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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194화 (194/200)

#194화

며칠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가 있었지만, 누워 있을 수 없었다.

진통제로 고통을 억누른 다음 병원을 나와 회사로 갔다.

차영미가 예전에 있었던 전산실을 향해 걸었다.

지금은 천진혁이 팀장으로 있다.

문을 열자 서버와 컴퓨터가 뿜어내는 열기가 얼굴에 느껴졌다.

자리에 앉아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는 천진혁.

차영미가 사라졌음에도 의외로 차분해 보였다.

사이코패스 기질 때문인가 생각했다.

그 주위로 안절부절못하는 남편 이병석이 서 있었다.

초조했다.

아무리 사전에 계획된 작전이지만 여자 혼자 납치당한 상황, 걱정이 앞섰다.

거기다 핵심 브레인의 부재.

모두의 눈빛에서 불안과 초조함이 느껴졌다.

정훈은 그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곧 신호가 올 겁니다. 영미 씨가 가진 노트북을 켜는 순간 위치가 뜰 거예요. 그리고 그들이 영미 씨 노트북에 접속하면 그들의 모든 정보가 이쪽으로 전송될 겁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영미 씨가 가지고 다닌 노트북은 미끼입니다. 그 안에는 해킹프로그램이 잔뜩 깔려 있죠. 그놈들이 그걸 분석하기 위해 연결하는 순간, 모든 게 끝입니다.”

“위험하진 않을까요?”

“위험하지 않도록 해야죠.”

인터폰이 울렸다.

“회장님, 하인선 여사님께서 오셨습니다.”

정훈은 은수를 보았다.

쭈뼛거리며 눈을 피했다.

“그게, 천성한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고 하셔서. 미리 이야기했어야 하는데, 미안해”

은수는 정훈의 얼굴을 보지 않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괜찮아. 힘을 합쳐야지. 그래.”

사실이다.

지금은 모든 힘을 모아야 한다.

특히 하인선은 천성한의 비밀과 약점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위치에 있던 여인이다.

적의 수장.

믿을 수 있을까?

그녀는 은수를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

이제, 못 믿을 이유는 없다.

정훈은 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그녀에게 자리를 안내했다.

“앉으세요.”

“아니요. 크게 중요한 정보는 아닐 수도 있어요. 그것만 전하고 가죠. 제가 있으면 불편할 거예요.”

그녀의 말에 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감정을 생각하지 못했다.

은수를 제외한 누구도 그녀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눈 깜빡하지 않고 그녀를 쏘아보는 사람들.

적대심이 얼굴에 가득 보였다.

특히 박창수는 이글대는 눈으로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한 채 입술을 질끈 깨문 그녀.

깊은 심호흡을 한 다음 입을 열었다.

“천성한은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어요.”

“쿠데타라니요.”

모두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군부의 비밀 조직인 하나회의 수장이 천성한이죠.”

“철저하게 숙청되지 않았나요?”

“아니요. 대대적인 숙청 후에도 은밀히 살아남은 잔당들이 조용히 자신들의 힘을 키우고 있었어요. 그들의 부활을 위해 스타그룹에서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죠. 10년, 20년 후를 계획하면서 힘을 비축했었죠.”

“쿠데타의 목적은 집권인가요?”

“네. 그리고 왕정의 부활요.”

“네?”

“황실의 적통이라 생각했던 이석을 황제로 세우고 그 밑에서 영구 집권을 꿈꿨어요. 태국을 생각하면 이해될 거예요.”

“아.”

모두의 입에서 약속한 듯 짧은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지금 스타그룹이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 일정을 상당히 당기고 있었어요.”

“그들에게 스타그룹이 중요한 겁니까?”

“네. 하나회도 결국은 탐욕을 쫓는 집단. 자금 지원을 해 줄 세력이 없다면 결속력이 없어요.”

하인선을 쳐다보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쿠데타를 막으려면 천성한을 제거해야 합니다.”

곽현수의 목소리에서 날카로운 살기가 느껴졌다.

지현복이 곽현수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이번엔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하인선은 곽현수의 말에 반대했다.

“아니요. 아직은 아니에요. 기다리면서 모든 조직원들을 파악해야 합니다.”

“무슨 수로 그걸 파악합니까?”

곽현수가 답답한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인선은 조직원의 명단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훈은 차영미의 혜안에 감탄했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꼼꼼하지 않은 그녀의 치밀한 계획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한 건가?’

