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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1화 (1/200)

프롤로그 - 가짜 인생

가짜 인생이었다.

남의 인생을 그대로 답습하고 그의 버릇과 행동을 평생 따라 했다.

자그마치 40년 동안이나.

이젠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폭군의 그림자이자 더미.

그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 대신 죽어야 하는 운명.

그게 주어진 삶의 전부였다.

긴 세월 동안 여러 위기가 있었다.

독살, 테러, 습격, 역모.

한 번의 위기가 더해질 때마다 다른 가짜들, 가짜 황제들이 죽어 나갔고.

적들이 승전고를 울릴 때면.

저주와 같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폭군이 피의 축제를 벌였다.

죽이고 또 죽였다.

한 명도 남김없이.

친척을 비롯하여 그들과 관련 있던 자들 전부를.

하다못해 그들을 향해 꼬리를 흔든 개의 새끼의 새끼까지.

추적하여 죽였다.

적이 쌓일 때마다 더미들도 죽어갔다.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이후로도 세기 어려울 정도로 죽었고.

마지막 나만이 남았다.

“이번엔 네 차례다. 황제께서 편찮으시니. 회복하시는 동안 가면이 되어라.”

간단한 명령.

가짜로서 처음 황제 위에 오른 순간.

쏟아지는 날 선 원망과 분노, 살의를 마주했다.

직감했다.

죽겠구나.

그런데 천운이었을까 아니면 폭군의 말로일까.

황제는 깨어나지 않았고 내가 황위에 올라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처음엔 그저 죽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면.

“들으라. 황성 기사단을 직접 파견하여 변방에서 일어난 몬스터 무리를 제압하고 주변 영주들은 합심하여 치안을 살리도록.”

“때가 어렵다. 세율을 조정하고 영주들의 과도한 징수를 금하라.”

“불온한 사상이라 죽이자? 귀족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사상이라서가 아니고?”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러나 폭군이 뿌린 피는 너무나 많았고 제국은 뿌리부터 이파리까지 모두 썩어 있었다.

홀로 감당하기엔 난 대단한 성군도 위대한 황제도 아니었다.

그저 죽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가짜 황제.

그게 나였다.

결국 운명처럼 파국은 찾아왔다.

잠깐의 치세는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했고 불만을 품은 귀족들과 백성들이 제국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위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제국이 무너지자 위압에 시달리던 국가들이 연맹하여 짓쳐들어왔고.

이어서 대륙 전체에 걸쳐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그들 뒤에 악마가 등장했다.

마치 연극의 막이 닫히듯 대륙의 멸망이 찾아왔다.

그리고 멸망의 첫 번째 제물은 바로.

“모든 게 끝이로군.”

나였다.

황제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이제 가짜도 황제도 아니게 된 나만이 남았다.

밖은 비명과 고함 살의가 가득했다.

핏빛 노을이 저무는 대전.

몰려드는 반란군과 악마들.

황좌에 홀로 앉아 종말을 기다리는 가짜 황제.

“도망가지는 않으십니까?”

“왔나? 마침 홀로 적적했는데 잘 되었네.”

그런 나를 찾아온 제국 서기관이자 신비를 짊어진 대마법사.

제국의 시작부터 역사를 기록했다는 괴담을 짊어진 이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 한마디를 건네었다.

“운명을 바꿀 순 없었군요.”

“그렇지. 나는 그저 폭군의 운명에 휩쓸려 살았을 뿐이군.”

“잠깐이지만 진짜가 된 기분은 어떠셨습니까?”

“상쾌했지. 다만···.”

어차피 죽을 마당, 정체를 숨길 이유가 없다.

죽음처럼 가라앉는 노을을 보며 턱을 괴고 고민하길 잠시.

“나의 삶을 살아보지 못한 게 후회로군.”

한 줄기 아쉬움을 뱉었다.

“사셨다면 어땠을까요? 스러져가는 세상의 운명을, 바꾸었을 거라 보십니까?”

“살아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 나 자신의 운명을 바꾸지 못했거든.”

조금은 가벼워진 말투에 대마법사가 작게 미소짓고는.

“그럼 이 기회에 한 번 살아보시죠.”

“무엇을?”

“자신의 인생을 말입니다.”

“어떻게?”

“운명을 바꾸는 게 아니라 잡아먹으십시오. 그게 당신이 살아갈 방법일 겝니다.”

“운명을···먹어라?”

“네.”

자줏빛 노을을 등진 마법사의 전신이 새까맣게 물들었고 푸른 눈이 유독 번뜩였다.

붉고, 검고, 푸르다.

신비.

신비가 몸을 잠식했다 느꼈다.

“황제를 잡아라!”

대전이 벌컥 열리는 소리와 반란군의 목소리가 얼핏 들렸으나.

멀었다.

악마들이 대전의 창문을 깨고 들어와 반란군을 찢어먹으며 날 찾았으나.

침범치 못했다.

마치 장벽 너머, 꿈처럼 연극처럼 보일 뿐.

다만 눈앞에 떠오른 알 수 없는 글자들만은 선명했다.

그리고 평생 이름도 없이 가짜 황제로 살았던 나는.

[신비 운명을 포식하는 자를 짊어졌습니다]

[이전 신비를 짊어졌던 자가 남긴 흔적들이 당신을 잠식합니다. 포식할 운명을 대신 선택합니다]

[가장 거대한 운명: 가짜 인생을 포식합니다. 운명을 개변합니다]

[새로운 운명이 태동하였습니다]

진짜 황제의 어린 시절로 회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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