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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197화 (197/200)

#197화

윤정훈 회장의 전화를 받은 차영미는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오늘이다.

영훈이를 의문 속에 보낸 뒤 스스로에게 약속했었다.

동생을 죽인 자를 반드시 찾아 갈기갈기 찢겠다고.

오늘 드디어 복수한다.

그녀는 화장대에 앉아 거울을 보았다.

자신이 봐도 밋밋하고 순한 얼굴.

짙은 갈색의 스모키한 화장으로 순진해 보이는 얼굴을 감췄다.

옛날 할리퀸으로 전 세계를 누비며 각국의 정보기관을 해킹하는 재미에 빠져있던 시설, 자주 하던 화장이었다.

동생의 비웃음이 귀에 들렸다.

‘중2병이야?’

그 말에 영훈이의 뒤통수를 때렸던 게 수차례였다.

티격태격했지만 서로를 보살펴 주던 남매였는데.

이제 곧 그의 영혼에 평화로운 안식을 선물할 수 있다.

-똑, 똑

“영미야, 이제 출발할까?”

“그래, 나갈게.”

거울 앞에서 입꼬리를 잔뜩 올리며 웃었다.

오늘은 울지 않는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인천에 있는 창고로 갔다.

바닷가에 있는 비밀 아지트.

긴장한 듯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어깨를 활짝 폈다.

낯선 비릿함이 폐포를 가득 채웠다.

창고의 큰 문 앞으로 걸어갔다.

금속 손잡이를 잡자 한기가 느껴진다.

온 힘을 다해 힘껏 밀었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어두운 실내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텅 빈 넓은 공간 한가운데였다.

그가 앉아 있다.

***

정훈은 의자에 앉아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의식이 없어 고개가 옆으로 꺾여 있다.

지현복이 그를 향해 물을 뿌렸다.

-허어억.

탁한 신음이 텅 빈 공간에 울려 퍼진다.

그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얼굴에 묻은 물기를 털어 낸 다음 고개를 들었다.

두 눈을 부라리며 정훈을 쏘아보았다.

“죽여라!”

비장한 그의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정훈은 그를 보며 한쪽 입 끝을 올리며 피식하고 웃었다.

“왜? 왜 내가 너를 죽여야 하지?”

“뭐? 뭐라고?”

“이유를 말해 그러면 죽여 줄게.”

“개소리 집어치워. 더 이상 나를 모욕하지 말고 죽여.”

“이봐, 모욕은 사람에게 쓰는 말이야. 너 같은 사냥개에게 그런 단어는 어울리지 않아.”

어금니를 꽉 깨문 듯 그의 두꺼운 낯짝이 파르르 떨렸다.

“어리석은 놈, 일본 놈들의 속내도 파악하지 못한 채 이용만 될 뻔한 주제에.”

“무슨 말이지?”

“네 놈이 해양 순시선을 침몰시키면 저들이 어떻게 움직였을 거 같아?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원숭이 놈들이 약속처럼 움직였을까?”

“뭐라는 거야?”

“욕심에 눈이 멀어 상황 파악이 안 됐겠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면 무릇 생각을 해야지. 머리를 달고 있으면 생각을 해 봐.”

잠깐 눈알을 굴린다.

이내 그의 눈동자가 지진 난 듯 파르르 떨렸다.

“설마.”

“뭐 그쪽도 이쪽도 완전히 실패했으니 다행이야. 고귀한 희생으로 현양사가 괴멸되었다. 너희 하나회 놈들도 절반이 사살되었고 절반이 구속되었어, 조직의 말단 대위까지 전부다.”

“뭐? 어떻게 우리 명단을 알아냈지?”

“자네들이 체포한 여자 덕분이지. 남의 물건을 함부로 손대면 안 되는데, 허락도 없이 그녀의 노트북을 뒤졌잖아.”

“무슨 말이야?”

“노트북은 미끼였어. 그게 너희 서버에 연결되는 순간 모든 정보가 신화그룹 전산실로 전송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어.”

“어떻게, 그런 일이, 우리의 보안 수준이 그렇게 쉽게 뚫릴 리 없어.”

“세계 제일의 해커 두 명과 천재 프로그래머, 그리고 당신을 죽이겠다는 의지면 무엇이라도 가능할 거야.”

상황을 파악한 그의 얼굴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듯 붉어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체념한 얼굴이 되었다.

