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9화 (9/200)

황자는 사냥을 준비한다

강철성의 중심은 황제궁.

황제궁을 중심으로 강철성의 모든 구조물과 길목은.

쿠르르릉.

매일매일 변화를 반복했다.

암살과 반란의 위협을 낮추기 위해 황제의 거처를 옮기는 것이 아닌 궁 전체를 움직인다.

참으로 자기중심적이면서도 지극히 황제다운 일.

누구도 의심치 않는다.

누구도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

제국에선 당연한 일이었기에.

평소 11황자궁도 매일 위치가 바뀌었다.

황자궁의 풍경은 그대로이나 주변 길목도, 건물도 매일 다르다.

허나 지금 일어난 변화는 평소와는 다른 좀 특별한 것이었다.

“전하! 전하!”

아니나 다를까.

이상함을 감지한 알프레드가 가장 먼저 나를 찾았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들어가겠나이다.”

“아침부터 소란이구나.”

나는 태평스럽게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거울을 보다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멋지군.”

폭군의 면상은 어딘가 퇴폐적이면서도 음울한 아름다움을 뽐냈다.

최근 훈련으로 체격도 탄탄하게 잡혀서일까.

유독 몸 선이 시원해 보였다.

덩달아 늘어난 체력 덕에 밤새 수련을 했음에도 오히려 표정이 맑았다.

또는 가슴 속 꿈틀대는 불덩어리 때문일지도.

“도와줘 봐. 보고 있지만 말고. 자네들이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인가?”

“송구합니다.”

말이 있고서야 멍하니 나를 보던 시녀들이 다급히 매무새 정리를 도와주었다.

힐끔힐끔 보는 얼굴에 홍조가 피어났다.

“나가지. 고용인들도 모두 대기시켜.”

“시켜놓았습니다. 가시지요.”

알프레드의 안내에 만족스럽게 황자궁 밖으로 나가자 담장 넘어.

우우우우.

음울한 소리를 내뿜는 숲의 전경이 설핏 보였다.

황제가 머무는 성에 있어선 안 될 것처럼 불길하고 위험해 보이는 숲.

“저, 저거 그림자 숲 아냐?”

“맞는 거 같은데. 왜 그림자 숲이 황자궁 앞에?”

“으으 보기만 해도 불길한데요.”

검은 그림자가 꽃가루처럼 끝없이 번져 나오는 모습에 고용인들이 몸을 떨었다.

영림(影林).

강철성에 존재하는 여러 신비로운 장소 중 하나로.

대부분은 협곡과 더불어 영림을 불길하고 무서운 장소로 여겼다.

실제로도 그런 장소이고.

어둠에 휩싸인 숲에선 그림자가 물처럼 흐른다.

빛 한 점 없는 빽빽한 나무들 사이, 흐르는 그림자를 먹고 자란 나무들과 마수들.

그리고 불길한 그림자에 오염된 원혼들이 하얀 가면을 쓴 귀신이 되어 떠돌아다니는 곳.

왜 이런 불길한 숲이 강철성에 있는지는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복잡한 원한들을 풀어내야 하기에 생략.

내가 불안에 떠는 고용인들을 지나쳐 황자궁의 정문으로 향하려니.

역시나.

“아르한, 열한 번째 황자는 나와 황제 폐하의 성지를 받으라!”

성지(聖旨), 황제의 뜻이자 말.

담장 너머 우렁찬 목소리가 새로운 운명의 도착을 알렸다.

“아르한, 열한 번째 황자는 어서 나와 황제 폐하의 성지를 받으라!”

황자궁을 압박하듯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다시금 담벼락을 넘었고.

당당히 황자궁의 정문을 지나려던 자들이 나를 발견하곤 우뚝 멈추어 섰다.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던 모양.

곧 신색을 다듬은 책임자가 나를 향하여 위엄 있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르한 열한 번째 왕자. 앞으로 나와 폐하의 성지를 받들라.”

