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10화 (10/200)

황자는 타오르는 불꽃이 되었다

신비와 신화가 가득했던 태고 시절.

대륙 가득했던 괴물들과 악마들을 상대하여 싸웠던 수많은 영웅이 있었다.

그들은 거인의 목을 베어내고 악마의 뿔을 부러뜨렸으며 군단을 홀로 쓸어냈다.

그리고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과 또는 동료들과 함께 집단을 이루었다.

집단의 힘은 초기에 많은 인류를 구원해냈다.

용병단, 기사단, 길드 등은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적을 상대로 훌륭히 싸워내었고.

점점 크기를 불려 나가 국가를 이루었다.

다음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울타리가 생기자 구분이 생겨났고 나라의 확장과 국가의 번영이라는 미명 아래 전쟁이 끝없었다.

피는 강을 이루었고 시체는 산을 쌓았다.

악마들이 도망간 자리를 인간이 채웠다.

황당했으리라, 자신들을 몰아낸 인간들이 더욱 잔혹하게 같은 인간을 핍박하는 모습이.

기꺼웠으리라,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우둔한 집단과 눈이 멀어버린 영웅들의 꼴이.

그때.

최초의 황제, 강철염제 카이론.

그가 등장했다.

온몸에 형형색색 불을 두르고 바람과 땅을 움직이며.

그가 새운 나라, 강철왕국 아이로니아가 순식간에 다른 나라들을 병합했다.

강철과 같은 단단함으로 세력을 확장한 아이로니아는.

이윽고 제국으로 불렸다.

그렇게 전국시대가 저물고 제국력이 시작되었다.

이젠 그마저도 전설로 남은 시대.

강철은 남았으나 불꽃은 사라진 지금.

화르르르륵!

어느 미친 황자의 심장 속에서 인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힘이 뿜어져 나왔다.

[하위 운명 불의 온도가 임계점을 넘었습니다!]

불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첫 번째 심장 적염은 홀로 타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마법사의 써클, 기사의 단전 사이에 있는 듯한 이 힘은.

‘어둠을 먹고 자란다.’

어둠을 삼키면 삼킬수록 더욱 거대하고 선명하게 타오른다.

처음 고리를 심장에 형성하고 계속하여 이를 움직이는 방법을 습득했다.

불에 기록된 기억이 의념을 보조했고 보잘것없는 재능으로 성공했다.

다음으로 필요했던 것은 바로 어둠.

불을 키울 연료.

나 또한 영림의 존재를 알았기에 접근할 기회만 노렸는데.

황후는 열흘이라는 기회를 주었다.

위기가 기회가 된 셈.

장소의 운명을 보아 위험하면서도 죽지는 않을 곳을 선정.

내가 운명을 잡아먹는 동안 불은 어둠을 잡아먹었다.

임계점을 넘은 불이 온몸을 내달림과 동시에.

“모두 일어서!”

때가 이르렀음에 솔과 안드레를 불렀고.

“따라와라!”

당장 더욱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방금까진 어둠이 작은 시내를 이루어 흘렀다면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발목에 찰박찰박 그림자가 감겨왔다.

“저, 전하! 같이 가요!”

“솔 빛을 띄워! 어둠을 몰아내며 달리자!”

안드레와 솔이 다급히 나의 뒤를 따라붙는 동안.

[장소의 운명을 파악합니다. 당신에게 위험이 되지 못합니다]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장소의 운명을 확인했다.

숲 전체의 운명은 몰라도 당장 내 주변의 운명은 보였다.

여긴 아니다.

그래도 영림에 적응을 했는지 잘 따라붙는 안드레와 솔을 확인하곤 다시 움직이기 시작.

마음은 급했으나 몸은 품위를 잃지 않았다.

숲을 빙 돌던 와중.

[장소의 운명을 파악합니다. 죽음의 위기가 도사랍니다]

[장소의 운명에 존재하는 악한 그림자와 대적해야 합니다]

마땅한 장소를 찾고서야 멈추어 섰다.

