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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3화 (3/200)

황자는 운명을 포식한다

아르한 11 황자.

흐드러진 백금발과 새빨간 눈동자, 은은하게 감도는 어둑한 분위기가 퇴폐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외관과 달리..

잔혹하고 괴팍한 성격 덕에 계승권은 물론이고 황자, 황녀들 사이에서도 배척받는.

최악의 황자.

강철성 고용자들 사이에선 11 황자궁에 들어가면 고용인으로서의 생명은 물론 실제로 생명을 잃는다는 흉흉한 소문이 팽배했다.

실제로 종종 시체들이 실려 나오기도 하니 거짓은 아니리라.

그런데 최근 11황자 궁에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이로써 신기록인가?”

“벌써 스무날이 넘었으니 신기록이지요.”

“우리 정말 괜찮은 걸까요?”

“아직까지 다친 사람도 죽은 사람도 없으니 다행 아니면 뭐란 말이야?”

“하지만 오랜 고요 이후엔 물갈이가 있을 수 있다고···.”

“쉬잇 또 재수 없는 소리 할 거야?”

자그마치 스무날 동안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죽지 않았다.

기적이라면 기적이라고 하겠으나 고용인들의 불안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사실 하루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불안감은 켜졌다.

언제 저 미친 황자의 성질이 폭발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

그러거나 말거나.

“일정은?”

“따로 잡힌 것은 없습니다.”

“연무장에 있을 거니까. 누구도 들이지 마라. 식사도 모조리 연무장으로 가져와.”

“네 알겠습니다.”

“누가 찾아오면 주색잡기에 빠져서 칼 들고 설치고 있다고 해.”

“···알겠습니다.”

해괴한 명령에 시종과 시녀, 하인 전체를 관리하는 집사장이 신음을 흘리며 고민하는 중에도.

연무장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거침없었다.

진짜 황자가 된 지 벌써 스무날.

열흘은 상황을 파악했고 이후 열흘은 단련의 나날들이었다.

오늘 또한 마찬가지의 일과.

그동안 파악한 사실 하나.

아무도 날 찾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없는 것 마냥 기피했다.

‘그 흔한 귀족들이나 상인 나부랭이조차 찾아오질 않는군.’

신기할 따름이다.

보통 황자라함은 국가의 커다란 권력을 쥐고 있기 마련.

중앙 정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변방 귀족들 또는 상인들이 뺀질나게 드나들어야 마땅하건만.

이 11 황자궁에는 개미 그림자 하나 비치지 않았다.

“누구든 아르한 11 황자와 접촉하여 힘을 실어주는 자들은 엄벌을 피하지 못하리라.”

황제의 엄포 때문.

과거 더미 시절에 배우고 익혔던 폭군의 삶이었으나 이 정도일 줄이야.

“오늘은 무게를 좀 늘려야겠다.”

뭐 덕분에 나는 훈련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 좋았다.

여기 있는 고용인들이야 이제 나의 소유였고 찾아오는 눈이 없으니 어설프게 숨어서 훈련하지 않아도 되었다.

족쇄가 자유가 된 셈.

그리고 지난 시간 동안.

[하위 운명 나태함, 허약 체질, 저질 체력을 포식합니다]

[개변 수치 8을 추가 획득합니다]

[총 개변 수치: 146]

[하위 운명 작은 인내심이 좀 더 강화되었습니다]

목을 옥죄는 작은 운명들을 꾸준히 바꾸어 나갔다.

아직 운명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나.

[저질 체력 – 단기간 운동으로 일시적 순발력 상승]

[허약 체질 – 근육이 조금 단단해짐, 회복력 조금 상승]

[작은 인내심 – 사소한 불편을 참습니다]

분명 최악 중 최악에 가까웠던 신체 능력들과 성질들이 조금은 바뀌었다.

아직은 멀었지만.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무거운 무게를 들어 올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비록 남들이 보기엔 보잘것없어도 변하고 있다는 사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생각외로.

“슬슬 무게를 또 늘려야겠는데.”

그리 느린 속도도 아니었다.

근 10일간 들 수 있는 무게가 두 배가량 늘었다.

일시적으로 늘어난 근력과 순발력, 회복과 고통을 참는 인내까지

하나의 운명으로는 작은 변화이지만 여러 운명이 겹치자 결과가 만족스럽다.

“후욱, 후욱.”

손목 발목 각각 5kg 총 20kg 무게를 달고선 바닥에 엎드려 팔굽혀펴기한 후 일어나 다리를 깊이 굽힌 후 높이 뛰어올랐다.

몇 개만 해도 땀이 줄줄 날 고강도 훈련.

