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7화 (7/200)

건드리면 죽는다, 그게 누구든

일은 어어어 하는 사이에 진행되었다.

“밖에 자리 깔아라! 기사들 간의 싸움이다.”

미치광이 황자의 고함에 대기하던 하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순식간에 연무장에 자리를 설치.

커다란 차양막 아래 드넓은 소파가 놓였고.

황자가 자리에 느긋하게 앉아서는.

“자 누가 먼저야? 평민 고아. 네게 선택권을 주랴?”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대뜸 안드레에게 지목권을 넘겼다.

“황자 전하! 아무리 황자 전하라 하지만 황실 기사단을 상대로 이러한 처사는.”

“선배. 나오시오.”

기사 중 하나가 반론하기 전에 안드레가 먼저 그를 지목했다.

자신을 평민 고아 새끼라 모욕했던 상대.

여기서까지 참으면 병신이다.

안드레가 말을 끊자 그가 인상을 쓰며 분노를 쏟아냈다.

“기사로서의 명예도 없단 말이냐? 지금 우리를 그저 검 휘두르는 광대 정도로 보는 장난임에도 받아들이겠다고? 정신 차려라! 황실 기사의 명예를 더럽힐 셈이냐?”

그의 서슬 퍼런 분노에도 안드레는 오히려 차갑게 비웃었다.

“황실 기사의 명예를 운운하다니. 그럼 선배는 왜 내 명예를 더럽혔소?”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님을-.”

“중요하오. 기사의 명예만큼이나 내 일신의 명예도.”

안드레의 단호한 말에 선배라는 자가 입을 다물었다.

스르릉.

묵언을 허락으로 치부한 안드레가 앞으로 나서며 검을 뽑아 들었다.

“나오시오. 그만 떠들고.”

결국 선배라는 자도 검을 뽑고 나섰고.

둘이 대치하길 잠깐.

“시작하라.”

나의 개시 선언에 안드레가 먼저 검을 뻗었다.

검날에 반사된 빛이 시렸다.

선배라는 자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으나.

안드레의 빛살과 같은 검은 위력을 달리했다.

부딪히는 검날 사이 분노를 원동력 삼아 내달리는 평민 기사.

나와 지독한 악연으로 얽힌 자.

아니 원래 몸의 주인인 폭군이라 해야겠지.

“어째서! 어째서 나를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하는 것입니까! 충성을 다했습니다!”

전도유망했던 기사의 오른팔을 잘랐다.

“평민의 더러운 냄새가 싫다.”

평민 냄새가 난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다음번 황제와 그가 마주했을 땐.

“아직도 평민 냄새가 나는가?”

“죽여! 놈을 죽여라!”

어떤 노력을 했는지 몰라도 안드레는 외팔이 소드마스터가 되어 나타났다.

암살은 실패.

제국 황실 수배 전단지에 오른 그는 곳곳에서 제국을 상대로 암살과 테러 활동을 벌였고.

제국을 전복하려는 반란군과 접촉 간부가 된다.

하지만 몰랐을 거다.

“죽여버리겠다! 모두 죽여버릴 거야!”

반란군 내에서도 평민인 자신은 그저 버리는 패였음을.

그렇게 세상에서 버려진 안드레는 모두를 원망하며.

“거름으로 주어라. 평민의 꼴에 알맞은 최후다.”

폭군에게 갖은 모욕을 당한 끝에 죽었다.

죽어서도 독기어렸던 시선이 지금은 황제가 아닌 다른 이를 향하니.

기분이 좋다.

둘의 격전이 이어지길 꽤 오래.

“크윽!”

결국 안드레의 검에 선배라는 자의 검이 날아갔다.

그런데 그 검끝이 향한 곳은 내 정면.

“앗!”

“전하!”

“피하시-!”

방금까지 분노를 흩뿌리던 안드레마저도 놀란 표정.

모두가 다급했으나 나 홀로 태연했다.

산란하는 빛줄기 사이.

[물건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포식자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합니다]

휘돌며 날아오는 검날의 운명을 읽었다.

저 검은 날 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움직일 필요조차 없다.

방만한 자세와 권태 어린 표정으로 나를 향해 무엄하게 날아오는 검을 보고 있자니.

얼굴 바로 옆에 검이 꽂혔다.

부르르 떨리는 검신과 손잡이.

모두가 숨을 먹은 채 침묵했다.

황자를 위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죽을 수 있다.

