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을 시작할 시간
분명 거리에 피어나는 건 열기건만, 추위가 찾아온 듯 사람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황자가 던진 말에 번지는 공포가 요란했다.
북부인들의 표정을 본 백작의 골이 아려왔다.
대체 저 종잡을 수 없는 황자 전하께서는 왜 저러는 걸까.
기껏 모두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려고 했건만 단 한마디로 모든 걸 망쳐버렸다.
가만히라도 있었으면 북부인들의 감사가 그를 향했을 터인데.
“어, 어어. 그, 그러니까.”
“지금 방금 뭐라고···?”
방금까지만 해도 백작 주변에서 온기를 품은 채 감사를 재잘대던 이들이 수군거리더니.
못들을 말을 들은 것 마냥 침을 꼴딱꼴딱 넘겼다.
몇몇은 아예 못 들은 척을 하려는지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사람들의 그런 반응을 즐기기라도 하는 걸까.
“에스키모 사냥을 나가자니까. 백작!”
다시금 동토의 이름을 꺼냈고.
각양각색의 비명과 신음이 이어지더니 사람들이 순식간에 제 보금자리로 뛰어 들어갔다.
분명 모닥불에서 피어나는 온기는 그대로였으나 왜인지 차가운 한기가 속에서부터 치밀었다.
에스키모라는 이름을 듣곤 겁에 질린 건 비단 평민들뿐만이 아니었다.
“큼, 크흠.”
“전하. 어찌 그 이름을 아십니까?”
“백작님 말려야 하는 것 아닌지요?”
백작 주변에 선 기사들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굳이 에스키모의 이름을 북부인들에게 들려줄 이유가 없다.
괜히 불안감만 증폭시킬 뿐이다.
그러나 그런 반응 따윈 안중에 없다는 듯 황자는 환히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이전이라면 그런 황자를 극도로 혐오했을 터.
미련한 황자가 공포를 모르고 날뛴다며 조롱했겠지.
물론 겉은 미소를 띤 채 속으로만.
그러나 발자크 백작은 지금 보이는 황자와 그 주변에서 휘몰아치는 바람, 추위, 열기가 지금 북부의 상황과 똑 닮았다 느꼈다.
“대체···무슨 생각이십니까.”
절로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처음엔 조금 바뀌었나 생각했다.
관리자들의 머리통을 깰 땐 놀라웠다.
예티들과 에스키모를 만났다는 소식엔 경악했다.
한 번은 우연이지만 세 번은 필연.
자그마치 하루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게 단순히 황자가 미쳤기에 가능한 일인가?
아니, 의도다.
백작은 이제 확신했다.
황자는 변했고 지금 광기와 패악을 무기로 북부에서 무언가를 획책하고 있다.
남들이 들었다면 자신도 미쳤다 손가락질했겠지.
그러나 황자의 눈을 마주한 백작은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황자의 번뜩이는 광기 속, 차갑게 내려앉은 무언가를 엿보았다.
백작의 얼굴을 살피던 황자가 저 멀리서부터 다가왔다.
뽀드득, 뽀드득.
아직 녹지 않은 눈을 즈려밟는 발걸음이 고귀했다.
폭풍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백작이 문득 관자놀이에 흐르는 땀을 느끼곤 흠칫 몸을 떨었다.
언제였더라? 누군가를 마주하고 식은땀을 흘려본 게.
경지에 오른 이후 적을 마주하여 위축되어 본 적이 없건만.
황자를 마주한 순간, 지지 않기 위해 기세를 피워내었다.
그럼에도 식은땀이 고였다.
무력의 문제가 아니다.
기세와 격의 문제.
고귀한 혈통과 너무나도 거대한 광기가 백작이라는 단단한 성벽을 뒤흔들었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마치 생사결 직전 울리는 긴장감과 같았다.
이윽고 백작의 앞에 도착한 황자가.
“자네는 두려워하진 않는군. 그 이름을 듣고도.”
미묘한 웃음으로 백작을 관찰했다.
백작이 툭 치고 들어온 말에 억눌린 목소리로 답했다.
제가 듣기에도 눌린 목소리가 답답했다.
“전하는 두렵지 않으십니까?”
“내가 왜?”
“과거 초대 폐하와 자웅을 겨루었던 자들입니다.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북부의 저주입니다.”
“자웅?”
백작이 선택한 단어를 되풀이하며 얼굴을 찌푸리더니 씹어 뱉듯 지껄였다.
“북부에선 참패를 자웅이라 부르던가? 처음 알았군.”
