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160화 (160/200)

#160화

심영수는 차를 몰고 자신이 대표로 있는 영수아트무비 사무실로 갔다.

주차장에 있는 차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에 이 차가 있다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본 적은 처음이었다.

수십억을 호가하는 차.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운 부가티였다.

문득 차 주인이 부러웠다.

자신은 투자금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지만, 이 차의 주인은 수십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재벌일 것이다.

그런 인생을 한번 살아 보고 싶었다.

비교할 이유가 없는데도 저절로 비교가 됐다.

주변을 살핀 심영수는 검은색 부가티에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댔다.

부가티의 거친 DNA가 손끝에 전해졌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삶이다.

헛된 꿈을 꿀 때가 아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신을 차린 심영수는 사무실로 올라갔다.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자 직원들 모두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 기대가 가득 차 있었다.

다른 회사도 아니고 신화그룹이다.

신화그룹이 선택한 회사는 100퍼센트 뜬다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 재계가 인정하는 투자의 귀신이자 경영의 달인.

심영수는 혹시나 그가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100억도 되지 않는 작은 영화 투자에 그룹 회장이 올 거란 생각은 망상이다.

최근에 신화엔터테인멘트가 설립되었으니 과장이나 부장급 직원이 올 거라 생각했다.

“어디 있어?”

“방에요.”

“나 어때, 단정해 보여?”

“네, 힘내세요, 대표님!”

심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 혼자 계시지? 차 좀 준비해 줘.”

“네, 들어가 보세요.”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천천히 내쉬었다.

두근대던 심장이 다시 제 속도로 돌아왔다.

‘할 수 있다. 영우야, 아빠 좀 도와줘!’

심영수는 자신의 방 손잡이를 돌리며 천천히 문을 밀었다.

순간 빛이 나는 착각이 들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릴 뻔했다.

후광이 나오는 사람은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처럼 빛나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은은하게 반짝이는 정장에, 반질반질한 광이 나는 구두.

나이는 자신보다 한 참 어렸지만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기품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본 재벌 회장 중 가장 잘생겼다.

“윤정훈입니다. 전설적인 코미디언을 만나서 영광입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영광입니다.

재벌 회장님들은 목에 힘이 들어가 뻣뻣한 얼굴로 거들먹거리기 바빴는데.

이 사람은 다른 것 같다.

목에 깁스한 것처럼 인사받던 그들과 달리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그래서인가?

재벌 회장 중 유일하게 호감이 갔다.

“솔직히 직접 오실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좋은 영화에 투자하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제가 나와 봐야죠.”

좋은 영화? 자신의 영화를 칭찬하자 긴장했던 심영수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풀어졌다.

“좋은 영화라니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이십억도 안 되는 투자를 위해서 회장이 직접 움직이다니.

감동적이다.

직원이 들어와 차를 놓고 나갔다.

소파 테이블을 마주 보고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심영수가 말했다.

“혼자 오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혼자 다니는 걸 좀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럼 영화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할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네? 프레젠테이션을 받지 않는다고요?”

“그냥 몇 가지 궁금한 것만 확인하면 됩니다.”

다른 투자자들 같으면 프레젠테이션만 몇 번을 거쳐야 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심영수는 침을 삼켰다.

“확인하고 싶으신 걸 물어보시죠.”

정훈은 심영수를 보았다.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의 인중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긴장하지 마세요. 잡아먹지 않습니다.”

“아, 네. 안 하려고 해도 자리가 자리인지라, 하하하.”

정훈은 날씨부터 시작해 사소한 이야기로 딱딱한 분위기를 풀었다.

서먹함이 사라졌을 때 본론으로 들어가는 질문을 던졌다.

“투자금이 정확히 얼마나 필요합니까?”

“20억만 있으면 개봉까지 문제없습니다.”

심영수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숙였다.

원래는 80억에서 최대 100억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100억을 투자받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만나온 투자자들 모두 100억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투자를 거부했다.

지금은 무슨 써서라도 개봉하는 게 중요하다.

중간에 멈춰 이대로 개봉에 실패하면 모든 게 사라진다.

최악은 막아야 한다.

“20억이요? 확실합니까?”

윤정훈 회장의 물음에 순간 고민했다.

‘100억이라고 사실대로 질러 버릴까?’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어제 꾸었던 대통령 꿈이 맞는다면 이게 마지막 기회다.

이미 50억을 투자한 상황에 100억을 말하자 투자를 거부했던 기억이 다시 생각났다.

그래서 20억으로 줄였다.

퀄리티를 양보하면 20억에 마무리할 수 있다.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영화의 완성과 개봉이다.

영화의 질은 조금 양보할 수 있다.

“……네, 20억이면 충분합니다.”

정훈은 심영수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었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150억이다.