“전하! 고의가 아니었사옵니다! 통촉하여 주소서!”

기사가 넙죽 엎드려 자비를 구하는 동안.

어느새 나타난 알프레드가 꽂힌 검을 뽑아 내 앞에 공손히 진상했다.

“전하. 피를 보아도 무방한 일이옵니다.”

“자네 또 목숨을 빚졌군. 이제냐 나타나다니.”

“···송구합니다.”

“그리 느려서 어찌 쓰겠어?”

“더욱 빨리 움직이겠나이다. 늦은 대신 좋아하실 소식을 가져왔사옵니다.”

“누구의 짓인지 찾았나? 우연은 준비가 되었고?”

“예. 마침 준비가 끝났습니다.”

“누구라던가?”

“가시는 자리 누구든 관련이 있사옵니다.”

“좋아. 마침 검도 있군.”

이미 누구의 짓인지 알고 있으나 명분이 필요했기에 기다렸다.

알프레드가 받쳐 든 고급스러운 검을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히이익! 송구합니다! 제발, 제발 목숨만은!”

기사가 더욱 바짝 몸을 깔며 이제는 거의 땅속으로 들어갈 기세로 용서를 구했다.

아까와는 다른 모습.

굴복하는 놈을 보자 흥이 식었다.

내가 장난스럽게 검 끝으로 어깨를 쿡 누르자.

“으아악! 전하! 전하! 제발! 제바아알!”

놈이 몸부림치며 자비를 구걸했다.

그러고 보니.

‘저 평민 놈은 대체 얼마나 독했던 거야?’

안드레는 검을 잡던 팔이 잘리는 와중에도 폭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한다.

자신은 잘못이 없다며.

내가 힐끗 옆을 보자.

“······.”

놈의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긴 눈이 나를 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인지 울컥 흥이 솟았다.

그 흥을 참지 못하곤.

“11 황자궁에선 강한 놈이 상관이다.”

“저, 전하?”

“그러니 평민, 네놈이 여기서는 이 모지리놈의 상관이다.”

눈동자에 경악의 빛이 번졌다.

즐겁다.

이런 격한 변화가.

이 순간만큼은 폭군의 광기에 몸을 맡겼다.

곧 피를 봐야 하기에.

내 말에 패배한 놈이 고개를 들려 하기에 어깨를 검 끝으로 꾸욱 눌렀고.

칼끝, 피가 배어 나오기 무섭게.

“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전하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놈이 승복.

“앞으로 부하 교육을 잘 시키도록 평민.”

내가 단언하며 휙 몸을 돌렸다.

손에는 여전히 느슨히 쥔 검.

“차량을 대기시켜 놓았나이다.”

“좋다.”

알프레드의 말에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기다가.

“뭐해?”

“네?”

“따라와. 검 쓰는 녀석이 필요하다.”

“네 알겠습니다!”

안드레를 힐끗 보며 부르자 그가 다급히 뒤에 붙었다.

오묘한 표정으로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우물거리는 게 심상치 않아.

“잠깐의 단상으로 허튼 말을 꺼내지 말라.”

“네?”

“네깟 게 감히 이러니저러니 내뱉지 말란 말이다.”

“알겠습니다!”

퉁명스러움으로 입을 막고는 차량에 올라탔다.

녀석이 옆에 타려 하길래.

“미친 건가? 평민?”

“네?”

“넌 뛰어와야지 어딜 평민이 황자 옆에 앉아?”

“그러면 지붕에라도 타면···.”

“이거 미친놈이네.”

“뛰어가겠습니다.”

인상을 구기고 나서야 안드레가 옆자리를 포기했다.

그가 힐끗 조수석을 바라보았으나 거긴 이미 알프레드의 차지.

바짝 붙어 따라오는 안드레를 바라보길 잠시.

독기가 충만한 놈이니 충분히 따라올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놈을 길들여야 한다.’

난 안일하게 안드레를 응원하거나 높이 올려줄 생각 따위 없었다.

확실치는 않으나 놈의 운명엔 분명 반역 따위가 있을 거다.

아까 이 악물고 검 휘두르는 모습을 보았지 않은가.

가능하면 기를 죽여 길들이던가, 아니면 질린 놈이 제 발로 나가게 만들어야 한다.

뒤에서 따라오는 놈의 독기 어린 눈빛을 보라.

놈보다 더욱 미친놈이라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

마침 무대도 마련되었고.

