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새를 만났다
황궁 주치의를 비롯하여 의료 인력이 상주하는 의료원은 최근.
“황자 전하 상태는 어떠셔?”
“다행히 별일은 없다고들 하던데?”
한 인물이 입원함에 따라 불안감이 팽배했다.
흔히 광인이라 부르는 11황자 아르한.
그가 입원한 탓.
특히 의료원 같은 경우.
“근데 그 황자 전하가 어쩐 일이라셔? 평소 사람 입원시키는 건 많이 봤어도 본인이 입원하시다니.”
“그러게요. 얼마 전까지 이 사람 저 사람 입원시키던 전하께서 어쩐 일이시래?”
“근데 엄청 잘 생기시지 않았니? 소문과는 완전히 다르던데.”
“얘, 정신 차려. 잘 생기면 뭐해? 지금까지 입원했던 사람들 못 봤어?”
“알긴 아는데요. 혹시 아나요? 자기 여자한테는 따뜻한 나쁜 남자 스타일일지.”
“나쁜 남자? 나쁜 남자한테 잘 못 걸리면 죽어 얘들아. 인생 쫑내고 싶어?”
“어멈머. 선배 그래서 아까 잠드신 황자 전하 얼굴을 그리 보셨어요?”
황자 아르한의 폭력에 당한 자들이 종종 입원했기에.
11황자에 대한 악명이 자자한 곳.
간호사들이 갑작스레 등장한 황자 전하에 대해 떠들고 있을 때.
“다들 뭐해! 환자! 환자 발생이다!”
의사 하나가 급히 달리며 간호사들에게 호통쳤고.
정신을 차린 간호사들이 후다닥 의사를 따라 달렸다.
“붕대랑 회복약 준비하고 봉합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준비해놔요!”
“선생님! 어디? 어디에서 오는 환자예요?”
“로열룸!”
황가 핏줄들만 입원할 수 있는 방.
현재 로열룸엔 아르한 11황자 밖에 없다.
역시나 입원하자마자 사고를 쳤구나.
앞으로 험난한 일주일을 예견하며 달려간 곳에선.
“어이고 아이고!”
“저, 전하!”
널브러진 집기들과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내시들.
“어, 왔어? 머리통 좀 깼으니까 잘 치료해 줘. 담 번에 또 깨게.”
태연하게 침대에 누워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인사를 하는 아르한의 미소가 섬찟했다.
분명 첫인상은 최악.
그러나.
“저, 전하 점심 식사를 가져왔나이다.”
“두고 가라.”
“그 점심을 드신 후에는 약을 올리겠사오니 편하실 때 이야기하여 주시옵소서.”
“응? 번거롭게 두 번 왔다 갔다 하지 말고 다 들고 와.”
“약이 쓴지라. 혹시 다과가 필요하시다면···.”
“다과는 자네들이 먹지. 어린애도 아니고.”
“송구하옵니다.”
예상과는 다르게 그저 귀찮다는 듯 다른 이들을 대했다.
어떠한 희롱도 폭력도 없었다.
그저 무언갈 깊이 생각하듯 창밖을 바라볼 뿐.
그가 유일하게 날카로워지는 때는.
“저, 전하. 그간 강녕하셨사옵니까.”
“문지방 넘지 마라. 분 냄새 나니까. 왜 또 왔지? 머리통이 다 나았나 보군?”
“흐, 흐흡, 그것이 아니오라 황후께서 전하와 독대를-.”
“주치의! 알프레드 주치의를 불러라!”
“히익!”
아르한의 고함에 내시들이 일제히 문 뒤로 숨었고.
그 모습을 보고 한껏 비웃은 아르한 황자가 놈들을 향해 경고했다.
“한 번만 더 환자에게 그딴 망발을 했다간 자기 신체를 볼 거다. 바닥에 떨어진 네놈들 신체 말이야. 자른다는 이야기지.”
“···전하.”
“여기 잘린 신체도 붙일 수 있다는 거. 알지?”
“전하.”
“주치의! 마침 왔군. 잘린 신체를 붙이는 거 연습이 필요하지 않나?”
“물러가 보겠사옵니다.”
“오냐, 얼른 꺼져라.”
평소 강철성에서 다른 이들에게 안하무인 격으로 행하던 내시들이 고통받는 모습에 모두가 즐거웠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자 몇몇 마이너한 취향을 지닌 강철성의 여인들 사이, 11황자가 퇴폐미 가득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마저 아름다우시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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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을 것들.”
