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13화 (13/200)

집사가 정체를 숨김

시야엔 어둑한 그림자만이 가득.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그림자를 가르며 다가오는 칼날의 섬찟함이 피부를 옥죄었고.

[칼날의 운명을 파악합니다. 치명적인 급소를 향합니다]

[칼날의 운명을 파악합니다. 신경을 향합니다]

[칼날의 운명을 파악합니다. 당신의 폐를 노립니다. 숨을 앗아가려 합니다]

[칼날의 운명을 파악합니다. 심장을 노립니다. 치명적인 공격입니다]

하나하나 목숨을 빼앗기 위해 달려드는 죽음의 운명이 눈앞에 가득 떠올랐다.

전후좌우 할 것 없이 모든 공간을 점유한 공격.

놈은 나를 죽이기로 마음먹었고 그럴 능력도 있다.

하지만.

본래 운명이란 작은 차이로도 결과가 달라지는 법.

짙은 그림자 속 놈과 나의 시야는 닫힌 상태.

직선으로 달려드는 칼날.

파앗!

암막 속에서 선명한 빛이 터졌다.

솔에게서 그림자를 빼앗으며 가져온 빛의 운명.

한낮의 태양 아래였다면 티도 나지 않았겠으나.

지금 주변은 암흑.

작은 빛도 마치 시야를 태울 듯 밝게 비추었다.

일시적인 시야와 감각의 왜곡.

‘바탕은 마련했다.’

이 수없이 달려드는 칼날의 운명을 피할 바탕을.

그리고 놈과 나의 가장 중요한 차이.

운명을 보는 눈.

놈은 지금 흑암과 명멸하는 빛이 눈을 가렸다면.

나는 내가 처한 운명을 직시했다.

[하위 운명 행운, 속성 필요한 때 작은 행운을 동시에 발동합니다. 모든 행운이 새로운 속성 구사일생에 더해집니다]

[단 하나의 생존 운명을 파악합니다]

[장소의 운명을 파악합니다.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향입니다]

주변은 보이지 않았으나 운명의 길은 분명 보였다.

눈 감고 칼을 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점차 다가드는 칼날의 공간 속.

단 한 발자국.

급소를 향해 다가드는 칼날을 피해 작게나마 몸을 비틀었고.

운명을 향해 발을 옮긴 순간.

철컥.

마치 자물쇠를 풀 듯 운명 전체가 뒤틀렸다.

그리고.

푸푸푸푸푹!

놈이 뻗어낸 칼날이 몸 곳곳을 파고들었다.

**

“전하!”

“황자 전하!”

그림자가 폭발하더니 주변 가득했던 암살자의 분신들과 아르한 황자가 함께 사라졌다.

솔과 운전수가 놀라며 아르한을 찾는 사이.

“여기서 벗어나라 난 황자 전하를 찾겠다.”

그들의 머리 위, 스산한 목소리가 울렸다.

지금껏 겪어본 적 없는 살기.

방금 마주했던 암살자와 뒤지지 않는 수준.

그들이 눈을 돌리자.

흉악하게 일그러진 알프레드의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황자 전하가!”

솔이 아르한의 안위를 걱정할 때.

“당장! 나가서 도움을 요청해라!”

알프레드가 거친 목소리로 그녀를 밀어내었고.

솔이 비틀거리며 공간 밖으로 나가려 했으나.

공터였던 협곡이 다시 미로로 뒤바뀌었다.

다시금 피어오르는 짙은 피 냄새와 살기.

암살자가 돌아왔다.

솔이 떨리는 눈동자로 황자와 알프레드를 찾았으나.

그녀의 시야에 보이는 건 새까만 통로뿐.

“으흑! 안 돼. 정신 차려! 정신 차려! 이 멍청한 년아!”

솔이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다잡고는 작은 빛을 띄워 올리며.

“가요! 누구한테든지 도움을 요청하러!”

