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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182화 (182/200)

#182화

“이석 회장, 체통을 지키세요.”

하인선은 엄마 앞에서 거친 욕설을 거리낌 없이 뱉는 아들이 거슬렸다.

어디 감히.

소파에 앉아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어린 배우 년을 한번 쏘아본 다음 한숨을 쉰 그녀.

비서실장에게 말했다.

“자리 좀 비켜 줘.”

황급히 회장실에 있던 손님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몹시 언짢은 얼굴을 한 이석은 방안을 이러저리 서성였다.

하인선은 소파의 상석에 자신의 자리인 것처럼 털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본 이석의 이마에 주름이 새겨졌다가 사라졌다.

“후우”

하인선은 자신의 등 뒤에서 서성이는 그에게 말했다.

“이리와 앉으세요. 그런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요즘 들어 부쩍 거슬리게 행동한다.

아들은 자신이 이 스타그룹의 모든 것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주인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일 뿐이었다.

그룹의 중요한 결정은 이헌과 자신이 내려왔었다.

아들은 허수아비에 불과했었다.

하인선은 자신의 노력을 몰라주는 것이 내심 서운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자신이 얼마나 큰 희생을 했는지 아들은 모를 것이다.

그래서인가? 하는 짓이 조금씩 거슬렸다. 이전에는 그냥 넘어갔던 것들도 지적했다.

죽기 직전 김애월이 내뱉은 말이 귓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럼 천성한에게 너를 선물한 거지.’

그래서인가?

가장 사랑스럽던 아들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입술을 가볍게 깨물며 감정을 추스렸다.

날카로웠던 목소리를 감추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일단 앉아서 이 어미랑 이야기를 해 봐요. 너무 걱정 말아요. 이 어미가 다 해결해 줄 겁니다.”

하지만, 사실 자신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확답이 서지 않았다.

가장 좋은 것이 검사 결과를 조작하는 것인데.

쉽지 않았다.

“어떤 내용입니까?”

“최종 유언장에는 친자 확인 절차를 거쳐서 상속하라고 되어 있어요.”

“네? 그럼 지금 당장 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하여튼 별것도 아닌 걸, 아버지는 일을 참 복잡하게 꼬아 놓았습니다.”

“그래요. 간단한 일이죠.”

하인선은 쓴웃음을 지으며 아들의 말에 맞장구쳤다.

“아 상속 비율은 어떻게 됩니까? 어머니.”

그녀는 아들의 얼굴에서 어리석은 기대감을 보았다.

하지만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덤덤하게 말했다.

“법정 상속 비율 그대로입니다.”

이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 저는 조금 더 늘어나겠군요. 뭐 얼마 차이가 나진 않지만.”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다.

하인선은 스타그룹과 아들을 생각하는 어미의 마음을 이해해 주길 바랬다.

이석은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1.5 대 1, 3 대 2다.

기존의 상속 비율이던 4 대 1과 큰 차이는 없다.

이석은 결국,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박수길과 어머니가 공모해 자신의 몫을 빼앗아 갔던 것처럼.

이제 자신의 차례다.

어머니의 몫을 비어 있는 자신의 주머니에 잘 챙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서늘한 눈빛으로 바닥만 응시했다.

***

상속 회복 청구 소송은 이유 없이 미뤄지고 있었다.

이헌의 유언장을 손에 쥐고 있지만 소용없었다.

이러다가 소송이 기각될 수 있다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긴 만약 기각되면 큰일이다.

이석이 이헌 소유의 부동산을 상속받고 매각 자금이 스타그룹으로 흘러가면……

야후 인수로 생긴 유동성 위기가 말끔히 해소된다.

거의 다 잡은 놈들이 다시 살아나는 꼴은 절대 볼 수 없었다.

정훈은 이판호를 불렀다.

“유언장을 증거로 내밀었는데, 아직도 재판이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까?”

“네, 재판부가 세 번 변경되었고, 또 증거를 능력을 검증한다면서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해송 쪽 작전은 최대한 시간 끌기를 하다가 기각시키는 것 같습니다.”

하긴 친자 확인 검사를 하는 순간 자신들의 추악한 비밀이 탄로 난다.

그들은 절대 소송을 진행하지 않을 것이다.

박수길은 감옥에 있지만 여전히 공고한 그들.

아직 힘을 잃지 않았다.

허울뿐인 이석보다 훨씬 단단한 느낌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하인선이 박수길의 힘을 흡수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재판은 분명 기각되었을 것이다.

