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로 향하는열차(2)
이미 플랫폼에서 처음 역한 냄새를 맡았을 때 직감했다.
악마들이 날 쫓고 있다는 사실을.
열차에 앉아 상황을 유추했다.
지난 하수구 구역에서 만났던 악마 숭배자.
놈의 죽음 때문일까.
놈이 죽기 직전에 했던 말.
당신을 황제로 만들어줄 수 있는 위대한 악마를 알고 있다.
즉. 제국 안에 고위 악마가 있다.
그것도 제국의 황제를 바꿀 정도의 고위 악마가.
운명은 놈의 말이 단순한 허풍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더욱 강대한 악마를 섬기는 숭배자일지 아니면 진짜 악마인지는 모른다.
전생의 폭군을 황제로 만들어 줄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라면.
군단장? 어쩌면 더 위일지도 모르지.
어쨌든, 제국과 나의 안녕을 위협하는 놈들.
죽여야 한다.
다만 악마와의 전투 속에서 정보부 요원 모두를 살릴 자신은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다.
모두를 살리겠다는 무른 마음으론 제국의 썩은 부분을 도려낼 수 없다.
난 성군이 아닌 폭군이다.
일정한 리듬으로 울리는 열차의 바퀴 소리를 들으며 심장 속 불을 온몸으로 휘돌렸다.
쌓인 개변 점수와 신비 점수가 많았다.
불과 바람, 그림자, 행운, 신체 능력에 개변 점수를 나누었다.
신비 점수는 나중에 써야 할 곳이 따로 있어 아껴두었다.
심장에 휘도는 불이 더욱 거대해졌고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번졌다.
그림자로 흐르는 불을 조였다.
심장의 고동을 따라 강대해진 적염이 맥동했다.
눈앞에 악마가 나타난 순간.
쿵, 쿵, 쿵, 쿵!
전보다 한층 더 커진 심장 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지금껏 도도하게 흐르게 두었던 적염이 적을 만나자 거칠게 몸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불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치밀었고.
불을 받아들인 브레이커가 거칠게 회전했다.
겉에 둘러놓은 그림자를 거두자 거검이 불꽃을 휘날리며 적을 겨누었다.
놈의 이빨과 브레이커의 검날.
자웅을 겨룰 만했다.
“타올라라, 타올라라, 타올라라.”
놈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타올라라-!
놈이 울부짖으며 나를 향해 뛰어들었다.
양손을 모아 몸을 날카롭게 세우더니 점이 되어 날아들었다.
피하며 거검을 휘두르려 하자.
물러나는 놈의 머리카락이 화악 펴지며 시야를 방해했다.
입에서 흐르는 검푸른 피와 따가운 소리가 감각을 방해했다.
공격을 피해서는 틈이 나지 않겠다.
거검을 비스듬히 세워 놈의 공격을 여러 번 빗겨내며 놈의 싸움 방식을 파악했다.
거검과 놈이 부딪힐 때 울리는 소리가 거셌다.
몇 번의 공방 끝에 틈을 만들 구석을 찾았다.
“그 풍성한 머리카락부터 어떻게 해보자.”
놈이 물러나며 머리카락이 펴지는 순간에 손가락에 맺힌 불을 튕겨냈다.
치이익, 공기를 태우며 날아간 불이 놈의 머리카락에 닿자.
머리카락 전체로 불이 옮겨붙었다.
검은 피를 쏟아내 끄려 했지만 적염은 오히려 놈의 피와 육신을 연료 삼아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키에에에엑!”
놈이 타오르는 몸을 주체 못 하며 열차 곳곳을 부수었고.
나는 불을 연이어 날리며 웃었다.
타오르는 불과 울리는 놈의 울음이 즐거웠다.
그러다 놈이 움직임을 뚝 멈추었다.
나를 죽여야 불이 꺼진다는 걸 눈치챈 모양.
녀석의 기형적인 팔다리가 꿈틀거리길 잠깐.
“키이이익!”
거칠게 회전하며 날아들었고.
불과 피, 놈의 날카로운 손과 터져 나온 이빨들이 내 몸을 노렸다.
자폭하려는 수작.
“못생긴 놈이 심보도 고약하군.”
불을 더욱 뽑아내며 거검을 휘둘렀다.
브레이커가 가로막는 객실, 의자, 전등을 모두 씹어먹으며 전진.
놈의 가녀린 신체마저 모두 갈아 마셨다.
