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놀이가 생각보다 재밌다
하수구 구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유독 누워 신음하는 사람들이 널려있는 거리가 있다.
같은 하수구 구역 사람들도 왠만해선 피해다니는 거리.
벌어진 동공, 입에서 풍기는 단내.
헤 벌어진 표정으로 지나다니는 사람을 지켜보다.
“으, 으허! 허어억! 괴물이다!”
갑작스런 고함을 지르며 옆에 마찬가지로 누워있는 자의 목을 졸랐고.
목이 졸린 자는.
“으흐흐, 으흐흐흐.”
자신이 죽고 있는지도 모른 채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 외에도 자신의 몸을 난자하며 안에 들어간 벌레를 꺼내야 한다는 자.
뇌가 답답하다며 끊임없이 벽에 머리를 박아대는 등.
거리엔 병들어 죽어가는 자들로 가득했다.
“대체 왜 이렇게?”
안드레 또한 같은 하수구 출신.
종종 불법 약물에 손댄 자들은 보았으나 이리 많은 숫자라니?
험한 거리 생활을 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그를 보며.
“비켜라.”
황자가 검을 뽑아 든 채 거리에 들어섰다.
몰아치는 열기와 광기.
하수구 선술집에서도 압도적이었던 존재감.
그가 등장하자.
“우으으, 으으으.”
“괴로워, 으으-더 더 줘 제발, 제발.”
자리에 널브러져 있던 자들이 열풍에 휘말린 듯 갈증과 고통을 호소했다.
자신의 목을 붙잡은 채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을 표출했다.
어디에서부터 오는 고통인가.
곧 그들의 눈이 열풍의 진원지인 황자를 향하였고.
“그만, 그마아안!”
“오지마! 오지 말란 말이야!”
놈들이 황자를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너저분한 광기와 분노가 질척였고 몇몇이 일어나 황자를 공격하려 했으나.
“평민 치워라.”
“받들겠습니다.”
아르한의 나른한 명에 안드레가 나섰다.
죽이진 않았다.
검집으로 덤벼드는 놈들을 후려쳐 날려버리기 시작.
퍽, 퍽 터지는 소리가 가득했다.
처음엔 아무리 두들겨도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중독자들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으나.
지금은 측은함이 들 정도.
안드레의 잔뜩 찌푸린 표정과 다르게.
저벅-저벅-저벅.
그 사이를 걷는 황자의 걸음은 권태롭다.
몰려드는 중독자들을 치열하게 밀어내는 안드레와 갈라지는 인파 사이를 여유롭게 걷는 황자.
거리 깊이 들어가자 한 건물 앞에 도착.
“이번이 몇 번째지?”
“열 한 번 째옵니다.”
황자의 등을 노리는 놈들을 안드레가 밀어내며 차분히 답했다.
이로써 마지막.
안식처의 주인이 뱉어낸 장소는 이곳이 마지막이었다.
스르릉 황자가 검을 뽑아냈고.
그의 손에서부터 시작된 불꽃이 칼날을 타고 넘실거리며 차올랐다.
검을 휘두르자 그대로 건물에 직격 하여 모든 것을 태우기 시작했다.
“뭐야? 어떤 새끼가 불을!”
안에 있던 자들이 고함을 지르며 문을 열어젖힌 순간.
아르한의 검이 움직였다.
자비는 없었다.
무기를 든 자, 조금이라도 험악한 기세를 풍기는 자들의 몸을 찌르고 베었다.
치이이익!
살타는 소리가 맹렬했다.
아무리 기사들에 비해 검 실력이 부족하다고 하나.
“크아악!”
“뭐, 뭐야! 너 어디서 나온- 으윽!”
뒷골목 무뢰배들에 비할 바 아니다.
황자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놈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고.
치이이익.
몸에 불결한 피가 묻을까 거센 불꽃이 이를 증발시켰다.
자욱하게 피어난 붉은 피 안개 사이.
진홍색 눈동자가 광기를 머금고는 번쩍 빛났다.
평생 하수구에서 오물들과 뒤엉켜 살아간 이들도 공포에 질릴 정도의 모습.
