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정훈은 이병석을 보며 물었다.
“안 될 거 있습니까?”
“절대 안 됩니다. 15조라니요?”
평소와 달리 단호한 목소리였다.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훈은 그의 거친 반응에 인상을 찌푸렸다.
구겨진 얼굴을 펴며 재빨리 평정심을 찾았다.
다시 무심한 표정으로 정훈이 반문했다.
“뭐 할 수도 있죠. 그리 반대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이유가 뭡니까?”
“검색 시장에서 1위를 했던 기업입니다. 그런데 얼마 버티지 못하고 구글에게 시장을 뺏겼습니다. 특히 미국 검색 시장 점유율이 지금 30퍼센트 아래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70퍼센트였습니다. 망해 가는 회사를 살 이유는 없습니다.”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합니까? 우리 신화그룹 아래에서 되살아났던 회사들이 기억나지 않습니까? IT 업종이라고 다를 것 같습니까?”
“하지만 회장님, 유행에 민감한 산업입니다. 한번 떠난 이용자들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용자들이 떠난 이유는 더 편리한 서비스가 있어서입니다.”
“그럼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야후의 성장이 정체되는 이유는 편리한 구글 검색 때문입니다. 우리 신화가 그런 서비스를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그게, 쉽지 않습니다. 회장님”
정훈은 이병석을 보았다.
구글의 기세에 싸우기도 전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싸워 보지도 않고 패배를 생각하다니.
싸우다 지면 다시 싸우면 된다.
하지만 싸우지 않으면 평생 패배자가 될 뿐이다.
“지금 신화건설이 세계 10위입니다. 2001년 신화건설의 모태인 중부건설은 도급순위 500위 밖이었습니다. 저와 우리 신화그룹 직원들은 신화건설을 몇 년 만에 세계 10위의 건설회사로 키웠습니다. 우리 신화가 그것 하나 못합니까?”
“그건 그렇지만 아이티 업종 특성상 유행에 민감하고 기술 격차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훈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오늘따라 이병석의 말이 많이 거슬렸다.
분명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는데…….
“그놈의 업종 특성…….”
-꽝
정훈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평소와 점잖았던 정훈과 달랐다.
새 사옥에서 처음으로 진행되는 회의.
계열사 사장들과 임직원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생각했는데.
회장님의 고성이 회의실의 채웠다.
“그 특성만 생각하면 되는 게 없습니다. 우리 신화가 여기까지 온 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회의실을 가득 채운 임원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정훈의 그들의 숙인 머리를 보면서 서늘한 기분을 느꼈다.
‘기껏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재벌의 습성이 배어 버렸다.’
도전하고 싸우고,
실패하고 실패하다 결국 성공하는 도전 정신이 사라져 있었다.
원래 이병석의 반대는 계획된 연출이었다.
임직원들에게 야후에 대한 인수 의지를 보이기 위한 연극이었다.
정훈은 이번 기회에 잃어버린 도전 정신을 깨우기로 결심했다.
새 사옥의 첫 그룹 회의.
괜찮은 목표다.
“이걸로 회의 마치겠습니다. 야후는 예정대로 얼마가 들어도 인수합니다.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제 직감과 의지입니다. 그리고 다들 돌아가서 1년 내로 세계 1위를 달성할 계획을 세워 오세요.”
“네?”
임원들과 계열사 사장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들의 놀란 표정을 보며 정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무엇들 잃어버렸는지, 무엇을 망각했는지 생각해 주세요. 그걸 깨달으면 세계 1위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예.”
모두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정훈은 기분 나쁜 티를 내면서 회의실을 박차고 나왔다.
자리에 앉아 있던 임원중 한 명이 이병석을 노려보았다.
“하, 거참 평소에 안 그런 사람이 왜 그렇게 발작하고 그래요?”
“하, 그게…… 진짜 야후를 인수하실까 봐…….”
“회장님 능력이 보통입니까? 기울어져 가는 야후도 일으켜 세울 분인 거 잊었어요?”
“아 그렇죠. 우리가 잊어버린 게 회장님의 능력인가요?”
모두 눈치 없는 소리를 하는 신화전자 부사장을 노려보았다.
“이봐요, 지금 장난칠 때예요?”
신화중공업 김상식 사장이 면박을 줬다.
“죄송합니다.”
무안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신화전자 부사장 이종두는 다시 눈치를 보며 고개를 들었다.
이병석에게 질문했다.
“정말 야후를 인수하시려는 거겠죠?”
“네.”
“금액은 얼마나 생각하시 려나?”
이종두의 질문에 이병석이 눈빛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100억 달러는 기본이고 150억 달러까지 생각하고 계십니다.”
윤정훈 회장의 심복인 이병석의 말에 모두 흠칫 놀랐다.
“포털 사이트 운영하는 회사, 돈도 못 버는 그따위 회사에 우리 돈 15조요?”
