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190화 (190/200)

#190화

강철중은 넋이 나간 듯 보였다

그러다 눈을 수십 번이 넘게 깜빡였다.

잠시 후 정신이 드는 듯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와, 이석 이 새끼가 재벌은 재벌이네, 출생의 비밀도 있고. 정훈이 너처럼. 그놈이 가진 출생의 비밀은 뭐야? 배다른 형제가 있는 거야? 하긴 재벌들 그 정도는 기본이지.”

질문을 잔뜩 늘어놓은 강철중은 손에 쥐고 있던 캔 맥주를 쭉 들이켰다.

“그 새끼는 이헌의 아들이 아니야.”

-푸후우웁!

고개를 젖히고 맥주를 벌컥 삼키던 입에서 액체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기도로 들어간 맥주 때문에 사레가 걸린 듯 기침을 한다.

-컥, 컥

“뭐? 뭐라구? ……진짜야?”

“응, 이석은 하인선과 천성한의 아들이야. 하인선이 이헌을 속인 거지.”

“와, 나는 이헌의 혼외자가 있는 줄 알았는데. 반대였구나. 하인선이 바람피워서 낳은 거구나.”

강철중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응.”

“대단하다 대단해. 이헌 그 양반 그래서 뒷방에 처박혀 있었던 건가?”

“아마도, 자신의 부인이 남의 새끼를 밴 건 용서할 수 없었던 거지. 그렇다고 그걸 까발리자니 세상 사람들의 눈이 무서웠던 거야.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겠지.”

정훈이 추측했다.

“아니…… 어쩌면 사랑일 수도.”

다혜가 끼어들었다.

“그건 무슨 말이야?”

“그냥, 그만큼 하인선을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게 아니면 진작에 내쳤어야 하는데. 그녀를 내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바람도 혼외자도 눈 딱 감고 옆에 둔 거지. 그러면 어쨌든 하인선을 곁에 둘 수 있잖아.”

“그렇다면, 정말 미친 로맨티시스트네.”

강철중은 다혜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정훈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형, 그게 끝이 아니야.”

“야, 잠깐만 나 심장 좀 진정시키고. 하여튼 대단한 놈들이다. 재벌들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휴, 말해 봐, 뭐가 또 있어?”

정훈은 말하기에 앞서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자신도 긴장되었다.

“더 놀라운 건…….”

“뭐? 또 있어?”

“은수가…….”

“은수가 왜?”

“이석의 모친인 하인선의.”

강철중이 말을 끊었다. 그의 눈썹이 하늘로 치솟으며 파르르 떨렸다.

“뭐? 이 새끼가 똥인지 된장인지 파악도 못 하고. 하인선 그 여자와 그렇고 그런 거야? 하 이 제비 새끼, 기생오라비 새끼 어딨어, 잡히기만 해 그냥, 내가 정신교육을 제대로 해야겠어.”

“그게 아니라, 하인선의 아들이야.”

-헙

강철중이 휘청거렸다.

강철중은 어이가 없는 듯 가슴을 강하게 쳤다.

“숨이 안 쉬어져. 정말…… 숨 막혀.”

겨우 휴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은수가 하인선의 아들이라고?”

“응.”

“와, 와…….”

강철중은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한 채 입만 뻐끔거렸다.

“본명은 이환. 이헌의 아들이 확실해.”

결국 강철중은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온몸에 힘이 빠진 그는 겨우 고개를 들고 물었다.

“오늘 만우절이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야.”

“이헌과 하인선의 아들이 은수면은, 도대체 왜 버려져 고아로 사는 거야?”

정훈은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인선이 자식을 학대하고 버리고 유기했던 이유.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증오?”

다혜가 말했다.

“하인선이 이헌을 증오했던 거지. 그래서 그의 씨앗인 은수도 증오했던 거야.”

정훈도, 강철중도 다혜의 말에 수긍했다.

그게 아니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다.

이헌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

다혜의 말이 사실이라면 비극이다.

한쪽은 미친 듯이 사랑하고 다른 쪽은 죽일 듯이 증오하다니.

상념에 잠겨 있었을 때 강철중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야, 이석 회장의 출생의 비밀을 밝힌다는 건 결국……?”

은수가 자신의 자리를 찾는 거야.”

강철중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한참 동안 먼 곳을 응시했다.

“하, 이것들 진짜 재수 없네. 한 놈은 현금왕의 손자, 다른 놈의 재벌 아들, 다른 녀어어어, 여자 사람 친구는 로열 패밀리. 나는 뭐 없나? 우리 할아버지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는데.”

정훈과 다혜는 피식하고 웃었다.

“야, 나 먼저 간다. 약속 있어.”

“무슨 약속?”

“밤낚시 간다.”

“누구랑?”

“있어. 할 일 없는 꼰대랑. 아, 그리고 너 내 총 못 봤냐? 빨리 찾아야 되는데, 그거 없어지면 나 중징계인데.”

“난 모르는데.”

정훈이 딱 잡아뗐다.