지옥의 악마라도 도래한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
곧 건물 전체가 불에 휩싸였다.
그사이 달려들던 놈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외에도.
“끄아아악!”
저 뒤편, 불에 휩싸인 인형 몇이 불에 휩싸인 몸을 너풀거리며 뛰어다녔다.
뒷문으로 빠져나가려던 계획.
그러나 아르한이 뿜어낸 불은 신비하게도 도망치는 놈들을 쫓듯 움직여 감쌌고.
곧 놈들마저 바닥에 엎어져 숨을 거두었다.
타오르는 소리만이 들리는 공장 안.
“역시나.”
이젠 지쳐버린 듯 안드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남은 건 검은 연기를 뒤집어쓴 사람들뿐.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몸을 바들바들 떨며 죽음을 기다리는 자들이 보였다.
“죄 없는 자들을 인솔하여 물건을 옮겨라.”
황자의 무거운 명령에 억지로 잡혀 와 공장에서 마약을 생산하던 빈민들이 안드레의 통솔에 움직였고 얼마 안 가 공장이 텅 비었다.
남은 자도, 것도 없다.
“후우우.”
황자가 열기를 가라앉히자 건물 전체를 감쌌던 불이 사그라들었다.
그뿐이었다.
비가 내린 것도 아니건만 아르한은 발화부터 소화까지 불을 통제했고.
이전 영림에서 모든 걸 태울 듯 용솟음쳤던 광화를 기억하는 안드레는 신비의 발전에 혀를 내둘렀다.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움.
그때.
“가자. 곧 여명이 튼다.”
황자가 아직 할 일이 남았다는 듯 안드레를 재촉했다.
그의 눈가에 서린 분노는 아직 식지 않았다.
오늘 밤 하수구엔 거대한 불이 피어날 거다.
**
“뭐야? 당신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평소보다 일찍, 하수구 구역에 동이 트기도 전에 출근한 수사반장 갈런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2층짜리 경비대 건물을 둘러싼 무리.
혹시라도 세력 다툼 때문에 몰려온 놈들인가 싶었으나.
보니 하수구 구역 깡패들은 아니었고 다들 어딘가 찌들어있는 자들이었다.
붉어진 눈시울로 등에 한 무더기 짐을 짊어 멘 모습.
헐떡이는 숨이 불안정해 보였다.
어제 안식처 방화 사건으로 혹시나 해서 일찍 나와 다행이라 생각하며.
“자자, 다들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으나 다들 들어가. 이렇게 봇짐 메고 있으면 위험한 거 몰라?”
사람들을 해산시키려 했으나.
“기다리라 했어요.”
유독 꼬질꼬질 검댕을 묻힌 소년이 차분히 답했다.
“기다려? 누굴?”
“곧 아침이 올 테니 기다리라 했어요.”
“그래, 아침이야 오지. 그런데 누가 기다리라 한 건데?”
“곧 오실 거에요. 곧.”
알 수 없는 대답에 미간을 찌푸릴 때.
“얼른 들어들 가시라니깐요! 그러니까 뭘 기다는데요? 아니 아주머니! 아저씨! 대답을 똑바로 하세요! 똑바로!”
어제 당직을 선 반원들이 사람들을 향해 윽박지르다 못해 거의 애원하다시피 부탁하다 갈런을 발견하곤 다급히 달려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반장님! 밤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어젯밤부터?”
“네, 그리고 곳곳에서 불이 피어나는 바람에.”
“뭐 불? 이런 미친 그걸 이제 보고하면 어떻게 해! 소방에는 연락했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소식보다 불이라는 말에 갈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제 방화범인가?
하수구 구역의 집들은 밀집되어 있기에 작은 불이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딱 그 건물만 타오르고 나머지는 멀쩡했네.”
수사반 건물에서 노마법사가 나와서는 상황을 설명했다.
동남부 하수구 구역 담당 소방 마법사.
갈런과는 이미 안면을 트고 있는 자였다.
“그 건물만 탔다고요?”
“그렇네. 밤에만 8개가 탔고 여기서 눈으로 본 불기둥은 10개 아니 방금 11개가 되었군.”
“설마.”
동시에 강렬한 직감이 갈런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안식처 방화범.
