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48화 (48/200)

이제 누가 반역도지?

“더하도록.”

황제의 나지막한 허락이 떨어졌고.

“폐하?”

“더하라니요?”

신하들이 어벙한 표정으로 황제를 살폈다.

지금 뭐라고?

감히 황제의 앞에서 상스런 욕을 뱉었건만 벌을 내리는 것이 아닌, 더 하라니.

물론 욕을 먹는 당사자인 신하들과는 달리.

흐으읍, 욕을 하는 당사자인 황자는 신나 숨을 커다랗게 들이켰다.

얼마나 하고 싶은 욕이 많으면 가슴이 저리 부풀도록 공기를 빨아들인단 말인가.

무슨 숨 들이켜는 것만 봐서는 드래곤이 브레스를 쏜다고 해도 믿겠다.

모두가 황자의 붉은 입술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곧 터져 나올 폭언과 욕설을 막고자.

“전하! 신하들에 대한 모욕을 멈추소서!”

“그만하셔야 합니다!”

“폐하! 멈추셔야 옳다 아룁니다!”

놈들이 일제히 입을 열어 소리를 내었으나.

“이 버러지 새끼들! 한 번만 더 입을 벌리면 내 직접 목을 자르겠다! 아니면 귓가에 욕을 박아줄까! 오냐. 한 명씩 귀를 닦고 말씀을 깊이 새기도록!”

버럭 외치는 황자의 목소리가 압도적이었다.

체통도, 주변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았다.

상관없다, 상스러운 욕을 뱉어도 그 외견은 그대로 고고하고 오만하며 귀했다.

유독 자신을 노려보는 고관에게 성큼성큼 다가간 황자가 상대의 귓바퀴를 붙잡고선.

무어라 속삭이기 시작했고 상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대체 무어라 속삭였기에 저리 파들파들 떤단 말인가?

황자가 씨익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떨어지고 나서야.

“허, 허억.”

그가 숨 막히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주저앉으려 했다.

그러나.

“아직 안 끝났다.”

황자가 그의 귀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쓰러지려는 신하의 귀를 꾸욱 잡은 채 계속하여 그의 귀에 속닥거렸다.

“끄, 끄아아악!”

귓가에 박히는 살벌한 폭언에 견디지 못한 고관이 길게 비명을 뽑아내며 고통스러워했다.

발버둥을 치길 잠시.

상대가 말을 들을 정신이 아님을 확인한 황자가 그의 귀를 뜯어버렸다.

울리는 비명 속, 뜯어낸 귀를 바닥에 던져버리곤 주변을 쓸어보았다.

“말은 그리 잘하면서 듣는 태도는 엉망이로군. 다음, 귀를 열고 내 훈계를 들을 자가 누구냐.”

황자가 어전에 이질적인 피 냄새를 풍기며 어슬렁거렸다.

근처에 선 신하들을 바라보는 눈과 미소에 감도는 광기가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정상이 아니다.

마치 통제되지 않는 맹수 한 마리를 마주한 기분.

아무리 황자라지만 감히 감히 이럴 순 없다.

신하들의 얼굴에 서린 분통함을 읽은 것일까.

“부당하다 생각하나? 황자가 감히 신하에게 모욕을 주고 귀를 찢은 게?”

침묵으로 긍정하는 이들을 보곤 황자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그럼 너희도 황자로 태어나던가.”

“!”

어전이 충격에 휩싸였다.

미쳤구나.

아무리 고귀한 피를 타고 태어났다지만 이런 오만한 말이라니.

그러거나 말거나 황자가 질린 신하들의 얼굴을 보며 크게 웃었다.

맑은 웃음과 대비되는 짙은 광기가 떠돌았다.

신하들이 일제히 황제와 황자를 번갈아 보았다.

방금 발언은 정치적으로 커다란 문제가 될 수 있다.

계승권이 문제가 아니라 폭군의 자질이니.

그때.

“아르한, 장난이 심하다.”

황제가 장난이라는 말로 단번에 신하들의 불만을 일축했다.