“차영미 씨가 명단을 보낼 겁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됩니다.”

“네? 무슨 말입니까?’

정훈은 눈을 동그랗게 뜬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기무사가 차영미를 체포했지만 분명히 다른 곳에서 데리고 있을 겁니다.”

천진혁이 정훈의 말을 이었다.

“네. 저도, 영미 누나도 그렇게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아마 천성한 조직의 본거지 일 거라고 예상했어요.”

“맞아요. 그들의 본거지. 그곳에서는 분명 조직원들과 연락을 주고받은 흔적이 있을 겁니다. 그 흔적을 찾으면 되는 거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초조하겠지만 조금만 기다리죠. 곧 신호가 뜰 겁니다.”

정훈은 그녀가 걱정이 되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신화그룹이 오늘날까지 오는 데 큰 기여를 한 그녀.

무사하길 기원했다.

“회장님”

천진혁이 소리쳤다.

“왔습니다. 위치 신호가 오고 있습니다.”

“후”

정훈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 나왔다.

일단은 무사한 것 같았다.

이제 구해야 할 시간이다.

“어디에 있습니까?”

“그게…… 강남입니다.”

“네?”

도심 한복판에 차영미가 감금되어 있다.

그리고 거기가 하나회 놈들의 근거지다.

근거지.

총격전도 불사할 수 있다.

이미 우리에게는 러시아 놈들에게서 구입한 막대한 무기가 있었다.

“소총과 실탄은 충분합니까?”

곽현수와 지현복은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설마, 회장님. 서울 한복판에서 총격전은 안 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군인들이 움직여 서로 싸우기 전에 그들을 먼저 쳐내야 합니다. 만약 일이 틀어져 내전이 되면 더욱더 큰일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강남 한복판에서 대규모 총격전을 일으키면 문제가 커집니다.”

“그럼 허락, 아니 통보를 해 두죠. 그러면 문제없을 겁니다.”

“어디에 통보한다는 말입니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터폰을 눌렀다.

“청와대 VIP 연결해 주세요.”

“네? 거길 어떻게?”

비서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엘리펀트라고 하면 연결될 겁니다.”

“엘리펀트요?”

모두들 의아한 반응이었지만 하인선은 달랐다.

그녀의 두 눈이 급격히 커졌다.

당황한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엘리펀트? 설마? 윤정훈 회장이 엘리펀트였어?”

***

청와대 집무실에서 결재 서류를 검토하던 박명득 대통령.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문을 열고 다급한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박명득이 앉아 있는 의자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대통령님, 엘리펀트 쪽에서 연락 왔습니다.”

“뭐라구?”

박명득 대통령은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지?’

이렇게 연락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는 테이블 밑으로 손을 넣어 밑판을 더듬었다.

그가 준 대포폰은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무슨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엘리펀트.

5년 전부터 갑자기 연락해 막대한 비자금을 제공했다.

그 돈 덕분에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정치적 고비마다 연락해 현명한 조언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껏 대포폰으로만 연락했다.

자신의 부인과 측근 몇 명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어떻게 할까요?”

비서실장이 물었다.

“잠시만, 그 전화 위치 추적했나?”

“네. 신화그룹 회장실입니다.”

“뭐? 윤정훈 회장 말하는 거야?”

“네, 그쪽이 확실합니다.”

박명득은 믿을 수 없었다.

그가 엘리펀트라니.

윤정훈은 구한수 대통령 계열이다.

구한수 밑에서 승승장구했던 인물인데.

처음 엘리펀트를 추적할 때 그자도 유력한 후보였다.

하지만 구한수 때문에 후보에서 제외했다.

구한수의 반대편에 서 있는 자신에게 그가 지원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지금까지 했던 그의 말을 종합하면 최소 50대 이상의 나이였다.

그런데 20대 중반의 윤정훈 회장?

박명득은 궁금증부터 해결해야 했다.

“연결해, 그리고 자넨 나가 있어.”

“네.”

“박명득입니다.”

“엘리펀트입니다.”

인터폰에서는 음성 변조되지 않은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그대로 흘러나왔다.

윤정훈이 확실했다.

“자네가 엘리펀트인가?”

“흠, 반말은 생소하군.”

젊은 회장에게 쓸데없이 말을 놓았다가 화들짝 놀랐다.