마치 황자의 조롱에 분노하듯 우우우웅 귀곡성이 울렸고 백작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
다른 이들이 에스키모라는 이름에 흔들려 본질을 보지 못하는 동안 백작은 달랐다.
공포보다는 혼란을 느끼는 듯했다.
그 혼란이 향한 곳은 바로 나.
만족스러웠다.
또한 다행이었다.
북부의 수장이 어설픈 이름에 휘둘리는 머저리는 아니었으니.
“그래, 백작의 생각에도 에스키모가 그리 두려운 존재인가?”
굳이 물었다.
그에게 일깨워야 할 사실이 있기에.
나의 물음에 백작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두려운 존재가 아닌 조심해야 할 존재입니다.”
“강하기 때문에? 강한 존재는 벽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닐 텐데.”
“···맞는 말씀입니다.”
“그럼 천지 사방에 있는 괴물들에게 모두 별명을 붙여 두려워할 생각인가?”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 그런가? 백작이 할 말은 그뿐인가.”
내 고개가 갸웃거릴수록 주변 분위기가 팽팽해졌다.
대체 황자가 무엇을 원해 저런 문답을 이어가는지 모르겠다는 표정들.
막 도착한 다른 기사들 또한 백작과 나의 대치를 보며 끼어들지 못했다.
검이 아닌 말로 나누는 대련.
나는 의문으로 공격을 던졌고 백작은.
“가르침을 내려주소서. 전하.”
솔직한 물음으로 응수했다.
이래서 지혜로운 곰이 무서운 법이다.
그러나 나 또한 그에게 쉬이 의도를 내어줄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뜸을 들이며 느물거리니.
백작은 식은땀을 주변인들은 답답한지 한숨을 흘렸다.
그렇게 대치하다.
“동토는 두려워할 존재가 아닌 막고 더 나아가 점령해야 할 존재다. 동토라는 미지의 이름은 먼 과거 경계를 위해 붙였다더군. 지금도 그렇다 보이는가? 백작?”
“······.”
“다시 묻지 동토는, 아니 에스키모는 자네들이 두려워해야 할 상대인가?”
“아닙니다. 막아내야 할 상대입니다.”
“그런데 지금 주변은 어떻지?”
“!”
“시대가 변했고 자네들 또한 변했지. 오랜 미지는 본래 공포가 되는 법. 선조들의 뜻과 자네들의 뜻이 어찌 같을까. 백작은 북부를 덮은 눈 속을 보려 한 적이 있나? 두터운 눈 아래 땅을 확인한 적 있느냔 말이야.”
오랜 관습 아래 진실을 찾으려 해본 적 있냐는 나의 물음에 백작의 눈이 부릅떠졌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는 그와 백작의 눈을 피하는 기사들.
빠드득, 이를 가는 소리인지 아니면 지금껏 눈을 가리고 있던 관념이 깨지는 소리인지 모르겠으나.
“가보게 자네를 찾는 자들이 왔군.”
일부러 백작을 놔주었다.
그가 무언가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뒤돌아서서는.
“나는 사냥을 준비할 터이니 가서 답을 찾거든 오도록.”
황망한 표정을 짓는 백작과 휘하 기사들을 두곤 거리를 떠났다.
뒤돌아서서 멍청한 표정들을 감상하고 싶었으나 머리를 절대 돌리지 않았다.
그럼 멋이 떨어지기에.
[발자크 백작의 하위 운명 구태의연을 크게 포식했습니다. 개변 점수를 대량 획득했습니다!]
[대상이 장소의 진실을 확인하려 합니다! 그의 운명과 장소의 운명이 변화합니다!]
[갈림길 반역과 패배, 승리와 충성 사이 새로운 운명이 꿈틀댑니다!]
떠오르는 글자들이 만족스러워 미소지었다.
****
발자크는 그야말로 쫓기듯 성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무어라 보고를 들었는데 흩어진 단어로만 들렸다.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평생 단련하여 성에서 북벽까지 먼 거리를 달리는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다리가 저렸다.
아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저렸다.
‘심마다.’
백작이 제 상태를 단번에 짐작했다.
마나 연공술을 수련하는 과정 중 마음에 탈이 난 경우.
보통은 시기, 질투, 조급, 분노, 음란 등 내부의 요인으로 격발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백작이 경지에 오른 소드마스터라는 점.
이미 완성된 검사인 그가 황자의 말에 심마를 느꼈다.
그만큼 위험했고 충격적이었다.
집무실 자리에 앉은 그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가서 과거 놈들을 왜 동토라 부르라 했는지 자료를 찾아와라. 당장. 모두 가져와. 도움 될 자들을 모두 데려가라.”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명했다.