성지를 운반하는 동안 이들은 황제의 입이자 뜻, 유일하게 황손을 깔아볼 수 있는 시간.

모든 고용인이 바짝 엎드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무릎을 꿇자.

만족스럽게 입가를 씰룩인 책임자가 펄럭 성지를 힘차게 펼쳐 읽기 시작했다.

“근래 황자 아르한의 심신이 변하였다 소식이 들리는바. 짐의 마음이 흡족하여 애틋한 뜻을 담아 상을 내리려 하니 받으라. 성인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직접 개벽한 모습을 증명할 기회를 주리니-.”

구구절절 이어지는 황제의 말을 축약하면 간단했다.

너 좀 변했다며? 기회를 줄 터이니 한번 까불어 봐라.

얼핏 보기엔 지금껏 쌓인 악명을 뒤집을 기회.

안 그래도 패악질이 심해 모든 활동이 막혔으니까.

그러나 실상을 보면.

“그리하여 열흘의 시간을 주니. 황자는 영림에 들어가 자기 그릇에 맞는 마물의 머리를 취하여 나오라.”

기사단과 마법 전투단이 훈련하는 영림에 들어가 직접, 손수 마물과 싸우라는 건 벌이나 마찬가지.

심지어 어떤 마물을 잡으라는 말도 또는 어떤 지원을 해주겠다는 말도 없었다.

상을 빙자한, 기회를 빙자한 위기.

물론 지금 황제의 말을 전하는 이들도 이를 들은 이들도 모두 깨달은 사실.

욕심을 부리면 죽을 것이고 겁을 먹으면 비웃음을 당하리라.

나의 반응을 기다리는 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떤 추태를 보여줄까 하는 저열한 기대감.

그러나.

“폐하의 뜻을 받들겠나이다.”

나의 얼굴은 너무나 담담하다 못해 약간의 미소까지 번져있었다.

그렇게 성지를 받아든 후.

“뭐해. 일 끝났으면 꺼져.”

그들을 향해 눈을 부라리곤 황자궁의 대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았다.

성지를 전한 이상 놈들의 위세도 끝났다.

“전하. 영림이라니요?”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안드레와 다른 기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챙기며 와글와글 준비를 떠들어 댈 때.

“알프레드.”

“···네 전하.”

“오늘 중으로 들어갈 것이니 채비하라.”

홀로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알프레드가 화들짝 놀라며 기사들과 함께 주변에 바짝 붙어 따라왔다.

“영림을 당장 들어가시겠다니요. 준비가 필요합니다.”

“청익 기사단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러니 전하 고정하소서.”

“이 안드레! 목숨을 바쳐 전하를 보필하겠나이다!”

“안드레 기사! 지금 말려야 할 때임을 구분 못 하시오?”

“준비는 시종장이 싸움은 내가 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그들의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우뚝 멈춰 서서는.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절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방금까지 걱정하던 기사들과 알프레드를 비롯, 주변에 선 고용인들 모두가 숨을 죽이며 광소가 잦아들길 기다렸다.

그렇게 배를 부여잡고 얼마나 웃었을까.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유리창에 비친 자줏빛 눈동자가 광망을 토해냈다.

누가 이런 장난을 쳤는지는 분명했다.

황후.

그 빌어먹을 여자 말곤 이런 짓을 벌일 자가 없다.

알프레드 또한 이를 알고선 그런 씁쓸한 표정을 지었겠지.

달콤해 보이는 보상 속, 교묘한 함정으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게 특기인 작자이니.

“알프레드. 내가 말하는 것들을 오늘 내로 준비해라. 오늘 저녁 영림으로 들어갈 것이다.”

알프레드와 다른 기사들이 반박할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발광석 최소 스무 개 이상 품질은 개의치 말고 개수에 신경 써라, 백광 망토와 그림자 주머니, 비박을 할 수 있는 간단한 용품들···.”

이어지는 명령에 알프레드를 비롯한 기사들의 눈이 점점 휘둥그레졌다.

마치 영림을 자주 들어가 본 것 같은 능숙한 준비.

