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40화 (40/200)

지켜라, 지금 당장

북벽 밖은 안과 완전히 달랐다.

발목을 넘어 무릎, 때로는 몸 전체가 잠길 정도의 눈이 쌓여있었고 이를 헤치고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빠질 지경.

바람은 날카롭다 못해 몸을 밀어낼 만큼 묵직했고 한번 불 때마다 블리자드가 불듯 바닥 가득한 눈이 역류하며 시야를 가렸다.

감각이 혼란스러운 와중 눈 치우는 소리와 헉헉대는 숨소리만이 가득하다가도.

꽈드득, 머리 위 쌓인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무가 부러지며 나뭇가지와 눈 떨어지는 소리가 굉음처럼 울렸다.

이게 괴물의 울음인지 눈 떨어지는 소리인지 모를 정도.

모두가 침묵한 채 흠칫 발걸음을 멈추곤 주변을 경계했으나.

“저, 전하. 먼저 가시면 위험합니다.”

황자 아르한만은 겁 없이 당당히 걸음을 옮겼다.

아니 단순히 당당히 옮기는 것만은 아니었다.

“왜 이리 거치적거리는 게 많은 거냐.”

강철성과 수도의 반듯이 닦여있는 길과는 다르게 눈과 여러 잡동사니가 가득한 험로에 짜증을 부렸다.

그가 거검을 붕붕 휘두를 때마다 주변에 있는 이들이 움찔움찔 물러났다.

사실 몰려올 몬스터보다 지금 패악을 부리는 황자가 더 위험했다.

몬스터의 위협은 반격이라도 할 수 있지만 황자의 패악은 반격이 불가능하니까.

“전하 제가 나서겠습니다.”

결국 보다 못한 백작이 직접 검을 뽑아 들며 나섰고 하얗게 빛나는 검을 몇 번 휘두르자.

앞을 가로막은 나무들과 눈더미가 숭덩숭덩 잘려나갔다.

그 광경을 보며 안드레를 비롯하여 청익 기사단의 정예들이 입을 헤 벌렸다.

잘린 눈과 나무들의 단면이 거울처럼 매끄러웠다.

마치 현상을 베어낸 것 같은 참격.

백작의 실력을 본 황자의 입술이 비죽 솟아올랐다.

“뛰어난 실력이로군.”

“감사합니다. 부족한 실력으로 눈을 어지럽히지 않았다니 다행입니다.”

“실력은 충분하니 길을 계속 뚫도록.”

“계속이요? 제가요?”

“그래, 설마 실력 자랑하려고 앞에 나선 건 아닐 거 아닌가. 백작이 가장 뛰어나니 직접 앞에 서야지.”

“아, 저 혼자요?”

“왜, 내가 같이 뚫을까? 이 고귀한 손으로 직접? 백작의 손이 나보다 고귀하던가?”

“···뚫겠습니다.”

황자의 번뜩이는 눈을 마주한 백작이 어쩔 수 없이 선봉에 서서 다른 이들의 길을 뚫었다.

기사들이 불편한지 눈치를 살폈으나 황자가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어찌하기 어려웠다.

“전하 차라리 제가.”

“닥쳐라. 실력도 안 되면서 나서는 건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평민.”

“넵.”

안드레가 용기를 내보았으나 바로 진압당한 후 구석에 찌그러졌다.

이후로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백작이 휘두르는 검의 절삭음과 숲의 기묘한 소리만이 뒤섞여 울렸다.

황자는 그저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방향을 지시하며 움직였다.

“저기 전하. 어디로 향하는 걸까요? 우리. 닥치라면 닥칠게요.”

이번엔 솔이 참지 못하고 물어왔고.

“사냥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 평민 표정 바로 해라. 지난 하수구 기억하나?”

의외로 황자가 순순히 답해주었다.

안드레가 솔에게는 닥치라 하지 않아 섭섭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어지는 전하의 말에 얼른 집중했다.

