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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26화 (26/200)

앞에는 적, 뒤에는 망나니

수도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뻗어있는 철길 위로 많은 물자와 사람을 실어나르는 열차가 달린다.

군인, 기사, 식량, 마법사, 아티펙트, 마나석 등 수도로 들어와 수도로 나가는 수많은 사람과 물자.

제국의 재력과 기술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물.

수도를 비롯하여 각 주요 도시에 마련되어 있는 세련된 플랫폼.

이른 시각임에도 새벽부터 먼 길 떠나는 자들과 막 수도에 입성한 자들이 북적이는 중.

그중에서도 백색 대리석으로 지어진 페르마 북부 플랫폼에선.

“황성열차, 황성열차가 곧 플랫폼을 출발하니 모든 제국민들께서는 예의를 표해주기 바랍니다.”

마나 확성기를 통해 황족이 탄 열차가 출발한다는 소식이 울렸다.

은은한 광택이 도는 묵색의 열차, 백금으로 황가의 문양이 새겨져 아름다움을 더했다.

오직 황족과 그가 허락한 자들만이 탈 수 있는 열차.

본래라면 영광스러운 자리였으나.

“아직 황자께서는 오지 않으셨는가.”

정작 열차 안에선 흉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푸른 갑옷을 입은 기사들과 3 전투단이라는 로브를 두른 마법사들이 가득했다.

그 사이.

“전하께선 좀 늦으신다 들었어요.”

소피아가 홀로 끼어있었다.

열차에 탑승한 자들은 안드레가 속한 청익기사단과 솔이 속한 3 전투 마법사단.

황자가 요청한 병력으로 이번 북부 모닥불 관리자 암살 사건 내내 함께할 호위대.

그러나 정작 황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엉뚱하게 소피아가 그들을 통제하게 생겼다.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에 기사단과 마법사단 전체의 얼굴이 구겨졌다.

“게으른 것도 정도가 있지.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전하의 거만이 하늘을 찌르는 것 아닌가. 과하군.”

기사단장과 전투단장의 불만이 날카롭게 열차 안을 찔렀다.

그럴만했다.

청익은 본래 누구를 따르지 않았고 3전투단은 얼마 전 황자의 횡포를 목격한 상태.

가뜩이나 인간말종이라는 황자가 대놓고 엿을 먹이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수장들이 불만을 토하자 허락이라도 떨어진 마냥 모두가 웅성거리며 황자를 험담을 시작하자.

“그만, 그만 하세요. 다들!”

소피아가 굳은 얼굴로 목소리를 버럭 높이고 나서야 그들이 입을 다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피아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그들을 쏘아보았으나.

흥분과 두려움으로 인해 턱과 머리가 덜덜 떨렸다.

황자를 언급하는 순간 이성을 잃고 말았다.

작은 새가 짹짹거리는 듯한 모습에 다들 피식 비웃음을 터뜨릴 때.

“다들 그만하시죠. 섣부른 허튼 말은 황족 모욕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알프레드가 고요한 목소리로 그들을 눌렀다.

시종장이나 분위기가 만만히 볼 수 없는 자.

그가 소피아에게 턱짓해 들어가라 한 뒤.

담담히 사실을 전했다.

“전하께서는 사건 조사를 위해 다른 방향에서 출발하신다 하셨습니다. 모두를 편히 모시기 위한 배려이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간단한 전달을 끝으로 그 또한 다른 칸으로 사라졌고.

모두가 분노 어린 한숨을 내뿜었다.

동시에.

뿌우우우!

황성열차가 그들과 같은 마음인 양 맨 앞 굴뚝에서 짙은 마나 연기를 뿜어냄과 동시에.

플랫폼 가득한 제국민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하니.

황자 없는 황성열차가 먼저 묘한 갈등과 불만을 품은 채 북부로 향했다.

**

그사이 나와 솔, 안드레는 먼저 동부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최고급 객실을 예매, 물론 로이스 자작가의 돈으로, 편한 여행을 즐기는 중이었다.

나는 편했다.

아니 나만 편한가?

“어, 저, 그러니까. 왜 저희를 데려가신다고요?”

“힘이 드나? 얼른 제대로 안 들래?”

“우으윽.”

전 좌석을 빌려 아무도 없는 객실 안, 솔이 거검 브레이커를 그림자로 감싸드는 훈련 중이었다.

그녀가 하얀 가면을 쓰고 그림자를 뿜어 브레이커를 감쌌으나.

찌이이익.

거검은 답답함을 싫어하는 어린애처럼 그림자를 찢었고.

그녀는 떨어지는 거검을 어떻게든 받아내기 위해 땀을 쏟는 중.

