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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폭군은 살고 싶다-75화 (75/200)

75화 빛의 속도로

서두칠성 중 네 번째 성, 메그레즈.

거대한 성벽 안, 가장 안전한 성주 저택에서도 중심.

성주 회랑.

평소 많은 이의 축하와 축복, 아부가 가득했던 곳에.

“…….”

침묵만이 떠돌았다.

처음 저 멀리 밝은 빛이 깜빡일 때만 해도 다들 믿지 않았다.

몇몇 등대지기가 보내는 신호가 심상치 않다고 말했으나 다들 그저 혼란이 있었겠거니 무시했다.

사막에선 실제로 저런 신호로 사람을 낚아 사냥하는 악질들도 있었으니까.

두 번째 성, 미자르에서 통신이 왔을 때는 오히려 분노했다.

감히 같은 성주에게 명령하느냐고.

고작 두 번째 성주 주제에 네 번째 성주에게 명령할 수 없노라며 분노했다.

사실 명령도 아니었고 성의 숫자는 위계와 아무 관련 없었으나 때로 사소한 것에 집착하여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하는 법.

그들이 그랬다.

“분명 열쇠를 모아 왕이 되기 위한 더러운 수작이지. 늙은이 놈. 나이만 먹어서 뇌까지 물러졌나 보군. 그딴 더러운 함정에 당할 줄 알고?”

오히려 두 번째 성주를 비웃었다.

그가 권력에 눈이 멀어 자신을 비롯한 다른 성주들을 골리는 것이라 믿었다.

그에게 동의하는 성주들을 보며.

“이런 병신 새끼들. 저 말을 진짜 믿다니. 검은 비? 씨발, 사막에 비가 온다는 소리를 믿는다고? 다들 노망이라도 나 버린 거냐?”

한참이나 욕을 쏟아 냈다.

그를 따라 다른 성주들을 향한 비웃음이 가득했다.

이를 보는 네 번째 성주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단순히 성주들을 향한 비웃음은 아니었다.

문득 모두가 한심해 보였다.

왜 저리 멍청한 판단을 하는 걸까?

자신처럼 좀 이성적이고 제대로 상황을 바라볼 줄 모르는 이유가 뭘까?

역시 놈들은 어울리지 않는다.

격이 다르다.

여기 제 처지도 모른 채 아부 떠는 놈들도, 다른 성의 성주라 오만하게 구는 놈들도 그저 어쩌다 직위를 꿰찬 운 좋은 놈들일 뿐.

진짜 성주로서의 위엄과 능력을 지닌 자들이 아니었다.

주변에서도 항상 그러지 않는가.

“역시 성주님의 혜안이 놀랍습니다. 어찌 그리 의도를 잘 파악하시는지요.”

“성주께서 늙은이의 욕심을 파악하지 못했다면 꼼짝없이 모두가 당할 뻔했습니다. 모두 성주님의 업적입니다.”

“감히 다른 성주들은 비교도 못 할 위엄으로 그들을 호통하시니 저 미련한 자들도 느낀 바가 있을 것이에요.”

옆에선 항상 감미로운 말로 그를 찬양하니.

놈들의 아부임을 알았으나 사실이기도 했다.

자신의 결정은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았고 언제나 옳았다.

가끔 쓴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으나, 금방 사라졌다.

사라지지 않으면 자신이 직접 치웠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냈다.

욕망, 아부, 거만 등 비대해진 몸뚱이만큼이나 비대해진 자아가 권좌에 오른 성주를 완전히 잡아먹었다.

풍기는 땀내와 거친 호흡이 역겨웠으나 모두가 진실을 감추고 쉬쉬했다.

그때.

불길한 검은 빗줄기가 성을 내리눌렀다.

촤라라라락, 질척이는 소리가 귓가를 가득 메웠고.

순식간에 성이 까맣게 뒤덮였다.

그제야 다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자신들이 조롱하고 욕했던 다른 성주들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선택했다.

“저, 저놈이 먼저 성주들의 의견이 함정이라 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네 녀석이 가장 먼저 동의했잖아!”

“일단 안으로! 가장 안전한 곳으로 피해야 합니다!”