하인선이 그 힘을 가지기 전에 그들을 갈기갈기 찢어놔야 한다.

정훈이 답답해하고 있을 때 박현철이 찾아왔다.

“들어가라고 할까요?”

“네, 들어오시라고 해요. 차 좀 준비해 주세요.”

박현철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는 굳은 의지가 서려 있었다.

정훈은 그가 한 말이 생각났다.

자신을 대신해 똥물에 손을 담그겠다는 그의 말.

자리에 앉은 박현철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이제 시작해 볼까 하는데.”

“위험한 거 아닙니까?”

“글쎄, 위험할 수도 있겠지.”

“위험한 일을 하도록 두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하하하, 이거 눈물 날 지경이네. 내 아버지도 버린 나를 자네가 걱정해 주고……. 괜찮네. 자네는 다혜나 걱정해. 내 딸을 울리기만 하면…… 죽여 버리겠어.”

갑작스러운 살기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정훈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는 다시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지? 하하하. 하여튼 절대로 울리지 마. 그리고 고맙네. 기회를 줘서.”

“네? 아, 아닙니다.”

문이 열리고 비서가 차를 내려놓았다.

뜨거운 차를 호로록 마신 박현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가 보겠네”

담담한 그의 목소리에서 단호한 의지가 느껴졌다.

***

박현철은 자신의 차에 올랐다.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 한 번이라도 울리면, 죽여 버린다.”

혼잣말을 했다.

그렇게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긴장을 풀었다.

옆자리에 놓아 둔 자신의 가방을 보았다.

안에 설치된 작은 카메라도 정상 작동 중일 것이다.

몇 번을 확인했다.

입안부터 입술까지 바짝 말라갔다.

박현철은 오랫동안 차 안에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마침내 결심한 표정을 지은 그.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지하 주차장을 벗어났다.

자신이 좋아하던 저녁을 먹은 다음 다시 운전을 했다.

멀리 괴물처럼 우뚝 솟은 해송 빌딩이 보였다.

금요일이다.

아직 빌딩에 남아 있을 해송의 고위급 변호사들.

박현철은 그들을 만나기 위해 해송 빌딩의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집어넣었다.

해송 빌딩의 스카이라운지는 오직 극소수의 사람들만 올라갈 수 있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선 비밀번호가 있어야 한다.

그만큼 특별하고 은밀한 공간이었다.

박현철은 아버지의 아이디 카드를 대자 문이 열렸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블랙 소파가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두운 조명에서도 명품의 은은한 기운을 뽐내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최고급 양주가 진열되어 있었고 잘 차려입은 바텐더가 무표정한 얼굴로 술을 내어 주고 있었다.

최고급 호텔에도 뒤지지 않는 고급 바였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금요일 밤마다 열리는 파티가 오늘도 열리고 있다.

한 주간의 업무에 지친 변호사들의 휴식과 서로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자리였다.

박현철을 안을 쭉 둘러보았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모두 점잖은 상태, 이성을 상실한 개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가식적인 웃음을 얼굴에 가득 띄우고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박현철이 들어가자 스카이라운지가 일순 조용해졌다.

모두 입을 닫았다.

완벽한 침묵.

그들의 눈이 박현철을 쏘아보았다.

박현철은 천천히 걸어가 해송의 2인자, 지석현 전 헌법재판소장 앞에 앉았다.

“이쩐 일입니까? 법무부 장관님.”

“저도 이곳의 일원 아닙니까?”

“푸하하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박현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잘 왔어요. 이별주도 못했는데 오늘 이별주나 합시다.”

“쯧, 병신 같은 놈들.”

박현철이 그들을 공격했다.

“뭐얏?”

“내 아버지가 감옥에 간 상황에 술이 입에 들어갑니까?”

“이봐, 우리가 박수길 어르신의 힘으로만 움직인다고 생각한 건가? 자네도 잘 알지 않나? 우린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단결된 힘이란 걸.”

“쯧, 그래서 멍청하게 지금 술이나 마시는 겁니까?”

“뭔 소리야?”

“지금 이석을 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노예 근성에 쩔어서 노예로 살 생각만 하다니, 쯧쯧. 한심합니다. 내 아버지가 괜히 저리된 줄 압니까? 어리석은 이석을 벌하려다 이리됐는데.”

“뭐?”

박현철은 그들이 모르는 내막을 새롭게 꾸몄다.