[개변 수치 1600점 전부를 미약한 행운에 투자합니다!]

[하위 운명 미약한 행운이 크게 성장합니다! 속성 필요한 때 작은 행운이 추가되었습니다!]

준비도 얼추 마쳤다.

이제부터는 내 운명에 달렸다.

“도착했나이다.”

알프레드의 목소리에.

“지켜보고 있으라.”

검을 쥔 채 당당히 내렸다.

피를 볼 시간이다.

**

강철성이라는 이름답게 전체가 진회색으로 가득했으나.

몇몇 곳은 이질적인 화려함으로 자태를 뽐냈다.

대표적으로는 황제의 후궁들이 머무는 황비궁.

외에는 황녀들의 궁전과 푸른 보석 호수 사파이어 등.

그 중 유일하게 사시사철 봄이 머무른다는 정령의 화원.

이리저리 흩날리는 정령의 숨결 속에서.

“어제 와인을 마셨다지?”

하나의 고귀한 여인과 그녀를 따르는 많은 이들이 밝게 웃었다.

회색빛 머리카락 아래에서 빛나는 검푸른 눈동자.

찻잔들 들어 올리는 손끝, 살포시 치켜올린 새끼손가락마저 귀태가 흐른다.

그녀의 물음에.

“예, 아마 지금쯤이면 열병을 앓고 있을 겁니다.”

“추해졌겠군.”

“추하디추해졌겠지요.”

다시 한번 모두의 비웃음이 퍼져나갔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풍경과는 다르게 남의 고통을 즐기는 비릿한 대화가 오가길 잠깐.

“아직 죽이지는 마. 더 가지고 놀아야 하니.”

“예. 세린느 황녀님의 즐거움을 위해.”

7 황녀 세린느의 심복들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남의 고통을 즐기는 평화로운 오후.

분명 그랬어야 할 터.

그런데 그런 비열한 평화를 깨뜨리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암살을 시도한 반역도를 잡아라!”

반역도란 목소리에 모두가 일제히 웅성거리며 황녀를 둘러쌌고.

“어딜 감히!”

다들 주변을 경계하다 문득.

정원 한복판.

백금발을 갈기처럼 휘날리며 훤칠한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이를 발견했다.

“아르한 황자?”

“뭐? 누가 나타났다고?”

바로 11황자.

설렁설렁 걸어오는 자태가 치명적이다.

산책이라도 나온 듯한 모습.

그러나 결코 안심해서는 안 된다.

광기 어린 눈과 손에 느슨하게 쥔 검은 위험 신호.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 태평스럽게 어깨를 당기더니, 그대로 검을 모인 이들을 향해 내던졌다.

“흐읍!”

검을 맞이한 심복 하나가 이를 튕겨내고서는 분노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자.

어느새 황자의 구두 굽이 눈앞에 가득했다.

날아 차며 달려든 황자가 그대로 7황녀의 시종 중 하나를 패기 시작했다.

발로 밟고 주먹으로 때린다.

갑작스런 상황에 모두 멍한 눈으로 바라보길 잠시.

“뭐해! 말리지 않고!”

7 황녀의 명에 덤벼들려다가.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죽는다!”

11황자의 으르렁거리는 외침에 잠시 주춤했다.

“말려!”

“말리지 마!”

“너 이 미친놈 뭐 하는 짓이니!”

“뭐 하는 짓? 뭐 하는 짓이냐고 물었어?”

세린느의 고함에 11황자 아르한이 얼굴에 튄 피를 닦아내며 벌겋게 웃었다.

“이 개버러지 같은 놈이 감히 황손 암살을 시도했다. 어찌 살려두겠는가.”

“증거가 있어? 증거도 없이 남의 시종을 망가뜨리게 되어있니?”

“죄를 말했더니 증거를 논한다? 너도 한패인가?”

황자의 눈에 번지는 광기를 마주한 황녀가 찻잔을 꾹 움켜쥐었다.

그 침묵에 황자가 거센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갑자기 침묵했다.

그리고 다시 웃었다.

그러다 멈추었다.

격한 널뛰기에 주변 모두가 압도당했는지 말을 꺼내지 못했다.

“독이 든 와인을 마셨고 이겨냈다. 그리고 밤에는 침소에 불이 났지.”

“뭐? 불?”

“그래, 그 무엇도 내 몸을 침범하지 못했으나 분노는 감당해야겠지.”

“웃기는 소리! 우리는 아무 짓 하지 않았어!”

