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186화 (186/200)

#186화

동양의 나폴리 통영.

항구의 밤은 아름다웠다.

항구 옆 부둣가, 바람이 불어왔다.

정훈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비린 바다 내음이 몸속으로 느껴졌다.

정훈은 야외 테이블 위에 머리를 박고 있는 머리 두 개를 보고 혀를 찼다.

‘쯧, 쯧, 쯧’

한심한 표정으로 벌레 보듯 그들을 보았다.

다혜에게 전화가 왔다.

“정훈아, 아빠가 연락이 안 돼. 전화기도 꺼졌어.”

“뭐?”

다혜의 말에 깜짝 놀랐다.

곧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어제 여길 들러 강철중을 만나고 갔다.

갑자기 여기까지 와서?

설마, 마지막을 준비한 건가?

정훈은 기억을 더듬었다.

박현철은 해송의 변호사들, 그리고 한패나 다름없는 검사와 판사들을 설득한다고 했다.

말이 설득이지 천지회 내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인 사대부들을 천지회로부터 독립시키려 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정훈은 박수길의 장례식장에서 하인선이 한 말이 생각났다.

쥐새끼가 벌써 그녀에게 박현철의 행보를 일러바쳤다.

그렇다면 과연 하인선이 가만히 있을까?

아니, 절대로 가만히 있을 않을 것이다.

결국…… 함정?

정훈은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정훈아, 어떻게 해?”

전화기로 떨리는 다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훈은 우선 침착한 목소리로 그녀를 안심시켰다.

“괜찮으실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어제 통영에서 철중 선배랑 술 많이 마셨데. 피곤해서 집에서 쉬고 계실 수도 있어.”

“그래? 전화기도 꺼져 있는 게 불안해서.”

“배터리가 다 되었나 보지. 내가 알아볼게. 너무 걱정 마.”

“넌 언제 올라와?”

“지금 올라가.”

“그래? 다행이네.”

서울로 돌아간다는 정훈의 말에 다혜는 안심하는 것 같았다.

“먼저 자. 지금 올라가도 늦게 도착할 것 같아.”

“그래, 조심해서 올라와. 아빠 소식 알게 되면, 전화하고.”

“응.”

정훈은 전화를 끊었다.

‘집에는 아침은 돼야 들어갈 것 같은데.’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저녁 6시 이후로는 연락 안 하시잖아요.”

장난기 가득한 그녀의 목소리.

“비상입니다.”

“필요하신 거 말씀하세요.”

정훈의 말에 진지한 목소리로 톤을 바꿨다.

“박현철 위치를 제일 먼저 파악해 주세요. 그리고 박창수 씨에게 화신유통 조직원들 10명 정도 추려서 대기하라고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준비되면 메시지 넣을게요. 지금 통영인데, 서울로 올라 오실 거죠? 헬기 준비할까요?”

“아니요. 차로 가죠. 술도 깨야 해서요.”

“술요? 음주운전은 안 되는데.”

“제 옆에 운전기사 한 명 있잖아요.”

“아, 맞다. 그럼 조심히 올라오세요. 대기하고 있을게요.”

듬직하다.

비록 사무실과 집에서만 일하지만 현장 직원들 백배의 몫을 하는 할리퀸 차영미.

문득 그녀가 없었으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지 궁금해졌다

할리퀸, 본명 차영미.

신문 기사에 전설의 해커로 등장했던 그녀.

정훈이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회기 전 삶에서 중부시에 내려갔다가 특집 기사로 보았다.

중부일보 편집장으로 있다 해고된 이판수가 쓴 기사.

가십 위주의 삼류 찌라시 신문.

신빙성도 없는, 흥미 위주의 기사만 가득한 신문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부패한 세력을 쫓던 한 여인이 그들에게 잡혀 고문을 당해 미쳐 버렸다.

그녀가 중부시 정신병원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미친 소리라고 했지만 정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정훈은 그녀의 얼굴을 지현복 부장의 서류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녀를 구했는지, 고문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얼마 뒤에 지현복 부장은 사표도 쓰지 않고 자취를 감췄다.

그래서 정훈은 지현복이 차영미를 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그녀를 완전히 구하진 못했지만.

지난 생에서 지현복이 차영미를 구했다면 이번 생에서는 차영미가 그를 구했다.