“네 기억합니다.”

“강한 상대를 잡기 위해 우리가 한 일은 무엇이었지?”

“으음, 놈이 차려놓은 밥상을 엎었지요. 놈의 계획을 모두 어그러뜨렸으니까요.”

“꽤 좋은 비유였다. 그래 평민의 말을 빌리자면 우린 지금 밥상을 엎으러 가는 길이다.”

“밥상을 말입니까?”

“뭐 따지면 밥상이라기보다는 요리 하나 정도 망치러 가는 일이지만 말이야. 애피타이저일지 메인일지는 봐야겠지.”

황자의 알 수 없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길 잠시.

다시 묵묵히 걸었다.

“도착했군.”

약 이틀간 북부의 눈밭을 걷다 보니 황자가 도착을 알렸다.

역시나 어디에 도착했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으윽, 냄새.”

“어. 이 냄새는?”

“종종 맡아봤는데. 무슨 냄새였지?”

“너무 독해서 헷갈리는데. 뭐였더라?”

짙은 비린내가 설풍을 타고 퍼졌다.

지린내가 얼마나 심한지 코가 아릴 정도.

특히 백작은 이 냄새를 어릴 적부터 지겹게 맡아왔다.

“설원 오크?”

북부의 또 다른 주민이라 불릴 정도로 흔히 발견되는 몬스터.

보통 진녹색 피부를 지닌 오크들과 다르게 푸른 피부와 검은 갈기가 등 전체를 덮은 특이 종.

중부에 사는 녀석들보다 덩치는 조금 작지만 뼈가 옹골차고 몸놀림이 재빨라 생각보다 까다로운 녀석들.

그런데 풍기는 비린내의 크기가 심상치 않았다.

황자가 가리킨 방향으로 백작이 검을 휘두르며 빽빽하게 뭉쳐있는 나뭇가지들을 헤치고 나아가자.

“허업!”

“이런 제기랄.”

“저렇게 많은 오크가?”

“군락, 아니 이건 대군락이라는 말이 어울리겠군.”

깊이 파인 분지 안, 지금껏 본적 없는 거대한 군락이 눈에 띄었다.

수없이 늘어선 집과 모락모락 올라오는 연기들.

나름의 생존방식을 이어가는 오크들의 모습.

소름 돋는 점은.

“어째서 지금까지 관측이 안 된 거지?”

“북부 기사들이 놓친 건가?”

“그럴 리가. 우린 한순간도 긴장을 놓은 적 없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군락을 이제야 발견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북부에서도 이러한 거대 군락의 존재를 몰랐다는 점.

그들이 게을러서 또 멍청해서도 아니었다.

지금껏 주기적으로 북부 병사들이 순찰을 다녔고 거대한 군락이 발견되면 즉각 기사단과 정예병들을 투입하여 무력화했다.

분명 그랬을 터인데.

특히 이런 대규모 군락이라면 소리, 냄새, 불빛 등이 보이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천장을 봐라.”

그때, 그들의 상념을 자르는 황자의 말이 이상했다.

하늘이 아닌 천장이라니.

모두의 고개가 위를 향했고.

놀라 눈을 크게 부릅떴다.

믿을 수 없는 풍경.

황자의 말대로 대군락 위에는 하늘이 아닌 천장이 존재했다.

“나무, 눈, 얼음?”

“미쳤군. 이건 대체.”

“얽힌 나무 위에 눈이 쌓였고 자연스레 시야를 가렸군. 그 사이 아래에서 올라온 열기에 눈은 얼음이 되었고 곳곳에 거대한 고드름이 땅으로 뻗어 내려와 기둥을 형성했다. 자연스레 눈을 가리면서도 온기가 감도는 거주지가 만들어졌지.”

이어진 황자의 분석에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황자 또한 전생에 보았던 보고서에서 발췌한 내용.