잠깐의 휴식 뒤에 아령을 하늘로 들어 올리며 어깨를 쥐어짠 뒤.

바로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당겼다.

처음엔 훨씬 적은 무게로도 한 세트도 어려웠던 루틴.

“후욱! 후욱! 후욱!”

지금은 스무 개씩 네 세트를 넘어 다섯 세트를 향해 가고 있었다.

막 다섯 세트를 끝마치기 직전.

“에라이!”

털퍼덕.

갑자기 울컥 솟아오르는 분노와 함께 들어 올리던 아령을 내팽개쳤다.

인내심이 다했다.

이놈의 운명은 때때로 이렇게 사소한 행동마저 간섭했다.

그래도 어제보다 나아졌으니.

[총 개변 수치: 155]

그걸로 족하다.

“거기 시원한 물 좀-!”

“여기 대령했사옵나이다.”

“어, 요즘 빠릿빠릿하니 좋아.”

물을 달라기도 전에 시원한 물을 준비해 놓은 게 흡족하여 칭찬하자.

막 물을 대령했던 시녀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길 잠시.

그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바닥에 철푸덕 엎드렸다.

그리고는.

“죄,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갑자기 몸을 바들바들 떨며 죄를 고했다.

왜?

“감히 말씀을 꺼내시기도 전에 주제넘었습니다. 목숨만은 목숨만은 제발!”

하!

너무 황당한 이유에 헛웃음으로 때우려니.

꺄아악! 허업! 수, 숙청이다, 모두 눈감고 귀 막고 숨어!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고용인 전체가 무슨 재앙이라도 일어난 듯 아우성을 쳤다.

뭔가 하나 죽여야 끝날 거 같은 분위기.

물에 뭘 탔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고.

그냥 빠릿빠릿하다는 칭찬이 두려웠던 건가?

기가 찰 노릇이다.

이 인간의 성미가 어땠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내 침묵에 완전히 겁을 먹은 시녀는 그저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채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되뇔 뿐이었다.

힐끔힐끔 창밖에 보이는 눈길들이 드디어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

작게 한숨을 삼킨 내가 그녀의 등이라도 두드리며 괜찮다 하려 할 때.

“안됩니다!”

어디서 가느다란 미성이 울리더니.

작다란 발걸음 소리가 오도도도 이어졌다.

이어 나타난 건 나와 같은 백금발에 자줏빛 눈동자를 가진 어린 여자아이.

이제 일곱쯤 되었을까.

아이가 고개를 조아린 시녀의 앞을 막아서고는.

“죽이면 안 되어요! 오라버니!”

단호히 양팔을 벌렸다.

그러나 온몸이 떨렸다.

오들오들을 넘어 와들와들 떨리는 눈동자가 펼친 손끝이 분명히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

분명 아무도 들이지 말라 했을 텐데.

“어머니도 오고 계셔요. 안 돼요!”

아이가 힐끔힐끔 어딘가를 간절히 살폈다.

온다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걸까.

어릴 적에는 이리 귀엽게 생겼구나.

문득, 폭군을 바라보던 표독스러운 눈길을 기억해냈다.

유리엘, 폭군의 동생이자 이제는 나의 동생이 된 아이.

분명 내가 알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폭군은 동생 앞에서만은 살육을 벌이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패악질을 보지 못하게 높은 탑에 동생을 가두었다.

“유리엘. 네 앞에서 누군가를 해친 적이 있더냐?”

“아, 아뇨. 하지만 다들 오라버니께서 생명을 쉬이 해친다고 했는걸요···.”

물음에 아이가 눈을 마주 보지도 못한 채 바들바들 떨었다.

그렇게 대치하길 잠시.

벌컥, 벌컥, 벌컥.

물을 시원하게 들이켜고는 시녀의 등판 위에 컵을 올려두곤 자리를 떠났다.

굳이 사족을 붙이진 않았다.

어차피 말해봤자 오해만 쌓일 듯싶었다.

태연히 자리에서 돌아서자.

“······.”

어딘가 슬픈 미소로 묵묵히 있는 어머니를 마주했다.

아들을 탓하지도 딸을 말리지도 않는다.

그저 동정과 슬픔을 담아 쳐다볼 뿐.

이를 마주하자 속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아올랐다.

왜일까?

놈은, 아니 나는 대체 어머니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걸까?

하나는 확실했다.

피가 보고 싶다.

허나.

“오시면 말을 하시죠. 왜 그리 보고만 계십니까.”

작은 인내력을 발휘하여 어머니 앞에 섰다.

질문에 고개를 저은 어머니가.

“유리엘이 황자를 보고 싶다 하길래 길 안내를 한 것뿐이니 괘념치 마세요.”