장난? 무엇이? 욕을 하고 귀를 찢은 것이?

아버지가 발휘한 정치적 수단을.

“농이 과했지요? 죄송합니다. 제대로 설명하겠나이다.”

황자가 자연스럽게 받았다.

“내가 너희들에게 욕을 하고 귀를 찢은 이유를 설명하겠다.”

황자가 말한 농은 너희도 황자로 태어나던가 이 부분뿐.

그렇다면 왜 욕을 하고 귀를 찢었느냐?

“전쟁을 앞둔 제국의 안전을 위태롭게 했으니 본래는 목을 잘라야 함이 맞다. 그러나 폐하의 자비로 욕과 귀 하나로 끝냈으니 감사할 일이다.”

다 너희 잘못이란다.

오히려 봐주었으니 감사하란다.

황자가 반론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거검을 철그럭거리며 말을 이었다.

“북부 모닥불 관리자들의 비리를 외면했다. 장부를 확인해보니 그들에게 돈을 받아먹은 놈들이 부지기수. 이로 인해 북부가 척박해졌고 힘을 다해 병력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너희는 무엇을 했나. 따뜻한 중부에 앉아 지원하지 말란 말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했을 뿐이지. 돈을 받아먹은 대가로 말이야.”

“······.”

“심지어 북부에 나타난 에스키모와 몬스터들의 결탁에 대해 상소도 올렸지. 그런데 북부를 지원하기 위해 오는 군사가 하나도 없더군. 모두 제 영지를 지키기 바빴다. 마치 북부는 이미 버린 땅처럼 말이야. 그런데 반란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벌떼처럼 몰려들더군.”

황자의 말이 이어질수록 놈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제국의 위협을 외면하고 제 배만 불리려 한 놈들 앞에서 내가 왜 정중해야 한단 말이냐. 대답해라. 단순히 너희가 신하라서? 개소리.”

“······”

“난 분명 북부가 처한 위기를 상세히 적어 상소를 올렸다. 백작의 직인까지 찍었지.”

그의 말에 이번엔 황제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상소라 했느냐?”

“네 폐하. 북부의 병력을 모으기 전, 에스키모가 나타났고 북부 몬스터들과 결탁했다는 사실을 정리하여 상소를 보냈습니다. 긴급 사안으로 북부 변경백의 직인을 찍었으니 분명 강철성에 도착했을 터.”

“나는 듣지 못했다. 누가 상소를 걸렀는가.”

이젠 분노가 황자를 넘어 황제에게까지 미쳤다.

북부의 긴급한 상소를 무시하다니.

“누구야!”

평소 화를 내지 않기로 유명한 현 황제의 고함이 어전에 울렸고 대신들이 고개를 수그렸다.

제국 전역에서 몰려드는 상소를 관리 감독하는 부처의 담당 신하들이 목을 움츠리며 떨던 중.

“소, 소, 송구하옵니다. 폐하.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생각하여 추후 보고드리고자 제하였사온데. 그것이-. 분명 추후 보고를 드리고자 하여서-.”

하나가 몸을 웅크리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고, 옆에 있던 놈들이 덩달아 엎드렸다.

황제가 그 꼴들을 보고는 이를 꽉 물었다.

내용을 확인했음에도 상소를 빼먹었고 지금까지 북부를 버려야 한다며 소리를 질렀던 건가.

“전하 에스키모란 존재는 불확실하며 이전 패하였던 귀신의 잔재일 뿐입니다. 함부로 제국을 어지럽힐까 두려워 결정을 미루었던 신하의 충정을 헤아려 주소서!”

“헤아려 주소서!”

“저희의 말들 또한 제국을 염려하여 한 말이니 헤아려 주소서!”

“헤아려 주소서!”

“불확실하며 거짓일 가능성이 높은 위험보다 반란이 제국의 현실적인 위협인 줄 아룁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누군가의 말을 시작으로 이번엔 신하들이 에스키모를 믿을 수 없다 떠들었다.

늘 이런 식이다.