운전수를 이끌어 미로를 빠져나갔다.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 어떻게든 사람들을 불러야 한다.

강철성엔 실력자가 많으니 저 괴물 같은 암살자를 막아줄 자 또한 있을 거다.

“나도, 나도 언젠간!”

자신이 그런 실력자가 아님이 원망스러웠으나 지금은 스스로에 대한 실망보다는 황자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

그녀가 막 반파된 차량을 지나쳐 가려 할 때.

쾅쾅쾅!

여기, 여기 사람 있어요!

차 트렁크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솔이 발걸음을 멈추고 망설이길 잠시.

혹시라도 황자 전하의 안배는 아닐까 생각이 들어 트렁크를 열어보자.

“전하! 신 안드레! 전하는 보필하고자-우웨엑!”

안드레가 튀어나왔다, 토사물과 함께.

“화, 황자 전하는 어디 우웨엑!”

“끼아악! 꺼져!”

****

알프레드는 후회했다.

황가를 수호하는 암철단의 일원으로서 개인의 가치를 내세울 수 없는 입장.

심지어 본인의 임무는 오히려 황가의 암 덩어리가 될지 모르는 미친 황자를 감시.

만에 하나 진실로 위협이 될 인물이라면 그의 죽음을 방관 또는 조성하라는 명령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멍청하게 보고만 있었는가!’

알프레드는 지난 수많은 임무를 성공시켰던 자신의 중립적이고 무감정한 일 처리에 대해 처음으로 맹렬한 질책을 퍼부었다.

원칙을 훌륭히 지켰음에도 분노가 울컥 치솟았다.

평소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의 격량.

어째서일까.

‘아직, 아직 더 지켜봐야 한다.’

그저 황자가 죽는다는 게 안타까웠다.

방금까지 느꼈던 감탄, 그리고 지금 느끼는 분노.

차갑고 어두웠던, 인간적 감정 없이 냉철히 황가의 이익을 따져왔던 삶 속에서 처음으로.

‘지켜야 한다!’

충심을 느꼈다.

이유를 떠올리기엔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다만 눈앞 흘러가는 장면이 몇 개 있었다.

어느날 변한 행동들, 노력을 시작하던 순간, 어머니와 동생을 식사에 초대하던 모습, 와인을 마시고 당당히 짓던 미소, 해를 등지고 영림에서 나오던 그림자.

거기까지 떠올린 알프레드의 다리가 신속히 움직였고.

겉을 감싼 위장을 벗어던졌다.

희끗희끗 센 짧은 머리와 평이한 갈색 눈동자, 주름진 얼굴을 비롯 전신에서 검은 모래가 신기루처럼 피어났다.

고아였던 그를 암철단에 들어오게 만들어준 혈통의 능력, 사철(沙鐵).

암철단 훈련병들중에서도 눈에 띄게 활약하여 지금 자리까지 그를 이끌었다.

흩어지는 고운 모래가 무겁게 뭉치며 중량감을 이루었고.

그가 달려 미로의 끝에 도착한 순간.

“전하-!”

저도 모르게 높다란 목소리로 미로의 끝에선 주군을 불렀다.

홀로 굳건히 서 있으나 온몸을 시뻘겋게 물들인 것은 피.

결국 자신의 망설임 때문에 전하를 죽이고야 말았는가.

집사 알프레드, 아니 암철단 단원 사철이 찢어지는 분노를 속으로 삼킬 때.

“아직 안 죽었다.”

황자의 입이 열렸고.

암살자가 다시금 허공에 나타나 아르한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 사이.

“그 손 멈추어라! 무엄하다!”

알프레드의 몸이 연기와 같이 번지며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황자의 심장을 노리는 검과.

촤르르르르륵!

그 앞을 막아선 거센 사철.

드센 철 모래가 격류를 이루어 암살자의 검을 황자의 가슴 손가락 한 마디 앞에서 막아내었고.

이후 놈을 감싼 사철과 함께.