“그런데 너 그날 쓴 총은 누구 거야?”

정훈은 어둠 속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지현복을 가리켰다.

강철중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비상구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아, 그랬구나. 정훈이는 모르는구나. 새끼, 연기 연습 좀 많이 해라. 은수한테 좀 배워. 나 먼저 간다. ……쓰고 제자리에 갖다 놔!”

뒤돌아 손을 흔들며 자리를 비웠다.

사라져 가는 그를 보며 다혜가 혼자 중얼거렸다.

“아빠도 낚시 간다는데. 둘이 죽이 맞네.”

정훈의 말은 사실이 되었다.

재벌가 소문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건 없다.

길게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사람들의 입에 입으로 몇 차례 전해진 끝에 소문은 순식간에 거대해졌다.

1주일도 되지 않아 뉴스에서 이석의 출생의 비밀과 소문을 특집으로 다뤘다.

후계 구도의 불안정 때문에 스타그룹의 주가는 폭락했다.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사람들은 이헌의 진짜 아들을 찾기 시작했다.

***

몇몇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돌던 이석 회장의 의혹은 눈덩이처럼 점점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여론은 이석 회장이 이헌의 친자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새로운 유언장이 발견되고 상속 회복 소송이 진행되었지만 이석 회장 쪽에서 검사 결과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사건.

검사 결과만 제출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하지만 결과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하인선은 그런 여론에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인터넷을 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주류 언론에만 언급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석은 달랐다.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만큼 수치스러웠다.

그리고 결국 언론에까지 더러운 기사가 올라갔다.

지금까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하인선도 분노했다.

신문을 읽던 그녀의 손이 신문을 거칠게 구겼다.

작은 손에 쥐여 있던 종이 뭉치로 비서실장의 머리를 때렸다.

-퍽, 퍽, 퍽

구겨진 종이에서 먼지가 날리며 갈기갈기 찢어졌다.

터질 듯 붉은 얼굴을 한 그녀는 손에 쥔 신문을 그의 얼굴을 향해 집어 던졌다.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사들이 쏟아지는 거지?”

“죄송합니다, 여사님.”

“요즘은 언론 관리 안 해?”

“아닙니다. 그건 아닌데, 요즘은 글을 내리라고 해도 말을 잘 안 듣습니다. 그리고 돈으로 막으려고 해도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릅니다.”

비서실장의 말을 들은 하인선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것들이 뜨거운 맛을 보여 줘야 하나?”

“어머니.”

이석은 조용한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별거 아닙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아무리 그래도 어디 이것들이.”

이석은 그녀가 입을 열 때마다 나오는 짙은 술 냄새에 이마가 찡그려졌다.

“피곤해 보이시는데 이만 들어가시지요. 저는 괜찮습니다.”

“아니에요. 아무리 그래도 어디 감히 우리, 하늘보다 소중한 이석 황제…….”

그녀가 흥분해 이리저리 움직이다 발을 헛디뎠다.

넘어질 뻔 했지만 다시 중심을 잡았다.

꽤 취한 것 같았다.

“어머니, 점심때 반주를 조금 과하게 하신 거 같은데, 들어가 쉬세요.”

아들의 말에 하인선은 시치미를 떼며 부정했다.

“딱 한 잔 마셨습니다. 그 정도로 취하지 않아요.”

“요즘 잠도 잘 못 주무시는 거 같은데, 오늘은 들어가 쉬세요.”

자신을 걱정해 주는 아들을 보고 하인선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회장님이 이리 듬직하게 변했군요. 다행입니다. 세간에 떠도는 헛소리는 신경 쓰지 마세요.”

“네. 헛소리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습니다.”

“안심이에요. 우리 이석 회장이 이리 심지가 단단해졌군요. 그럼 오늘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네.”

이석은 비서실장에게 턱짓했다.

그는 하인선을 부축해 밖으로 데려 나갔다.

이석은 자신의 서랍을 열고 손을 깊이 집어넣었다.

그리고 서류를 하나 꺼냈다.

‘친자 확인 검사 결과.’

쓴웃음을 지으며 이미 열린 봉투 속으로 손을 넣어 서류를 꺼냈다.

친자가 아니라는 결과지를 보고도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휴우, 나는 누구의 아들인 거지?”

혼잣말을 한 그.

정말 소문대로 천성한의 자식인가?

그건 최악인데.

자신이 아래로 보던 사람이자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남자였다.

‘젠장. 좆 같구만.’

이런 날은 질펀하게 노는 게 제일이다.

의자에 기대 허공을 응시하던 그는 손을 뻗어 인터폰을 눌렀다.

“비서실장 들어오라고 해”

“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오늘은 어디가 좋아?”

비서실장이 수첩을 뒤적였다.

“오늘은 그린벨리가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네, 신상이라 새 얼굴이 많습니다.”

“나쁘지 않네, 거기 세팅해 놔. 그런데 탁현미는?”