끼이익!
손과 발을 어지럽게 휘둘러 막아보려 했으나.
브레이커와 적염에 닿을 때마다 뭉텅뭉텅 놈의 기운과 더불어 신체가 잘려나갔고.
마지막 머리만이 남아 바닥에 뒹굴었다.
까드드드드득! 까드드드득!
억울하다는 듯 이빨을 갈아대었으나.
“이제야 어울리는 눈높이가 되었구나.”
그대로 브레이커를 들어 놈의 머리통을 깨버렸다.
싸움이 끝나고 나서야.
키이이익! 키이이익!
멀리서부터 치열한 전투 소리가 들렸다.
아직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안드레와 솔의 운명엔 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열차로 다가오는 운명들이 시끄러웠다.
[대상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열차의 운명 속 전복, 파괴, 정지를 엿봅니다!]
즉시.
와르릉!
브레이커를 휘둘러 천장을 찢어내며 위로 뛰어올랐다.
발밑에서 휘도는 불과 바람.
몸이 붕 떠올라 열차의 헤진 지붕 위로 올라서자.
“많이도 모였군. 버러지 같은 것들이.”
열차 주변을 뒤따르는 수많은 놈들이 보였다.
악마라고도 할 수 없는 찌꺼기에 불과한 놈들이나 숫자가 많으니 위협적이다.
“평민! 가로등! 전투 중인가!”
“전하! 무사하십니까! 몰려드는 놈들을 물리친 뒤 합류하겠나이다!”
“으윽! 전하! 놈들이 끝없이 몰려와요!”
이끌던 놈이 죽었으니 통제도 불가능한 상황.
곧 소악마들이 열차 꽁무니에 몸을 부딪치며 자폭했고.
“모두 가장 앞으로 와라! 나머지를 끊어야겠다!”
내 명령을 들었는지 저 멀리 식당칸부터 빛과 그림자가 스멀스멀 다가왔다.
솔과 안드레가 살아남은 정보부 요원들을 끌고 몰려오는 모양.
그 잠깐의 틈.
“이봐!”
가장 앞, 증기를 뿜어내며 달리는 열차 칸에 들어서자.
구석에서 귀를 막은 채 덜덜 떨고 있는 열차장이 보였다.
“히이익! 사, 살려주세요!”
“이봐! 열차장. 이봐!”
몸을 흔들자 열차장이 꽉 감은 눈을 뜨고는.
“저, 전하!”
“최대 낼 수 있는 속력으로 최대한 빨리 달리도록.”
“아, 알겠습니다. 하지만 뒤에 객실들이 달린 통에 자칫하면 넘어질 수도.”
“끊어낼 거니까 달려라. 망설이면 죽는다. 저놈들 이빨에 찢겨 잡아먹히고 싶지는 않겠지?”
내 손끝, 이빨을 갈아대며 달려오는 소악마를 본 기관장이 식겁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뿌우우우우-! 뿌우우우우-!
열차의 속도를 한층 더 높였다.
눈앞에 떠오르는 운명 개변 알람이 시끄러웠다.
[안드레, 솔, 정보부 요원들의 운명이 변합니다! 개변 점수를 획득합니다!]
[중요 운명 악과 맞섭니다! 악마를 처치하여 개변 점수를 획득합니다!]
쏟아지는 개변 점수를 일제히.
[열차의 운명에 개변 점수 전부를 투자합니다! 열차의 운명 중 속력을 높입니다!]
열차에 때려 박았다.
열차가 퍼지면 아무리 우리가 잘 싸워도 답이 없다.
개변 점수를 빨아들인 열차가 더욱 거센 증기를 뿜어내며 내달렸고.
“전하!”
안드레의 목소리가 들려 다시 첫 번째 칸 지붕 위로 올라서니.
막 안드레와 솔이 첫 번째 객실로 넘어오려 하는 게 보였다.
뒤를 따르는 소악마들이 열차 속 가득했다.
빛과 그림자, 검과 악마들이 난잡하게 뒤엉켰고.
정보부 요원들이 객실로 피하는 동안 솔과 안드레가 악마들을 틀어막길 잠시.
“넘어오면서 객실 이음새를 잘라.”
안드레가 마지막으로 넘어오며 첫 번째 객실과 나머지 객실들을 이은 이음새를 검으로 잘라내었고.
철커덩!
쇳소리와 함께 악마들이 가득 탄 나머지 객실들이 멀어졌다.
