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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183화 (183/200)

#183화

정훈은 은수와 함께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강철중이 어두운 표정으로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형!”

“어, 왔냐. 들어가자.”

“요새 일 많아? 얼굴이 10년은 삭은 거 같은데, 크크크.”

“아니.”

은수가 장난을 걸었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건조한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을 뿐이다.

사건 때문에 예민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낯선 분위기가 어색했다.

장례식장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현직 법무부 장관의 부친상이자 전직 대법원장이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입에 담기 힘들 만큼 참혹한 사고로.

고인은 사지가 찢어진 채로 발견되었다.

고인의 유족들과 교도소를 관리했던 정부, 그 누구도 진실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언론에는 지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발표했다.

정훈은 박수길의 죽음의 배후를 생각했다.

섬뜩할 만큼 큰 원한을 가진 사람이 한 것 같은데.

교도소 안에서 그런 힘을 부리는 있는 건 이 땅에 두 세력뿐이다.

정부를 제외하고 정훈의 화신유통과 하인서의 ‘신청’이다.

얼마 전 김애월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모든 권력이 하인손의 손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가진 힘이라면 박수길을 그렇게 처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사지를 찢어 버릴 만큼 원한이 깊었던가?

유언장을 조작해 줄 만큼 충성을 다한 자였는데.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화환이 바깥까지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그의 마지막은 살인을 교사한 범죄자.

누구도 얼굴을 드러내면서까지 범죄자의 장례식장에 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박수길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해송의 직원과 변호사들과 천지회의 사대부들도 몸을 사렸다.

휑한 빈소에 마음이 쓰인 정훈은 빈자리를 채우고 싶었다.

전화 한 통이면 이 장례식장 전체도 바로 채울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자신에게 있었다.

“왔나?”

빈소 밖에서 대화를 나누던 박현철이 그들을 보고 손을 들며 아는 체했다.

강철중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에게 인사했다.

그의 옆에서 정훈과 은수도 인사했다.

“들어가지, 철중이는 바쁠 텐데 용케 시간 냈구나.”

박현철이 우리를 빈소 안으로 안내했다.

검은색 상복을 입은 다혜는 차분하면서 복잡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한때는 친밀했지만 결국 추악한 본모습에 치를 떨었던 할아버지.

다혜는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아직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아 보였다.

20대의 우리에게 죽음은 낯설고,

쉽게 체감할 수 없는 단어다.

세 사람은 고인의 영정 사진을 향해 절을 한 다음 상주들과 맞절을 했다.

밖으로 나가 자리에 앉자 간단한 술상이 차례졌다.

다혜가 나왔다.

“와 줘서 고마워.”

“당연히 와야죠, 선배.”

은수의 말에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철중아, 너 피부가 썩은 것 같은데 괜찮아? 많이 피곤해 보인다.”

다혜는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강철중을 갈궜다.

“뭐? 썩어? 다 니 남친 새끼 때문이야. 네 남친이 나 승진하라고 일을 얼마나 던져 주는지 잠을 못 잘 지경이다.”

“뭐? 형 그럼 앞으로 김수호 부장검사에게 보낼까?”

“아, 아니 그건 아니고, 하여튼 피곤하다고 새꺄, 크크크.”

“알았어요. 조절할게. 그런데 어쩌지 조만간 더 큰 거 갈 것 같은데.”

정훈의 말에 검사의 본능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검사로서 눈빛이 반짝였다.

“뭐 준다면 먹어야지. 내가 제대로 회 쳐 먹을 테니, 걱정 말고 보내줘. 최연소 부장검사나 한번 달아 보자. 흐흐흐”

오랜만에 앉아 옛날이야기를 떠들어 댔다.

이렇게 네 명이 모인 건 중국집에서 밥을 먹은 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은수야, 넌 어때? 연기한다고 하던데.”

“재밌어요. 적성에 맞는 거 같아. 뭐 얼굴도 소속사에서 제일 잘 생겼고, 흐흐흐.”

“고등학교 시절 내내 소설만 봐서 소설가가 될 줄 알았는데, 배우 한다니, 좀 의왼데. 하긴 그냥 썩히기엔 아까운 얼굴이지. 다혜야, 넌 어때? 사무실은 할 만해?”