“아무 짓? 그럼 어제 시종들의 증언은 무엇이지?”

“너희 시종들을 어떻게 믿고!”

“그럼 나는 너의 무엇을 믿고?”

“너 진짜!”

그녀가 막 화를 내려 하자.

“아직 싸울 때가 오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알아야지. 성인식을 치르기 전엔 난 널 공격 못 하고 넌 날 공격 못 하니. 안 그랬으면 여기 깔린 건 너였어.”

“웃기는 소리! 내가 너보다 강해!”

“그래? 황가의 규칙을 어겨서라도 한바탕 해볼까? 세린느 일곱째 황녀.”

황자의 달뜬 물음이 황녀의 분노를 차갑게 식혀버렸다.

아이로니아 황가의 규칙 중 하나.

성인식을 치르지 않은 황손들은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누지 못한다.

걸리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못된 장난질은 예외,

세린느가 꺾인 기세로나마 무언가를 더 말하려 했으나.

주변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저 미친 황자는 지금 확신이 있기에 이런 행동하는 거다.

광기 아래 깔린 명확한 이성을 보았다.

만일 정말 제국 정보부가 나서 진실을 규명한다 해도 오히려 황녀만 곤란해질 뿐.

진실이니까.

걸린 장난질의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차라리 시종 하나면 싸게 먹히는 셈.

물론 대상이 자신들이 아니니 할 수 있는 계산이었다.

“검을 내놔라.”

황자의 서슬 퍼런 명에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때.

“대령했나이다.”

막 도착한 안드레가 자신의 검을 공손히 진상했고.

황자가 만족스럽다는 듯 검을 건네받았다.

발아래에는 이미 피범벅이 되어 숨만 내쉬는 세린느의 시종.

아르한이 막 놈의 목에 검을 박아넣으려 할 때.

“잠깐! 보답할게! 살려주는 대가로 보답할 테니 죽이지 마!”

세린느 7 황녀가 다급히 제안했고.

쿡.

목을 파고들던 검이 우뚝 멈추었다.

“뭘 원해? 돈? 영지? 기사? 뭐든! 뭐든 줄 테니까.”

7 황녀의 이어진 말에.

“보답? 보답 같은 개소리를. 내가 원하는 건 이놈의 목숨. 감히 날 죽이려 한 발칙한 놈의 목숨. 그뿐이다. 어떤 것으로도 타협할 수 없어.”

아르한이 선연히 미소지으며 천천히 검을 목에 꽂아 넣었다.

파들파들 떨던 시종이 축 늘어지며 죽었고.

분수처럼 튀어 오르는 피 사이.

피보다 더욱 진한 눈동자가 황녀를 비롯한 모두를 휩쓸었다.

“명심해라. 누구든지 허튼 수작으로 날 건드리면 죽는다.”

선고와도 같은 발언.

세린느가 핏발 선 눈으로 황자를 노려보다가.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세린느. 못된 장난 계속해 봐. 그때마다 나타나 주변 놈들을 하나씩 죽여줄 테니.”

자신을 향하는 거대한 광기를 마주하고는 눈을 돌렸다.

끝이었다.

하나의 시체만을 남긴 황자는 그대로 몸을 돌려 태평스럽게 걸었다.

그를 보며 안드레는 생각했다.

얼굴과 옷에 튄 피마저 그림 폭과 같이 어우러진다고.

알 수 없는,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전율했다.

“받아라. 피는 충분히 보았다.”

안드레에게 검을 넘긴 황자가 차량에 올라타 출발한 직후.

다른 차량이 이어 멈춰선 뒤.

한 여인이 내려섰다.

피에 취한 황자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그녀는 얼핏 황자를 보았다.

서로가 엇갈린 길.

[하위 운명 광기, 패악, 잔혹함으로 다른 하위 운명 암살 위기를 포식하였습니다]

[필요한 때 작은 행운으로 상대의 운명이 틀어집니다. 해당 인물로부터 다가올 암살 위기 운명이 대폭 감소합니다]

[운명 변화로 인해 개변 점수를 대량 획득합니다!]

[당신의 운명에 휩쓸린 인물들의 행동이 뒤틀립니다!]

[직접 마주한 운명을 깨부쉈습니다. 운명을 읽는 눈이 더 청명해졌습니다. 좁은 장소의 운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본디 마주칠 인물과 엇갈렸습니다]

나 또한 그제야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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