“이봐 무임승차는 불법이라고!”
안드레의 너스레에 소악마들이 불법이라고! 불법이라고! 불법이라고! 반성하듯 말을 반복했다.
떨어져 나간 객실을 악마들이 새까맣게 덮치는 풍경이 점차 멀어졌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어디에 계십니까!”
“위에 있다.”
찢어진 지붕 아래, 날 다급히 찾는 안드레의 얼굴이 보였다.
“전하! 무사해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옆에 빼꼼 나타난 솔이 환히 웃으며 나를 반겼다.
“전투는?”
“가능합니다!”
“아직은 문제없어요!”
일단 고개를 끄덕인 후.
“곧 놈들이 다시 몰려오겠지. 전투 가능한 인원은 앞으로 나서라.”
싸울 수 있는 자들을 살폈다.
그중에는.
“꽤 운이 좋군?”
“부끄럽습니다.”
본디 정보부 수장으로 나를 맞이했던 자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살았으면 전력으로 써먹어야 한다.
잠시 지붕 위에서 객실을 굽어보았다.
[장소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운명 침략이 가장 커다랗게 맺혀있습니다]
[장소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운명 통로가 작게 뚫려있습니다]
곧 객실 어느 틈으로 적들이 몰려올지 떠올랐다.
“평민, 가로등은 객실 끝에서 놈들의 접근을 최대한 차단하라.”
“네!”
“솔, 명을 받듭니다!”
솔과 안드레를 시작으로 각자가 알맞은 위치에 섰다.
물론 가장 위험한 곳은.
[장소의 운명을 확인합니다. 운명 악의, 죽음, 파괴가 가장 짙게 드리운 곳입니다]
한결 가벼워진 열차의 속도가 올라가자 내가 선 지붕 위로 칼바람이 몰아쳤다.
화르르륵.
불을 품은 머리카락이 세차게 휘날렸다.
북부가 가까워진 모양.
깊은 밤, 아침까지 얼마나 남았을지는 모르겠다.
허나 태양이 떠오르기 전까지 우리는 달려야 했다.
끝나지 않는 밤의 끝자락을 잡고서.
“옵니다!”
곧 소악마들이 객실에 남은 게 없다는 것을 확인.
사탕을 찾아 움직이는 개미 떼 마냥 몰려들었다.
“전투 준비.”
담담한 목소리에 모두가 무기를 치켜들었고.
어느새 열차를 따라잡은 놈들이 지붕 위로, 객실 안으로 뛰쳐 드는 순간.
화르르륵!
다시금 불과 톱날이 검은 밤하늘을 갈랐다.
열차가 횃불과 같이 불과 그림자를 휘감고선 깊은 밤, 광활한 대지 위를 치달렸다.
**
“막아! 들어온다! 솔!”
“간다구요!”
“다들 왼쪽! 왼쪽이다!”
멀리서 보기엔 흐르는 어둠 속 타오르는 불이 아름다웠으나.
정작 열차 안에 있는 자들은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다.
끝없이 몰려드는 악마들은 죽음, 부상 따윈 두렵지 않다는 듯 자폭하려 들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모두 치명적이다.
“흐으으, 흐으읍.”
객실 가장 안쪽, 다른 이들의 전투를 지켜보는 요원이 숨을 거칠게 쉬었다.
보는 것만으로 두려웠다.
저런 끔찍한 풍경은 처음이다.
얼핏 보이는 창문 너머 지평선을 가득 메운 악마들의 모습에 숨이 막혔다.
그리고 악마들은 본래 공포와 절망의 냄새를 잘 맡았다.
콰장창!
악마 하나가 다른 놈들을 밟고 넘어 비어있는 창문을 통해 들이닥쳤고.
“으, 으아악!”
“무기 들어!”
부상자들이 비명을 지를 때.
콰지지직!
거대한 검날이 가뜩이나 헤진 천장을 찢어내더니 그대로 악마의 상체를 반으로 갈랐다.
회전하는 거검에서 불꽃과 피가 튀겼다.
역한 냄새를 풍기는 피를 뒤집어쓴 이들이 하늘을 바라보자.
“겁먹은 티 내지 마라. 놈들은 두려움을 먹고 자라니까.”
불의 화신이 된 황자의 모습이 보였다.
왜인지 그의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그가 풍겨내는 맑은 불냄새를 맡은 것만으로도 안정이 되는 듯했다.
