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157화 (157/200)

#157화

“어, 차보아 씨”

은수 뒤에서 쭈뼛대던 그녀는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정훈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앉으세요. 이쪽으로”

정훈은 차보아에게 자리를 권했고, 은수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 털썩 소리를 내며 앉았다.

왼쪽에는 차보아가, 오른쪽에 은수가 자리했다.

차보아는 대학교 새내기처럼 물이 빠진 연한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입고 왔다.

허리까지 오는 짙은 생머리가 더해져 청순함을 물씬 풍겼다.

비서가 들어와 헤이즐넛 향이 가득한 커피를 두고 사라졌다.

각자 자신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하, 향이 너무 좋네요.”

그녀는 짧게 감탄했다.

정훈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다음 입을 열었다.

“그런데 갑자기 웬일이세요?”

“은수 씨 때문에 상의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은수요?”

정훈은 은수를 보았다.

다리를 꼰 채로 관심 없다는 자세로 귀만 후비적거리고 있었다.

“그게…… 제가 주제넘은 것 같긴 한데, 은수 씨 재능이 너무 아까워서요.”

“재능요?”

“네,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어요.”

“그런데요?”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재능을 썩히긴 아까워서요. 들어보니까 지금까지 싸움만 하고 다니는 것 같던데요.”

차보아의 목소리는 정훈을 탓하고 있었다.

“싸움에도 재능이 있어요.”

“그럼 싸움을 할 게 아니라 액션 배우를 해야죠.”

“흠, 차보아 씨는 왜 은수일에 간섭하는 겁니까? 혹시 은수한테 사심이 있는 겁니까?”

동그란 눈이 크게 뜬 그녀는 황급히 두 손을 휘저었다.

“아니요. 절대로 그런 게 아니에요. 최근에 스케줄이 꼬여서 잠시 쉬고 있는 중이에요.”

“쉬고 있다구요? 흠, 승무원 그만두신 거군요.”

당연히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득 달력을 보았다.

2006년 10월 8일.

그녀는 이미 신인으로 데뷔 했어야 한다.

조연을 맡은 드라마에서 인지를 쌓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왜 여기 있는 거지?

“네 저번 비행을 마치고 그만뒀어요. 연기학원 다니면서 채용공고를 보고 떨어졌다가 다시 학원을 다니는 바람에 일이 좀 꼬였어요.”

“무슨 채용공고요?”

“모 그룹에서 전용기 승무원을 뽑는다고 해서 지원했다가 탈락했어요.”

그녀의 얼굴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것 때문에 일정이 좀 꼬였어요. 그래서 조연으로 출연하기로 했던 배역도 날아갔어요”

정훈의 이마에 주름이 그려졌다.

‘저것 때문인가?’

자신이 한 사람의 운명을 크게 바꾸었다.

나쁜 쪽으로.

“하, 저 때문에 배역이 날아간 거군요.”

“아, 아니에요. 제가 원해서 본 면접이었어요.”

안타까웠다.

그 배역에서 통통 튀는 매력을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그런데 자신 때문에 그 발판이 날아갔다.

안타까웠다.

하지만 냉정하게 대했다.

“설마 제 탓을 하러 오신 건 아니지요?”

“네? 그런 거 아니에요. 순수하게 은수 씨 때문에 온 거예요. 연기를 전문적으로 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은수씨가 결정을 못 내려서요. 정훈씨랑 이야기해 보라고 했어요.”

‘하, 저 새끼…… 정말 귀찮게 한다.’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말지.

왜 나랑 상의를 하라는 건지.

은수가 곁에 있으면 당연히 좋다.

가끔씩 엉덩이를 걷어찰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자 자신에 필적할 만큼 강한 주먹.

둘이 있으면 누구도 무섭지 않았다.

정훈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곁에 있어 봐야 좋을 거 없다.

싸움 잘하는 것보다는 가진 재능을 꽃피우는 게 은수를 위한 길이다.

로맨스 소설과 시집을 미친 듯이 읽으며 눈물을 흘리던 은수.

얼굴에, 키에, 연기까지 안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은수는 발가락을 까딱이면서 심드렁한 표정을 하고 있다.

정훈은 은수에게 물었다.

“야, 넌 어때? 하고 싶어?”

그때 차보아의 가방에서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전화기를 꺼낸 그녀는 곤란한 표정이었다.

“받으세요.”

“아, 잠시만요. 전화 좀 받고 올게요.”