힘없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죽여라. 모든 게 실패했다면 더 살아갈 이유는 없다.”

“기다려, 이제 당신의 생사여탈권을 쥔 그녀가 올 거야.”

“그녀?”

“그래, 차영훈의 누나, 할리퀸 차영미.”

“차영훈?”

이름을 듣는 순간 고개를 들어 정훈을 바라보았다.

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그려져 있다.

그때 창고의 육중한 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녀가 들어왔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

처음 보는 짙은 화장.

그녀는 십 년을 기다려온 복수를 끝내는 할리퀸이 되었다.

차영미가 정훈을 보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고마워요. 정말. 당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영훈이의 죽음에 이렇게 거대한 배후가 있다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을 텐데.”

천성한을 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군부에 숨어 있는 그의 세력을 밝혀내기 위해서 지금껏 기다렸다.

그녀의 인내에 정훈은 진심 어린 감사를 표했다.

“죽일 겁니까?”

정훈은 차영미를 보며 물었다.

“모르겠어요. 죽이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영훈이가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잖아요. 회장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라면 살릴 겁니다. 저는 죽여 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괴롭힐 겁니다.”

정훈의 서늘한 목소리에 차영미가 어깨를 움츠린다.

짙은 화장으로 복수를 꿈꿨지만,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건 쉽지 않은 일.

상처를 입히는 만큼 상처를 받는다.

“총을 주세요.”

정훈은 차영미에게 총을 건넸다.

옆에 있던 그의 남편 이병석이 가로챘다.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 내가 해야 해. 죽이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받은 고통을 되돌려 주는 거야.”

고개를 끄덕인 그는 그녀에게 권총을 넘겼다.

그리고 정훈을 향해 부탁했다.

“저도 복수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영훈인 아직도 보고 싶은 제 동생이자 가족입니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눈가에 이미 이슬이 가득 맺혀 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지현복이 그에게 권총을 전달했다.

차가운 촉감에 깜짝 놀란 듯 그의 몸이 짧게 움찔거렸다.

정훈이 지현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의자에 묶여 있는 그를 일으켜 세웠다.

손과 발을 묶고 있는 줄이 당겼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

그는 사냥개처럼 사지가 벌려진 채 허공에 떠 있다.

차영미가 천성한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죽이진 않을 거야. 하지만 앞으로 팔 없이 지내봐. 부디 오래 살아, 천성한!”

그녀의 총이 불을 뿜었다.

연달아 불을 뿜는 총구.

그의 두 팔이 깨끗하게 분리되었다.

두 팔이 분리되어 거꾸로 매달려 있다.

-으아아악!

“오래 살아남으세요. 우리가 당한 것보다 몇 배가 되는 고통이 당신을 찾아갈 겁니다.”

이병석이 총을 들고 다리를 겨냥한 다음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무릎 아래가 끊기며 둔탁한 소음과 함께 그의 몸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이미 의식을 잃었다.

“살려야 합니다.”

정훈의 말을 들은 지현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에 머리와 몸통만 남아 있는 그.

머리채를 쥐고 질질 끌며 건물 안으로 데려갔다.

정훈은 복수를 완성한 그녀를 보았다.

떨고 있던 그녀의 몸이 생각보다 빨리 안정을 찾았다.

“괜찮습니까?”

걱정되었다.

인터넷에서야 해킹을 하고 서버를 불태우고 남의 시스템을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괴멸시키는 할리퀸.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두 부부의 총에 악인이지만 사람의 팔과 다리가 날아갔다.

“아쉽군요. 머리에 한 방 박아야 했었는데.”

그녀의 이글대는 눈동자를 본 정훈은 안심했다.

다행이다.

그녀는 쓸데없는 양심과 도덕 때문에 고민하진 않을 것 같았다.

문제는 이병석에 있는 것 같았다.

“흠흠, 괘, 괜찮은 것 같습니다.”

딱 봐도 안 괜찮은 얼굴.

식은땀이 얼굴에서 줄줄 흘러내린다.

“오빠!”

차영미가 그를 향해 사자후를 날렸다.

그리고 두 손을 들어 이병석의 볼을 짝소리 나도록 후려쳤다.

입술이 오므라들며 자연스럽게 입에서 소리가 튀어나온다.

“헙.”