그저 제국을 생각하여 묵과했단 거짓말.

어떤 소리를 하든 결국은 제국을 생각해서 했단다.

지금까진 통했을지 몰라도 미친 황자는 봐줄 생각이 없었다.

“모두가 폐하의 눈을 가리고, 북부를 버리자 하였기에 이리 무리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선 추후 벌을 받겠나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선 분명히 말해야겠습니다.”

그가 루카르에게서 커다란 상자를 건네받더니.

“에스키모는 실존하는 위협입니다.”

당당히 이를 열자.

- 끄흐으아아아악!

어전에 있는 모든 자들의 머릿속에서 끔찍한 목소리가 울렸다.

마치 뇌를 파고드는 듯한 음성.

황자의 욕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절망과 괴로움을 자아내는 비명.

상자 안에는 뻥 뚫린 눈과 입을 떨어대는 에스키모의 머리통이 들려있었다.

지난 싸움에서 놈의 목을 자른 후 몸은 모닥불 안에 머리는 마법으로 처리된 봉인 상자 안에 넣어 왔으니.

바로 지금 보여줄 증거로써 사용했다.

머릿속을 파고드는 귀신의 시린 고함을 배경으로.

“이러한 놈들이 북부를 넘어 건국제의 신비 모닥불과 제국을 넘보고 있습니다! 폐하! 이것이 전쟁이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평생을 북벽에서 찬 바람을 쐬며 적을 막았던 북벽을 살피소서!”

황자의 절절한 외침이 황제의 마음을 울렸다.

“여기서 북부를 버려야 한다며 진실을 외면했던 신하들과! 북부 한풍 속 밤하늘의 별만큼 많은 몬스터들의 머리를 세아려가며 싸워온 북벽 중! 누가 반역도입니까!”

황자의 쐐기 같은 말이 어전에 강하게 꽂혔다.

주변에서 경계하던 기사들의 검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황자의 절절함에 목이 메었다.

나풀거리는 가녀린 백금발, 노기와 간절함을 잔뜩 머금은 축축한 진홍 눈동자.

상자를 쥔 손에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새하얗게 떨렸다.

얄상하며 긴 목에 닿은 검과 흐르는 피에도 아파하지 않았다.

그가 진정으로 아파하는 것은 바로.

“늙어서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폐하의 눈을 가리고! 북부를 버리자고! 제국이 처한 위협과 적을 외면하자고 한 이들입니까! 아니면! 인정과 치하 하나 없이 제 목숨 걸고 평생 싸워 노병이 되어버린 이들입니까! 여기 죽지 못해 반역도의 연기까지 하며 폐하를 만나려 한 늙은 기사와 목숨을 도외시하고 달려온 아들입니까!”

제국의 썩어버린 현실.

황자의 기개와 충정이 자리에 있던 기사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아, 북벽이여 축복이다.

저런 주군이 그대들 옆에 있다는 것이!

황자가 핏발선 눈으로 신하들을 바라보며 다시금 읊조렸다.

“과연 누가 반역도란 말입니까.”

타악, 상자의 뚜껑을 닫자.

스산한 공기와 황자의 물음만이 어전에 켜켜이 떠돌았다.

광기와 분노에서 시작하여 마지막은 애원과 충정을 보인 황자.

너무나 다른 간극에 저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정말 그 미친 황자가 맞단 말인가 의문이 일어날 정도.

이윽고.

“황자의 말이 옳다. 신하들은 혹여라도 입을 열지 마라. 전시법에 따라 목을 칠 것이다.”

“!”

황제의 판결이 떨어졌다.

황자와 북부가 이겼다.

그리고.

씨이익, 황제가 보이지 않게 등 돌아선 황자의 얼굴에 피어나는 잔혹하며 짓궂은 미소에 모두가 전율했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제 권력과 이익만 탐하던 탐관오리들 앞에 최악의 적이 나타났음을.

****

이후 처리는 순식간이었다.

명분을 쥔 황제는 거침없이 일을 진행했다.