차보아가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은수는 자신이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흠, 글쎄, 하인선 씨가 한때 몸담았던 연예계에 진출한다…… 조금 걱정되네.”

“걱정? 무슨 걱정? 엄마 보고 울 것 같아서 그래?”

“이게 돌았나?”

정훈은 일부러 장난쳤다.

그러지 않으면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을 것 같았다.

“그게 중요해?”

“아니. 전혀”

은수의 목소리에 힘이 가득 들어있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가 느껴졌다.

“그럼, 해봐. 내가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 안 그래도 그룹 차원에서 엔터테인멘트 쪽으로 진출해야 해.”

“그래? 잘됐네. 그럼 나도 친구 덕 좀 보자.”

은근히 자존심이 강한 은수.

신화 그룹이나 자신의 이름을 팔지 않을 건 분명했다.

오히려 자신의 이름만으로 최고의 자리에게 서고 싶지 않을까?

“정훈아, 부탁이 있어.”

지금까지 와는 다른 분위기로 은수가 입을 열었다.

“말해.”

“보아 씨가 곤란한 상황에 빠진 거 같아. 우리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데.”

“무슨 도움.”

“그쪽 세계의 흔한 이야기 있잖아.

배역을 빌미로 술자리에 부르고, 출연료를 상습적으로 체납하고.”

“차보아씨가 있는 소속사 가서 이 친구 사정 좀 알아봐봐. 내가 들어가서 다 때려 부수고 싶은데……. 괜히 차보아 씨한테 민폐가 될 수 있을 거 같아서 참고 있어.”

“제 일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언제 들어왔는지 차보아가 문 앞에서 말했다.

자존심이 꽤 상한 얼굴이었다.

“제가 해결할 수 있어요.”

“그래요? 병원에 찾아온 놈들을 보면 질이 아주 나쁜 사람들 같던데.”

“아니에요. 피부가 거칠어서 그렇지 착한 사람들이에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요즘은 착한 사람들이 협박도 하는 거예요?”

은수의 말에 차보아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착한 사람들이 있는 소속사는 어디에요?”

“세이렌 프로덕션이에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회사였다.

그래서 더욱 의심이 갔다.

정후을 소매를 걷어 시계를 힐긋 보았다.

있지도 않는 약속을 핑계로 삼기로 했다.

“제가 회의가 있어서요. 이만 일어나죠.”

“그래? 알았어. ”

두 사람을 먼저 보낸 후 정훈은 품 안에 있던 전화기를 꺼냈다.

“네, 회장님. 박창수입니다.”

“세이렌 프로덕션 좀 알아봐 주시겠습니까?”

“세이렌 프로덕션? 최대한 빨리 조사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

무더운 오후였다.

아직 더위가 다 지나가지 못한 9월 초.

고정훈 매니저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수면 부족으로 인한 피로와 연락을 씹는 배우 지망생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고창훈 로드 매니저.

책상 위에 있던 전화기 부르르하며 떨었다.

기다리던 전화가 드디어 온 것이다.

그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고객님, 접니다. 기다리던 차가 지금 왔습니다.”

“정말요?”

“지금 회사 앞입니다. 내려오시겠습니까?

“넵.”

너무 큰소리로 대답해 사무실에 있던 다른 직원들이 자신을 보았다.

무안해서 얼굴이 빨게 졌다.

작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 그는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여유가 없어 계단을 통해 1층까지 뛰어 내려갔다.

밖으로 나간 고창훈의 눈에 검은색으로 반짝이는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 강한 빛에 눈을 찡그려야만 했다.

“여깁니다.”

정우현 딜러는 고창훈을 향해 미소지었다.

정우현은 고창훈 매니저를 안내해 반짝이는 차를 보여줬다.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우와”

그토록 고대하던 신화 모터스 S5 였다.

두 달을 기다려 겨우 받았다. 지금 계약하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자신은 출시 첫날 아침 일찍 대리점으로 가 줄을 서서 2달 만에 받은 것이다.

30퍼센트의 선수금을 내고 할부로 지른 자신의 애마 S5가 눈앞에 매끈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사회생활 5년 만에 뽑은 자신의 첫차.

눈가가 촉촉해졌다.

유광 블랙의 번쩍이는 빛은 어서 시동을 걸라며 쉬지 않고 유혹했다.

“그럼 여기 사인 부탁드립니다.”

슥슥 사인을 한 다음 키를 받았다.

묵직한 키를 들고 운전석 문의 손잡이를 잡아 올렸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유러피안 감성의 세련된 디자인.