최태원 사장의 말에 의하면 지금까지 들어간 돈이 50억이었다.

그런데 지금 20억만 있다고 말한다면 총제작비가 70억이 되는 것이다.

150억으로 만든 영화와 70억으로 만든 영화.

물론 70억짜리 영화로 수백만 명을 모으면 상관없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예산이 두 배 차이 나면 작품의 질은 몇 배 이상 차이 난다.

특히 이 작품처럼 특수 효과가 많이 나는 영화는 더욱 심하다.

“20억만 있으면 되는군요. 지금까지 50억이 들어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70억에 할리우드와 같은 수준의 대작을 찍는 건 대단한 능력입니다.”

윤정훈 회장의 칭찬에 심영수는 무안해졌다.

대작이라는 단어가 그의 귀에 거슬렸다.

20억으로는 겨우 완성해 개봉만 할 수 있는 상황인데.

“대작이라고 부르기 초라합니다. 할리우드에 비하면 형편없습니다.”

“겸손하시네요.”

정훈이 칭찬하자 더욱 무안해졌다.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특수 효과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작품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정훈의 귀에 작품을 조금 수정했다는 말이 거슬렸다.

좋지 않은 방향으로 대폭 수정한 것이라 직감했다.

“할리우드와 같은 수준의 작품을 제작하는 거 아닙니까?”

정훈은 심영수의 눈을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솔직히 <더 드래곤>의 특수 효과는 헐리우드에 비해 아쉬웠다.

150억을들였음에도 부족해 보였다.

그런데 투자금이 70억으로 줄어든다면?

어쩌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작품이 탄생할 수도 있다.

“질문을 다시 하죠. 혹시 제작비 때문에 작품의 퀄리티를 수정했습니까? 혹시 반드시 해야 할 작업들을 뺀 겁니까?”

정훈의 추궁하는 목소리.

심영수의 이마에서 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렸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 그게…… 한국 실정에 맞게 제작비를 조금 조절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아서요.”

윤정훈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새겨졌다.

“그럼 작품의 질이 처음과 다르다는 말입니까?”

목소리의 톤이 올라가 있었다.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좋은 작품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개봉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투자한 50억이 허공에 날아갈 처지입니다.”

정훈은 심영수가 한심하면서도 의아했다.

이 사람이 어떻게 무수한 난관을 딛고 그 영화를 만들어 낸 거지?

사실 <더 드래곤>은 시나리오의 개연성이 부족했고 배우들의 연기도 아쉬웠다.

그럼에도 대박을 친 이유는 그의 도전 정신 때문이었다.

할리우드에서는 최소 천억이 필요한 영화를 150억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의 도전 정신을 응원한 것이다.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

“작품의 퀄리티를 양보한다는 건, 감독으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것입니다. 실망입니다. 심영수 감독님.”

“아, ……죄송합니다.”

그는 정훈이 한 말을 나지막이 되새겼다.

‘영화감독 심영수.’

영화를 찍고 있어도 사람들은 개그맨 심영수라고 불렀다.

인정하기 싫다는 속마음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신을 영화감독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신을 수치스럽게 하고 있다.

작품의 퀄리티를 양보한다……

“저도 양보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들어간 자금이 50억입니다. 지금 100억이 더 필요합니다. 누구도 제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습니다. 제가 영화감독이 아니리 웃긴 개그맨이라서요.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영화를 개봉하는 겁니다.”

“자존심을 판 것이군요.”

“아니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개봉 못 하면 팔 자존심도 사라집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정훈도 심영수의 말에 동의했다.

죽어 가는 영화를 살리는 게 최우선이다. 자존심은 다음 문제.

하지만 작품의 퀄리티는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 그럼 제 앞에 무릎 꿇고 부탁해 보세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자식 같은 영화의 질도 포기하는데 그깟 무릎이 뭐라고…….”

“네? 지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심영수의 눈썹이 치솟았다.

“혹시 압니까? 100억을 투자할지도”

정훈의 말이 심영수의 귀를 때렸다.

‘자식 같은 영화를 내가 망치고 있었던 건가?’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심영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뚫어지게 보는 정훈의 눈을 응시했다.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큰 실수를 하고 있었군요. 자식 같은 작품을 난도질하고 있었습니다. ”

심영수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자신의 작품과 영수가 오버랩 되어 버렸다.

“그 아이가 얼마나 아팠을까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심영수는 무릎을 꿇으려 했다.

“그만!”

정훈이 그를 멈춰 세웠다.

자리에서 일어나 심영수를 보았다.

“100억 투자합니다. 앞으로 이 순간을 잊지 마세요. 100억보다 중요한 건 작품의 수준입니다. 다시는 작품을 난도질해 자식 같은 영화를 아프게 하지 마세요. 저는 필요하다면 100억 200억도 투자합니다. 알겠습니까?”