“전하. 정말 괜찮겠습니까? 기사단과 마법사단 일부라도 함께 하는 게 좋았을 텐데요.”

“어째서?”

“호위를 위해서도 그렇고 어디 가서 위세를 부리기도 그렇지 않습니까.”

“호위와 위세라.”

안드레의 진지한 표정에 잠시 생각했다.

홀로 모든 경호를 담당해야 한다는 사실일 부담스러운 모양.

아직 경험이 부족하기에 이해되는 심정.

그래서 아주 조금은 친절을 베풀었다.

“평민, 왜 북부가 아닌 엉뚱한 동부로 향하는지는 궁금하지 않은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왜지?”

“전하께서는 뜻이 있으실 테니까요.”

“그거면 됐다. 그래서 평민 네 녀석만 대동한 거야.”

“저는 궁금한데요?”

솔의 물음에도 나와 안드레가 답하지 않고선 말을 이었다.

“날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해봤자 끝없는 증명의 연속일 뿐이다. 왜 엉뚱한 방향을 향하는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하면 불필요하다.”

“전하? 전하? 제 말은 혹시 안 들리시는 걸까요?”

”경호는 날 믿는 자들이 해야지. 그러니 경호는 네 녀석이면 충분하다. 위세는 내가 있는데 누가 날 대신하겠나.”

“이해했습니다.”

“소피아와 알프레드 또한 맡은 일이 있으니 데려가기 어렵지.”

“저는 이해 못 했어요! 저한테도 좀 대답을.”

“가로등 겸 거검 받침대를 데리고 다니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설?”

“으윽! 솔입니다! 솔이에요! 그리고 가로등도 아니고 거검 받침대도 아니구요!”

“열차를 탄 지도 벌써 사흘째다. 언제쯤 검을 감쌀 테냐.”

“으으윽! 제가 이런 거 하려고 마법사를-.”

“그래도 청소보단 재밌잖아? 청소하고 싶나?”

“그,그건. 그런데요. 그래도!”

구시렁거리려던 솔이 이내 입을 다물었다.

작게 거검 받침대, 가로등이 아니라 항변하는 중얼거림을 외면했다.

저래 봬도 마법 훈련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기쁠 거다.

[상대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하위 운명 불만족을 포식합니다. 개변점수를 획득합니다]

것 봐라.

주변 지나가는 풍경 속 점점 늘어나는 높다란 성벽으로 이루어진 요새들이 보이자.

동부에 도착했음을 슬슬 실감했다.

제국 동부 전선.

초대 황제부터 종종 아이로니아 제국은 대륙 점령을 꿈꿨고 소국들은 합종연횡(合從連橫)으로 맞서왔다.

그렇게 상황이 굳어버린 지 꽤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뺏고 빼앗는 싸움의 역사 속, 동부에 세워진 오랫동안 자리를 잡은 요새와 성벽들이 당연한 풍경이 되었고.

실제로 지금도 수많은 요새를 오가며 종종 점령전이 벌어졌다.

지금 내가 향하는 곳이 바로 그 국지전이 벌어지는 전선 근처.

본래 북부로 향해야 하나 북부로 가기 위해선 여길 반드시 거쳐야 했다.

‘수배자, 암살, 모닥불, 북부, 동부 전선.’

운명이란 본래 여러 사건이 얽혀있는 법.

과거 단편적으로 알았던 사건들을 머릿속에서 조합하며 앞으로의 행보를 계획했다.

가면서 할 것도 얻을 것도 많다.

우선 첫째로-.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열차가 잠시 정차했다.

열차를 통째로 빌린 것은 아니라 플랫폼에 정착하여 누군갈 태우는 모양.

그런데.

통째로 빌려 아무도 없는 객실에 피 냄새가 몰아쳤다.

이어서 나무가 객실을 뒤덮더니 피를 쏟아냈다.

눈을 깜빡이자 아무 일 없는 객실이다.

일순간 보았던 환상.

환상을 볼 정도로 강렬한 살기와 피 냄새라니?

이어서.

[대상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VIP 열차가 파괴될 운명에 놓였습니다]

열차의 운명이 눈앞에 떠올랐다.

“전하?”

“괜찮으세요?”

반면 안드레와 솔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의아한 표정.

분명 아인델이 칸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했다.

찾아올 자도 들어올 자도 없을 터.

내 긴장한 표정을 본 안드레가 무언가를 짐작했는지 검에 손을 가져갔고.

나 또한.

“검.”

솔에게 건네받은 브레이커의 묵직한 손잡이를 쥐었다.

허나 다가오는 인기척이 없었다.

그때, 드르르륵 작게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제야 미세한 발걸음 소리가 우리밖에 없는 객실을 메웠다.

“흐으읍.”