“황자 전하! 피신하소서!”

양손에 단검을 쥔 집사가 사막의 암살자를 향해 전력을 다해 달려들었다.

황자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묘한 안도와 함께 힘이 솟았다.

자신이 죽더라도 막는다.

황자가 살아나간다면 되었다.

알프레드가 지금껏 감춘 실력을 발휘하여 녀석과 부딪히는 동안.

“황자 전하! 어서!”

아르한은 어째서인지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을 뿐.

알프레드의 다급한 외침에도.

아르한은 그저 고고한 태도를 유지한 채로 버티고만 있었다.

귀신의 얼굴을 한 하얀 가면 안, 붉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분명 말소리를 들었다.

죽지는 않았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나?

황자부터 피신시켜야 할까?

놈의 실력은 황자까지 보호하며 상대할 수준이 아니다.

그의 머리가 점점 복잡해질 때.

“보호를 생각지 마라. 도망칠 생각도 마라. 추레하다. 기회를 줄 터이니. 지켜볼 터이니. 목숨을 걸어서라도.”

의문을 지우는 황자의 오만함 가득한 목소리.

안에 담긴 광기가 넘실거렸다.

“이겨라.”

선언과도 같은 명령.

“이곳은 강철성. 누구도 이 안에서 황가의 핏줄을 해하지 못함을 보여라.”

“······.”

“그거면 족하다. 복잡할 문제가 아니다. 그대가 이긴다면.”

몰아치는 공격과 부딪히는 사철의 요란한 소리 속에서.

“그때까지 난 쓰러지지도 죽지도 않을 것이니. 날 진정으로 전하라, 주군이라 생각한다면 명을 받들라.”

이를 끝으로 황자는 입을 다물었다.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았고 두려워 떨지도 않았다.

그저 뒤에서 넘실거리는 광기와 오만이 알프레드의 등을 떠밀었다.

암철단의 미래가 될 자와 먼 서쪽 불모지에서 온 어쌔신의 싸움 속.

미친 황자의 존재감은 유의미한 영향을 끼쳤다.

“······.”

수많은 목표를 죽여온 어쌔신임에도 불구하고 황자의 미친 짓은 해석 불가.

더군다나 자신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이유도 해석 불가.

쓰고 있는 가면과 갑작스런 그림자와 빛도 해석 불가.

암살자 인생 중 처음 겪는 인물.

황자라는 변수가 암살자의 정신을 분산시켰다.

언제 어떻게 괴상한 짓을 할지 모른다.

그리고.

“네놈 나를 상대하며 힐끔힐끔 딴 정신을 팔지 마라!”

앞에 선 집사에 불과한 이의 실력이 너무나도 매서웠다.

알프레드는 간절했다.

난생처음으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 또한 황가의 수족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게 익숙한 인물.

그러나 지금만큼은 누구보다 간절히 황자를 지키고자 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뒤에 지켜야 할 자가 있으니 불편하고 위태로워야 정상이거늘.

“하압!”

오히려 알프레드의 집중력은 이전 어떠한 임무보다 더욱 날카로웠고 손에 든 검과 사철은 어떤 전투보다 힘찼다.

고도의 집중력, 황자의 숨결마저 느껴졌다.

얼마나 갈지 모르겠으나 솔이 지원군 요청만 빨리한다면-.

피이이이! 퍼엉!

그때 협곡 근처, 갑작스레 신호탄 하나가 피어올랐다.

마법적 강화를 거친 듯 붉은 불꽃이 유독 밝았다.

솔의 마나다.

신호탄은 누구의 것이지?

어찌 되었든.

“넌 오늘 누구도 죽이지 못해.”

집사의 얼굴에 아르한, 자신이 모시는 미친 황자의 것을 똑 닮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일렁이는 그림자 속 피어나는 미소와 뒤에서 빛나는 황자의 눈에.

암살자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났고.