“헉, 헉! 전하! 여긴 너무 깊습니다.”

“으으, 그림자가 자꾸 발목에 달라붙어요.”

내가 주변 지형지물을 확인하는 사이 안드레와 솔이 도착했다.

솔이 빛으로 길을 뚫고 안드레가 인도한 모양.

발목에 달라붙은 진득한 그림자에 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어하는 와중에도 내 몸엔 땀 한 방울 없었다.

“좀 더운데요?”

“그러게 뭐지 이 열기는?”

땀마저 증발시킬 정도의 열기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중.

발밑 흐르는 그림자가 끝없이 빨려 들어왔기에 방해 없이 움직였다.

지형 파악을 끝낸 후.

“평민 주변 나무를 모두 베어내라. 설 모든 발광석을 발동시켜.”

“하지만 모든 발광석을 소모하면-. 앗, 잠깐만요. 안드레!”

“명을 받듭니다!”

걱정을 표하려던 솔이 안드레에게 이끌려 간 뒤.

나는 알프레드가 마련해 준 가방 안에 담긴 물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새까만, 마치 그림자를 직조하여 만든 것 같은 주머니.

황궁 비고에 담긴 특수한 아티팩트.

이를 마구 바닥에 깔자.

울렁울렁.

주머니들이 고인 그림자를 마구 빨아들이며 주변에 흐르는 어둠의 밀도를 낮추었다.

더불어 새로운 백광 망토 위에 발광석을 잘게 부숴 뿌리는 사이.

“전하! 주변 나무들을 베었나이다.”

“일단 발광석 준비 끝났사옵니다!”

안드레가 주변 나무들을 정리.

솔 주위에는 스무 개 넘는 발광석이 밝은 빛을 뿜어내며 떠다녔다.

“공터에 네가 펼칠 수 있는 결계 중 가장 강력한 것으로 펼쳐라.”

“넵!”

이젠 의문을 거두기로 한 건지 솔이 명을 받들어 마법을 발동.

휘돌던 발광석이 이리저리 배치되었고.

“라이트 실드.”

3써클 광 속성 방어 마법이 공터를 메웠다.

발광석에 내재한 광 마법을 매개로 하여 실드를 강화.

발광석의 빛무리와 솔의 마나가 공명하며 자잘한 빛 가루를 뿌렸다.

일순간 그들이 선 공터 주변에 밤하늘을 당겨온 듯했다.

**

순간 상황도 잊고선 둘이 감탄을 토했다.

“우와. 이런 마법이라니.”

“저, 황자님 따라오길 잘했나 봐요.”

솔 또한 이렇게 많은 발광석으로 마법을 강화해본 적은 처음.

그때.

“뒤로 물러나라.”

잔뜩 억눌린 황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깊은 곳, 무언가 꿈틀거리는 듯한 음성.

안드레와 솔이 급히 뒤로 물러난 후.

“바닥에 떨어진 망토를 머리 끝까지 덮어쓰고 절대, 절대 밖으로 몸을 드러내지 말라.”

황자가 유독 하얀 빛이 선명한 백광 망토를 던져주며 알 수 없는 명령을 내렸다.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었으나.

“명을 받듭니다.”

솔이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안드레가 행동에 착수했다.

솔이 볼을 부풀리며 소심한 불만을 표할 때.

콰앙!

자신이 친 결계가 크게 울렸다.

솔이 파드득 놀라며 다급히 망토로 몸을 감싼 후에도.

실드 바깥에 도사린 무언가가 끝없이 빛을 파고들려 했다.

힐끔,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내심 안도하며 눈치를 보다가.

불길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꺄아아악!”

그녀의 바로 뒤.

허여멀건 얼굴 하나가 둥둥 떠다녔다.

흰자위 없는 새까만 눈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곧, 안으로 들어오려는 듯 실드에 몸을 부딪쳤고.

이어서 결계 전체를 하얀 얼굴들이 가득 둘러쌌다.

“백면귀들이군요.”