긴장으로 솔이 숨을 들이켰고 안드레의 턱 근육이 불거져 나오는 사이.

정체 모를 자가 태연스럽고 뻔뻔하게 다가와서는.

“여기밖에 자리가 없다고 하는데 어찌 앉아도 되겠니?”

정확히 나에게 합석하여도 되겠냐 물어왔다.

흐르듯 매끄러운 목소리.

안드레가 무언가 말하기 전.

“밖에서 분명 검표원이 말렸을 터인데. 누구인데 함부로 자리를 차지하려 하시나?”

내가 짓궂게 상대의 정체를 물었다.

그러자 상대가 뭐가 웃긴지 큭큭 웃더니.

“아 허락은 아니야 사실. 그저 물음일 뿐이지. 너무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길래 심통이 나서 말이야.”

대놓고 협박을 해왔다.

물론.

“합석하려면 얼굴은 보여주어야지. 아니면 보여주지 못할 이유라도 있나. 수배자라던가. 범죄자라던가. 쫓기고 있다던가. 셋 중에 하나겠군.”

나도 지지 않았다.

이미 상대의 정체를 짐작했다.

내 당당한 목소리에 상대가 멈칫하더니 천천히 로브를 벗었다.

그러자 피가 쏟아지듯 새빨간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선명히 모습을 드러냈다.

약간 세상의 이치를 벗어난 듯한 미인.

그러나 아름다운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블러디!”

“허어업!”

안드레와 솔이 기겁했다.

제국에서도 잡기를 바라마지 않는 최고위 적색 수배자 중 하나 블러디 엘프, 통칭 블러디라 부르는 자.

과거 남부 대수림에서 남부 군영 소속 마법 전투단 하나, 기사단 둘을 홀로 궤멸시켰다던 괴물.

이후에도 종종 제국의 안위를 뒤흔들어 자신의 악명을 높였던.

하프 엘프.

그녀를 바라보길 잠시.

“그래, 어찌 질서를 망치는 자를 찾고 있나?”

내 간단한 물음에 블러디의 눈이 번쩍 뜨이길 잠시.

“이거, 당신의 미래가 참으로 재미있네. 잠깐 대화를 해볼까?”

그녀가 대답을 회피하며 내 앞에 앉자 비릿한 혈향이 열차 안을 감돌았다.

안드레의 관자놀이를 타고 땀이 뚝뚝 흘렀다.

검 손잡이를 잡은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휘두르면 벨 수 있을까 고민하는 얼굴.

내가 그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후.

“자 간단한 문답이야. 맘에 들지 않으면 널 죽일 건데. 감당이 가능하겠어?”

그녀의 피가 일렁이는 듯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 또한 로브를 벗었다.

깨끗한 백금발과 그녀의 것보다 조금 더 진한 진홍색 눈동자가 드러났고.

“황족?”

이번엔 블러디가 놀랐다.

놀란 그녀의 얼굴을 보자 비릿한 웃음이 터졌다.

“날 죽인다 했나? 블러디? 넌 문답을 할 처지가 아니야. 날 죽일 수도 없고 죽여서도 안 되거든.”

“정말? 어째서 그렇게 장담을 하는 걸까. 황족께서는?”

“네가 본 미래를 뒤틀어줄 유일한 사람이니까.”

“미래?”

“모든 게 불타버리는 미래.”

“너-.”

“입 닫아. 난 태울 수도 멈출 수도 있는 신비를 품고 있다.”

“······.”

“이제 제안을 할 거다. 잘 들어보고 대답하도록 뻘건 엘프.”

그녀의 눈에 비친 나의 눈동자가 새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마침 찾고 있던 자를 이곳에서 만날 줄이야.

이래서 운명이란 게 재미가 있다.

[대상의 운명이 변화합니다. VIP 열차가 파괴를 면했습니다]

[상대가 품은 운명 혈향, 살해, 흡혈을 피했습니다. 개변 점수를 획득합니다!]

[하위 운명 퇴폐, 속성 현혹에 상대가 넘어왔습니다. 상대의 운명 미인 숭배를 만족시켰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은 취향은 예상 못 했다.

**

-이번 정차 역은 열차의 마지막 역 동부 붉은매 요새, 붉은매 요새입니다.

마나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모두가 열차에서 내렸고.

희뿌옇게 흩어지는 증기 속에서.

“또 봐. 황자.”

블러디가 붉은 눈동자를 매혹적으로 휘며 손을 흔들었다.

이를 끝으로 황자와 그를 따르는 이들이 사라졌다.

끝까지 황자는 고고한 자태와 나태한 기품을 잃지 않았다.

그녀가 황자가 사라진 방향을 노려보며 붉은 입술을 슬며시 핥았다.

죽일 걸 그랬나?