세계적인 디자이너 피터 글라이더의 작품이라서 그런지, 지금까지의 한국 차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신화모터스의 첫 승용차라서 사람들의 우려가 컸다.

모든 우려를 불식시키는 디자인과 성능, 그리고 가격까지.

미친 판매량을 달성했다.

과연 1년을 기다려서라도 살만한 작품이었다.

비닐도 벗겨지지 않은 시트에 몸을 밀착시킨 후 키를 꼽고 돌렸다.

-부르릉

섬세한 엔진음이 귀에 들려왔다.

브레이크에 발을 떼자 미끄러지듯 나갔다.

섬세한 서스펜션의 성능에 매우 만족했다.

고창훈은 자신의 차를 지하 주차장으로 옮겨 주차했다.

차에서 내려 사랑스런 손길로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때 주차장 입구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웅웅웅

거친 소음에 주차장의 굵은 기둥을 미약하게 떨렸다.

‘뭐야? 지진이 났나?’

고개를 돌렸을 때 부가티가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과 같은 유광 블랙의 부가티 시롱이 가까워지고 있다.

두 눈을 깜빡였다.

‘와 살면서 눈으로 직접 볼 줄이야?’

조명에 반사되어 번쩍이는 자태가 자신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명불허전!

지하 주차장에 있던 사장님의 자리에 차를 댔다.

지랄 맞은 사장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대지 못하던 곳이다.

미친 사장도 부가티 시롱이라면 허락할 것 같았다.

차에서 내린 남자 본 고창훈의 눈이 커졌다.

저 사람은 분명…… 대한민국 최고 갑부가 분명했다.

운전석에서 내린 그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이름이 뭐더라…… 영앤 리치에 나온 윤 뭐였는데’

***

세이렌 프로덕션 사장 유두식은 입이 귀에 걸렸다.

굴지의 대기업의 제안을 받았다.

거기다가 스타그룹 이석 회장의 은밀한 스폰서 제안까지.

지금이야 멋모르는 지망생이 콧대를 세우며 튕기지만…….

돈맛을 보면 그년도 자세를 바꿀 것이다.

소매 속에 감춰진 롤렉시 시계를 드러내며 시간을 확인했다.

중국에서 구한 S급 짝퉁이지만 마음에 들었다.

이제 곧 있으면 투자자가 도착한다.

유두식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사무실 상태를 체크했다.

먼지 하나 없어야 하는데 청소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장실 벌컥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야이 씨펄, 고창훈이 어딨어? 청소 똑바로 안 해. 내가 오늘 중요한 손님 온다고 안 했어?”

“죄송합니다. 사장님. 창훈이 지금 안 보이는데 오면 바로 청소하러 보내겠습니다.”

“괜찮아요. 상관없어요.”

사무실 입구에 서 있던 남자가 유두식을 보고 말했다.

“누구야?”

“나? 투자자”

“설마, 신화그룹”

“신화그룹 회장, 윤정훈”

유두식의 눈동자가 지진났다.

그 여파로 손도 달달 떨고 있다.

“죄송합니다. 몰라뵀습니다.”

“괜찮아요. 들어가죠.”

유두식은 윤정훈을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사무실 가운데 있는 짝퉁 명품 소파의 상석을 차지한 정훈은 주변을 보았다.

명화에 배우 포스터 하며 나름 열심히 꾸몄지만 조악한 느낌이 강했다.

수준 높은 전문가의 손길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유두식이란 인간도 그랬다.

뒷골목 출신으로 연예기획사에 잠깐 있었던 경력으로 사무실 차려서 겨우겨우 먹고살고 있다.

전문가는 아니다.

‘하긴 그러니 상납 같은 더러운 일이나 일삼겠지.’

상석에 앉은 정훈은 멀뚱히 서 있는 유두식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겨 어쩔 줄 몰라 했다.

“앉아, 안 무너져.”

“아, 예 ‘

유두식은 소파의 상석을 차지한 정훈의 왼편에 앉았다.

내색하지 않지만 자기 자를 빼앗기고 반말까지 들어서 기분이 꽤 상해있었다.

그래도 투자를 받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꾹 참았다.

아니면 이번 달 돌아오는 어음을 막을 수가 없는 상황.

‘차보아 년이 이석회장의 스폰만 받아들였어도 이런 일은 없는데’

이번 스폰을 하면 자신에게 3억이 떨어지는데…….

사실 돈보다는 그들과의 친분, 그리고 투자가 핵심이었다.