놈이다.
“어디였습니까! 어디 방향이었어요!”
마법사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바라본 그가.
“다들 따라와! 무기 들고!”
다급히 그곳으로 달리려 할 때.
마치 짜 맞춘 듯 사람들이 길을 텄다.
허나 갈런을 배려해서는 아니었다.
좌르르 열린 길 사이.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길을 비켰고 다가오는 자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길을 걸었다.
갈런과 수사반원들이 달리려다 말고 멈추어 섰다.
어쩌다 보니 그의 앞을 막고 있는 듯한 형국.
턱.
처음으로 상대의 걸음이 멈추었고.
긴장감이 팽팽하게 차올랐다.
꿀떡.
자리에 있던 모두가 침을 삼켰다.
갈런과 반원들은 불편함에 몸서리를 쳤다.
마치 자신들이 길을 막은 돌부리라도 된듯한 기분.
갈런의 직감이 경종을 울렸다.
방화범이라는 직감.
분명 잡아야 하건만 갈런은 지난 경비대 인생 처음으로 상대에게 압도당했다.
그저 앞에 섰을 뿐이건만 말 한마디 꺼내기 어려웠다.
“짊어진 짐을 한 곳에 쏟아라.”
그러나 상대는 갈런은 보이지 않는다는 듯,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모여든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모두가 갈런의 뒤에 자신이 지고 온 봇짐들을 풀었다.
와르르르, 쏟아져 나오는 지폐들과 금화, 은화, 단 냄새를 풍기는 궐련, 새까만 덩어리들.
수백의 사람들이 이를 쌓아 올리자.
갈런의 키를 넘어 언덕처럼 커졌다.
지나다니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추었고 구경꾼들의 탄성이 터졌다.
“돈이다.”
“저게 다 얼마야···.”
눈에 깃드는 탐욕도 잠시.
“다들 움직이지마!”
갈런이 검을 뽑아들며 주변을 경계했다.
그리곤 앞에 선 자를 노려보길 잠시.
“가시오.”
그를 보내주겠다는 듯 애써 외면했다.
이제 갈런이 노려보는 곳은 로브를 뒤집어쓴 자와 몰려든 사람들 뒤쪽.
“저기다!”
몰려드는 왈패들 방향이었다.
밤사이 당한 조직들이 각 방향에서 몰려들었다.
금세 시체라도 나올 듯 흉흉한 기세.
갈런이 그들을 향해 이를 갈며 말을 이었다.
“고맙지만 이 정도만 하시오. 잘못하다간 길거리에 목만 내걸릴 수 있으니.”
사실 놈들을 막는 것도 갈런에겐 큰 모험.
허나 이곳엔 사람들이 있고 자신은 증거를 지켜야만 했다.
그래야 놈들을 잡아넣을 수 있으니.
앞에 있는 자도 마찬가지 범죄자이나 일단은 도움이 되니.
“우선은 보내주겠소. 그러니 어서 가시오.”
그가 큰 결심을 품고선 왈패들을 향해 검을 겨누자.
“갈런! 미친 거냐! 막으면 수사반 전체를 몰살시켜 버릴 거다!”
“갈런 네놈이 사주했나? 하수구 전체를 적으로 돌리다니! 너희 시체를 길거리에 걸어주마!”
“반원들은 물론 그 가족들도 죽여 거리에 널어주지!”
“너, 이 새끼! 이런다고 우리를 잡을 수 있을 거 같아?”
“돈이 목적이냐? 주마! 얼마를 원하나? 우리 쪽으로 들어와!”
각 조직들이 잔혹한 말을 쏟아내며 그들을 압박했다.
이곳은 그들의 영역.
감히 공권력도 함부로 하지 못하건만!
그때.
로브를 깊이 눌러쓴 자가 웃기 시작했다.
모두의 말을 덮듯 크고 광폭하게.
헌데 그 목소리가 너무나 맑아 묘했다.
뚝 웃음을 그친 그가 입을 열었다.
“잡아? 돈?”
짧은 의문 뒤에 이어진 맑은 광소.
그렇게 한참을 웃던 이가 짓씹듯 이를 갈길 잠시.