황자가 무심하게 다시 전투에 돌입했다.
곧 천장 틈 사이로 비치는 그의 전투에 부상자들이 입을 벌렸다.
몰려드는 파도와 같은 악마들 사이, 황자는 홀로 자리를 지켰다.
마지막 횃불이 된 듯 달려드는 어둠을 살랐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거검이 한번 지나갈 때마다 악마들이 지워내듯 사라졌다.
홀로 고고하게 성결하게 싸우는 모습에.
“불, 불의 화신.”
“염제?”
“염제다.”
“성스러운 불꽃.”
모두가 이름은 다르지만 한 가지 개념을 떠올렸다.
강철제국 아이로니아인이라면 어릴 적부터 들었던 이름 강철염제.
강철은 황가에 남았으나 염제는 사라졌다.
아이로니아가 대륙 정복 전쟁을 멈춘 가장 큰 이유.
황가를 지탱하는 강철의 신비는 남았으나 대륙을 태울 불의 신비가 사그라들었기 때문.
그런데 지금 그들은 전설 속에만 남아있는 불의 신비를 직접 목격하는 중이었다.
상황도 잊고선 감동이 치밀었다.
물론 황자가 다루는 신비가 정말 건국제 강철염제의 것과 같은 불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불이라는 상징이 전해주는 의미가 컸다.
문제는.
“전하! 전하! 마나가! 연료가 다해갑니다!”
열차의 속도가 높아진 만큼 마나도 빨리 달았다는 것.
열차가 멈추는 순간 놈들을 막아낼 방도가 없다.
결국은 밤에 먹혀버릴 거다.
모두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오려 할 때.
“모두 입 닫아! 숨을 내쉬지 말고 가슴을 펴라!”
황자의 냉엄한 목소리가 흩어지려는 정신을 다잡았다.
“허리를 펴고 당당히 놈들을 노려봐라! 놈들에게 절망과 비통함을 들키지 마!”
그의 표정은 그저 같았다.
약간의 권태와 대부분의 분노.
눈동자와 몸에서 흘러나오는 광기.
타오르는 불과 같이 적을 맞이해 단 한 번의 흔들림도 없다.
위태로운 상황이 와도 같다.
실력과는 무관한 태도.
겁먹을 이유가 없다는 듯 당당한 모습에.
“모두 가슴을 펴!”
“알겠어요!”
안드레와 솔이 먼저 따랐다.
이후 정보부 요원들이 억지로 두려움을 감추며 끝까지 무기를 휘둘렀다.
그들 또한 감정을 감추는 게 직업.
두려움 하나 숨기지 못할 머저리들은 아니었다.
요원은 본래 죽음, 고문 앞에서도 의연해야 하는 법이니까.
그렇게 얼마나 싸웠을까.
열차가 폐가 썩어버린 듯 답답한 경적과 함께 새까만 증기를 내뿜는 사이.
황자의 불꽃이 끝없이 적을 태우는 사이.
끝없는 평야 넘어.
“동이 튼다!”
햇볕이 하늘로 번졌다.
찬찬히 떠오르는 빛이 평야에 가득한 어둠을 몰아냈고.
이윽고 끝없이 달려들던 악마들에게도 닿았다.
그러자.
동이 튼다! 통이 튼다! 통이 튼다!
놈들이 경악하듯 소리를 질러대더니 그대로 파스스스 회색빛으로 사위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소악마의 능력은 여기까지.
놈들은 햇볕도 견디지 못하는 찌꺼기들.
주변을 가득 메운 놈들이 재가 되어 휘날렸고.
“어흑.”
“으으. 으윽.”
싸움이 끝났음을 깨달은 자들이 끈이 풀린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너무 어려운 싸움이었다.
“흐에에, 흐에에에.”
솔은 쓰러진 채 침까지 흘리며 뒹굴었다.
마나가 텅 비어 기절할 것 같다.
그 와중에도.
“전하. 전하 괜찮으십니까?”
안드레는 떨리는 검을 애써 감추며 자신의 주군을 찾았고.
“괜찮다.”
열차 지붕 위 거검에 기대어선 황자의 모습을 확인했다.
“열차장은 속도를 늦춰라.”
치이이익-, 평야를 가로지르던 열차가 느려졌고.
황자를 감싼 불도 사그라들었다.
거검 브레이커도 오랜만의 포식에 만족한 듯 잠들었다.