개중에는 그들도 사용처가 짐작 가지 않는 물건들도 있으니.

- 필요한 물건들은 황실 비고에 요청하도록 하며

- 같이 들어갈 자는 셋으로 제한한다. 자격엔 제한이 없다.

전언에 적혀있는 조건 중 마지막을 읽고는 씨익 미소지었다.

황후는 몰랐으리라.

내가 전생에 영림을 수십 번 들락날락한 적이 있으며.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알고 있고.

누가 필요한지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황실 마법 전투단, 그중 3번대에 속해있는 솔. 그자를 불러오라. 차출이다. 나머지 하나는 안드레가 따라오도록.”

“마지막 한 명은 어찌하시렵니까.”

“굳이 채울 필요 없다. 군더더기다.”

“따라가겠습니다.”

“알프레드와 다른 기사들은 해줄 일이 있다.”

****

황자가 자신을 불렀다는 소리에.

“그러니까 절 차출하셨다고요? 영림 사냥에?”

황실 마법 전투단 3번대 대원 솔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자리에서 들썩거리며 싱글벙글 웃었다.

하필 솔을 부른 황자의 정신 상태가 오락가락한다고 해도.

오히려 그래서 기회가 아닐까.

비죽비죽 솟은 적갈색 머리카락을 내리누르며 기대감을 표현했다.

커다란 눈망울이 유독 반짝거렸다.

“예? 예? 선배. 제가 혹시라도 위기가 왔을 때. 파파팍! 황자 전하를 구하면 그, 그 영웅이 되는 거죠? 그럼 엄청난 전공을 세운 대가로 엄청난 무언가를 받지 않을까요? 네? 네에?”

그녀가 방방 뛰어오르는 마음을 그대로 입으로 떠들어대었으나.

솔을 보는 전투 마법사 선배들은 그저.

“솔. 죽지나 마라.”

“넌 그냥 가서 가로등 역할이나 하는 거다.”

“그러니까 토템이지 토템.”

“여기서처럼. 그러니 떠들지도 들뜨지도 마.”

조소 섞인 우려를 보냈을 뿐.

“치, 나중에 보세요. 엄청난 전공을 세워 올 테니까요!”

솔이 조그마한 입술을 삐죽거리며 선배들의 뒷모습을 흘겼다.

언젠가 저 잘난 척하는 선배들의 콧대를 눌러주리라.

그렇게 자신만만하며 나섰건만.

“청익 기사단 소속 안드레입니다.”

“저어는 마법 전투단 3번대 대원 솔이라고 해요.”

“전투 마법사이십니까? 계열이 무엇인지요? 화염?”

“···어, 얼추 비슷한 거죠. 화염 비스무리한 거.”

“비스무리? 전투 계열이 아닙니까?”

“끄응, 그러니까 전투 계열 비스무리한 보조? 화염 비스무리한 빛 속성? 그런 거죠.”

“전투 계열이고 싶은 보조 계열이시군요.”

“윽. 굳이 꼬집을 필요가 있을까요.”

“저도 평민에 기사단 막내입니다.”

“아- 고생 많으시겠어요. 같이 힘내봐요 우리!”

황자궁 입구, 거대한 등짐을 멘 안드레와 대화하며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때.

“힘내는 건 내가 할 일이다. 너희들이 아니라.”

황자궁 문이 열리며 새까만 전투복을 차려입은 황자가 등장했다.

검은 전투복과 대비되어 더욱 빛나는 화려한 백금발 아래 열기가 일렁이는 눈동자가 솔을 향했고.

“전하! 마법 전투단 솔 부름에 응하였-.”

“써클과 주 속성은?”

“현재 3써클이며 광 속성으로 주력은 보조이나 전투에도 충분한 도움을-.”

“많이 부족하군. 여러모로 부족하다.”

“네?”

“네 맡은 임무는 가로등이다. 따라오도록.”

“가로등 말씀이신가요? 아무리 봐도 사람인데요?”