외면과 도망을.

서로를 원망하고 죄를 뒤집어씌웠으며 두려움에 떠는 주민들을 도외시하고 저들만 가장 안전한 저택 안에 처박혔다.

그 속에서도 위계를 나누어 서로를 경계하고 억압했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몰랐다.

아니, 모든 게 잘못되어 몰랐을지도.

그들이 더러운 오물처럼 모여 비열함과 천박함을 자랑할 때.

콰르르릉!

별빛이 내리쳤다.

아니, 별빛을 닮은 황자가 들이쳤다.

무너진 천장, 창밖에는 어둑한 먹구름과 새까만 빗줄기만이 가득.

평소 그리 그들을 괴롭혔던 볕 한 점 없는 풍경 속.

천장에서 쏟아진 유일한 빛줄기.

그 태가 아름답고 고고하여 눈이 멀 것만 같았다.

홀로 빛나는 황자의 주변만 검은 기운이 침범치 못했다.

그들 사이에 선 황자의 백금발이 꿈결같이 살랑인 순간.

주변에 선 신하 하나가 죽었다.

허나 고고한 황자께서는 죄책감 하나 없이 되물을 뿐.

네가 성주인가.

아니라 하여도 죽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맞다고 하여도 죽였다.

어쩌면 처음부터 대답은 중요치 않았을지도 몰랐다.

“허억, 허억. 사-살려. 크허헉!”

목숨을 구걸하는 말에도 황자는 질문과 검질을 계속할 뿐.

그가 거대한 검을 휘두를 때마다 황금빛 빛살이 주변을 뭉갰고 천장이 숭덩숭덩 무너졌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누군가 온몸에 흐르는 질척한 땀을 닦아 내던 중 감촉이 과하게 끈적이는 손을 보고는 경악성을 내질렀다.

“히이익!”

손끝에 딸려 나온 것은 땀이 아닌 밖에서 내린 검은 비.

그제야 무너진 천장으로 검은 물이 들이침을 확인했다.

황자가 홀로 깨끗했기에 자신들도 그런 줄 알았다.

서로가 서로를 보고 나서야 자신들의 꼬락서니를 깨달았다.

모두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까마귀와 같은 몰골.

그사이 홀로 하얀 황자는 새하얀 학.

까마귀 속 한 마리 학이.

“다음, 네가 성주인가?”

울 듯 물음을 반복했고.

한 까마귀가 고개를 흔들자.

놈을 베었다.

까마귀 하나가 검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죽은 까마귀를 대신하여 다른 놈들이 까악까악 비명을 질러 댔다.

몸서리를 칠 때마다 몸을 덮은 검은 비가 파드득 피어났다.

까마귀들을 쓸어보는 학의 눈이 유독 붉었다.

학은 본디 자신의 깨끗함을 자랑하기 마련이건만 황자는 그런 하찮은 찬사에 욕심이 없었다.

원하는 것은.

“답해라. 네가 성주인가.”

성주와 죽음.

어쩌면 성주를 찾는다는 것도 핑계가 아닐까.

결국 참다못한 한 까마귀가.

“대체 뭐 때문에 여기 있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오! 당신의 뜻만 이루면 될 일이잖소!”

검은 빗물을 날개처럼 펼치며 까악거리자.

쿠욱. 황자가 거검을 집어던져 놈의 몸을 통째로 벽에 박아 넣었다.

꺼어어억, 숨 막히는 소리를 내며 죽어 가는 놈을 보며.

“사막에선 원래 패장의 내장을 꺼내 널지 않던가. 너희들의 법칙대로 할 뿐이다. 이리 죽기 싫었다면 제국법을 따랐어야지. 나를 따랐어야지.”

“끄으으윽, 우, 우리는 그저.”

“여러 번 경고가 있었음에도 듣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죽을 일인데 나의 뜻을 따른 다른 성주들을 비난했고. 그걸로도 모자라 밖에서 어쩔 줄 모르는 거주민들을 방치했지. 내가 너흴 살려 둘 이유가 있나?”

“그-그렇다면 왜 굳이… 성주라 묻는가… 어차피 다 죽일 건데-.”