“그게…… 생각보다 완고합니다. 스폰 할 생각은 분명히 있는데, 돈을 계속 올립니다.”

“니미럴, 잘 협상해 봐. 그리고 서류 법원에 제출해.”

“이게 뭡니까?”

“법원에서 제출하라는 친자 확인 증명서. 이거면 재판 바로 끝나잖아.”

“네. 알겠습니다. 오늘 당장 제출하겠습니다.”

이석은 서류를 들고 방을 나가는 실장을 보았다.

씁쓸했다.

자신의 존재를 조작하는 서류.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자신이 사라지는 느낌.

문제가 생기면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

그리고 기껏 사문서 위조.

큰 죄도 아니다.

2~3억 던져 주면 개처럼 꼬리를 흔드는 족속들이 가득 찬 곳이 법원이다.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는 다시 의자에 몸을 완전히 기댄 다음 허공을 응시했다.

‘내 아버지는 누굴까?’

정말 포악하게 생긴 그자인가?

거울을 보면서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

오늘도 쉽게 잠들지 못한 하인선은 사람의 온기 하나 없는 집을 나왔다.

이미 많이 취한 그녀.

자주 가는 술집으로 갔다.

양주를 시켜 몇 잔을 연거푸 들이마셨다.

어두운 조명처럼 그날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해송빌딩 스카이라운지에서 마주한 아이의 눈빛은 무심했다.

분노도 원망도 없었다.

그 눈빛을 마주하자 발가벗겨 진 듯 부끄러웠다.

모든 걸 이해하는 듯한 그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다시 독주를 삼켰다.

식도를 긁으며 내려가는 고통.

자신에겐 이런 고통이 더 어울린다고 자책했다.

증오하던 남자를 내 손으로 보냈다.

통쾌한 복수는 없었다.

진실은 그녀에게 허무를 안겼다.

그녀를 무참히 짓밟은 건 이헌의 욕망도 의지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약에 취해 있었다고 했다.

그제야 모든 게 설명된다.

다정하진 않아도 점잖았던 그가 왜 짐승보다 포악한 남자가 되었는지.

이헌이 아니라 김애월이 모든 문제의 시작.

뭐 어차피 그녀도 보냈다.

하인선을 빈 잔에 마지막 남은 술을 채우려고 했다.

이것만 마시고 집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온기는 없지만 자신을 보호해 줄 곳은 주인 없는 이헌의 성밖에 없다.

“많이 취한 것 같은데요.”

“이게 마지막이에요.”

“제가 따라 드리죠.”

“고마워요. 그런데 누구시죠?”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남자를 보았다.

자신을 빼다 박은 듯 예쁘게 생긴 아이.

꿈에서나 사랑할 수 있던 아이가 눈앞에 있었다.

“예쁘네, 우리 환이. 엄마 보러 왔구나, 엄마 안 보고 싶었어?”

손을 뻗어 아이의 뺨을 쓰다듬었다.

“많이 취하셨네요. 옛날처럼.”

“취해야 잠을 잘 수 있잖아.”

“이제 그만 내려놓으세요. 이제 곧 무너질 왕국입니다.”

“내 존재가 왕국이야. 그게 무너지면 나도 사라져.”

잔을 비웠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이니? 엄마 꿈에도 나오고. 어른으로 나온 건 처음이네. 엄마도 많이 보고 싶었어.”

그녀의 보고 싶었단 말에 무덤덤하던 남자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후, 아버지가 저한테 부탁했어요.”

“아버지? 이헌이? 뭐라고, 그 샌님 같은 양반이 뭐라고 했어?”

“인생을 망쳐서 미안하다고요. 자기 욕심이 엄마를 망쳤대요. 그래서 미안하다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했어요. 지옥에서 빠져나올 시간은 충분하다고…… 그 말을 제게 남겼어요.”

“……”

그녀는 아무 말도 않고 일어섰다.

뒤돌아 걸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봐. 헛거가 다 보이고. 호호호, 술이 많이 취했네.”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걷던 그녀가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항상 그녀를 지키는 수호신 같은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아이를 보고는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 원래 있던 어둠 속으로 몸을 감췄다.

아이는 그녀를 업어 차로 옮겼다.

술에 취했을때만 자신을 업어 주던 그녀.

감미로운 그녀의 자장가에 잠자리에 들었던 그날들이 떠올랐다.

멀어지는 차를 보며, 그녀가 지옥에서 헤엄쳐 나오길 기원했다.

***

“상속회복 청구 소송을 기각한다.”

이석이 이환의 친자임을 증명하는 서류가 제출되었다.

서류에 따르면 이석은 이환의 친자가 분명했다.

정훈은 이석이 서류를 조작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았다.

법원에 제출된 서류의 진위를 다시 한번 검증하기 위해서는 이석의 DNA가 필요하다.

법원에 이의를 제기해 이석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는 백프로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합법적으로 확인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하, 이 새끼가 봐라.’

“차 대기해요. 스타그룹으로 갑니다.”

한 번 만나야 할 것 같았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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