“그럼, 근데…… 월세가 제일 무섭다. 열심히 하는데, 아직 돈 되는 일이 잘 없네.”

“선배, 돈 벌려면 그런 일은 손 떼야 되는 거 아니에요?”

“하핫, 그렇긴 한데, 하여튼 월세가 제일 무서워. 이번 달도 적자 같은데.”

“풉, 재벌 남친 두고 무슨 돈 걱정이냐?”

“야, 내 힘으로 벌어서 낼 거야. 우린 돈 따로 관리할 거야.”

“뭐? 진짜? 머릿속에 저장해 둘게. 앞으로 지켜본다.”

“야, 이게 확! …… 당분간은 따로 한다는 거지.”

다혜는 강철중에게 살벌한 눈빛과 함께 소리를 질렀다.

오랜만에 보는 다혜의 살기.

“하여튼 다 같이 모이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좋다.”

“그러게”

다혜는 은수와 정훈을 물끄러미 보았다.

“너희 둘이 이렇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 중부시 망나니라고 소문이 자자 했는데.”

“흠, 난 아니야. 난 조용히 살았어.”

정훈은 다혜의 말을 반박했다.

“우리 정훈이 조용히 살았지. 중학교 때부터.”

다혜의 눈이 초승달을 그렸다.

그녀는 행복한 추억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정훈은 의아했다.

“중학교 때?”

“아, 아니야!”

화들짝 놀라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모두 옛날이야기를 했다.

동창회였다면 더욱 즐거웠을 텐데, 장례식장이라니.

정훈은 아쉬운 마음에 앞에 있던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쓴맛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쓴맛을 죽일 안주를 찾아 눈을 굴렸다.

눈앞에 있는 수육에 젓가락을 들이밀었을 때였다.

입구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어? 낯익은 사람인데.”

은수가 무식한 소리를 했다

구한수 대통령이 빈소로 들어갔다.

모든 사람이 자리에 일어섰다.

다혜도 황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대통령이 직접 문상을 오다니.

정치적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리고 은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무식을 자랑했다.

“누구더라? 중견 연예인 같은데, 아니야. 연예인 쪽이면 내가 모를 수 없지. 보아가 가르쳐 줘서 이름과 얼굴을 많이 외웠거든. 정훈아 누구냐?”

정훈은 손바닥을 펴서의 알밤처럼 톡 튀어나온 은수의 뒤통수를 후려치려 했다.

장례식장이라 참았다.

기가 찬 표정으로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이 나라 대통령이시다. 무식한 놈아! 앉아.”

“헐, 대박. 나 처음 봐. 진짜.”

“나도 이렇게 가까이에서는 처음 본다.”

강철중도 신기한 표정이었다.

웅성대던 소란이 끝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정훈은 철중 선배의 상황이 궁금했다.

그에 따르면 스타그룹의 비리와 증거를 꽤 많이 쌓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터트릴 때가 아니다.

지금도 다양한 경로로 압력이 들어오고 있었다.

“박현철이 신호를 준다고 했어.”

박현철?

갑자기 강철중이 존칭을 빼 버렸다.

그를 보았다.

자신의 눈빛을 피하며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보아, 의도적이다.

두 사람 사이에 문제는 아니다.

아까 박현철 장관은 강철중을 거리낌 없이 대했었다.

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지?

걱정인데.

다혜가 구한수 대통령을 모시고 정훈이 앉아 있는 자리로 왔다.

“오랜만입니다. 윤 회장.”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보는 얼굴.

격무에 시달려서인가?

인자하며 소탈한 표정은 그대로지만 피곤하고 지쳐 보였다.

정훈이 존경을 표하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잘 지내셨어요?”

“네.”

구한수가 우리를 쭉 둘러보았다.

“소개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구한수의 말에 정훈이 친구들을 소개하려 할 때 은수가 직접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신인 배우 정은수입니다.”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은수의 인사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강철중 검사입니다.”

“이, 강철중 검사. 그동안 강 검사의 활약을 잘 봤습니다. 앞으로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세요.”

“감사합니다.”

허리를 깊이 숙이며 강철중이 감사를 표했다.

“윤 회장은 좋은 친구를 두셨네요. 보기 좋군요. 저랑 잠깐 이야기할까요?”