그녀의 충격 요법에 초점을 잃고 파르르 떨기만 하던 그의 눈동자가 드디어 제자리를 찾았다.

“오빠, 정신 차려. 사람 죽인 게 아니야. 그냥 우리가 당한 고통의 10분의 일도 안 되는 고통을 되돌려 준 거야.”

그녀의 말이 맞는다.

그래서 정훈도 그녀가 그를 죽이지 않길 바랐다.

이제 남은 수십 년 동안 몸통 하나만으로 거친 감옥에서 살아가길 기도했다.

지현복이 나와서 보고 했다.

“준비 다 됐습니다. 출발하겠습니다.”

“네.”

고개를 숙여 인사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그는 응급 처치를 마친 천성한을 데리고 광화문으로 출발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 왔다.

광화문의 빌딩들이 타오르는 태양에 반사되어 아름답게 반짝였다.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동상 앞.

기자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얼마 뒤 구급차가 도착해 침대를 내려놓고 사라졌다.

몰려 있던 기자들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잘린 채 침대에 누워있는 천성한이었다.

기자들은 사진을 찍으면서도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잠시만요!”

천성한을 둘러싼 기자들을 헤치고 나타난 강철중.

그를 법의 심판대에 올려놓아야 했다.

“천성한 장관님, 강철중 검사입니다. 당신을 반역죄, 내란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합니다.”

일본의 힘을 빌려 권력을 잡으려 했던 남자.

그를 이용해 한 나라를 몰락시키려 했던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의 암흑 조직 현양사.

절제되지 않았던 그들의 무지한 탐욕은 결국 스스로를 완전히 괴멸시켜 버렸다.

***

“속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아침,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긴급 수배 중이던 천성한 전 국방부 장관이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팔, 다리가 잘린 채 발견되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습니다. 어제 유출된 녹음 파일에 따르면 일본의 힘으로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석은 뉴스를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야, 비서실장, 비서실장!”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자 문이 열리며 다급히 뛰어 들어왔다.

“예, 회장님.”

“어떻게 된 거야. 천장군이 왜 저렇게 된 거야? 어제 무슨 일이 있었어?”

“그게, 어제 천성한 장군의 하나회가 체포되거나 사살되었습니다.”

“그걸 왜 인제 보고해 이 새끼야?”

“어제, 회포를 푸신다고 절대 연락하지 않으셨습니까?”

이석의 얼굴이 분노로 시커멓게 변했다.

“이 개자식아, 그런다고 진짜 연락을 안 해?”

이석의 손이 하늘로 치솟았다.

비서실장이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손으로 얼굴을 방어했다.

인터폰이 울렸다.

“회장님, 검찰과 경찰에서 압수 수색 나왔습니다.”

“뭐? 보안팀 출동시켜서 모조리 막아.”

“예?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서류 전부 파쇄해. 그룹 내에 코드 제로 발령시켜.”

“네.”

잠시 후 비상벨이 울렸다.

“실제 상황, 코드 제로가 발령되었습니다. 그룹 내 모든 임직원은 매뉴얼 대로 민감한 모든 문서를 파쇄하고 하드디스크를 파괴하세요. 다시 한번 알립니다. 코드 제로, 코드 제로……!”

입술을 짓씹으며 방안을 서성이던 이석.

어머니와 상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곧 생각을 고쳤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편이 아니다.

그 생각을 하자 더 분노가 치솟았다.

“이런 개 X같은!”

창밖을 보았다.

관광객들이 오가는 평화로운 경복궁의 전경이 훤히 들어왔다.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욱더 가지고 싶었고, 반드시 가져야만 했다.

황실의 유일한 적통인 자신의 집이 바로 저기였다.

“며칠만, 며칠만 있으면 저 모든 게 내 것이 되는데.”

-퍽, 퍽, 퍽

온 힘을 다해 유리창을 때렸다.

둔탁한 소리가 나며 흔들리기만 할 뿐 강화 유리는 깨어지지 않았다.

그의 손이 피로 얼룩졌을 때쯤이었다.

문이 열렸다.

“나가, 이 새끼들아.”

분노에 찬 이석이 소리를 내질렀다.

“글쎄, 놈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뭐?”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모든 일의 배후인 윤정훈, 그리고 정은수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윤정훈, 정은수 이 바퀴벌레 같은 새끼들이.”

이석이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정훈은 자신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는 이석을 보고 방긋 웃어 주었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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