느려진 바람에 휘도는 재와 황자의 깨끗한 백금발이 퍽 어울렸다.
다만 다 타버린 장작과 같이 얼굴이 창백한 게 안드레의 마음을 불안케 했다.
“전하?”
“왜 부르나. 평민.”
“괜찮으신지요.”
“괜찮다. 그러니-.”
황자가 잠시 말을 멈추고는 고개를 들었다.
톡, 우뚝 솟은 콧날에 닿은 햐안 눈이 차가웠다.
재와 뒤섞여 눈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객실 안에 있는 자들도 주저앉아 허연 입김을 뱉어내며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았다.
“와, 눈! 눈이에요! 황자 전하!”
솔이 눈을 처음 보는 강아지 마냥 펄쩍 뛰며 좋아했다.
다들 평야 가득 떨어지는 함박눈을 보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살았구나.
아름다웠다.
방금까지의 격렬한 전투를 잊게 해주는 위로.
그러나 얼굴에 닿는 차가운 눈을 바라보는 황자의 얼굴은 무감정했다.
“드디어 북부에 도착했군.”
그의 눈은 이미 앞으로 있을 더 큰 싸움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은 아름다워 보여도 북부는 동부보다 더 차갑고 모질 거다.
****
제국을 넘어 대륙의 정보를 다룬다는 제국 정보부.
부처의 위치마저 기밀.
그들은 보통 남들이 놀랄만한 정보에도 무덤덤했다.
어제는 어떤 백작이 암살당했고 오늘은 어느 왕족이 사고를 가장한 암살을 당하며 내일은 국가 간 전쟁이 벌어질 거다.
이런 정보가 끝없이 쏟아지기 마련이었으니까.
그중에서도 정보부의 수장들은 더욱 무감각했다.
그런데.
“지금 뭐라고?”
종합 보고를 듣던 모두가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도통 놀랄 줄 모르는 그들의 얼굴에 깃든 것은 경악.
“아르한 황자가 탄 열차를 향해 악마들이 몰려들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북부에 사실을 알리고 수색을 실시하라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 이전엔 뭐라고?”
“황자께서 불꽃을 뿜어내신다라고-.”
“직전엔?”
“동부 전선 무명 요새에서 요주의 인물로 살폈던 레지스탕스의 수장을 단번에 참하셨다고 합니다.”
“또?”
“패잔병들을 규합하여 반군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셨다고 합니다.”
회의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두가 깊이 고민했다.
황자의 행적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결과 그들이 느낀 건 놀라움.
오랜만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이나 국가 간 전쟁보다 놀라운 소식을 들을 줄이야.
더군다나 악마들의 습격이라니.
“전하의 위치는? 안전은 파악이 되었나?”
“아직-.”
막 대답하려던 찰나.
“새로운 소식입니다!”
막 정보를 받아든 요원이 다급히 달려왔다.
모두가 황자의 소식임을 직감했다.
“악마는 밤새 모두 격퇴! 열차는 반파, 다행히 북부군을 만나 안전하게 이동 중!”
우선 황손이 악마에게 죽지 않았다는 게 가장 안심.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상급 요원에 따르면.”
황자를 겪어본 자의 보고.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황자의 행적은 파악했으니 이제 그에 대한 평가가 가장 궁금했다.
모두의 관심이 쏠렸고.
“기존 아르한 황자에 관한 정보는 전량 폐기 요망. 맞는 사실은 극히 일부. 황자의 계승 가능성 재평가 시급. 소문이 아닌 실제 관찰로 꾸준히 정보 갱신하겠음. 현재까지 개인 소견을 첨부하자면-.”
이어진 평가 보고에 경악했다.
정보를 전량 폐기하라니.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잠시 믿을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요원이 침을 꿀떡 삼키고는 상관들을 의미심장하게 둘러보았다.
대체 뭐라 쓰여 있길래?
“황자 아르한은 지금껏 자신의 능력과 실력을 숨겨왔음을 예상. 철저히, 모두의 눈을 속여가며. 불과 광기와 분노는 그의 가장 커다란 무기. 우선 보고를 마침···.”
정보부 가장 은밀한 회의실에 깊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자리에 앉은 모두가 느꼈다.
곧 제국에 바람이 몰아치리라.
그 바람은 황자가 도달한 북부로부터 시작될지 모른다는 강렬한 예감에 몸을 떨었다.
왜인지 회의실 공기가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