“저, 정말입니까?”

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영수의 볼살이 파르르 떨리며 눈앞이 흐려졌다.

영수가 도와준 걸까?

‘아빠 힘내. 파이팅!’

귓가에 영수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심영수는 고개를 들어 윤정훈 회장을 보며 다가갔다.

정훈은 자신에게 다가와 손을 잡고 안기려는 심영수를 뒤로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자신의 몸에 남자가 엉겨 붙는 건 딱 질색이다.

오직 다혜만이 가까이 올 수 있는 몸이었다.

부가티에 앉아 흐뭇한 미소를 지은 정훈.

엑셀을 한 번 끝까지 밟았다.

-우우웅

굉음을 내며 존재감을 뽐낸다.

미끄러지듯 골목을 빠져나갔다.

정훈의 귀에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야 이, 개새끼야 골목에서 뭐 하는 짓이야!”

***

차보아는 회사가 마련해 준 연습실에서 한참 동안 발성 연습을 했다.

“아, 에, 이, 오, 우”

조금 전 수업 마칠 때 이순진 선생님께서 각자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 줬다.

자신은 발성과 부정확한 발음이었다.

1시간 정도를 연습한 그녀는 주변을 보며 한 바퀴 뱅글 돌았다.

다시 생각해도 믿기지 않았다.

거지 같은 회사가 왕자가 되었다.

넓은 연습실과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 선생님.

꿈같은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짐을 챙겨 연습실을 나갔을 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야, 차보아 같이 가!”

은수의 목소리였다.

늘어지던 입술을 재빨리 원래대로 돌렸다.

관심 없는 듯 시크하게 답했다.

“어? 아직 안 갔어?”

자원봉사자와 병원 환자로 만난 은수.

처음엔 과대망상 환자라고 생각했다.

재벌 회장이 자기 친구라고 떠벌렸다.

그런데 진짜였다.

미친 것처럼 약간 붕 떠 있었는데 지금은 좀 차분해지고 진중해진 느낌이다.

연기 연습을 하면서 자기 인생의 목표를 찾은 것 같았다.

“너 오면 같이 가려고 했지. 너 같은 미인을 혼자 두고 가면 안 되지.”

은수의 칭찬이 싫지 않았다.

아주 조금 설렜다.

티를 내지 않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옅은 웃음이 지어졌다.

“오늘 어땠어?”

“오늘도 죽는 줄 알았지.”

은수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목소리를 바꾸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사실 처음이었어. 내가 원하는 걸 향해 노력한 게, 그래서 보아, 너한테 고마워!”

“어? 아니야.”

갑자기 변한 은수의 분위기에 차보아가 살짝 당황했다.

“그런데 보아 너 많이 혼나던데 괜찮아?”

“응, 사실 내가 답답해하던 부분을 제대로 지적해 주셨어. 그동안 답답했는데 뻥 뚫린 기분이야.”

“다행이네.”

“넌 어땠어? 선생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시던데.”

“어휴 말도 마라 얼마나 혹독하게 가르치시는지…….”

“그래? 그래도 선생님이 기대 많이 하는 표정이던데?”

“몰라, 하여튼 노친네 입이 장난이 아니더라. 세탁기 속 빨래처럼 탈탈 털렸어.”

“야, 그만큼 좋은 거야. 소문 몰라? 이순진이 혹독하게 다룰수록 톱스타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정말?”

“응, 이 바닥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흠, 그럼 난 월드 스타 정은수가 되겠군.”

“그건 아니고, 내가 봐도 넌 기본기가 많이 부족해. 그래서 많이 혼나는 거야, 큭큭큭.”

차보아가 입을 막고 꺽꺽대며 웃었다.

“가자 태워 줄게.”

“진짜?”

“그럼, 미래의 톱스타 차보아 씨를 혼자 보낼 순 없지.”

“나보단 네가 더 유명해질 것 같은데. 월드 스타 정은수 씨!”

이순진 선생님의 혹독한 가르침이 은수의 큰 가능성을 증명했다.

그건 그녀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함께 연기를 배우는 수연을 비롯해 소속된 다른 배우들도 힐긋거리며 은수에게 관심을 가졌다.

자신들이 보기에도 가능성이 대단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두 사람은 계단실을 나와 어두컴컴한 지하 주차장으로 나갔다.

그녀는 은수 옆에 붙어 나란히 걸을 수 있어 내심 좋았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은수의 팔이 스칠 정도로 가까이 붙었다.

멀리 은수가 애지중지하는 애마 S5가 보였다.

“저기 있네?”

대답이 없어 은수를 보았다.

은수가 잔뜩 긴장해 있었다.

멀리서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비릿한 웃음과 함께 다가오고 있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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