“버러지 같은 놈들.”
“어딜 감히 분칠한 얼굴을 들이밀고 황후의 입을 대신하여 위세를 부린단 말이야.”
“뒈질라고.”
내시들이 다급히 나가고 나서도 씨근덕거리는 숨을 주체하지 못하고 놈들을 씹어 돌렸다.
그런 나를 차분히 바라보던 알프레드가.
“내시들을 그리 대하셔서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들은.”
“안다. 간악하고 야비하며 제 잃은 신체를 대신하여 권력과 재물과 사람의 피를 탐하는 놈들이지. 저 북방의 이리와 같은 놈들임을 알고 있다.”
“위험합니다.”
걱정을 표했다.
그럴 만했다, 저들은 원한을 잊는 자들이 아니니.
몇십 년이 걸려도 한 번의 되갚음을 위해 칼을 가는 자들.
황제궁, 강철성 더 나아가 제국에도 암 덩어리들이나 다름없는 자들.
그렇기에.
“위험하기도 전에 죽이면 되지 않겠는가.”
“네?”
“알프레드. 너도 알고 있겠지. 저들은 황가에 암적인 존재이다.”
“어째서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그냥 말이 좀 통할 거 같아서 말이지.”
내 비뚜름히 올라간 입술을 바라보던 알프레드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근데 저 느끼한 미소는 왜 자꾸 짓는 거야? 답지 않게.
전생에선 징글징글한 악마 교관이었거늘.
“듣겠습니다.”
“놈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가장 강한 권력이 무엇인지 아는가?”
“황제전에서 기거한다는 점 아닙니까?”
“폐하와 황후마마의 위세를 업을 수 있다는 것 또한 강점이지. 다른 것은?”
“인맥과 금력.”
“사람과 돈.”
나와 알프레드의 말이 겹쳤고.
내가 사납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대로 황후를 만나봤자 권력에 휘둘리는 장난감이 될 뿐이다.
그녀의 악랄한 간계를 막아낼 힘도 인맥도 현재의 나에겐 없다.
그렇다면 어찌해야겠는가.
“알프레드.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해라. 지난번 얻은 출입권을 쓰려 한다.”
“나가시렵니까? 기한은 얼마나 두면 되겠습니까.”
“내가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원하는 것이라면?”
황후의 장난질을 막아낼 방비를 하고 만나면 될 일이다.
최소한 바람에 휘둘리는 잎새와 같은 꼴은 면해야지 않겠는가.
지난 일주일간 고민했고.
나와 뜻이 맞을만한 자 하나를 떠올렸다.
“밖에 나가 금광을 캐려 한다.”
“금광 말씀이십니까?”
“그래, 돈이 펑펑 솟아나는 금광을 말이야.”
말뜻을 이해 못 한 알프레드의 표정과는 별개로 내가 그자를 만날 것임을 결심하자.
[예비 된 하위 운명 계략과 함정의 기간이 유예됩니다. 다만 상대의 분노가 상승합니다. 향후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하위 운명 행운이 꿈틀거립니다. 개변 점수 일부를 행운에 투자합니다. 새로운 운명이 태동합니다!]
또 한 번 운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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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하며 기품 넘치는 표정, 손끝까지 서려 있는 귀태.
지아비 황제를 제하면 제국 제일의 고귀한 자리에 앉은 황후인지라.
원하는 것은 뭐든 취하는 게 가능했다.
그런데 황후가 된 지 난생처음.
“뭐라? 정양을 이유로 입궁을 거절했다고?”
황당한 상황을 마주했다.
감히 자신의 부름을 마다했다?
“그 미친 황자가 내 부름을 거역했다는 말이냐?”
“그, 그것이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아르한을 부르러 갔던 내시들이 일제히 엎드려 용서를 구하였고.
“그래, 얼마나 걸린다더냐. 언제가 되어야 그 뻔뻔한 낯짝을 이곳에 들이밀겠다고 했지?”
그녀의 노기 어린 답에 아르한에겐 안하무인으로 굴던 내시 하나가 몸을 바들바들 떨며 나섰다.
“야, 약 보름이라 하였사옵-.”
“보름? 지금 보름이라 하였니?”
“이, 일주일! 일주일 내에 황자를 이곳에 데려오겠나이다!”
황후의 구겨진 미간에 눈치를 보던 내시들이 다급히 말을 정정했다.