“가면의 주인이여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어째서···그걸 쓸 수 있었는지 궁금하군요. 당신 또한 어째서 모래를 두르고 황가를 수호하는지 모를 일이구요.”

설핏 미래를 기약하며 사라졌다.

알프레드가 혹시나 해서 사철을 날려보았으나 이미 사라진 뒤.

막는 거야 어찌해냈으나 잡는 건 무리다.

놈이 사라지고 나서야 협곡 가득했던 살기가 가라앉았다.

텅 빈 협곡 끝.

미로 속 남은 건 아르한과 알프레드 둘 뿐.

“전하···. 소신, 전하에게 힘을 숨겼음을 고합니다. 부족했고 미련했습니다. 벌을 내리소서.”

알프레드가 고개를 깊이 숙이며 용서를 구했음에도 답이 없었다.

황자의 형형하게 타오르는 안광만이 분노를 표하는 듯했다.

알프레드 또한 자신의 행동이 너무나 한심하고 미련하여 분노가 치밀 정도이니 전하는 오죽하겠는가.

“송구합니다! 죄를 지었나이다.”

그가 황자의 광기와 분노를 미리 해소하고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수차례 박았으나.

역시나 묵묵부답.

수상한 기운에.

“전하? 황자 전하?”

알프레드가 아르한을 부르길 몇 번.

차마 몸에는 손댈 수 없어 발끝을 톡 건드리는 순간.

주변에 가득했던 그림자가 훅 꺼지듯 사라지더니.

그의 얼굴을 덮었던 가면이 똑 떨어져 내렸다.

다급히 떨어지는 가면을 양손으로 받아낸 그가 눈을 들어 올리고는.

“아···.”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시야의 비친 황자의 얼굴.

분명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오만과 광기를 담은 얼굴과 눈.

그러나 어딘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아주 먼 곳을 바라보듯 어긋난 시선.

이제야 깨달았다.

기절했구나.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이렇게까지 하셨나이까···.”

묻고 싶었으나 말을 끝맺지 못했다.

전하의 자태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자신을 걱정한 마음이 감격스러워서.

기절하여서도 신하의 도리를 믿어주었고 결국 황자가 뒤에서 알프레드를 기다려 주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군신이란 그런 것이다.

군주는 신하는 믿고 신하는 이에 답하는 것.

이를 직접 보여준 시간.

그때야 황자의 몸이 서서히 기울었고.

집사가 주군의 옥체를 살포시, 귀중히 받았다.

그 오만하며 꼿꼿한 자태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역할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옥체를 건드림을 이해하여 주소서. 신하의 도리로서 전하의 귀태를 지키고자 함입니다.”

알프레드가 기절한 주군을 붙잡고 들릴 리 없는 호소를 하는 동안.

황실 기사단, 마법 전투단을 비롯한 구조대가 도착.

11 황자 광인 아르한 홀로 오롯이 황실을 위협하려던 암살자를 막았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

힘겹게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모든 사건이 끝난 뒤.

“수많은 자상이 있었으나 다행히 치명적인 곳을 찌르지 못하였습니다. 피를 많이 흘리셨기는 하지만 대신관을 불러 급히 조처를 하였으니 후유증이 남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몸을 격하게 움직이는 건 언제부터 가능하겠나.”

“보통이라면 최소 한 달은 정양을 해야겠으나 보니 전하의 몸이 단단하여 넉넉잡아 보름 정도면 활동이 가능하리라 생각되옵니다.”

“일주일 주겠다. 고쳐놓아라.”

“보름은···.”

“일주일.”

“오히려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는-.”

“일주일. 내가 보름이나 있는 동안 어떤 미친 짓을 저지를 줄 알고?”

“조금만 참을성을 발휘해 주신다면-.”

“아, 사람 고치는 곳이니 해하여도 안심이로구나. 아주 재미있겠어. 들어오는 모든 자보고 갑옷을 입으라 해. 어딜 찌를지 모르니.”