황자가 혼탁하게 죽어 가는 자의 눈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저 내 즐거움이다.”

못된 심보.

패악스러운 말과 달리, 지금 앞에서 살랑거리는 빛은 왜 천국의 문과 같아 보이는지.

놈이 황자의 얼굴을 마주 보며 아스라이 웃더니 그대로 절명했다.

황자가 무심히 시체를 던졌고 빛을 쬐는 동안 걷혔던 마유가 다시 질퍽거리며 널브러진 육신을 휘감았다.

콰르르, 황자의 눈이 번쩍이자 거검이 천둥소리를 내었고.

학이 다시 까마귀 사냥을 시작하려 할 때.

“황자, 황자!”

드디어 가만히 지켜보던 성주가 그를 거칠게 불렀다.

“내가 성주다! 네가 죽이려는 성주!”

그가 얼굴에 달라붙는 검은 빗물을 꾸역꾸역 닦아 내며 황자를 쏘아보았다.

지방 가득한 얼굴에 핀 분노가 이리저리 우그러졌다.

그런 성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황자가.

“네놈이 성주인가.”

시선을 돌려 다시 다른 이를 향해 죽음의 문답을 이어나갔다.

그제야 회랑에 선 모두가 황자가 정상이 아님을 짐작했다.

모두 죽는다.

현실을 깨달은 그들이 제 목숨을 지키기 위해 회랑 밖으로 도망가려 했으나.

“전하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누구도 나가지 못합니다.”

“다들 안으로 들어가세요.”

앞에는 살벌한 기세를 뿜어내는 안드레와 바이올렛이 버티는 중.

뒤로 얼핏 보이는 경비들은 이미 무력화된 상태.

몇몇이 쪽수로 밀어 보려 했으나 오히려 처참히 나뒹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황자의 문답은 끊기지 않았다.

기어코 모든 이에게 물어보려는가.

이제는 그 목적도 의도도 불분명했다.

대체 그는 무엇을 하려는가.

까마귀들이 처절하게 울며 삶을 갈구했으나.

학은 사냥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과한 두려움에 먹힌 몇몇은 창문 밖으로 뛰쳐나가기까지 했다.

물론 목이 꺾여 죽었다.

그렇게 문답이 계속되는 중에.

콰드드득.

황자가 내는 살벌한 소리 외에 다른 소리가 끼어들었다.

이어지는 어딘가 끈적하면서도 불쾌한 소리.

“으윽! 으으으.”

뒤돌아보았던 자가 화들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곳에는 성주, 아니 이젠 성주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사람을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는 중.

몸을 가득 덮은 검은 비가 지방처럼 뭉쳐 출렁였다.

놈이 황자의 깨끗한 광기가 감도는 붉은 눈과는 달리 혼탁한 기운이 도는 새빨간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고.

“내가, 쩝쩝, 성주다. 쯔압.”

인육을 씹으며 다시금 자신이 성주임을 말했다.

터지는 붉은 피와 더러운 오물들이 뒤섞여 점점 놈의 크기가 부풀었다.

그제야.

“그래, 기다렸다. 성주.”

황자가 샛노랗게 웃으며 놈을 마주했다.

* * *

처음 회랑에 들어선 순간.

[당신을 기다리는 악마가 운명 악의와 함정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떠오른 운명.

아직 마유가 들이치지 않았건만 안에 악마가 있다.

단번에 짐작했다.

놈이 진짜 성주라고.

처음부터 놈과 나의 싸움이었다.

일부러 상관없는 이들을 죽였다.

죄책감은 없었다.

[운명 약탈, 살인, 착취를 포식합니다. 개변 점수를 획득합니다. 장소의 운명이 뒤틀립니다]

놈들의 운명 중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모두 남의 눈물을 먹고 사는 까마귀들.

남의 고통과 피로 제 몸을 살찌우는 이미 소악마와 다름없는 이들.

마유에서만 악마들이 태어나는 게 아니다.

어디에서나 때론 인간이 악마보다 악랄하기도 하니.

소악마를 죽이듯 놈들을 죽이며 두려움과 광기를 피와 함께 흩뿌렸다.