“···그렇군요.”

“갈 테니 식사가 끝나면 기별을 하세요. 데리러 오겠어요.”

익숙하다는 듯 자리를 피하려 했다.

황제의 삶에 대해 배웠어도 이런 디테일까지는 몰랐다.

식사까지 거부할 만큼 어머니를 증오했나?

쓸쓸하게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길 잠시.

“저기-.”

차마 어머니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대충 급한 대로 불렀다.

우뚝, 발걸음이 멈추었고.

운명이 하지 말라고 아우성치는 한 문장을 간신히 뱉었다.

“식사, 같이, 하심이 어떨지요.”

목울대가 떨리고 입술이 짓 씹혔다.

입꼬리와 눈가가 마치 못 할 짓을 한 마냥 떨려왔다.

그리고 곧 못들을 말을 들은 표정으로 어머니가 돌아섰다.

“네?”

“식사, 같이하자고 했습니다.”

처음이 어려웠지 두 번이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있길 잠깐.

“그래도 될까요?”

“들어오세요.”

퉁명스러운 허락에 무표정했던 얼굴에 아침 햇볕 같은 기쁨이 차올랐다.

“어마마마도 같이 드시는 건가요? 좋아요! 같이 먹어요!”

동생의 즐거운 목소리와 함께.

[중요 운명 패륜의 일부를 포식합니다! 새로운 운명이 태동합니다]

[개변 수치 30점 추가 획득!]

[중요 운명을 포식한 결과로 주변 인물의 운명 또한 움직입니다!]

[중요한 변화로 인해 운명 포식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집니다]

즐거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폭군의 삶을 알기에 가족과 어떤 관계가 되었는지 알기에 시도해보았고.

운명을 포식하여 작은 줄기를 바꾸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가족 간 어색하면서도 옅은 즐거움을 띈 식사가 11황자궁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

“다음에 또 와도 돼요? 어마마마와 함께요”

“······.”

동생의 당돌한 물음에 어머는 물끄러미 다른 곳을 보며 말리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야 둘은 만족스러운 듯 황자궁을 떠났다.

거북했으나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가짜 인생을 살며 가족을 가져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연무장으로 향하시렵니까?”

어찌 된 일인지 두려움 없이 은은한 미소를 지은 집사가 물어왔고.

“아니, 피곤하군. 방에 있을 거니까 찾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모두에게 그리 일러놓겠습니다.”

퉁명스럽게 답한 후 방으로 올라가려다 문득.

“이봐.”

“예 전하.”

“이름이 뭐지?”

“···알프레드입니다.”

“황자궁을 책임지는 집사 이름 정도는 알아두고자 물어봤다.”

“감사합니다.”

“근데 말이지. 왜 내 궁에는 기사가 하나도 안 보이는 건가?”

“보이면 죽여버리시겠다고···.”

“그만.”

“예.”

“허락된다면 기사들을 불러들여라. 많은 숫자 말고 적당히.”

“혹시 원하시는 기사단이 있으십니까?”

원하는 기사단이라.

원하는 기사단은 없어도 기사는 있다.

본인들은 모르겠지만 나중에 옥석이 또는 위협이 될만한 자들이.

“황궁 13 기사단 소속, 이왕이면 나이도 비슷하면 좋겠군. 같이 어울리기 좋겠어.”

“알겠습니다. 명령을 전하겠습니다.”

“좋아. 또 한 가지.”

“하명하소서.”

“···황가의 비고를 이용할 생각이니 허가를 받아두도록.”

“받들겠습니다.”

간단한 명령을 끝마친 후 방에 들어와 거울을 마주 보자.

[총 개변 수치: 200]

[개변 수치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였습니다. 운명 개변에 사용해야 합니다]

지금껏 쌓인 개변 수치를 확인.

쌓인 만큼 슬슬 써야 함을 실감했다.

이유는.

[운명 암살 시도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닥쳐오는 또 다른 운명 때문.

폭군이 평생에 걸쳐 시달렸던 운명이자 수많은 더미들을 잡아먹었던 운명.

역시나 비껴갈 리가 없지.

내가 지난 시간 동안 운동을 한 이유.

조금이라도 위험에 방비하기 위해 서기도 했지만 개변 수치를 모으기 위함이기도 했다.

가깝게 닥쳐올 운명에 대항하기 위해.

굵직한 암살 건들은 알아도 세세한 시도는 훨씬 많았을 터.

이를 이겨내려면 반드시 개변하고 포식해야 할 운명이 있다.

바로.

[개변 수치 200 전부를 투자합니다!]

[새로운 운명이 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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