“발광석 받침대 정도로 이해하면 될 거다. 불만인가 술?”

“아, 아닙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솔-.”

“평민, 설에게 짐을 나눠줘라.”

“예. 전하.”

“아, 아닛 제 이름은 설이 아니라 술. 아니 솔입니다.”

“뒤처지면 버린다. 그림자로 남고 싶으면 그리하던가.”

황자는 종알거리는 솔을 신경도 쓰지 않으며 태평스럽게 영림 안으로 사라졌고.

이어서 안드레가 담담히 따라 들어가고 나서야 솔이 버둥거리며 따라붙었다.

그들을 삼킨 영림이 즐겁다는 듯 그림자를 흔들었다.

“황후께 보고드리도록. 황자 아르한이 영림에 들어갔다고.”

“예상은 어찌 보고드릴까요?”

“감히 대실패를 예상한다 보고드리도록.”

“알겠습니다.”

황후궁 내시들이 유독 하얀 얼굴로 이를 확인하곤 스르륵 모습을 감추었다.

설핏 이를 지켜보던 알프레드 또한 모습을 감추었다.

곧 황성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열한 번째 황자 아르한이 영림에 들어갔다.

진입 시간은 저녁.

제대로 된 준비조차 하지 않고.

모두가 자살에 가까운 행위라며 그 미친 황자가 곧 울며불며 도망쳐 나올 것이라며 그를 비웃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영림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장례를 준비해야 한다는 불길한 소문이 강철성에 떠돌았다.

****

첫날, 영림에 들어선 지 몇 시간 동안.

“전하 여긴 너무 어둡지 않겠습니까?”

“술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어둠이냐?”

“가능합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솔-.”

“여긴 아니다.”

자리를 찾아 헤맸다.

안드레와 솔은 황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영림, 그림자 숲에선 가장 덜 어두운 장소를 찾기 마련.

그러나 황자는 가장 어두운 곳만을 찾아다녔다.

영림엔 그림자가 고이고 흐른다.

그중에서도 유독 짙은 어둠이 몰려드는 장소들이 있다.

“···어둡군. 감당 가능한가?”

“어렵습니다.”

“너무 깊다. 조금 밖에서 찾아보자.”

황자는 영림의 일정 구역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은 채 바깥쪽 가장 어두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나흘간 자리에 머물렀다.

백광 망토와 발광석을 둘러 그림자를 막는 자신들과 달리 맨몸으로 앉아 마치 기사들이 마나를 빨아들이는 연공을 하듯 자리에서 하염없이 숨만 쉬었다.

그러다 밥때가 되면 밥을 먹고 다시 앉아 눈을 감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점이라면.

“누가 했지? 맛이 좋은데?”

“평민 안드레. 제가 만들었습니다! 전하를 위한 특별식입니다!”

안드레의 요리 솜씨가 좋았다.

솔은 마음이 다급했다.

안 그래도 보조 마법사에 능력도 성장이 느려 마음이 급한 상태.

황자의 눈에 띄어야 한다.

그래서 다람쥐처럼 숲을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걸 주워왔다.

“영지버섯이군. 그림자 속에서 캐온 건가? 직접?”

“넵! 이 솔이, 영림에서 자라는 영지버섯을 찾을 줄 아옵니다! 빛을 강하게 쬐면 모습을 드러내거든요. 영지버섯은 강한 그림자 내성을 품고 있나이다. 드시옵소서.”

“더 캐라. 잔뜩 캐와. 그리고 네가 찾을 수 있는 영림에서 먹을 것들을 모두 캐와라.”

“알겠나이다!”

“저도 돕겠습니다.”

“흡족하다.”

황자의 하루 루틴에 한 가지가 추가되었다.

안드레와 솔이 구해온 영림의 식물을 생으로 먹는 것.

앉아 심호흡하고 깨어선 검게 물든 버섯과 각종 열매를 먹는다.

“그냥 열흘 동안 버티시려는 작정이실까요? 전하께서는.”