“네. 저도 납득할 수 없지만, 회장님은 분명 엄청난 미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회의적인 반응.
사실 이병석도 그들과 같은 입장이었다.
하지만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훈은 강력하게 인수를 주장했다.
더욱 이상한 건 회의에서 정훈을 강하게 반대하라는 특명.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지시였다.
이병석은 여전히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자, 일어납시다. 세계 1위 플랜을 짜 봅시다.”
“네,”
모두 느릿하게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
회의실을 먼저 나온 정훈은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인수 소식이 이석의 귀에 들어갔다.
‘다양한 루트로 정보 신빙성을 체크 할 거야.’
오늘 그룹 회의가 아마도 그에게 확신을 심어 줄 것이다.
정훈은 일부러 강하게 인수 의지를 드러냈다.
이병석의 강한 반대를 누르면서까지 인수 의지를 내비쳤다.
신화그룹의 계열사 사장 중에 스타그룹의 끄나풀이 하나도 없을까?
정훈은 ‘신화그룹이 야후에 미쳐 있다.’라고 이석에게 알려 주길 원했다.
그래야 일이 확실히 재미있어질 텐데.
음흉한 웃음 정훈의 얼굴에 그려졌다.
느긋한 걸음으로 회장실 입구에 다가섰다.
입구에 있던 비서가 일어서 보고 했다.
“모두 모였습니다.”
“간단한 다과 좀 부탁해요.”
“네.”
황금색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영미와 천진혁, 그리고 이병석.
그룹이 형태를 가지고 있을 때부터 함께 했던 세 사람.
이병석은 신화게임을 맡아서 잘 이끌고 있다.
천진혁은 그룹의 보안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차영미는 자신의 요청에 정훈의 비서실장이 되었다.
비서실장이지만 수행은 하지 않는다.
오직 전화로만 모든 지시를 수행하는 그녀는, 대단한 능력자이다.
뭐 수행한답시고 나가봤자 걸리적거리는 게 대부분이라서…….
그리고 수행할 사람은 차고 넘쳤다.
“어우, 회장님 오늘 스타일 죽이는데요.”
차영미가 딱딱한 정훈의 얼굴을 보고 칭찬으로 분위기를 누그러트렸다.
정훈이 노려보자 이병석이 흠칫 놀라 어깨를 바짝 오므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시작하죠.”
“최근에 신화전자 부사장 이종두가 스타 비서실장이랑 여러 번 통화했습니다. 그리고 접대를 받는 것도 찾았습니다.”
“좋네요. 이제 언론 기사만 나오면 우리의 인수 의지를 의심하지는 않겠네요.”
“네, 문화일보에서 내일 정도면 기사가 나올 것 같습니다.”
“내일이라……. 시간이 촉박할 것 같은데, 문화일보 기사 하루만 미뤄 줘요. 그 사이에 야후 임원들과 만나야 해요.”
“문화일보 기사는 미룰 수 있는데 야후와의 약속은……”
“그건 미국에서 조율할 겁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네. 회장님. 이 정도만 하면 끝인가요? 제 능력이 필요한 순간은 언제죠?”
“글쎄요, 필요하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은데”
해킹과 같은 차영미의 능력이 필요한 순간은 없어야 한다.
쉽게 가자.
차영미의 얼굴엔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어쩔 수 없죠. 야후 인수가는 최대한 올릴까요?”
“네, 이병석 씨는 기자들 앞에서 실수인 척 금액을 한번 흘리세요. 150억 달러 정도가 좋겠네요. 그리고 야후에 300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병석이 쭈뼛거리며 정훈의 눈치를 보았다.
“말씀하세요. 괜찮습니다.”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뭐 연기였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사실 회장님 말씀에 뜨끔한 건 사실이었습니다. 대기업이 되고 뭔가 많이 잊어버렸습니다.”
이병석의 말에 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곰곰이 생각하던 차영미가 정훈에게 물었다.
“그런데 보스! 야후가 알리바바 주식만 매각할까요?”
“가능성은 충분해요. 사업하는 사람들이 제일 걱정하는 게 중국 리스크죠. 멀쩡한 기업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나라가 중국이잖아요. 중국 리스크를 간과하긴 쉽지 않죠.”
“흠.”
사람들이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확신을 심어 주는 것도 리더의 덕목이다.
“뭐 정 안되면 그냥 다 사 버리죠. 너무 걱정 마세요. 돈이 힘입니다.”
돈이 힘이라는 말에 모두 정훈을 보았다.
그의 얼굴이 황금처럼 빛나는 것 같았다.
돈이 초정리 광천수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는 신화그룹을 가진 남자.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다 잘 될 겁니다. 지금까지……. 어떤 실패도 없었습니다”
갑작스런 자랑에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역한 표정이 얼굴에 새겨졌다.
비서실장 차영미도, 천진혁도 그리고 이병석도.
모두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대로 모든 게 진행된다.
실패는 없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게 저 남자였다.