“천지회를 말아먹은 이석을 몰아내고 우리 사대부가 지배하는 나라를 만들려다가 저리되셨는데. 여기서 술이나 퍼먹고 있다니, 쯧쯧”

“크흠, 일단 한잔하게.”

해송의 이인자인 지석현이 박현철의 손에 잔을 쥐여 주었다.

일단 절반의 성공.

지석현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 그럼 진지하게 이야기해 볼까?”

“제가, 윤정훈이 좋아서 갔겠습니까? 이석을 쳐 내면 이 땅에 권력을 가진 사람이 누구입니까?”

지석현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그의 옆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

“우리 사대부들 말인가?”

“당연한 거 아닙니까? 우리가 마음먹으면 당장 이석도, 아니 구한수 대통령도 감옥에 처넣을 수 있습니다.”

박현철의 말에 지석현의 광대가 치솟았고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곧 윤정훈이 이석을 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를 공격해야 합니다. 우리의 무서운 힘을 똑똑히 보여 줘야 합니다. 그래야 돈 있다고 설치는 놈들이 바짝 얼어 버릴 거 아닙니까?”

“역시, 과연 박수길의 아들이야.”

지석현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무슨 말입니까? 배신자의 세 치 혀에 놀아나시는 겁니까? 박다혜가 윤정훈과 연인 관계인 걸 모릅니까?”

가현태 변호사가 타당한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박현철은 이미 모든 질문에 대한 완벽한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윤정훈이 우리 밑에서, 오직 우리를 위해 개처럼 노력할 겁니다. 크크크 개같이 말입니다.”

“뭐? 개? 푸하하”

자신들을 위해 충성을 다할 윤정훈을 생각하자 비웃음이 여기저기 터졌다.

“우리가 이석 회장과 천지회 놈들을 위해 했던 걸 그가 할 겁니다.”

“그래, 부족한 자금력을 그가 뒷받침하면 되겠군. 그럼…… 이 나라는 완벽하게 우리 손에 들어오는 거지. 법률가가 지배하는 질서 잡힌 꿈의 나라.”

지석현이 헛된 망상을 시작한 듯 눈을 감고 미소를 띠었다.

박현철을 그들을 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들 동참하시겠습니까?”

박현철이 술잔을 들었다.

지석현도 잔을 들었다.

“거부하는 사람은 지금 이 자리를 벗어나게.”

“아닙니다.”

정장을 갖춰 입은 남자들이 모두 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초엘리트들.

율사(律士)

수사, 기소, 판결까지 그들의 손에 달려 있다.

어쩌면 법을 만드는 것도 그들의 손에 쥘 수 있다.

윤정훈이 가진 재력이 뒷받침된다면 불가능한 건 없다.

개돼지들보다 못한 대중의 의견 따윈 필요 없는 세상, 그들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

기약 없이 미뤄지던 재판 날짜가 갑자기 잡혔다.

정훈은 이일을 가능하게 한 사람이 박현철이라고 직감했다.

법무부로 갔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어떻게 하긴 욕심 많은 놈들 먹잇감을 던져 줬지.”

“먹잇감이라면?”

“이석과 스타그룹, 아 그리고 자네도.”

“네?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장인……, 흠, 장관님.”

순간 박현철의 광대가 씰룩였다.

“뭐 듣기 나쁜 말도 아닌데, 한 번 더 해 봐.”

“아닙니다. 장관님.”

아쉬운 표정을 지은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이석을 쳐야 할 때라고 했지. 그러니까 그다음은 자기들이 알아서 소설을 쓰더군. 아 그리고 자네가 사대부를 위해 개처럼 일할 거라고 했지.”

“네? 그 말을 믿어요?”

“사람이 욕심이 눈에 멀면 모든 걸 자기중심으로 생각하지. 그놈들 중 대부분은 아마 새로운 조직의 수장이 되어 있을 거야. 분명해.”

정훈은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지 절실히 깨달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냉철하고 합리적인 이성을 가졌던 그들.

욕망에 빠져, 똥과 된장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그때 문밖에서 강철중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관님, 철중입니다.”

“어, 들어와.”

방으로 들어온 그의 얼굴은 심란해 보였다.

“야, 그냥 노크만 하고 들어오라니까 무슨 격식을 그리 차려. 너 어디 아프냐? 표정이 왜 그렇게 딱딱해?”

“아 아닙니다.”

“무슨 일이야?”

“그게…… 박수길 전대법관님이 어젯밤에 돌아가셨습니다.”

“뭐?”

박현철의 온몸이 얼음처럼 굳었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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