거기다 위에선 검은 비가 내리기까지.

악마에겐 그야말로 진수성찬.

악마가 가장 사랑하고 원하는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누가 먼저 함정에 빠질 것인가 인내심을 겨루는 싸움.

놈이 끝까지 정체를 숨긴다면 악마의 함정에 뛰어들 수밖에 없고.

상대가 참지 못하고 식탁에 올라선다면 그때부턴 나의 식사 시간.

드디어 놈이 차려진 진수성찬에 탐욕을 참지 못하고 정체를 드러냈고.

정체를 드러낸 이상.

“이만 뒈져라.”

놈은 날 이기지 못한다.

“황자, 너의 살코기 맛은 어떨지 궁금하구나. 쯔압. 달콤하려나? 그 존귀한 몸뚱이 맛은 어떨지 궁금하다. 궁금해.”

성주가 나를 바라보며 꾸덕한 몸을 뭉클거리자 늪에서 솟아오르듯 잡아먹힌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허옇게 멀어 버린 눈동자가 원한을 담아 번뜩였다.

그들 또한 내 살과 피의 맛이 궁금하다 외쳐 댔다.

나를 잡아먹고자 하는 꼴이 우스웠다.

어느새 주변에 선 자들 모두가 놈의 먹이가 되어 버렸다.

텅 비어 버린 저택 회랑.

쏟아지는 비와 꿀렁이는 점액질이 질척이는 소리를 내었다.

곧 벌어질 싸움을 기대하며 물었다.

“언제부터였나.”

“언제-? 사람을 먹은 것?”

“성주의 영혼에 깃든 것 말이다.”

“아냐, 아냐. 황자여. 무언가 착각하고 있어. 난 배가 고팠고 그저 배를 채웠을 뿐. 악마에게 먹힌 게 아니야. 내가 악마를 먹은 것이지.”

“악마를 먹었다?”

놈이 진실을 밝히자.

[악마의 운명 폭식, 탐욕, 흡수, 식인, 잔혹이 당신을 노립니다]

지금껏 마유에 감추어 두었던 진짜 운명들이 떠올랐다.

놈은 먹는 자.

본디 욕심과 탐욕으로 배를 부풀리는 자.

먹다 먹다 못해, 쾌락을 삼키다 삼키다 못해 사막에서 발견된 독물들까지 입에 넣었고.

스스로 악마가 되길 택했다.

악마들이 간계를 부리기도 전에 악마였던 놈.

놈이 누군지 알아챘다.

웃긴 일이었다.

전생, 흑해를 지배하던 고위 악마 중 하나, 검은 성주가 본래 인간이었다니.

심지어 진짜 성주였다니.

바위성을 지키는 의무를 저버리고 서부의 커다란 재해가 되어 버린 놈의 탐욕이 징그러웠다.

그러는 중에도 놈이 입을 놀렸고.

후두둑, 후두둑.

피와 내장, 탐욕이 쏟아지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잡아먹듯, 자신의 탐욕마저 잡아먹듯 몸집을 키웠다.

반질거리는 눈에 광기가 가득했다.

비로소 음식이 다 익었다.

“그래, 그러니 나는 처음부터 악마였으며 일곱 성의 주인이 될-.”

떠드는 말엔 관심이 없어.

놈의 목을 끊어 냈다.

그르르륵, 가래 끊는 소리가 울렸다.

분명 회랑 끝과 끝이었으나 이미 나는 놈의 등 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저택에 곧 말 달리는 소리가 들어찼고 환하게 뿜어내는 샛노란 불꽃이 질척이는 악의를 내리눌렀다.

건국제가 건네 준 세 번째 심장 광염에 대한 기록, 그 첫 번째 능력.

광속.

전까진 초적염과 적염을 뿜어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면.

지금은 그야말로 빛.

“후우우.”

숨을 내뱉자 그제야 강력한 충격파가 몸과 저택을 뒤흔들었다.

직선으로 무겁게 내리던 검은 비가 풍랑을 만나 사방으로 날뛰었고.

놈의 무거운 몸이 허물어지듯 퍼졌다 다시 모여들었다.