그들에겐 황제보다 황제궁을 관리하는 황후의 명이 지엄했으니.
“기다리겠다. 나가보아라.”
급히 뒷걸음질로 기어나가는 내시들을 보는 황후의 눈이 까칠했다.
어둑한 황후좌.
자리에 머문 황후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감히, 감히, 반푼이만도 못한 황자 주제에 내 부름을 거절해?”
까드득.
이를 깨무는 소리가 울리길 잠시.
곧 교태 어린 웃음이 퍼져 나왔고 어둠 속 숨어있던 시녀들이 일제히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 분노를 뒤집어쓸 11황자, 아르한의 운명을 측은해하며.
그런데.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일주일.
약속된 날이 되어도 아르한이 도착했단 소식은 귀에 들리지 않았다.
먼저 물으면 위엄에 손상이 갈까 참았으나.
“환관들은 어디 있지?”
“11 황자궁에 갔다 하옵니다.”
“이제야 데려오려나? 어째 답답하구나. 답답해.”
목소리에 서리는 분노를 숨길 수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몇 시간이 지났고.
“당장 가서 황자를 데려오라! 뭐 하는 거야! 기사단을 움직여서라도 데려와!”
지엄하신 황후의 체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붉어진 얼굴로 거친 숨을 내쉬며 당장 황자를 데려오라 추상같이 명했으나.
“폐하! 폐하아!”
다급히 달려온 내시들이 황후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드디어 이 건방진 놈이 오는구나.
황후가 신색을 가다듬으며 놈의 기를 어떻게 눌러줄까 즐거운 고민을 이어갈 때.
햐안 분칠로 얼굴에 든 멍을 가린 내시가 소식을 알리니.
“11 황자가 궁에 없사옵니다!”
“뭐어···?”
상상치도 못한 황당한 소식에 황후가 체통을 지키지 못하고는 얼빠진 표정을 짓고야 말았다.
내시들이 이젠 눈물까지 흘려가며 상황을 알렸다.
“황후 폐하의 부름을 외면한 것으로 모자라. 일주일이 지난 지금 바람을 쐐야겠다며 궁 밖으로 나섰습니다.”
“뭐어?”
“오늘 아침 강철성을 나갔다 하옵니다.”
“지금 나의 부름을 외면하고 나갔다고? 어찌? 밖으로 나가는 건 폐하의 명으로 금지당하지 않았니!”
“지난번 시험 덕에 얻은 출입권을 사용했다 하옵니다. 돌아오는 시간을 뚜렷이 적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자신이 내린 시험을 통과한 대가로 받은 출입권을 사용하여 자신을 물 먹였다?
황후가 눈을 질끈 감자.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내시들의 사죄하는 울부짖음이 황후전을 울렸고.
챙그랑!
험악한 욕설과 함께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한참이나 울렸다는 소문이 황제궁을 넘어 강철성에 퍼졌다.
이를 들은 고용인들이 11황자 아르한의 광증이 황후의 고집을 이겼노라 그리 평했다.
**
아이로니아의 수도 페르마.
수도를 크게 가로지르는 템퍼강을 중심으로 크게 북과 남을 나누고.
강철성을 중심으로 뻗어 나간 동서남북 대로와 이어지는 소로들을 통해 세세한 구역을 나누었다.
시원하게 뻗은 대로를 돌아다니는 마차들 사이.
유려한 선을 지닌 차 한 대가 뭇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마차를 탄 귀족들도 지나가는 차가 부러운 듯 고개를 빼내어 구경했다.
곧 수도에 차가 유행하리라.
자신들의 허영심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돈을 쏟아부을 이들이 많았다.
누가 굶어 죽든 말든.
“알프레드.”
“네 전하.”
“우리 궁에 돈이 좀 있나? 내 개인적 비자금 같은 거.”
“···그건 어찌하여?”
“불안해하지 말고. 있어 없어.”
“있긴 합니다. 물론 품위 유지와 식사 준비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돈이라 다른 유흥을 위해서 사용하시는 거라면 그리 추천 드리지 않습니다.”
“그거 주식에 좀 넣지.”
“네?”
“주식에 넣으라고. 포드란 남작가에서 만든 차 제조사에 넣어.”
“포드란 남작 말입니까? 황궁에 차를 진상하는 가문은 로이스 자작가입니다만.”