이어서.
“백작님, 카르디스 도련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들어오라 해라.”
과거 황자를 호위하러 보낸 맏아들이 집무실로 들어섰다.
백작과 닮은 외모, 넓은 어깨.
그 또한 아비처럼 검을 깊이 수련했는지 풍기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그런데.
“얼굴이 왜 그러냐?”
아들의 얼굴색이 엉망이었다.
평소 심지가 굳건하던 아들이건만 지금은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거무죽죽한 게 심상치 않았다.
아비의 의문에 아들 또한.
“그럼 아버지는 얼굴이 왜 그러십니까?”
같은 의문으로 답했다.
미간을 찌푸리던 부자가 각자 거울을 찾았다.
아버지는 집무실 책상에 달린 것을 아들을 스스럼없이 검면에 얼굴을 비추었다.
그리곤.
“으음.”
“음.”
침음을 내었다.
정말 둘의 얼굴이 똑 닮았다.
부자지간이라서가 아니라 무언가 심란한 색이 같았다.
문득.
“설마?”
“설마?”
“동토?”
“동토?”
둘이 같은 말을 꺼냈고 한숨을 내쉬었다.
큰아들 카르디스가 먼저 보고를 시작하여 꽤 오랜 시간 경과를 세세히 알렸다.
황자를 호위하기 위해 도착했고 기차를 따라 움직이던 중 악마의 흔적을 조사하라는 명을 받았단다.
물론 자신도 원했고.
혹시 악마가 살아 북부에 피해를 끼치면 안 되기에.
여기까지는 황자가 했던 말과 동일.
그렇게 악마의 흔적을 추적하던 와중.
“동토인들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권속들을 만났고 전투를 치렀습니다.”
“역시 그랬나. 그렇다면 악마와 동토가 연합했다는 뜻이냐?”
“악마를 경계하여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함께하는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협력 관계일 가능성이 높겠지.”
“일단 최악을 가정해야겠지요.”
백작이 눈을 감으며 확신했다.
평화가 흔들리고 있다.
동토가 찾아오고 있다.
잠시 불안한 공기가 집무실의 창문을 흔들었다.
부자가 같은 생각을 떠올렸는지 말없이 창문 밖 북부를 바라보던 중.
“명하신 자료들을 가져왔나이다.”
집사가 생각보다 이르게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벌써? 벌써 다 찾았나?”
“이미 세 시간이 지났습니다만. 빨리 찾으시라기에 최대한 빨리 가져왔나이다.”
“세 시간?”
“세 시간?”
아버지와 아들의 물음에 순간 집사가 혼동을 느꼈다.
어째서 백작과 젊은 백작이 같은 얼굴로 같은 물음을 하고 있는가?
집사가 맏아들이 돌아왔다는 걸 그제야 깨닫고는 정중히 인사를 올린 후 간단한 메모 하나를 내밀었다.
“남은 자료가 이것뿐인가?”
“축약했습니다. 긴 글 읽으시는 걸 싫어하시지 않습니까. 세줄 요약입니다.”
“훌륭해. 역시 북부의 실세다운 일 처리야.”
곧 글을 읽은 백작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세 줄은 간단했으나 함축적이었고 함축적인 만큼 극명한 사실을 내포했다.
1. 동토라는 이름을 붙여 그들의 개념을 약화해라.
2. 개념이 약해지면 그들의 존재가 흔들리니 시간을 들여라.
3. 시간을 들여 그들의 존재가 눈에 파묻히면 그때야 북벽 밖으로 나서라.
동토라 이름 붙인 이유는 그들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참말이었군. 경계를 위함이었던가.”
에스키모들의 전력을 약화하기 위해.
오랜 시간이 지났다.
먼 과거, 백작가가 세워진 순간부터 정해진 방침.
이후 누구도 건드린 적 없기에 의심 없이 받들었다.
그렇기에 고였고 오랜 시간 동안 변질되었다.
경계가 두려움으로.
문득 백작이 어린 시절 그랬듯 나이 든 집사에게 답을 구했다.
“이보게 집사, 나서라 하는데 어디로 나서야 할까. 동토라는 이름으로 부른지 오래되었으나 정작 나서지는 못했군. 그렇지?”
“그렇군요.”
“자네 생각은 어때. 그들의 개념은 약화되었나?”
“······.”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나 공포라는 다른 개념이 되지는 않았나?”
“···백작님.”
“아버지?”
“어릴 적 철모를 때 자네에게 자주 물었지. 그때도 나이가 있던 자네는 내게 많은 답을 주었어. 그래서 묻네. 우리는 제대로 나아가고 있던가. 어쩌면 늦지는 않았는가.”