구한수가 정훈에게 자리를 옮기길 제안했다.

그의 입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했다.

“알다시피 곧 선거입니다. 결과야 뭐 알 거라고 생각해요. 조심해야 합니다. 나도 이제 끈 떨어진 대통령이라 힘이 없습니다. 천성한을 조심하세요. 장관에서 퇴임한 다음 은신 중인데, 그를 따르는 세력이 막강합니다.”

“대통령님께서도 손쓸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입니까?”

“……부끄럽지만 그래요. 분명 제대로 숙청했다고 생각했는데, 더욱 깊고 은밀한 방식으로 숨어 있었습니다.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장군들의 절반 이상이 그들과 한패였습니다.”

“누구 말입니까?”

“합참의장과 각 군 참모총장이 모두 그들과 한패예요.”

“어떻게 이런 일이…….”

“지난 5년간 폐쇄적인 군대를 장악하기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그들이 정보를 독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속았지요. 앞으로 조심해야 합니다.”

후회 가득한 표정이었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충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구한수는 정훈에게 전화번호만 적힌 명함을 주었다.

“꼭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세요.”

“감사합니다.”

정훈은 그가 건넨 명함을 받았다.

“그럼 저는 먼저 일어납니다.”

구한수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모두 일어나 그에게 인사했다.

장례식장 밖까지 나가 그를 배웅했다.

그때 검은색 세단이 근처에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이석 회장이 내렸다.

반대쪽으로 하인선도 모습을 드러냈다.

구한수가 차에서 내린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저 여자를 조심하세요.”

구한수가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는 하인선을 가리켰다.

“저 여자가 차기 대통령 후보의 부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요. 아마도 다음 정권은 스타그룹의 시대가 될 겁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충고 감사합니다.”

“버티면, 기회가 옵니다.”

구한수가 떠나고 정훈은 다시 장례식장으로 들어갔다.

빈소 앞에서 은수와 이석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하인선은 빈소 안에 들어가 조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국화 하나를 집어 들어 박수길의 영정 사진 앞에 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묵념한 다음 박현철을 보았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박현철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그녀를 쏘아보았다.

빈소의 안과 밖에 불꽃이 튀기고 있다.

정훈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경고를 해야 한다.

하인선의 그 뻔뻔함을 참을 수 없었다.

하인선에게 다가갔다.

“자신이 직접 처단한 사람의 장례식에 오다니, 악독하기 그지없습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정훈의 말에 하인선이 당황했다.

박현철도 심증은 가졌지만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정훈이 그녀를 범인으로 지적하자 놀라는 눈치였다.

“아닙니까?”

하인선을 노려보았다.

역시나 그녀도 정훈을 쏘아 보았다.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그렇다면? 내가 죽였다면 어떻게 할 건데? 아, 법무부 장관님 저를 잡아넣으시겠습니까? 저기 밖에 애지중지하던 강철중 검사가 있던데 그 친구한테 체포하라고 하시죠?”

“목소리 낮추세요. 빈소에서 무슨 짓입니까?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내 아버지였소. 모욕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

“훗, 모욕이라, 박수길은, 그 존재 자체가 모욕적이에요.”

순간 하인선의 눈에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가방에 있던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깊게 빨아들인 그녀는 빨간 입술을 앞으로 내밀며 박현철의 면전에 연기를 가득 뿜었다.

모욕이었다.

“박현철 장관, 나는 누가 박수길을 거세하고 죽였는지 절대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중에 범인을 잡으면 그 사람한테 고맙다고 꼭 전해 주세요. 벌레를 치워 줘서!”

그녀의 도발에 부들부들 떨던 박현철은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 이상의 더 큰 소란은 피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정훈은 그녀의 손에 들린 가느다란 담배를 빼앗았다.

“금연입니다. 은수 어머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인선은 앙칼지게 반응했다.

재빨리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정훈의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많이 참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쓸데없는 살인을 계속 저지른다면,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뭐? 어떻게 할 건데?”

정훈은 하인선을 노려보았다.

그녀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제대로 경고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만만하게 본다면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해칠 수도 있다.

“제가 가진 모든 힘을 보여 드릴까요?”

정훈의 기세에 하인선이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뭐? 저리 가!”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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