옛 생각에 빠져 있던 정훈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멀리 어둠 속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두 눈동자가 반짝였다.

‘컨셉인가?’

근처에 있으면 된다고 해도 매번 잘 안 보이는 곳에서 귀신처럼 숨어 있다.

습관은 이렇게 무서운 법이다.

정훈은 손을 들어 그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어둠 속에 있던 지현복이 몸을 일으켜 정훈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서울로 가야겠습니다.”

“지금요?”

“네, 박현철…… 어르신이 위험합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죠.”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현복이 테이블 위에 쓰러져 있던 두 사람을 보았다.

“내버려 두면 쓰레기 차가 와서 수거해 갈 겁니다. 가진 돈도 없고 날도 따뜻해서 버려두고 가도 됩니다.”

정훈은 그들을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체처럼 머리를 박고 있던 강철중이 침음성과 함께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으으으,”

시체가 깨어나는 순간.

진짜 좀비처럼 팔다리를 꺾으며 일어섰다.

“내가 쓰레기냐? 쓰레기 차가 와서 치우게. 나도 간다.”

정신을 차린 것 같은 그가 말했다.

그리고 은수도.

“나도 가야지. 내가 정훈이 보디가드인데.”

아직 술이 덜 깬 은수가 휘청거리면서 강철중을 잡았다.

몸에 힘이 없던 강철중과 정은수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넘어졌다.

바닥에 쓰러진 둘.

다시 눈을 감고 기절했다.

“데려가야겠네요. 쓰레기들은 트렁크에 태우죠.”

지현복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정훈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2인승 부가티.

탈 자리도 없다.

부가티 트렁크면 롤스로이스 뒷자리만큼 좋겠지.

정훈은 지현복과 함께 두 사람을 트렁크에 집어넣은 다음 키를 건네며 물었다.

“서울까지 3시간 만에 갈 수 있습니까?”

놀라는 표정이지만 당황하진 않았다.

“2시간은 무리지만 2시간 30분 안에는 도착하겠습니다.”

“그럼 지금 9시니까 오늘 안에 도착하겠네요.”

굉음을 내며 부가티가 출발했다.

지현복은 특수부대 출신답게 운전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가 지나가면 뒤 차들이 클랙슨을 울리며 하이빔을 쏘아댔다.

시속 200km를 넘나들며 미친 속도로 운전을 했다.

그리고 2간 20분 만에 톨게이트를 지났다.

정훈의 부가티가 서초동에 있는 해송 빌딩 앞에 도착했다.

***

정훈은 차에서 내려 일단 트렁크를 열었다.

코를 찌르는 썩은 입 냄새와 술 냄새가 뒤섞여 정훈을 공격했다.

황급히 입을 막았다.

여전히 찌그러져 잠을 자던 두 사람을 꺼냈다.

정신을 차린 은수가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어, 언제 여기 왔지?”

강철중은 기억을 하는지 눈빛이 날카로웠다.

“형, 요즘도 운동해?”

“그럼, 통영으로 쫓겨난 뒤에는 할 일이 없어서 더 열심히 한다.”

자기 몸은 스스로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차영미의 말에 따르면 박현철은 해송 빌딩 스카이라운지에 있다고 했다.

해송 빌딩 CCTV를 해킹해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가는 그를 확인했다.

스카이라운지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 이후의 상황은 알 수 없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차영미였다.

“지금 빌딩에서는 아무도 없어요. 저녁쯤에 10명 정도 되는 남자들이 올라갔어요. 모두 스카이라운지에 몰려 있는 것 같아요.”

“고마워요.”

“화신유통 직원들은 모두 근처에서 대기 중이에요. 그리고 헬기도 말씀만 하면 5분 안으로 도착할 수 있게 해 놨어요.”

“오케이.”

정훈은 전화를 끊었다.

“들어갑시다. 안에 계신다고 하네요.”

정훈이 앞장섰다.

그의 뒤를 세 명의 남자가 나란히 걷고 있었다.

빌딩 안으로 들어가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가는 전용 엘리베이터를 탔다.

도착 알림음이 좁은 엘리베이터에 울렸다.

***

“이제 그만 포기 하세요.”

“포기? 후우, 이제 포기해야겠군요, 정말.”

“잘했어요. 다시 그 옛날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제 황실도 재건할 수 있어요. 5년 뒤면 우리 세상입니다.”