차보아 년을 생각하자 열이 훅 오른다.

잠수탄 그 아이 때문에 난처한 상황.

얼굴이 반반한 그녀를 찍은 게 하필이면 스타 그룹의 이석이었다.

이번에 크게 투자도 받을 수 있었는데.

유두식은 정신을 차리고 본론을 꺼냈다.

“투자는 얼마쯤 생각하십니까?”

정훈은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일어서 책상으로 가 유두식이라고 쓰여 있는 투명 아크릴 명패를 들었다.

“얼마에 팔래?’

“네?”

명패를 흔들면서 유두식을 노려보았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네 놈이 한 모든 짓을 알고 있어. 검찰에 보내려다 참는 거야. 10억에 정리해.”

“안 됩니다.”

“이거 10억 팔고 필리핀으로 튀어. 안 그럼 바로 감방 갈 거야.”

갑작스런 상황에 얼이 빠져 정신이 없었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하늘 같은 분이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창수 형님.”

천천히 걸어들어온 박창수는 유두식에게 대꾸도 하지 않았다.

공포에 짓눌려 있던 유두식을 뺨을 후려쳤다.

-좌악

“내가 형님이라 부르면 입을 찢어버린다고 했을 텐데.”

빨갛게 부풀어 오른 볼을 비비며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10억에 정리해. 회장님이 선처해 주신다고 했으니 필리핀으로 가서 조용히 살아. 만약 거기서도 더러운 소문이 들리면…….”

박창수가 유두식을 쏘아 보았다.

“아 알겠습니다. 형님.”

정훈은 법무팀에서 준비해준 서류를 그에게 내밀었다.

서류에 사인을 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린 안으로 들어왔다.

“사장님, 저에요.”

그녀를 본 유두식은 당황한 표정으로 황급히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정훈도 그녀를 보았다.

분명히 낯이 익은 사람인데…… 배우가 분명한데……

안개 속에 싸여있던 그녀의 이름이 모습을 드러냈다.

‘윤수연. 저 배우가 여기였었구나.’

소속사의 성 상납 강요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여인이었다.

“여기 앉으세요.”

정훈은 따뜻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네, 아 알겠습니다.”

그녀는 잔뜩 굳은 정훈과 박창수의 얼굴 때문에 긴장한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와 소파의 가장자리에 앉았다.

완전히 주눅 든 모습이었다.

그녀의 표정과 몸짓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그녀의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곧 최고의 연기 선생님들을 회사에 모실 생각입니다. 이제는, 꿈을 향해 나아가세요.”

정훈은 수연에게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남겼다.

“네? 무슨”

윤수연은 정훈의 말에 깜짝 놀랐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다?

혹시나 알고 있는 건가?

그런데 왠지 믿음이 가며 긴장됐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연기 선생님들?

이제 제대로 연기를 배울 수 있는 걸까?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절대 믿을 수 없다.

처음 더러운 수렁에 빠진 이유도 순진했던 자신의 어리석은 믿음 때문이었다.

흔들리면 안 된다.

이 바닥에서 누굴 믿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윤수연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자를 보았다.

“신화그룹 회장, 윤정훈입니다. 제가 한 약속은 신화 그룹의 이름으로 지켜질 겁니다.”

“신화그룹요? 정말인가요?”

재계 1, 2위를 다투는 대기업.

젊은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그룹 1위 신화그룹.

그리고 타임지가 선정한 아시아의 젊은 리더에 뽑힌 윤정훈 회장.

처음에 저 남자를 봤을 때 윤정훈을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 사람이었다.

“다음에 봤을 때는 좀 더 밝은 모습이었으면 좋겠군요.”

“가, 감사합니다.”

윤수연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의 작은 어깨가 들썩였다.

지금까지의 설움이 한 번에 씻겨나가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그날 오후부터 세이렌 프로덕션 직원들은 대대적인 감사를 받았다.

배우들과 맺은 불공정 계약을 모두 해지했다.

그들에게 사죄한 다음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

손이 더러운 직원들은 모두 해고했다.

새 계약을 맺은 배우들은 감추고 있던 자신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세이렌 프로덕션도 신화엔터테인먼트로 사명을 변경했다.

신화그룹의 갑작스런 연예계 진출에 많은 사람이 궁금해했다.

실패가 없던 신화그룹.

항상 놀랄 만큼 경이로운 성장을 이룬 신화.

연예계에서는 어떤 신화를 쓸지 사람들의 이목이 윤정훈에게 쏠렸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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