상소를 거른 자는 우선 가둔 뒤 혹시 다른 이의 사주는 없었는지 조사하기로 하였고.

부처 관계자들은 대부분 파직을 면치 못했다.

아쉬웠다.

나였으면 모조리 목을 잘라 부처 문 앞에 걸었을 텐데, 역시 황제는 모질지 못했다.

이후로도 관련자들에 대한 간단한 문책과 처벌이 이루어졌다.

역시나 약했다.

나 같았으면 어전을 피로 채웠을 거다.

대신 한 가지는 확실히 정리했다.

“북부의 반역은 없던 일로 하겠다. 혹여 적을 맞이한 이 순간 반역이란 단어를 입에 올려 제국을 어지럽히는 자는 반역도로 취급할 것이다.”

군말 없이 고개를 숙이는 신하들을 보며 황제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랄까 시원하기도 하면서 좋기도 하면서 회의감이 드는 그런 표정.

하긴 이 드센 놈들에게 매일같이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소리나 듣다가 진짜 죽게 생기자 물러가는 꼴이 우스울 만했다.

[대상의 운명 화병, 우유부단, 정보 차단, 조작, 망설임을 크게 포식했습니다! 개변 점수를 대량 획득했습니다!]

황제가 하나하나 일을 처리해 나갈 때마다 운명이 변했다.

아마 전생엔 이러한 운명에 짓눌려 북부를 잃고 폭군에게 죽었나 보다.

그리고 그런 황제를 보고 있으려니.

“왜 그렇게 봐? 검 거둔 게 그리 아쉬운가?”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 설마 진짜 그리 생각했나 루카르 경? 제국의 재앙을 처리할 좋은 기회를 놓쳐 아쉽다는 생각이라도 한 거야?”

“아닙니다. 절대로.”

늙은 기사의 눈빛이 심히 따가워 괜히 괴롭혔다.

전대 백작이 무언가 알 수 없는, 느끼한 눈으로 자꾸 나를 바라보았다.

곧 이유가 떠올랐다.

[루카르 드보르작의 운명 광기, 분노, 극한, 실망, 실패를 포식했습니다! 신비 점수와 개변 점수를 획득했습니다! 새로운 운명이 태동합니다!]

[퇴색된 운명 주군에 대한 신뢰와 충성이 새로이 싹 터 당신을 향합니다!]

새로운 주군?

설마 하는 생각으로 옆을 바라보니 날 바라보는 백작의 눈이 심히 반짝였다.

이거 곤란한데.

그러니까 난 이 믿음을 배신할 수밖에 없다.

믿음과 충성이 미움과 증오로 바뀌지 않으면 다행일 텐데.

내가 계획하는 북부의 전쟁은 그러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

그러나 기존 계획을 철회할 생각은 없었다.

작은 충성과 믿음을 잃더라도 더 큰 뜻을 이루어야 했다.

그래야 앞으로 닥쳐올 제국의 미래를 구할 수 있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황자와 전대 백작만 남고 모두 나가도록 하라.”

황제의 축객령이 떨어졌고 신하들이 도망치듯 어전을 벗어났다.

나를 바라보는 눈에 은근한 적개심과 살기가 어렸다.

[하위 운명 암살, 적의, 반대가 당신을 향합니다]

[앞서 놓인 부정적 운명들이 한층 빨리 당신을 향합니다]

위협적인 운명들이 떠올랐으나 오히려 미소지었다.

어차피 치워야 할 쓰레기들이며 먹어야 할 운명들이다.

내가 찾아가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와 준다는데 나쁠 것 없다.

아니 귀찮음을 덜었으니 잘된 일이다.

[하위 운명 비웃음, 무시, 조롱, 오해, 모함, 누명을 포식했습니다! 신비 점수과 개변 점수를 획득했습니다!]

[개변 점수 전체를 퇴폐, 현혹에 투자합니다! 현혹에 최면이 깃듭니다]

외에도 쌓인 개변 점수를 나누어 곧 있을 진짜 싸움을 준비했다.