“그래도 한때 정의를 공부했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포기하지 않았는데, 뿌리까지 썩어 버렸네요.”

박현철의 말을 들은 하인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피떡으로 얼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엉망인 상황인데, 포기하지 않다니.

“흥, 뿌리까지 썩게 만든 게 당신과 당신의 부친이 만든 해송이에요.”

“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함정인 줄 알면서도 오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훗, 설득은 무슨…… 총, 칼로 위협하고 돈으로 유혹하면 가장 먼저 달려와 무릎 꿇고 엉덩이를 흔드는 게 배운 사람들입니다. 모르셨습니까?”

박현철은 대답할 수 없었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주변엔 그런 부류밖에 없었다.

아쉬웠다.

법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옳고 그름을 먼저 알았다면 잘못된 길을 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뒤늦은 후회다.

“후, 그래도, 다 그렇게 썩어도 깨끗한 누군가가 이 나라를 바꿀 겁니다.”

“호호호, 꿈이 크십니다. 제가 그런 싹은 철저하게 짓밟아 줄 겁니다. 신화그룹과 함께 갈가리 찢어 드리죠. 아, 당신 딸 다혜도 함께”

“이, 창녀보다 더러운 년……이, 네년의 주둥이를 찢어 버려야 하는데.”

하인선의 곁에 있던 남자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무서운 달려와 몸을 허공에 띄웠다.

박현철의 머리를 발로 강하게 찼다.

-퍽

이미 기력이 없던 박현철이 바닥에 쓰러졌다.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어 보였다.

“먹물 주제에 꽤 버티네.”

“정리하겠습니다.”

남자의 말에 하인선이 대답했다.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여 주세요. 저기 구경하던 우리 사대부 양반들의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알겠습니다.”

바닥에 쓰러진 박현철의 의식이 계속 끊겼다.

이제 끝이다.

우리 사위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아쉽다.

그리고, 철중이한테 사과도 해야 하고 강도현한테도 한번 들렸어야 하는데.

이번 달에는 못 들른 게 마음에 걸렸다.

아, 다혜가 낳을 이쁜 손자, 손녀도 보고 가야 하는데…….

끊기는 의식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힘이 없다.

휴, 잠깐만 자야겠다.

박현철은 잠깐 쉬고 다시 일어날 생각이었다.

아주 잠깐이었다.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

문이 열기 전 바로 그 순간이 가장 긴장된다.

눈앞에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전, 정훈은 희망을 가졌다.

스카이라운지 안은 어두웠다.

그럼에도 중앙홀에 남자가 쓰러져 있는 건 똑똑히 보였다.

조명이 쓰러진 그를 밝게 비추고 있다.

박현철이었다.

희망은 언제나 희망일 뿐이었다.

정훈 달려가고 싶었지만 냉정을 유지했다.

천천히 안으로 걸어갔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박현철을 향해 다가가는 그들을 건정한 청년들이 에워싸기 시작했다

개의치 않았다.

정훈의 말에 하인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뒤에 있는 아이를 발견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아이의 출현에 그녀의 몸은 한동안 마비가 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의 치부를 들켜 부끄러운 듯 벙찐 얼굴이었다.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입꼬리가 멈췄다.

그리고 한쪽으로 올라가며 비웃음을 그렸다.

“배신자를 처단하는 것뿐이에요.”

“이쯤에서 멈추세요.”

“본보기를 보여야 합니다. 여기서 멈추면 우스운 꼴밖에 안 돼요.”

하인선이 남자에게 턱짓하자 품 안에서 칼을 꺼내 다음 박현철에게 다가갔다.

“멈추세요!”

정훈이 외쳤지만 듣지 않았다.

남자의 칼이 번쩍이며 박현철을 향해 달려들 때였다.

“안돼!”

강철중이 그를 막으려 달려갔다.

그러자 남자의 칼이 방향을 바꿔 강철중을 향해 달려들었다.

-푹

단단한 살을 꿰뚫는 소리가 들렸다.

-윽

박현철이 자신의 몸으로 강철중을 보호했다.

그의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장관님!”

강철중이 당황해 소리쳤다.

-탕!

날카로운 굉음이 스카이라운지를 가득 메웠다.

정훈은 품 안에 있던 총을 꺼내 쏘았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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