안드레도 긴장했는지 이를 물며 읊조렸다.

백면귀, 영림에 깃든 귀신이자 다른 이들의 혼을 잡아먹는다는 악령.

놈들이 사람의 냄새를 맡았나.

“하, 하지만 지금까지 보이지도 않던 백면귀들이 왜 이제야?”

“그러게나 말입니다. 계속 잠잠하던 놈들이 왜 갑자기 몰린 건지.”

솔의 의문에 안드레도 동의했다.

왜 하필 지금 이리 몰려들었는가.

그것도 이렇게나 많이.

“전하께서 부르신 것일까요.”

“그게 가,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히익- 놈들을 어떻게 상대하려 하시는 걸까요. 전하께서는.”

“놈들의 몸은 그림자. 빛으로만 베어낼 수 있습니다. 솔 검에 스트라이킹을 걸어줄 수 있습니까.”

“네-네네 그럼요. 가능은 한데 너,너무 많은데요-.”

“광역 마법으로 쓸어버리는 건요.”

“시간이 너무 오래, 오래 걸릴지도 몰라요.”

안드레와 솔이 전투 방법을 강구하려 했으나.

“필요 없는 짓이다.”

황자가 단호히 그들의 말을 잘라내었다.

“사냥은 나의 몫 두고 보아라.”

“허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보아라. 너희의 사냥이 아닌. 나의 사냥이다.”

“···알겠습니다.”

고집스런 말에 안드레가 뜻을 꺾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백면귀들이 아우성을 치는 동안.

웅, 웅, 웅, 웅.

놈들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욱 커다란 존재감이 다가왔다.

안드레와 솔의 얼굴이 백면귀와 같이 창백해진 순간.

“문을 열라.”

“어, 어어, 전하? 문을 열라 하심은?”

“결계의 입구를 열어라. 사람 셋이 동시에 들어올 정도면 된다.”

“으으, 하, 하지만.”

“열어라. 명을 거역할 거냐!”

황자의 들끓는 명령이 울렸고 솔이 죽음을 각오하며 실드의 일부를 해제한 순간.

일반 백면귀들 보다 몇 배는 거대한 귀신 하나가 수십의 다리를 흔들며 입구로 뛰어들었다.

더불어 공터로 밀려 들어오는 그림자와 백면귀들.

그 거대한 얼굴과 악의가 공터로 쏟아져 들어올 때.

두근, 두근, 두근.

황자를 중심으로 거대한 심장 소리와 함께 뜨거운 열풍이 훅 끼쳐왔다.

역류하는 백금발과 선명히 빛나는 진홍색 눈동자.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증기.

자신을 잡아먹으러 달려오는 그림자를 향해.

“타오르라!”

그가 검을 비스듬히 들어 올리며 뜨거운 외침을 뱉자.

화르르르륵!

불이 검을 타고, 더 나아가 온몸을 타고 번져나갔다.

이윽고 적염이 황자의 깨끗한 백발까지 물들였다.

마치 불의 정령이 도래한 듯한 풍경.

명멸하는 빛의 결계 보다도 더욱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꽃이 된 황자가 그림자를 향해 검을 휘두른 순간.

공간 전체를 적염이 뒤덮었다.

**

세상을 태울듯한 불이 사그라든 후.

탁, 타탁, 타타탁.

불이 사윈 자리엔 메케한 연기와 후끈한 열기만이 남았다.

“콜록, 콜록! 으윽. 저, 전하! 전하 괜찮으십니까!”

“자, 잠깐. 아직 망토 벗지 마세요! 잔열이 남았으니까!”

안드레가 연기 때문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황자를 찾았고.

솔이 다급히 손에서 차가운 냉기와 바람을 뿜어내어 아직 남은 잔열을 몰아냈다.

백광 망토가 그림자를 밀어낸 덕에 불에 휘말리지 않았다.

황자의 안배.

솔이 결계 가득한 매연을 하늘로 날려버리고 나서야.

