다. 다케다 두목도 사망했습니다.”
“뭐? 어떤 놈들이야? 감히 우리 사냥개를 건드려?”
“이나카와 카미의 신병규입니다.”
“미친 게 분명하군, 조센징 새끼”
가토가 인터폰을 누르려 손을 뻗을 때 벨이 울렸다.
“총장님 한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박현철 한국 검찰총장입니다.”
“뭐?”
‘배신자 새끼가 웬일이지?’
천지회 소속으로 같은 길을 걸었으나 완벽하게 변절한 놈의 전화.
불길했다.
“잘 지냈소, 가토?”
“무슨 일이냐?”
“몸조심하라고 전화했소.”
“배신을 한 사람이 갑자기 몸조심하라고 전화를 해? 당신이 더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 흐흐흐.”
“내 몸은 내가 알아서 챙길 테니 신경 쓰지 마시고! 참, 이나카와 카미가 도쿄를 정벌했다던데.”
“겁 없는 조센징이 설치는 거지. 곧 공권력의 무서움을 깨닫게 될 거야.”
“훗, 공권력이라…… 무섭지. 그런데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게 여론이던데.”
“여론이야 만들어지는 거 아닌가. 잘 알면서 왜 그러지?”
“이봐 가토, 비서를 그렇게 함부로 대하면 쓰나. 갑질은 이해해도…… 뇌물에, 성폭행은 심각한 범죄야. 게다가 남자 대학생까지 찝쩍대다니, 쯧쯧 ”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자네가 잘 알지 않나? 기념하려고 촬영까지 했으면서.”
“뭐?”
박현철의 말에 가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누구도 모르는 비밀.
자신의 비서들을 찝쩍거리는 게 가토의 잔인한 즐거움이었다.
“그러게 왜 신화 폰을 쓰고 쯧, 병신같은 새끼.”
박현철이 전화를 끊자마자 문이 벌컥 열렸다.
건장한 남자 세 명이 들어와 체포영장을 내밀었다.
“총장님, 투서가 들어왔습니다. 뇌물수수와 성폭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당장 나가지 못해?”
“죄송합니다. 동영상으로 된 증거가 나와 어쩔 수 없습니다.”
-꽝!
가토 검찰 총장이 자신의 책상을 세차게 내리치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자신의 팔에 팔찌가 채워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
신화모터스의 회의실에 있던 정훈은 전화기를 꺼냈다.
“보스, 일본 총리랑 연결됐어요. 그럼 좋은 이야기 많이 나누세요. 후훗”
“고마워요.”
차영미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간 정훈의 귀에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윤정훈이요. 잘 지냈소?”
“자네, 지금 대 일본 제국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글쎄요. 옳은 일이라고 하죠. 뇌물에, 비서에게 몹쓸 짓을 한 사람이 법을 집행하는 검사들의 우두머리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크흠, 윤정훈, 네 이놈!”
야마도 총리의 흥분한 목소리가 전화를 타고 넘어왔다.
“계속 지껄여 봐, 늙은이!”
“더러운 조센징, 내 친히 너를 벌하겠다.”
“그래? 그럼 내가 가진 자료 전부를 NHK에 보내 주지. 야마도 총리도 신화 폰을 쓰던데 폰 안에 좋은 게 많더군. 아주 재미있는 집구석이던데. 자네는 며느리와 그렇고 그런 관계더군.
하여튼 네놈들도 대단해. 첫째 아들은 둘째 부인이랑 붙어먹고 둘째 놈은 처제랑 붙어먹고. 가지가지 한다 정말. 그리고 자네 부인도 젊은 놈이랑 놀기 바쁘던데.”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그들 모두 신화전자가 무료로 제공한 갤럭시 전화기를 사용했다.
정훈은 휴대폰 안의 모든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천진혁이 만든 백도어였다.
일본 야쿠자들과 정·재계에 무료로 선물한 휴대전화.
정훈은 휴대폰을 통해 그들의 추악한 비밀을 얻었다.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더러운 비밀이 드러났다.
한 사회가 굴러가는 게 신기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야마다 총리, 내 경고하는데 이나카와 카미를 놔둬. 그리고 조용히 있어. 원숭이처럼 설치지 말고.”
“으으으”
야마다 총리는 깊은 분노를 느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의 추악한 면은 절대 드러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끊고 다시 회의실로 들어온 정훈은 절로 흐뭇한 미소가 그려졌다.
일본의 밤을 점령한 순간이었다.
피터가 정훈에게 말했다.
“윤 회장님은 어떤 걸 선택하시겠습니까? A 안입니까? B 안입니까?”
“그러니까 외관 디자인을 두 개나 만듭 겁니까?”
“어쩔 수 없었어요. 밑에서 반대가 워낙 심해서요.”
정훈은 드래곤 모터스 출신 임원들을 보았다.
사장인 피터 글라이더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 보였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이지만 한물갔다는 평가가 조금씩 나왔기 때문이다.
A안 디자인은 곡선의 유려함이 특징이었다.
반면 B안의 디자인은 남성적인 선과 강렬한 힘이 느껴지는 디자인이었다.
A 디자인이 바로 그의 부활을 알리는 S5였다.
미래를 알고 있는 정훈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A를 선택하면 된다.
그런데 피터를 신뢰하지 못하는 임원들의 기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골똘히 생각한 정훈.
피터가 좀 더 확실히 회사를 장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사장 말 안 듣는 것들은 쳐내야 한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