허나 여기 있는 이들은 그걸 모르니 그의 지식과 직관력에 놀랄밖에.

경탄과 혼잡함이 뒤섞였다.

대체 종잡을 수 없는 자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못난 황자라는 소문대로 신경질을 내어가며 막말을 내뱉더니.

갑자기 지금은 현자라도 된 것처럼 숨겨져 있던 오크들의 대군락을 찾아내다 못해 단번에 상황을 분석했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가.

황자가 군락을 보며 씨익 웃으며.

“이상하지 않아 백작? 정말 이 군락이 우연에 우연이 겹친 자연의 축복일까?”

“······.”

던진 물음에 백작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졌다.

빠드득, 이를 가는 소리와 함께 선명하게 튀어나온 턱 근육이 움직거렸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이나 마주해야 하기에.

그는 잠시 자신의 눈 앞을 가린 껍질을 깨어내듯 이를 짓씹고선.

“자연의 축복이라 하기엔···우연이 과합니다. 이건···아니 이것과 비슷한 것을···들은 적 있습니다.”

억눌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평소엔 이런 적 없건만 요즘 따라 탁한 목소리가 자주 나왔다.

그의 오래된 기억 속, 창문 밖 몰아치는 설풍과 안온한 잠자리.

옆에는 달큼한 냄새를 풍기는 향초와 더불어 편안히 울렸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하지만 친절한 목소리에 담긴 내용은 창문 밖 어둠과도 같이 침침했고 불길했다.

그때 들었던 전설 중 하나가 절로 떠올랐다.

물론 비할 수 없을 만큼 열화판이기는 하나.

분명 어린 시절 들었던 그것과 닮았다.

“이글루.”

그의 답에 황자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에스키모의 보금자리라 불리는 이글루와 닮았어. 많이 조악하긴 하지만 말이야.”

답을 들은 북부인들의 표정은 황자의 표정과 다르게 기절할 듯 창백해졌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이글루와 비슷하게 생긴 오크들의 보금자리라니 그 뜻은 즉.

“오크들이 에스키모를 따른다는 말씀입니까? 이 많은 오크들이?”

백작을 따라온 한 기사의 창백한 물음에.

“오, 저기 늑대들이 보이는군. 백색 늑대들인가? 색이 좀 이상한데?”

황자는 짓궂은 표정으로 말을 돌렸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으르르릉, 컹! 컹컹!

2m는 쉽게 넘어 보이는 회색 털을 지닌 늑대들이 모여 있었다.

낯선 냄새를 맡았는지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생긴 건 분명 북방 백색 늑대이건만.

털 색도 다르고 크기는 작아졌으며 성격이 사나워 보였다.

본디 용맹한 기사나 병사에게 백색 늑대 훈장을 수여할 만큼 북방 백색 늑대는 영물로 취급받았으나.

지금 침을 흘리며 짖어대는 놈들은 영물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러나 진짜 놀라운 장면은 그다음.

쉬이이이!

어디선가 나타난 오크가 크게 지껄이자 늑대들이 일제히 울음을 멈추었다.

오크가 늑대를 다룬다.

말도 안 되는 일.

그 자존심 강하며 고고한 백색 늑대를 오크들이 길들였다?

“보아하니 종을 개량한 거 같은데? 오크들이 그럴 수 있나?”

그것도 종을 개량해서?

말도 안 된다.

종 개량과 사육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이 있었다면 진즉에 오크들이 왕국을 세웠겠지.

황자의 말은 물음이었으나 대답이기도 했다.

명확한 증거를 발견한 중부 기사들이 놀랐고.

북부 기사들은 하얗게 탈색된 얼굴로 비틀거렸다.

그저 충격을 받은 게 아니라.

“어찌. 이런 일이.”

“우리의 실책이군요.”

“백작님 당장 기사단과 병사들을 일으켜야 합니다.”

“동토가 몬스터들을 조종하다니요.”