“그딴 안온한 말을 내뱉는 건가? 내가 원하는 건 너흴 잡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병신들.”
열기 어린 음성에 사람들과 건달들이 침묵했다.
위험하다.
무언가 이상함을 자리에 있는 자들이 느꼈다.
이윽고.
“여기서 눈을 부라리는 놈들 전부를 죽이길 원한다. 하수구 가득한 오물을 태우길 원한다. 너희들의 죽음. 그리고 오물을 뿌리는 자의 패망. 이게 내가 원하는 거다.”
선고하듯 모두의 죽음을 입에 올렸다.
말이 가진 힘일까.
소란이 일었던 경비대 앞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갈런을 비롯한 경비대원들도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약간은 질린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던 건달들 사이.
“뭐 하는 거야! 저 새끼 잡아! 잡아서 죽여버려! 내장을 긁어내!”
누군가의 고함에 놈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그제야 정신 차린 갈런이 무고한 사람들에게 도망가라 소리 칠 때.
타타탁.
로브를 입은 자가 손에서 불꽃을 피워내어 쌓인 무더기 위에 던졌고.
앗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불이 순식간에 돈과, 마약 무더기를 감싸더니.
하수구를 좀 먹는 오물을 먹이 삼아 활활 타올랐다.
“저런 미친!”
“지금 다 태웠어!”
“돈! 돈부터 구해!”
“잠깐! 증거들을 태우면 어떻게 해!”
“크아악! 뜨, 뜨거워!”
건달들이 방금까지 원한도 잊고선 어떻게든 재물들을 구하려 달렸으나.
가까이 갔다가 덩달아 불에 휩싸여 고통을 호소했다.
불을 피해 도망가려는 사람들과 한점 재물을 구하기 위해 달려드는 건달들.
두 무리가 뒤섞여 혼란이 가중되었다.
광기다.
타오르는 불꽃과 이를 뚫고 재물을 구하려는 자들의 탐욕이 어우러져 광기를 발산했다.
잠시 이를 넋 놓고 보던 갈런이 이 현상의 근원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타오르는 불 앞, 날뛰는 사람들 사이.
그들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자.
방금까지 광소를 터뜨리던 자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침착함.
“이봐!”
갈런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헤치며 그를 잡으려 했으나.
잠깐 사이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사라졌다.
남은 건 타오르는 돈과 마약 더미뿐.
그 색이 너무나 선명하여.
“아-.”
“음-.”
도망치던 사람들도 발을 멈추고 멍하니 보고 있을 정도.
참 신비했다.
불은 더러운 것만을, 돈과 마약과 건달들을 태울 뿐.
맹렬했으나 맑았고 위협적이었으나 정작 번지지 않았다.
로브를 뒤집어쓴 황자의 웃음과도 같이.
그리고.
그제야 하수구 구역에 햇볕이 들이치며 어둠이 걷히자 타오르는 불꽃과 더불어 우왕좌왕하는 건달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사람들의 눈에 비쳤다.
모두가 어딘가 홀린 듯 멍하니 불을, 타오르는 광기를 바라만 보았다.
하염없이.
재만 남아 흩어질 때까지 그렇게.
불은 놈들의 재산을 태운 채로 사그라들었다.
사람들은 의문을 품은 채 흩어졌고.
건달들은 이를 갈면서도 속에는 두려움을 품은 채 물러났다.
“후우-.”
갈런 또한 아침부터 발생한 커다란 소동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허름한 경비대 건물로 들어가자.
“어 왔는가?”
“아니 영감님. 밖에 불 안 끄고 여기 있었습니까?”
“응? 어차피 번지지 않을 불인데 왜 꺼?”
“그렇긴 해도 명색이 소방 마법사라는 분이 그러고 있다니요.”
갈런의 투덜거림에 소방 마법사가 주름진 얼굴로 씩 미소지었다.
“그거 아는가? 때로는 숲에도 불이 필요할 때가 있다네. 화마가 아닌 정화하는 불임에야. 내 간섭이 오히려 오지랖인 게야.”
“어휴 아는 거 많으셔서 좋으시겠습니다. 남은 아침부터 피똥 쌀 뻔했구만. 누군 편하게 불구경이나 하면서 차나 마시고-.”