아니, 죽이기엔 너무 아름다웠고 자신의 비밀을 너무 잘 알았다.

위험한 냄새를 풍기나 그것이 너무나 달콤하여 거부할 수 없는 자.

꽤 오랜 세월을 산 그녀로서도 오랜만이었다.

자신이 파악하지 못한 자는, 그래서 살려두었다.

혹여라도 그의 말이 사실일까 봐.

“납치해서 피를 빨며 물어보면 본심이 나올까?”

잠깐 잔혹한 생각을 떠올렸으나.

곧 고개를 흔들었다.

황자는 말했다.

자신이 쫓는 자를 잡게 해주겠다고 퍽 믿을 수 있는 계획이었기에 일단은 두고 볼 생각.

참이라면 살리고 아니라면.

“그때 취하면 되겠네. 황자의 피는 무슨 맛일까.”

하아-.

그녀의 입가에 달뜬 신음이 어렸다.

**

블러디를 만난 후 마차를 타고 며칠을 더 달렸다.

붉은매 요새 너머 동부 전선 꽤 깊은 구역.

제국의 손에 몰락한 망국의 후손들이 레지스탕스가 되어 끝없는 건국 전쟁을 벌이는 곳.

그중 어느 무명 요새.

“모두 전열을 다듬어라! 곧 적의 공격이 온다!”

해가 뜸과 동시에 병사들이 시끄럽게 전투를 준비했다.

최근 밀려온 적군에 앞선 요새들이 큰 피해를 입거나 함락되었다는 정보를 입수.

요새장을 비롯한 중요 간부들이 암살당하는 바람에 힘없이 당했다 들었다.

그래도 그들은 다른 요새들과 다르게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자신했다.

그런데 사람의 일은 참으로 모른다고 했던가.

“요새장님! 요새장님께서 암살당하셨다!”

갑작스런 비보에 병사들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요새의 중추가 암살당했다.

분명 철저히 경계를 섰건만!

수장이 죽었으니 사기의 하락을 막을 방도가 없다.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와중.

“적! 적들이 오고 있다!”

요새 성벽 넘어.

골목 곳곳과 숲을 넘어 몰려오는 적군이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건너편 산등성이에서도 수풀이 흔들리더니 군세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요새들을 쳤던 병력이 몰려드는 중.

불안감과 당황이 팽배하게 들어찬 요새.

모두가 죽음과 패배를 떠올릴 때.

“뒤에, 뒷문에 누군가 오고 있습니다!”

“지원 병력인가!”

반가운 소식에 병사들의 얼굴에 혹시나 하는 희망이 감돌았고.

“황자 전하 납시오!”

황자 전하라는 말에 모두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황자라니! 황자라면 분명 전황을 뒤집을 기사단과 마법사들을 끌고 왔겠지.

혹시 맹장이라 불리는 철사자 1황자는 아닐까.

철사자 기사단 중 몇이라도 대동했다면 요새쯤은 금방 구출할 것이다.

아니면 전략의 귀재라던 6황자일까? 그가 이끄는 전략가들과 따르는 기마병들이 실력이 뛰어나다던데.

아니면 4 마법 전투단을 이끄는 위대한 마법사의 자질이 엿보인다던 7황자?

모두의 기대감이 환호성으로 표출될 때.

“11황자 전하 납시오!”

예상치 못한 숫자에 모두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누, 누구?”

“몇 황자?”

“일 황자라고 하지 않았어?”

“아니 앞에 더 있었는데 분명?”

누가 왔다고? 의문을 표하는 사이.

쐐기를 박듯.

“11황자 아르한 전하께서 요새를 보호하러 오셨소!”

다시금 황가의 개망나니 열한 번째 황자 아르한의 도착을 알려왔고.

그를 모르는 자는 불안함과 의심을 아는 자들은 절망과 허탈함을 표했다.

요새의 앞에는 적, 뒤에는 미친 황자가 있으니.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신세.

그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어라. 요새를 구해야겠으니.”

거검을 짊어진 자가 요새 안으로 들어섰고.

[장소의 운명을 파악합니다. 운명의 일부만을 엿봅니다. 패배와 함락이 도사립니다. 당신의 하위 운명 행운, 구사일생과 크기를 견줍니다]

[거검의 하위 운명 승리가 당신의 앞을 밝힙니다! 하위 운명 불이 더욱 거세게 타오릅니다!]

얼굴을 덮은 로브를 벗자.

짙은 진홍색 눈동자와 더불어 휘날리는 백금발 아래, 고혹적인 미소가 피어났다.

풍전등화에 처한 요새에 단 세 명의 구원군이 등장했다.

물론 충분했다.

오만한 황자는 그리 믿었다.

이제 오만한 믿음을 증명하면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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