고개를 숙인 채 곰곰이 생각하던 정훈은 야후의 회장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비서실장님. 전용기 준비해 주세요.”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보스.”
마음먹은 대로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나갈 수 있다.
황금빛 전용기.
다시 생각해도 잘 샀다고 생각했다.
한 대 더 살까?
부가티와 롤스로이스처럼 두 대가 딱 좋은데.
이것저것 바꿔 타면 싫증도 나지 않고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정훈은 책상 위에 있는 차 키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매끈하게 잘빠진 부가티의 액셀을 밟으며 공항으로 향했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색 비행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훈을 향해 기장과 승무원이 상냥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회장님.”
“잘 부탁합니다. 아, 출발하기 전에 시원한 샴페인 부탁해요.”
“네.”
잠시 후 굉음과 함께 황금빛 비행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
켈리포니아의 서니 베일에 있는 야후 본사.
야후의 두 창업자의 게리 양과 제임스 파일로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와, 19.8 퍼센트. 대단해 어떻게 불과 1년 만에…….”
게리 양은 고개를 절제 절레 저었다.
“정말, 어떻게 1년 만에 검색 시장 점유율이 반 토막이 날 수 있지?”
“…… 그만 비꼬아. 안 그래도 어제 먹은 술 때문에 속 쓰려 죽겠는데.”
“뭐? 이봐 게리! 마이크로소프트의 인수 제안만 받아들였어도 이런 일 없었잖아.”
“야, 제임스, 너도 싼 가격에 팔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던 것 같은데.”
“그건, 네가 그렇게 주장하니 동의한 거야.”
게리는 브랜든을 보았다.
눈빛을 피한 채 도망치는 창가로 가 밖을 보았다.
매번 책임을 회피한다.
유리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일은 자신의 업적으로, 그렇지 않은 것은 게리에게.
마이크로소프트의 인수 제안도 자신이 맡아서 하다 틀어질 기미가 보이자 자신에게 넘겼다.
병신 같은 백인 녀석!
게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두통을 다스렸다.
“이번에 제안한 놈들은 어때?”
“글쎄, 찔러나 보는 놈들이겠지.”
“노!”
제임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한국의 두 회사가 거의 동시에 제안했어.”
“한국? 그런 나라에 우리만 한 덩치를 감당할 만한 회사들이 있어?”
“신화와 스타그룹인데 작지 않아. 재벌이라는 기업 집단의 1, 2를 다투는 회사들이야.”
“1, 2위를 다툰다…… 돈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은데…… 흐흐흐”
“하여튼 돈 냄새는 귀신같이 맡는구나. 둘 사이에서 줄을 잘 줄타기 타면 인수 금액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아.”
“두 배 정도는 높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못해도 100억 달러는 가능할 것 같은데……”
“흐흐흐, 그럼 그럼 못해도 100억 달러는 받아야지.”
티격대던 두 사람은 어느새 의기투합 했다.
멀고 먼 나라 한국, 그 나라에서 자산들만큼 잘나가는 회사를 인수하려는 게 신기했다.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누가 찾아왔습니다.”
“누구?”
“인수 협상 때문에 오셨다는데요.”
“뭐?”
게리가 제임스를 보았다.
“아니, 사전에 약속된 사람은 없는데. 어떡하지?”
게리는 잠깐 고심한 다음 말했다.
“일단 들여보내. 인수 때문에 왔다면 만나는 봐야지.”
“알겠습니다.”
***
출국 심사대에서 도장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자신의 차례가 되어 여권을 내밀었다.
“성함은요?”
“윤정훈입니다.”
금발의 푸른 눈을 한 출입국 심사원이 정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출입국 심사원이 무슨 할리우드 여배우 뺨치게 생겼네.’
미적으로 아름다운 대상을 보자 자연스럽게 기분이 좋아졌다.
“미국에 방문하신 목적은요?”
“비즈니스 때문입니다.”
그녀는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정훈의 얼굴과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잡지의 표지 모델과 비교했다.
이틀 전에 발간된 타임지의 표지 모델이 그였다.
얼마 전에 아시아의 젊은 리더 1위로 뽑혔다.
기념으로 타임지 기자와 함께 인터뷰를 하며 간단한 사진 촬영을 했었는데.
물밀듯이 밀려온다.
사진 요청, 사인 요청.
잘나가는 아이돌보다 더 많은 인 때문에 살짝 피곤했다.
고개를 저은 다음 짧게 대답했다.
“노.”
“아니에요? 똑같이 생겼는데.”
“동양인들은 서로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아, 그렇군요. 미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녀는 정훈의 여권에 도장을 찍은 다음 정훈에게 돌려줬다.
여권 안에는 역시나 그녀의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가 끼워져 있었다.
정훈은 메모를 구겨 휴지통에 버렸다.
공항 밖으로 나와 대기하던 차에 올라탔다.
정훈이 탄 리무진은 곧장 야후 본사로 갔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