“집무실에 손님이 왔었네. 은밀하게.”
“······.”
“앞을 지켰으니 그가 두고 간 것 모두 잘 있을 게야.”
“···누군지 보았습니까?”
“보았다간 내가 시체가 되었겠지.”
“그렇군요.”
“난 여기 앉아 차를 더 마실 생각이네. 일이 생기면 바로 들어가지.”
“감사합니다. 영감.”
지나치려던 갈런이 노마법사의 배려에 감사를 표하곤 조심스레 자신의 사무실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어지러운 책상 위, 대놓고 올라와 있는 꾸러미.
혹시나 저주나 다른 트랩 마법이 걸려있을까 긴장하는 사이.
“별 이상은 없어 보이는군.”
“밖에 계신다면서요.”
“늙은 몸으로 급히 뛰어 들어오다가 도가니가 나갈 거 같아 미리 들어왔네.”
“···현명하시군요.”
어느새 들어온 노마법사의 너스레에 긴장을 푼 갈런이 꾸러미를 열었고.
“아, 이런.”
저도 모르게 감탄을 터뜨렸다.
아까 증거들을 태웠다 궁시렁거렸는데.
꾸러미 안에는 진짜 증거들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빼도 박도 못 할 누구 하나는 쉬이 몰락시킬 진짜 증거물들이.
“누구야? 그런 선물을 보낸 게.”
산전수전 다 겪은 노마법사 조차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고.
갈런은 단번에 상대의 정체를 짐작했다.
“하수구를 태우는 자. 방화범.”
놈이다.
갈런이 저도 모르는 새에 불경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
담배를 입에 가져가는 손끝이 약하게 떨렸다.
치익, 성냥 머리에 달라붙은 불을 가까이서 마주하자.
귓가에 맑은 광소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범죄와 타협은 없다던 경비대의 미친개 갈런은 난생처음으로.
“정말 어쩌면 말입니다. 영감. 정말 이 오물이 가득한 하수구에는 정화할 불이 필요할지도 모르겠군요.”
“것 봐. 내 말이 맞지?”
범죄자가 멋지다고 생각해버렸다.
****
[당신을 위협하던 하위 운명 계략 중 하나를 포식합니다. 계략을 획책했던 자의 운명이 뒤틀었습니다!]
[중요 운명 악마의 기반이 약해졌습니다. 당신을 향한 하위 운명 위기와 죽음의 기세가 약해졌습니다]
[뛰어난 책략으로 운명을 변화시켰습니다. 하위 운명 미련, 무심, 나태, 무능력을 포식하였습니다! 개변 점수를 획득하였습니다]
[많은 이를 현혹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의념이 모여 운명을 강화합니다. 하위 운명 현혹의 힘이 더욱 강해집니다]
이른 아침, 로이스 가문으로 돌아오며 떠오른 알람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밤부터 아침까지 치열하게 광기를 폭발시켰더니 배부르듯 만족스럽다.
방에 도착하자.
“밤새 그러고 있었나?”
아직도 자리 그대로 앉아있는 소피아가 보였다.
그녀가 힘없는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눈이 퉁퉁 부어올라 연노란 눈동자를 반쯤 가린 상태.
“대답은?”
내 무심한 물음에.
“죄송···해요.”
그녀가 큰 결심을 한 듯 마냥 눈을 질끈 감고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거절했다.
밤새 준비한 대답치고는 미약한 목소리.
기분이 좋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나름 괜찮은 답이다. 허나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명하지. 자결하라.”
“죄, 죄송하다고 말씀을-.”
“자결하고 자결해서 또 자결해라. 거절하는 답은 깨어나면 듣지.”
소피아의 황당하단 표정에 더욱 배부른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누웠고.
[상대가 당신의 하위 운명 현혹에 깊이 매료됩니다. 상대의 운명이 미약하게 뒤틀립니다]
[하위 운명 행운 속성 중 금전운이 강화됩니다]
이어 떠오르는 알람을 보며 오랜만에 깊이 잠들었다.
꿈속에서 타오르는 불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불놀이란 거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