칼날을 목 옆에 두고도 지금껏 긴장한 적 없건만, 지금 황제와 나눌 말은 잘 벼려진 칼날보다 더욱 조심스레 다루어야 했기에 잠시 마른침을 삼켰다.

텅 빈 어전.

황제와 눈이 마주쳤고.

“과했다. 넌 너무 과해.”

황제가 고개를 흔들며 나를 타박했다.

허나 지난번과 같은 혐오와 미움은 없었다.

너무 커다란 사건의 연속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저지른 짓이 너무나 황당했기 때문일까.

“굳이 뜻을 전하기 위해 반역의 혐의까지 감내하다니 만일 일이 틀어졌으면 죽었을 거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구나.”

“허나 이러지 않았다면 누구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았을 겁니다. 폐하께 닿지 못했을 거고요. 그래서 이리 무리를 하였나이다. 용서하소서.”

이런 괴이한 방식이 아니었다면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반역이란 올가미를 씌웠겠지.

내가 벌인 상황이 너무나 괴상하여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물론 재미도 있었고.

내 변명에 황제의 얼굴에 지쳤다는 표정과 질렸다는 표정이 알맞은 비율로 뒤섞였다.

아직 황제의 잔소리는 끝나지 않았다.

“욕도 마찬가지다. 더하라는 말이 아니었다면 홀로 그들의 화를 모두 감당해야 했을 거다. 대체, 대체 어찌 그리 막무가내란 말인가.”

“더하라는 말도, 농이었단 말도 폐하의 정치적 배려였음을 압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알았다면 되었다. 다음부턴 하지 말란 말이 통할 리는 없겠지.”

“욕할 때는 폐하도 즐기지 않으셨습니까.”

“······.”

“분명 헛기침 하시면서 작게 미소를-.”

“그만, 그래도 다행이다. 이리 해결되어서 다행이야. 제국에 크나큰 오점을 남길 뻔했어.”

내 말을 끊으며 작게 내뱉는 숨에 안도가 어렸다.

황제 나름대로 나를 보호했음을 안다.

아무리 패악을 부리는 황자라도 황제 앞에서 그것도 어전에서 신하들을 세워두고 이런 짓을 벌였다간 결코 계승 경쟁에 참여하지 못한다.

그러나 황제가 허락했기에, 농이라 치부했기에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기지 않은 셈.

그래도 미운 자식과 제국을 생각하는 마음이 기꺼웠다.

다만 이제 곧 뱉을 말에 황제가 느낄 충격을 생각하니 조금은 그의 친절이 안쓰러웠다.

그런데 안쓰러움 속, 슬그머니 못된 즐거움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참으로 못 됐다 생각하면서도 씰룩이는 입가.

근데 생각해보니 천하에 황제가 안쓰럽다니, 어찌 보면 또 재밌는 일이었다.

잠시 안쓰럽다는 감정과 재밌다는 감정이 싸웠으나.

역시 광기는 재미를 택했다.

“그래, 방금 꼬락서니를 보니 북부의 전투도 계획이 있겠지. 그래서 무리해서 군사를 모았을 테고.”

황제가 그 말을 꺼내자마자.

폭탄을 바닥에 내던지듯.

“북부를 버리려 합니다. 아니 남김없이 파괴하려 합니다.”

준비한 말을 내던졌다.

어떠한 설명도 없는 결과만을.

백작과 황제의 놀란 얼굴이 홱 나를 향했고 멀리서 우리의 대화를 기록하던 서기관이 펜을 떨어뜨렸다.

숨어있는 그림자가 숨을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아 재미있다.

삶에 광기와 재미를 빼면 무엇이 남겠는가.

하지만 이대로는 주변인들까지 미쳐버릴 수 있기에.

모두가 경악하는 와중. 치미는 웃음을 참아가며 당당히 선언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려 합니다. 북부를, 제국의 경계선을.”

[장소에 싹튼 새로운 운명이 개화합니다! 북부에 패배와 반역, 승리와 충성을 넘어 제 3의 길 파괴와 재창조가 깃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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