공터의 정중앙에 선 인형이 보였다.

“전···하?”

안드레의 늘어지는 의문.

아직 남은 열기와 매연 사이.

뚜렷이 빛나는 황자의 모습.

선 다리는 오롯하며 검에 달라붙은 불은 횃불과 같이 주변을 비추었다.

“아-.”

이어진 솔의 감탄.

자리하는 모든 모습이 아름다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타오르는 불꽃과 같이 일렁이는 황자의 머리카락이 제일이었다.

깨끗한 백금발이 지금은 짙은 적염이 되어 흩날렸다.

그 아래, 반개한 진홍색 눈동자가 여운을 즐기듯 영롱했다.

화폭과도 같은 풍경.

이윽고.

“푸흐-.”

황자가 숨결을 뱉어내자 진회색 증기가 품어져 나왔다.

차차 몸을 감싼 불이 사그라들며 귓가를 가득 메운 심장 고동 소리도 사위었다.

전투는 끝났다.

아직 남은 열기와 귓가를 울리는 심장 소리에 정신이 아득했다.

심장이 튀어 오르는 순간마다 불이 거칠게 요동쳤고.

전신을 넘어 검끝까지 뻗친 불은 휘두르는 순간 모든 그림자를 살랐다.

전능감.

염제심결의 첫 번째 심장 적염의 위력.

아직 감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

[하위 운명 처참한 패배, 무시, 조롱을 포식하였습니다! 개변 점수를 대량 획득합니다!]

[새로운 운명 경탄, 놀라운 승리가 태동합니다! 스스로 일구어낸 운명입니다. 보상으로 또 다른 운명의 자락을 얻습니다]

[운명 불이 뿜어낸 불꽃이 화려하게 피어났습니다]

[첫 번째 심장 적염의 신비가 더욱 강해졌습니다]

떠오른 글자들이 상념을 지워냈고.

방금 있었던 전투의 여파를 간신히 털어냈다.

그리고 잠시.

바로 앞에 떨어진, 밋밋한 다른 가면들과 달리 선명한 귀신 얼굴이 그려진 가면을 바라보자.

[또 다른 운명의 자락입니다. 보상으로 당신에게 허락되었습니다]

포식자의 눈이 가면의 운명을 띄워주었다.

이를 집어 얼굴에 가져다 대는 순간.

가면 속 숨어있던 그림자 한 자락이 늘어지며 얼굴에 달라붙었고.

“전하! 안 돼-!”

“전하!”

안드레와 솔의 비명을 신호로.

다시금 피어난 어둠이 명멸하는 빛의 결계 안에 뭉개뭉개 차올랐다.

[새로운 신비 그림자를 획득했습니다]

[운명 불과 그림자의 대비로 불의 색이 그림자의 어둠이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

열흘째 새벽, 11황자궁 앞.

여느 때와 다르게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물론 고귀한 분들이 귀찮음을 무릅쓰고 자리할 리 만무.

그들의 고용인들이 대놓고 또는 숨어 11 황자, 아르한의 복귀를 기다렸다.

시시각각, 소식을 싣고 오가는 차량들과 나타났다 사라지는 내시와 고용인들.

새벽이 다가올수록 자리에 있는 자들뿐만 아니라 제 거처에서 소식을 기다리던 자들이 확신한 결과.

실패.

실제로.

“모두 영림 진입을 준비하라!”

안드레가 속한 청익 기사단과.

“다들 대규모 탐지 마법을 준비하고, 기사단을 보호할 광 속성 마법을 머금도록.”

솔이 속해있던 마법 전투단 3번대가 영림 진입을 준비했다.

황자를 찾는 것이 그들의 임무.

무엄한 말을 꺼내는 자는 없었지만 표정에 서린 귀찮음이 큰 사고만은 아니길 바라는 눈치.

다만.

“전하, 전하.”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기다려보아야죠. 아직.”

“알프레드님. 괜찮으시겠죠? 전하께서는.”

11황자궁 고용인들만은 황자의 복귀를 바랐다.