자신들의 실수가 부끄러웠고 고통스러웠다.

또한 진정한 적을 몰라보고 헛된 힘을 쓴 지난 시간이 안타까웠다.

특히 백작의 표정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

감히 누구도 그들을 탓하지 못했다.

물론.

“멍청하고 미련한 자들 같으니라고. 놀라지만 말고 본질을 좀 보아라. 답답하다. 그러니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하고 방치했지. 이런 머저리 같은.”

미친 황자는 그딴 거 신경 쓰지 않았다.

대놓고 그들을 타박했고 북부인들이 숨이 턱 막힌 얼굴을 하자.

“그딴 표정 좀 집어치워라. 놈들이 에스키모와 결탁을 했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놀라기만 해서야 뭐가 바뀌지 대체?”

“바뀌는 것··· 말입니까?”

“그래 너희들의 임무가 달라졌나?”

“아닙니다.”

“발자크 백작, 변경백의 임무, 북부의 임무가 무엇인가. 자네들은 무엇을 위해 그리 희생하고 이 추운 북풍을 견딘 것이야? 멍청한 표정으로 질린 얼굴을 한 채 감탄사나 뱉어내기 위해 이 자리까지 따라왔나?”

“아닙니다.”

“정확히 대답해. 자네는 여기 왜 왔어? 왜 그렇게 지금까지 고련하며 높은 경지에 도달했는가.”

황자의 물음에 백작의 얼굴에 서서히 혈색이 돌아왔다.

그래, 그는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

북부의 자존심이자 모든 것.

“외풍으로부터 제국을 지키는 것. 그러기 위해 쇄신하고 굳건히 서는 것. 그것이 북부의 역할이며 이를 수행하기 위해 선정된 것이 바로 저 발자크 드보르작입니다.”

백작의 당당한 선언에 주변에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비록 앞에는 오크 군락지가 있으나, 아마 앞으로 이보다 더욱 많은 적이 예비 되어 있겠으나.

지금, 이 순간 황자의 물음과 백작의 다짐은 이전 건국제와 초대 변경백의 맹세와도 같이 고결했고 위대했다.

“그 외풍에 포함되는 것은 무언가? 단순히 블리자드가 끝인가?”

“아닙니다.”

“무엇이지?”

“북부를 위협하는 모든 것. 설령 그것이 과거 건국제와 싸웠다던 에스키모라도! 그를 베어 넘기는 것! 발목을 붙잡아서라도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저와 드보르작 가문, 북방의 임무입니다!”

백작이 속삭이듯 답했으나 말끝마다 찍히는 격정이 가슴을 울렸다.

적들에게 둘러싸인 터라 소리는 작았으나 안에 담긴 뜻과 결심은 거대했다.

숲의 음산한 침묵도 그의 고결한 결심을 빛나게 하는데 한몫했으리라.

백작의 선언에 황자가 씨익 아름답게 미소지었다.

“그래, 바로 그거다. 어차피 지키는 것이 임무. 적이 강하든 약하든 너희들의 임무엔 변화가 없다. 그저 막아낼 뿐. 놀라는 게 아니라 어찌 막아낼지 고민할 시점이야. 지금은. 난 그러기 위해 왔는데 너흰 아니었나?”

황자의 말에 북부인들의 눈에 격정이 들어찼다.

그래 에스키모와 결탁을 했든 지금껏 본적 없든 대규모 군락이든 관계없다.

막는다.

북방의 추위가 제국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도록 막는다.

뜻이 서자 그들의 허리가 펴졌고 당당함이 얼굴에 들어찬 경악을 몰아냈다.

비로소 북부인다워졌다.

“전하! 명하소서. 북부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소집하여 북벽 밖을 휩쓸겠나이다!”

“휩쓸겠나이다!”

백작의 요청과 북부 기사들의 요청이 겹치며 하모니를 만들어내었고.