“알아. 포드란, 로이스 둘 다 넣어. 외에도 몇몇 주식 알려줄 테니까 준비해놔.”
“현금이 그 정도로 많지가 않습니다.”
고급스러운 실내, 한 손에는 와인 잔을 흔들며 남들의 시선을 즐기는 중.
알프레드의 초 치는 소리에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안 그래도 그 자금 확보하러 가는 거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알프레드.”
“예 전하.”
“요즘 말대꾸가 많아졌어. 목숨 하나 또 빚졌다.”
“송구합니다.”
그런데 타박을 받는 알프레드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유독 요즘 잦아진 느끼한 미소.
재미가 없어진 내가 창밖을 보고 있으니.
북쪽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거대한 저택들이 눈에 띄었다.
크기는 강철성에 비하면 부족하나 화려함은 뒤지지 않았다.
길을 지나는 중에 종종 차들도 보였다.
수도 북구는 위로 올라갈수록 고위 귀족들과 대부호들의 거주지.
그중에서도 지금 지나는 거리는 최고위 귀족들과 재벌이라 불리는 신흥 세력이 거주하는 구역.
베이커 거리.
내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
‘슬슬 보일 때가 되었는데.’
여기에서 빚을 지워두어야 할 사람이 있기에.
“주변을 돌아라. 계속.”
지난 일주일간 몸을 회복하자마자 뛰쳐나온 이유.
녀석을 만나야만 했다.
주변을 몇 바퀴나 돌았을까, 드디어.
내가 노리는 먹잇감이, 돈주머니가, 호구가, 희생양이자.
아이로니아 이 거대한 제국의 돈줄을 이리저리 휘두를 금전의 신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제 내가 할 것은.
“가서 박아.”
“네? 네에? 전하?”
“박으라고!”
녀석과 인연을 만드는 것.
물론 계획은 있다.
그런 무엄한 눈으로 보지 마라 알프레드, 정말 계획이 있다니까.
삐질삐질 망설이며 땀을 흘리는 운전수가 답답하여 직접 몸을 앞으로 빼내어 핸들을 확 돌려버리자.
끼이이익! 쾅!
최고급 차 두 대가 대로 한복판에서 머리를 부딪쳤다.
거리를 지나던 마차들이 멈추어 서서 구경할만한 사고.
얼마 가지 않아.
“아니 진짜 미쳤나!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상대방 차량에서 우락부락한 운전수가 내려 삿대질을 하며 화를 내었고.
차를 부술 듯 눈을 부라리던 놈이 차에 달린 번호판을 확인하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어? 어어어? 이 차가 왜 여기 있지? 어어어?”
황가 위장용 차임을 알기 때문.
왜냐면 자기 가문에서 납품하는 물건이기 때문.
운전수가 몸을 와들와들 떨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동안.
콱.
나는 이마를 찍어 피를 내었다.
바를 수도 있지만 그러면 현실감이 없잖아.
날카로운 콧날을 타고 주륵 흐르는 피를 확인하고는.
탈칵.
차에서 내렸다.
입가에 광기와 잔혹을 가득 머금은 미소를 베어 문 채.
내 얼굴을 확인한 운전수의 얼굴이 탈색되듯 하얘졌다가 새까맣게 썩었다.
“저은-.”
“죽이기 전에 닥쳐라.”
“허업!”
오후의 햇볕을 반사하는 화려한 백금발과 광기를 머금은 진홍색 눈동자.
주변에서 구경하던 마차들이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느끼곤 급히 길을 떠났고.
남은 건 와들와들 떠는 차 한 대뿐.
뚝뚝 피가 턱을 타고 떨어질 때마다 운전수의 목숨줄도 떨어져 가는 모양.
놈의 우람한 몸이 어째 점점 구겨졌다.
그런 놈을 지나쳐.
쿵쿵쿵!
험악한 기세로 창문을 두들기자.
위이이잉.
찬찬히 내려가는 유리장 너머.
“화, 황자 전하? 어째서···.”
유약해 보이는 여인 하나가 눈물을 글썽이며 앉아있었다.
옅은 레몬빛 머리와 눈동자가 마치 카나리아와 같이 보드라운 기색.
자리에 앉아 젖은 새처럼 떠는 모양새가 애처로웠으나.
[하위 운명 행운이 크게 움직입니다! 새로운 운명이 태동합니다!]
[새로운 운명 금전운을 전해줄 이를 만났습니다!]
그 새가 황금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