입가에 함빡 베어 문 광기와 패악을 살핀 주치의가 결국.

“일주일 내로 고치겠사옵니다.”

“흡족하다. 나가. 당장.”

나의 윽박에 이기지 못하고는 자리를 떴다.

꼭 쉬이 치료할 상처도 빙빙 둘러 말하는 놈들의 성미를 알기에.

[하위 운명 부상의 치유가 더욱 빨라졌습니다]

떠오른 운명을 확인하곤 문득.

커다란 침상 바로 옆에 놓여있는 가면을 확인했다.

[하위 운명 그림자가 새로운 운명을 포식하는 중입니다. 소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림자로 인해 새로운 운명이 태동합니다. 아직은 멀리 떨어진 운명입니다]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는 중.

그러나 운명 변화는 그뿐만 아니었다.

[하위 운명 불운을 크게 포식합니다! 개변 점수를 대량 획득합니다. 운명의 추가 행운 쪽에 좀 더 기웁니다. 행운의 운명이 좀 더 강해집니다!]

[수십 개에 달하는 하위 운명 죽음을 피해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운명을 포식하였습니다. 개변 점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단기간에 많은 숫자의 하위 운명 죽음을 피해냈습니다. 운명 죽음에 대한 면역이 생깁니다. 속성 구사일생의 효과가 강화됩니다]

[새로운 운명 질긴 목숨이 태동합니다!]

찰나의 순간, 죽음의 운명을 지닌 칼날 수십 개를 피해낸 결과.

행운의 강화와 더불어 잘 죽지 않는 운명도 얻었다.

뭐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교환이다.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에 미소지을 때.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한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전하. 기침하셨사옵니까. 들어가겠사옵니다.”

“아니 지금 다들 뭐 하는 짓!”

잠깐의 실랑이.

하나는 이미 알고 있는 목소리, 하나는 유독 간드러져 불쾌감이 이는 목소리였다.

병실의 문이 열렸고.

답지 않게 피곤해 보이는 알프레드와.

“마침 깨어계셨군요.”

허여멀건 얼굴에 유독 비릿한 웃음을 짓는 황제궁 내시가 보였다.

얼굴을 알고 있다.

황후의 수족과도 같은 자.

다른 내시들이 알프레드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제멋대로 문을 연 모양.

놈은 황족을 향한 인사하나 없이 비릿한 태도를 고수하며 입을 열었다.

“황후께서 보자 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마주한 내가 환하게 웃으며.

“황자를 보고도 안부 인사가 없네. 이 싸가지없는 고자 새끼가. 그거 자르면서 다른 것도 잘랐나?”

“네? 전하?”

“이참에 확 모가지를 잘라버릴까? 황후께서 부르는 거랑 너희가 무엄한 게 무슨 상관이냐? 너희가 황후시냐?”

“전하 그것이 아니라 황후께서 급하게 찾으시기에.”

“안정이 필요한데 안정을 못 취하게 하네. 이 무엄한 새끼들이.”

대뜸 날아드는 내 폭언에 놈들이 일제히 굳었고.

“알프레드. 당장 주치의를 부르라. 깨진 대가리 봉합 준비하라 해.”

“알겠슴다!”

내 명령에 알프레드가 싱글벙글 웃으며 주치의를 부르러 간 사이.

“알아서 피해라. 괜히 미련하게 죽어서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내가 주변에 세워진 전등과 도자기, 시계 등을 놈들의 머리통을 향해 힘껏 던졌다.

[속성 필요한 때 작은 행운을 적용하여 정확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챙그랑, 콰직!

“저, 전하! 히이익!”

“이걸 막네? 넌 죽었다.”

“방금은 죽지 말라고-.”

“말대꾸를 해?”

우당탕쿵쾅!

나에게 쫓겨난 내시들이 다급히 복도를 내달리는 모습을 본 많은 이들이 속 시원함을 토로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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