이젠 같은 흰머리를 공유하기 시작한 백작의 회한 어린 물음에 집사가 침묵했고 젊은 아들은 의아한 듯 둘을 살폈다.
의문 없이 받아들였던 사실들이 잘못되었다는 확신.
이어서 백작이 그랬듯 집사도 그 시절처럼 푸근한 미소로 답했다.
“백작님. 잘못 나아갔다면 어떻습니까. 바로 잡으면 그만이지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돌아왔다면. 북벽 밖으로 나가라는 말은 대체 왜 아무도 따르지 않았던가. 왜 우린 안에만 있었지.”
그러나 혼탁한 백작의 마음은 집사의 말에도 쉬이 잡히지 않았다.
어린 시절 첫 전투에 나가기 전, 처음 연애편지를 쓸 때, 지금 부인에게 프러포즈할 때, 여기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성실한 맏아들이 태어나던 순간.
가장 중요한 순간 늙은 집사는 항상 백작을 위로했다.
지금도 그래야 하건만.
집사가 처음으로 침묵했다.
지금 백작이 느끼는 불안은 집사가 보낸 오랜 세월로도 어찌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저 아픈 표정을 공유할 뿐.
그때.
“전하! 황자 전하께서 북벽 밖으로 나가시려 합니다! 기사들을 이끌고!”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고.
그제야 집사가 다시 푸근한 미소를 회복했다.
“돌이킬 수 있도록 도울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북벽 입구에. 어서 가시지요. 떠나시기 전에. 나머지 일들은 제가 잘 처리해두겠습니다. 옆에 계신 카르디스님과 함께요.”
그제야 정답을 들은 듯 백작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고개를 끄덕인 그가 급히 검을 챙겨 일어나서는.
“기사단의 정예들을 준비시켜라! 나는 전하를 따라가겠다! 모두 준비하고 당장 북벽으로 튀어오라고 해!”
그대로 바람처럼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그런 주군의 뒷모습에 대고 천천히 고개를 숙이는 집사의 표정에 자랑스러움이 어렸다.
그래, 자신의 주군은 어릴 적부터 최고는 아니었으나 언제나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
이번에도 그러리라 믿었다.
****
평소보다 훈풍이 머무는 북벽.
유일하게 드나들 수 있는 거대한 문이.
쿠르르릉!
굉음을 내며 열렸다.
깊이 박힌 문을 따라 날리는 눈이 뿌옇게 일어났다.
병사들이 도르래 돌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공학이 정착한 지가 언제인데.”
이를 보며 황자가 혀를 찼다.
기껏 병사들이 문을 활짝 열었건만 황자는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뒤에선 수행원들이 의아한 표정을 짓길 잠시.
“전하?”
안드레의 의문.
“그래요. 안 나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으으.”
몸을 쓰다듬으며 불안해하는 솔.
“바람이 차갑습니다. 코트를 여미시지요.”
황자를 걱정하는 알프레드.
각자가 각자의 말을 떠들어 댔으나 황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그저 칼바림이 몰아치는 문밖을 보고 있을 뿐.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이윽고.
“전하! 황자 전하!”
백작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가 미소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왔는가.”
백작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드디어 밖에 나갈 결심이 섰는가. 백작.”
황자의 담담한 말에 백작이 고르던 숨마저 멈추고는 눈을 번뜩였다.
마치 산이 일어나듯 거센 기운이 북벽 앞을 채우자 열린 문이 꽉 막힌 듯 답답해졌다.
그리곤 자신을 기다려준 황자를 향해 고함치듯.
“사냥에 데려가 주십시오!”
부탁했다.
몰아치는 기세에 눈이 휘말려 올랐고 황자의 입술도 덩달아 끌려 올라갔다.
“무엇을 잡으러 가는지는 알고 있지?”
“에스키모!”
백작의 목소리가 북벽을 울렸고 모두가 숨을 죽였으나.
황자의 눈 속에선 광기와 살기가 버무려진 불꽃이 타다닥 발화했다.
의지가 옮겨붙듯 덩달아 백작의 눈에서도 강한 의념이 일어났다.
그래, 시간이 되었다.
“드디어 모였군. 나가자, 사냥을 시작할 시간이다.”
성문을 넘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지금껏 몰아치던 블리자드가 뚝 멎었다.
고요 속 사냥꾼들이 눈 밟는 소리만이 북벽에 숨어있는 병사들의 가슴을 울리니.
백작가가 세워진 이래, 막기만 하던 북부가 먼저 공세를 취한 순간이었다.
미친 황자의 불꽃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