그롸락, 그롸라라락.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목 안 가득한 마유 때문에 그저 부글거리는 소리만이 울렸다.

성주가 다시 몸을 수복하기 전.

자세를 잡은 뒤 이번엔 놈의 몸통을 겨냥했다.

심장 어림에 형성된 세 개의 고리 중 가장 바깥.

빛나듯 타오르는 불꽃이 몸 안을 이리저리 튕기며 돌아다니더니.

다시 한번 아찔한 빛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소리는 없다.

아니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걸까.

번뜩, 찰나가 지난 이후.

반쯤 갈라진 성주의 몸이 보였고.

“흐으으.”

내 입에서도 바람 빠지는 소리가 울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벽에 처박힌 모양새.

아직 통제가 완벽하지 못하다.

뒤늦게 몰려오는 후폭풍과 고통에 온몸이 저렸다.

그러나 웃었다.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마침 잘되었군. 이리 좋은 연습 상대가 있는데 몸을 아낄 일인가.”

앞에 그 무엇보다 훌륭한 허수아비가 있지 않은가.

검은 성주는 일반적인 검으론 베지 못하는 몸.

그러나 광속을 담은, 날카로움을 벗어난 속도는 놈을 갈라내기 충분했고.

그거로는 모자라 몸 안에서 이리저리 튕겨 대는 빛을 그러모아 브레이커에 담으니.

키이이잉.

브레이커가 그 어느 때보다 고속으로 진동하며 날카로운 울음을 뽑아냈다.

나의 몸 또한 점차 진동하며 곧 있을 이동을 준비했다.

다만 이대로는 몸이 충격을 버티지 못하겠다 판단.

[개변 점수 전부를 신체에 투자합니다! 육신이 조금 더 단단해지고 기존 속성 회복이 더욱 빨라집니다]

[신비 점수를 세 번째 심장 광염에 투자합니다. 광염의 반탄력이 조금 안정화됩니다]

신체가 단단해졌고, 몸 안에서 날뛰는 광염은 조금 부드러워졌다.

즉, 이제 단발성 이동이 아닌 연속으로 이동이 가능해졌다는 뜻.

검을 빗겨 든 채 놈에게 물었다.

“빛의 속도로 베여 본 적 있나?”

성주가 갈라진 몸을 회복하며 나를 향해 손을 뻗기 전.

시간이 멈추었다.

주변 가득한 악의 속.

수십 개의 빛의 길이 떠올랐다.

등대지기와 길잡이들은 이러한 풍경을 보는 것일까.

첫 번째 길을 선택했고.

푸화학!

이전보단 목표에 더 가까워졌다.

천장에 올라선 채로 두 번째 길을 골라냈다.

방금보다 한 마디 정도 더 깊숙이 베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하나씩 길을 골라 나갈 때마다 차츰 정확도가 높아졌다.

길이란 이렇다, 수련이란 이렇다.

어느새 놈이 악마라는 사실도 잊었고 무아에 빠진 채 그저 길을 선택하였다.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는 이상에 절로 고통이 기쁨으로 바뀌었다.

몇 번이나 길을 선택했을까.

발을 박찰 때마다 발아래 밟히는 바닥과 천장이 크래커처럼 바사삭 부서지는 감각이 생생했다.

어느새 주변에는 부유하는 파편들만이 가득했고.

이를 헤치고 나아가던 중 확신했다.

온전히 베었다.

빛을 머금은 거검이 너무나 부드럽게 놈의 몸을 파고들더니.

어떠한 저항감 없이 놈을 잘라 냈다.

그제야.

부서지고 잘리고 터지고 뭉그러지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동시에 저택과 함께 성주의 몸이 완전히 무너졌다.

본래 흑해의 재앙이 되었을 터였던 검은 성주가 등장하기도 전에 죽은 순간이기도 했으며.

“광검에 죽은 것을 영광으로 알라.”

새로운 검을 깨달은 순간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 몰아치는 거센 후폭풍에 검은 비가 잠깐이나마 그쳤다.

조금은 건국제가 말해 준 광염의 이상을 닮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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