“죄송합니다. 윤 회장님.”

“아닙니다. 대통령님. 제가 엘리펀트입니다. 많이 놀라셨습니까?”

“네, 솔직히. 이렇게 어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50살은 넘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나이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렇죠. 참 오늘 전화하신 용건은 어떻게 됩니까?”

“강남에서 큰 소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소란입니까?”

“총격전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네? 당황스럽군요. 이유가 있습니까?”

“쿠데타를 준비하는 세력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설마? 하나회가 실존한다는 겁니까?”

구한수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뜬 소문으로 생각했었다.

이미 완벽하게 제거된 조직이었다.

“네. 아주 은밀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군대에 있는 그들을 솎아 내려면 큰 혼란이 생길 겁니다.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해야죠.”

구한수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손 안 대고 코풀어 준다는데.

그들을 제거한다면 빈자리에 자기 사람을 채울 수 있다.

“수방사 쪽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말해 놓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그쪽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아는 사람이 기무사에 보안법 위반으로 끌려갔습니다. 염치 불구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관련된 사람입니까?”

“네.”

“오늘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곧 자금이 필요한 때가 온 것 같은데, 이번에도 한 장이면 되겠습니까?”

“하하하,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고맙습니다. 나라를 위해 쓰겠습니다.”

“좋은 일에 쓰시리라 믿습니다.”

박명득 대통령은 전화를 끊었다.

창밖을 보았다.

갑자기 정체를 노출한 엘리펀트, 그리고 그가 구하려는 사람.

머리를 굴려 의도를 생각했지만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복잡한 상념을 한 장에 대한 욕심이 밀어냈다.

한 장, 미국 돈 1억 달러.

우리 돈 1400억 원.

그의 입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100억은 통치자금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돈은 스위스 계좌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해야 할 일을 마무리했다.

“비서실장”

문을 향해 크게 소리치자 비서실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기무사령관한테 연락해서, 거 국보법으로 잡혀 온 사람 다 석방하라고 해. 전부 다.”

비서실장이 멈칫했다.

“대통령님 아무리 그래도……”

박명득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를 노려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뭐? 시대가 어느 시댄데, 다 석방해. 알겠어? 어?”

마지막에 큰소리를 힘껏 내질렀다.

그러면 일 처리가 빨라지는 걸 잘 알고 있다.

업무처리 속도가 2배가 된다.

정말 들어오던 속도보다 2배 빠르게 비서실장이 방을 뛰어나갔다.

***

“뭐라는 거야? 그년을 왜 내보내? 미쳤어?”

수화기에 대고 천성한이 거칠게 말했다.

곧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대통령님? 니미 병풍처럼 있던 새끼가 왜 갑자기 설치고 지랄이야? 돈만 주만 조용히 있던 놈이. 야, 잠깐 기다려 봐.”

생각해야 한다.

다다미가 깔린 방안을 이리저리 서성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쩔 수 없었다.

병풍 같은 존재감이라도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

오늘은 양보해야 한다.

“일단 내보내. 추적 잘하고. 그리고 그년이 가지고 있던 노트북이랑 휴대폰 탈탈 털어 봐. 분명 뭐가 나올 거야.”

전화를 끊은 천성한은 심란해졌다.

정치도, 군대도, 외교도 어느 것에도 전혀 관심이 없던 그.

주머니 속만 채워 주면 뭐든지 오케이 하던 그가 갑자기 설친다?

무슨 일이지?

이유를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화기를 열어 청와대 쪽으로 전화하려 할 때였다.

“들어오시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천성한에게도 드디어 그분을 알현하는 문이 열렸다.

이전에는 이헌만이 그를 볼 수 있었는데.

그가 사라진 지금 이제 자신이 그의 후계자가 된 것이다.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조심스러운 발걸음.

고개를 숙인 채 그의 10보 앞까지 다가갔다.

천천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천황폐하를 뵙습니다.

“고개를 드세요. 반도의 새로운 주인이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인자한 목소리였다.

천성한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권좌에 앉아 자신을 내려보는 그의 눈빛에 위엄이 서려 있었다.

“알현을 허락해 주셔서 무한한 영광입니다. 천황폐하!”

다시 고개를 숙이며 머리를 조아렸다.

‘이제 모든 게 내 손에 들어온다.’

고개를 숙인 그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담겨 있었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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