무릎을 꿇은 북부인들을 따라 중부 기사들 또한 기세를 타고 같이 무릎을 꿇었다.

그들 또한 기사, 어찌 이런 장면에 감동하지 않겠는가.

모두가 무릎을 꿇은 가운데 홀로 우뚝 선 황자의 고고한 자태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그의 백금발이 살며시 휘날리자 진득한 미소와 진홍색 눈동자가 더욱 흐드러지게 빛났다.

피로 물든 백색 코트를 여미는 모습이 담담하여 특별했다.

“그래, 자네가 지키겠다는 맹세엔 나 또한 포함되는가.”

“물론입니다! 생명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그러니 명령을!”

백작이 황자를 마주하며 당당히 지키겠노라 맹세했고.

“좋다, 목숨을 다해 지켜라.”

황자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기쁜 표정을 지으며 전투를 기대할 때.

이어진 심상치 않은 말.

“지금 당장.”

이를 끝으로 황자가 탓, 발을 굴러 바로 뒤 분지로 향하는 절벽으로 몸을 날렸다.

공중에 머문 황자의 모습과 입가에 떠오른 짙은 미소와 펄럭이는 백금발과 짓궂게 빛나는 광기 어린 눈동자가.

“전하!”

순식간에 밑으로 꺼졌다.

잡을 사이도 없었다.

모두가 놀라 경악했고.

“모을 시간 없다! 지금이 사냥 시간이라 말했을 터!”

황자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멀어지듯 길게 남아 메아리쳤다.

**

분지로 뛰어내린 순간 거센 바람이 귓가와 머리를 어지럽혔다.

마지막 보았던 얼굴들을 떠올리자 웃음이 터졌다.

칼에 맞기라도 한 듯 울리는 억 소리와 번지는 경악.

화들짝 놀란 표정들이 어찌나 즐겁던지.

“이러다 진짜 미치는 거 아닌가 몰라.”

지금까지는 컨셉 반 진담 반이었는데 미친 황자의 삶이란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문득 뒤를 돌아보자.

“저은하아아! 으아악!”

덩달아 뛰어내린 안드레가 팔다리를 휘저으며 고함쳤고.

“전하! 같이 가요!”

옆에는 마법으로 몸을 띄운 솔이.

“······.”

“기껏 멋진 말 다 했는데. 진짜 멋졌는데.”

벽을 타고 달리는 알프레드와 발자크 백작의 모습이 보였다.

백작의 투덜거림에 한 번 더 웃음이 터졌다.

맑은 웃음을 따라 전신에 맑은 불이 번져나갔다.

심장에서 울컥울컥 퍼낸 불이 전신을 넘어 브레이커를 뜨겁게 달구었고.

화르르륵!

몸을 때리는 거센 바람과 뒤섞여 이지러지는 통에 온몸이 간질거렸다.

상쾌하다.

공중에서 자세를 바로잡고는 퍼져나가는 불을 거검 끝에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불을 모으고 또 모았다.

마침 주변을 스치는 바람도 끌어당겨 안에 잔뜩 담았다.

거검 브레이커의 전신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불과 웃음, 경악이 뒤섞인 소란에.

좀 떨어진 땅.

“크르르? 크륵?”

“취르르륵!”

야밤의 소란에 막 집에서 나와 고개를 돌려대는 오크들의 너저분한 이목구비가 점점 가까워졌다.

보기 싫게도 생겼다.

그래서.

“타올라라!”

땅에 떨어져 내림과 동시에 거검을 크게 내리 그으며 담은 불 전부를 앞으로 쏘아내었고.

눈과 땅을 녹이며 내달린 거대한 적염이.

푸화학! 놈들의 집과 육신을 태우며 폭발했다.

그제야 뿔 나팔 소리를 시작으로.

뿌우우우!

대군락이 깨어났고.

움막과 오크들을 삼키며 번지는 불을 보자 나의 광기 또한 불쑥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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