솔이 이리 의심할 만했다.

듣기로는 광인이라 들었는데 위험 앞에선 한없이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타입일까.

이미 닷새째 저녁.

오늘은 유독 그림자가 짙은 날 움직이진 않겠지.

“무언가 뜻이 있으실 겁니다.”

그러나 안드레의 생각은 달랐다.

발광석을 쥔 그가 눈을 번뜩이며 자신의 주군을 바라보았다.

왜인지 오늘 움직일 듯한 직감이 왔다.

단순히 안위를 위해 이곳에 있을 분이 아니다.

때를 기다릴 뿐.

왜냐면 자신이 아는 황자는.

“생각보다 더욱 미친 분이시거든요.”

“···좋은 뜻인가요?”

“저에게는.”

무엄하면서도 충심 넘치는 말에 솔이 갸웃거리길 잠시.

번쩍 황자가 눈을 떴고.

“히이익. 저는, 저는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전하!”

솔이 기겁하며 손사래 치는 동안.

“가자 옮길 때다.”

황자가 때가 되었다는 듯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 그렇지, 안드레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재빨리 따라붙었다.

더 깊은 숲속으로.

**

[하위 운명 처참한 패배, 불운을 포식하였습니다. 개변 점수를 획득합니다]

[하위 운명 행운이 발동하여 예비 된 적들을 모두 피했습니다]

[새로운 운명 불이 조금 더 뜨거워집니다]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흡족했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나 스스로를 벼리는 중이었다.

[장소의 운명을 파악합니다. 당신에게 위해가 되지 못합니다]

여긴 아니다.

[장소의 운명을 파악합니다. 당신에게 적절한 위기를 제공할 것입니다]

좀 더 깊은 숲, 어둠이 시내처럼 흐르는 자리.

이번엔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꿀꺽꿀꺽.

호흡을 당겨 어둠을 삼켰다.

삼킨 어둠을 가슴 속, 고리를 이룬 불 위에 뿌려주자.

표독스럽게 어둠을 살라 먹으며 더욱 진하게 타올랐다.

불에 담긴 기록이 알려준 대로.

시기를 당기기 위해 그림자를 함빡 머금은 음식들도 섭취했다.

곧 임계점에 다다르면 발화하겠지.

사냥의 때는 바로 그때다.

동시에.

[하위 운명 불이 더욱 뜨거워집니다]

[하위 운명 처참한 패배, 조소, 무시를 포식합니다. 개변 점수를 획득합니다]

[개변 점수 전체를 행운에 투자합니다. 행운의 크기가 커집니다. 행운 발동으로 위험한 생물이 곁을 스쳐 지나갑니다]

[죽을 운명을 뒤틀었습니다. 개변 점수를 대량 획득했습니다!]

나는 끝없이 나의 운명을 바꾸어 나갔다.

이 죽음과 어둠이 가득한 땅에서.

그러면서.

“술.”

“네 황자님. 솔 대령했나이다.”

“그림자를 보고 느껴지는 것 없나?”

“음, 어둠의 다크니스한 불길함이-.”

“그래서 이름을 제대로 안 부르는 거다.”

“네?”

“더욱 깊이 보라. 네가 다루는 빛과 여기 고여있는 어둠은 무엇이 다른지.”

나를 죽음의 위기에서 몇 번이고 구해주었던 최상위 전투 마법사가 될, 그림자 마녀 솔의 운명을 건드렸다.

그렇게 아흐레가 지났고.

[하위 운명 불의 온도가 임계점을 넘었습니다!]

[신비 염화심결 첫 번째 심장 적염이 맥동합니다!]

그림자를 연료 삼아 차근히 쌓아온 온도가 한계를 넘어서자.

화르르륵! 심장에 형성된 고리로부터 거대한 불이 발화했다.

뜨거운 운명이 몸속을 휘젓다 못해 밖으로 흘러나왔고.

선명한 적염(赤炎)이 시야 가득 휘몰아쳤다.

사냥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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