미워도 무서워도 미쳤어도.

황자는 그들의 주인이다.

주인을 잃은 고용인들이 갈 곳은 없다.

거기다 근래 들어 변한 황자의 모습에 적응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알프레드를 비롯한 몇몇이 걱정스러운 듯 영림을 바라볼 때.

“사람이다!”

“황자 전하인가?”

마침 떠오르는 여명.

그림자를 흩날리는 새까만 영림 너머 터오르는 햇살이 모두의 눈을 비출 때.

저벅, 저벅, 저벅.

저 멀리 영림에서부터 나와 해를 등지고 걸어오는 인형 셋.

그 가운데.

비록 그림자가 진 와중에도 선명히 보이는 진홍색 눈동자와 깨끗한 백금발.

고고하며 권태로운 걸음걸이가.

“황자 전하께서 오셨다!”

단번에 정체를 알렸다.

웅성거리는 고용인들과 반가워하는 황자궁 사람들.

그중.

“정말 황자 전하가 맞으시단 말인가?”

알프레드가 번지는 그림자에 잠시 눈을 부볐다.

등에 진 여명 때문일까.

순간 흩날리는 백금발이 타오르는 불꽃처럼 보였던 이유가.

곧 황자가 궁 앞에 도착하자.

“황자는 나와 결과물을 진상토록 하라!”

이전 황제의 성지를 전했던 이들이 이번엔 황제의 눈을 자청하며 결과를 내놓으라고 독촉했고.

“여기 있습니다.”

황자가 담담히 하얀 가면을 그들에게 내밀었다.

가면에 그려진 섬뜩한 귀신의 얼굴.

“백면지네! 백면지네의 얼굴이다!”

이를 보곤 자리에 있던 높으신 분들의 눈과 귀가 일제히 놀랐다.

그저 그림자를 머금은 몬스터 하나를 잡아 와도 놀라울 지경인데.

11황자, 아르한의 손에 들린 건 분명.

“실로···백면지네의 가면인가?”

흔한 몬스터 따위와는 궤를 달리하는, 백면귀 중 제일이라는 백면지네.

책임자의 물음에.

“궁금하면 만져보시던가.”

황자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가면을 내밀었으나 누구 하나 감히 나서는 자가 없었다.

백면지네, 영림 초입의 지배자.

백면귀 수십에 맞먹는 성과.

놈의 가면을 가져온 이상.

황자는 자신의 그릇과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다.

기회를 잡았으니 보상과 함께 새로운 기회를 얻겠지.

막 결과를 확인한 눈과 귀들이 소식을 전하려 하기 전.

“아직 남았습니다!”

안드레가 목청을 높여 아직 증명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고는.

등에 멘 거대한 주머니를 바닥에 쏟자.

와르르르르.

백면지네와 다른, 밋밋한 하얀 가면들이 무더기를 이루었다.

“허업!”

“저게 다 백면귀의 가면이라고?”

“어떻게 저렇게 많은 숫자를!”

주인에게 돌아가려던 자들이 걸음을 멈추곤 놀랐다.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자신의 책무도 잊어버린 채 굳었다.

황자가 태연하기도 하고 뻔뻔하기도 한 기색으로 하얀 가면 무더기 위에 백면지네의 가면을 덧 올렸다.

“폐하께서 명하신 대로 나의 그릇을 채울만한 머리를 가져왔습니다. 좀 많이.”

그리곤 자신을 경악한 얼굴로 보고 있는 모두를 향해 씩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어찌, 마음에는 흡족들 하십니까?”

눈과 귀 뒤에 존재하는 존귀한 자들을 쓸어보듯 눈동자에 번지는 광기가 여명과 더불어 타올랐다.

그날, 11 황자궁에 자리했던 수백의 시종과 내시들의 입을 타고 강철성 곳곳에 소문이 번졌다.

광인이라 조롱 들었던 11 황자가 알고 보니 광룡일지도 모른다는 허무맹랑한 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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